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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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 로켓[1]
소련이 1960년대 달탐사를 위해서 제작한 '''4단 로켓'''. 달착륙을 놓고 경쟁하던 미국의 새턴 V 로켓에 상응하는 로켓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새턴 V에 비해 개발이 많이 늦어졌기 때문에 미국보다 빨리 달에 갔다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미국의 승리가 결정난 1969년 2월 21일에서야 무인으로 첫 발사를 할 수 있었는데, 발사 66초만에 '''폭발'''해 버렸다. 이후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직전인 1969년 7월 3일 두번째 무인 발사를 시도했으나 발사대 위에서 쓰러지며 '''폭발'''하는 바람에 주변 발사대까지 같이 박살내면서[2] 이후 한동안 더이상의 발사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 이후 1971년 6월 26일 세번째 무인 발사를 시도했으나 '''폭발'''해 버리고 말았고 이듬해인 1972년 11월 23일 네번째 무인 발사를 시도했으나 역시 '''폭발'''해 버렸다. 1974년 8월 다섯번째 발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소련 당국은 1974년 5월 마침내 최종 중단을 결정했다. 총 4번의 발사 실패로 수백톤의 케로신과 액체산소의 폭발(TNT 환산 약 7천톤 규모)과 함께 개박살나는 사고가 났는데 이는 히로시마 원폭의 0.4배의 폭발규모를 보이며 인류 역사상 있었던 가장 큰 비핵 폭발이 되었다.
소련의 우주계획이 워낙 철저한 비밀주의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N1 로켓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표면적으로 유인 달탐사 계획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었다. 다만 미국은 첩보 위성을 통해 N1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N1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련이 붕괴된 후에야 알려지게 되었다.
미국과 치열한 우주 경쟁을 펼치고 있던 소련은 달에 무사히 인간을 보냈다가 귀환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의 아폴로 계획과 기본적으로 같은 형태의 우주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아폴로 계획에 상응하는 'L3' 계획을 세웠고, 유인 우주선으로 소유즈 우주선을 개발, 개량했고, 달착륙선으로 1인승 LK를 개발했다. 아울러 이들을 우주로 올려 보낼 발사체로 개발된 것이 N1 로켓이었다.
N1 로켓의 특징은 1단부에 무려 30개의 엔진을 단 것이다. 1단부에 엔진 5개를 달았던 새턴 V에 비해 훨씬 복잡해 보이는데, 이는 F-1 같은 대형 추진력의 엔진 개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 단일 엔진의 추진력을 높이려면 연소실 크기를 키워 한번에 더 많은 연료를 연소시켜 더 많은 추진 가스를 발생시키는 방법밖에 없는데, 문제는 연소실 크기를 무작정 키우기만 하면 연소실 내부에서 불완전 연소가 되는 연료의 양이 많아져 오히려 연소 효율이 떨어지거나 혹은 연소실 압력이 너무 높아져 폭발하게 된다. 미국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 이끄는 연구팀이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써가면서 오버테크놀로지스러운 F-1엔진을 만드는데 성공[3] 했지만 소련의 최고의 로켓 공학자인 코롤료프의 연구팀한테는 그런 추친체를 제작할 기술도, 재정적 지원도 부족했다.[4] 결국 작은 추진력의 엔진 30개를 다발처럼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데, 무려 30개의 엔진을 동기화하여 제어하기 위해서 너무 복잡한 제어기술이 필요했고 결국 이것이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5] 또 N1에 적용된 케로신-액체산소 엔진이 미국의 액체수소-액체산소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6][7]
사실 1964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실각한 이후 새로 권력을 장악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달탐사계획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코룔료프는 예산을 타내는게 너무나 어려웠다.[8]
세르게이 코롤료프와 발렌틴 글루시코와의 오랜 갈등도 한몫했다. 둘의 사이가 틀어졌기에 코롤료프는 단독으로 NK-33엔진을 개발했다. 개발된 NK-33엔진은 상술했다시피 미국의 F-1엔진 보다 훨씬 추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무려 30개 엔진의 클러스터링으로 극복하려했다. 무려 30개의 엔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N1의 수송 능력은 새턴 V의 2/3에 불과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NK-33 엔진은 케로신 엔진끼리 비교했을 때 결코 효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F1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새턴 로켓의 상단에 쓰이는 J-2로켓에 비해 효율이 안 좋고 클러스터링 된 디자인 특성상 추중비가 낮기 때문에 페이로드는 떨어졌다.
N1의 낮은 출력 때문에 소련은 N1에 탑재될 사령선인 소유즈 및 달착륙선을 크게 경량화해야 했고, 그 결과 소련의 달착륙선은 미국의 것보다 크기가 매우 작았고 1인승으로 설계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처럼 사령선과 달착륙선 간을 우주선 내부에서 이동할 수 없었고, 달착륙선에 탑승할 우주비행사는 일단 소유즈 밖으로 나가 EVA를 해서 달착륙선에 탑승하고 돌아올때도 EVA를 해서 소유즈에 돌아와야 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N-1로켓을 폭발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지병이 악화되어 숨졌다 카더라...지만 사실 시험 발사 이전에 사망한 것이라 어디까지나 드립일 뿐이다. 다만 이 무지막지한 물건을 만드느라 건강을 해쳤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코롤료프 사망 후 설계국을 이어받아 N1 개발의 총책임자가 된 바실리 미신이 N1 실패로 충격을 받고 알콜의존증 환자가 되어 반강제로 은퇴한 것은 사실이다.
N1의 잔혹사를 소개하는 영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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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Agency에서 대형 발사체로 등장한다.
폴아웃 3의 항공우주 박물관에 미국의 달 착륙선 모형으로 LK가 등장한다. 대체역사물이라 잘 알려진 아폴로를 쓰기는 곤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소련제를 따라 만든 듯 하다.
호러 영화 아폴로 18에서 아폴로 18호 비행사들이 달에 LK가 착륙해 있고 소련 우주비행사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외계 생물에게 당한 것으로 곧 아폴로 18호 비행사들도 외계 생물에게 당해 모두 죽게 된다.
N1 로켓[1]
1. 개요
소련이 1960년대 달탐사를 위해서 제작한 '''4단 로켓'''. 달착륙을 놓고 경쟁하던 미국의 새턴 V 로켓에 상응하는 로켓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새턴 V에 비해 개발이 많이 늦어졌기 때문에 미국보다 빨리 달에 갔다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사실상 미국의 승리가 결정난 1969년 2월 21일에서야 무인으로 첫 발사를 할 수 있었는데, 발사 66초만에 '''폭발'''해 버렸다. 이후 아폴로 11호가 발사되기 직전인 1969년 7월 3일 두번째 무인 발사를 시도했으나 발사대 위에서 쓰러지며 '''폭발'''하는 바람에 주변 발사대까지 같이 박살내면서[2] 이후 한동안 더이상의 발사를 진행할 수도 없었다. 이후 1971년 6월 26일 세번째 무인 발사를 시도했으나 '''폭발'''해 버리고 말았고 이듬해인 1972년 11월 23일 네번째 무인 발사를 시도했으나 역시 '''폭발'''해 버렸다. 1974년 8월 다섯번째 발사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소련 당국은 1974년 5월 마침내 최종 중단을 결정했다. 총 4번의 발사 실패로 수백톤의 케로신과 액체산소의 폭발(TNT 환산 약 7천톤 규모)과 함께 개박살나는 사고가 났는데 이는 히로시마 원폭의 0.4배의 폭발규모를 보이며 인류 역사상 있었던 가장 큰 비핵 폭발이 되었다.
소련의 우주계획이 워낙 철저한 비밀주의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N1 로켓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소련은 표면적으로 유인 달탐사 계획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었다. 다만 미국은 첩보 위성을 통해 N1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N1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련이 붕괴된 후에야 알려지게 되었다.
2. 상세
미국과 치열한 우주 경쟁을 펼치고 있던 소련은 달에 무사히 인간을 보냈다가 귀환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미국의 아폴로 계획과 기본적으로 같은 형태의 우주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따라 소련은 아폴로 계획에 상응하는 'L3' 계획을 세웠고, 유인 우주선으로 소유즈 우주선을 개발, 개량했고, 달착륙선으로 1인승 LK를 개발했다. 아울러 이들을 우주로 올려 보낼 발사체로 개발된 것이 N1 로켓이었다.
N1 로켓의 특징은 1단부에 무려 30개의 엔진을 단 것이다. 1단부에 엔진 5개를 달았던 새턴 V에 비해 훨씬 복잡해 보이는데, 이는 F-1 같은 대형 추진력의 엔진 개발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 단일 엔진의 추진력을 높이려면 연소실 크기를 키워 한번에 더 많은 연료를 연소시켜 더 많은 추진 가스를 발생시키는 방법밖에 없는데, 문제는 연소실 크기를 무작정 키우기만 하면 연소실 내부에서 불완전 연소가 되는 연료의 양이 많아져 오히려 연소 효율이 떨어지거나 혹은 연소실 압력이 너무 높아져 폭발하게 된다. 미국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 이끄는 연구팀이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써가면서 오버테크놀로지스러운 F-1엔진을 만드는데 성공[3] 했지만 소련의 최고의 로켓 공학자인 코롤료프의 연구팀한테는 그런 추친체를 제작할 기술도, 재정적 지원도 부족했다.[4] 결국 작은 추진력의 엔진 30개를 다발처럼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데, 무려 30개의 엔진을 동기화하여 제어하기 위해서 너무 복잡한 제어기술이 필요했고 결국 이것이 실패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5] 또 N1에 적용된 케로신-액체산소 엔진이 미국의 액체수소-액체산소 방식보다 에너지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6][7]
사실 1964년 니키타 흐루쇼프가 실각한 이후 새로 권력을 장악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달탐사계획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코룔료프는 예산을 타내는게 너무나 어려웠다.[8]
세르게이 코롤료프와 발렌틴 글루시코와의 오랜 갈등도 한몫했다. 둘의 사이가 틀어졌기에 코롤료프는 단독으로 NK-33엔진을 개발했다. 개발된 NK-33엔진은 상술했다시피 미국의 F-1엔진 보다 훨씬 추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무려 30개 엔진의 클러스터링으로 극복하려했다. 무려 30개의 엔진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N1의 수송 능력은 새턴 V의 2/3에 불과했다.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NK-33 엔진은 케로신 엔진끼리 비교했을 때 결코 효율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F1보다는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새턴 로켓의 상단에 쓰이는 J-2로켓에 비해 효율이 안 좋고 클러스터링 된 디자인 특성상 추중비가 낮기 때문에 페이로드는 떨어졌다.
N1의 낮은 출력 때문에 소련은 N1에 탑재될 사령선인 소유즈 및 달착륙선을 크게 경량화해야 했고, 그 결과 소련의 달착륙선은 미국의 것보다 크기가 매우 작았고 1인승으로 설계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처럼 사령선과 달착륙선 간을 우주선 내부에서 이동할 수 없었고, 달착륙선에 탑승할 우주비행사는 일단 소유즈 밖으로 나가 EVA를 해서 달착륙선에 탑승하고 돌아올때도 EVA를 해서 소유즈에 돌아와야 했다.
세르게이 코롤료프는 N-1로켓을 폭발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지병이 악화되어 숨졌다 카더라...지만 사실 시험 발사 이전에 사망한 것이라 어디까지나 드립일 뿐이다. 다만 이 무지막지한 물건을 만드느라 건강을 해쳤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코롤료프 사망 후 설계국을 이어받아 N1 개발의 총책임자가 된 바실리 미신이 N1 실패로 충격을 받고 알콜의존증 환자가 되어 반강제로 은퇴한 것은 사실이다.
N1의 잔혹사를 소개하는 영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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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발사 시도
- 1차 시도 : 1969년 2월 21일 (serial 3L, 존드 L1S-1) - 발사 68초 후 폭발
발사 직후 전압 이상으로 12번 엔진 셧다운, 직후 24번 엔진 셧다운, 발사 6초 후 2번 엔진에서 포고 오실레이션 발생으로 추진 가스 유출 발생, 발사 25초 후 진동이 심해짐, 68초 후 엔진 셧다운
- 2차 시도 : 1969년 7월 3일 (serial 5L, 존드 L1S-2) - 발사 15초 후 폭발
발사 15초 후 엔진 셧다운, 발사 23초 후 지상 충돌 후 폭발
발사 39초 후 부스터 롤링 발생, 발사 48초 후 짐벌락 현상 발생, 발사 50초 후 엔진 셧다운
- 4차 시도 : 1972년 11월 23일 (serial 7L, 소유즈 7K-LOK[* ]) - 발사 107초 후 폭발
발사 90초 후 4번 엔진 폭발, 발사 107초 후 로켓 분해 시작, 발사 110초 후 데이터 송출 최종 중단.
4. 제원
5. 매체에서의 등장
Space Agency에서 대형 발사체로 등장한다.
폴아웃 3의 항공우주 박물관에 미국의 달 착륙선 모형으로 LK가 등장한다. 대체역사물이라 잘 알려진 아폴로를 쓰기는 곤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소련제를 따라 만든 듯 하다.
호러 영화 아폴로 18에서 아폴로 18호 비행사들이 달에 LK가 착륙해 있고 소련 우주비행사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외계 생물에게 당한 것으로 곧 아폴로 18호 비행사들도 외계 생물에게 당해 모두 죽게 된다.
6. 관련 문서
[1] 뒤쪽의 로켓은 1:1사이즈 목업이다.[2] TNT 7천톤 즉 7킬로톤급의 폭발이 일어났으니 발사대가 멀쩡할 리가 없다..[3] 당시 폰 브라운 연구팀은 결국 F-1 엔진의 연소실 안정화에는 성공했지만, 정확히 그게 어떤 원리에 의해서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몰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수도 없이 실패를 반복하다가 몇번 성공했는데 "정확한 원리는 모르지만 이러저러한 모양으로 만들면 안터지더라"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그래서 고대로 수작업으로 생산했다고. 실제 21세기 들어서 NASA가 초대형로켓 SLS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F-1엔진에 관해서 남겨져있는 이론이나 자료가 거의 없고, 당시 인력들은 모두 은퇴한 상태라서 한동안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된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었다. 결국 NASA가 보관중이던 F-1엔진을 분석해서 기술을 살려냈다고 한다. 그런데 기껏 기술 복원을 해놓고 정작 SLS에 채용된 엔진은 F-1의 후계 디자인이 아니라 우주왕복선에서 사용되었던 RS-25 엔진의 재활용이었다.[4] 소련 최고의 엔진기술자였던 발렌틴 글루시코는 확장 다단연소 사이클 방식을 이용하여 F1에 버금가는 추력을 가지고 비추력은 F1을 뛰어넘는 RD-270엔진을 개발 성공했지만 당시 코롤료프와 글루시코는 사이가 안 좋았다. 따라서 글루시코는 RD-270엔진을 UR-700이라는 로켓에 사용하기로 했지만 소련은 코롤료프의 손을 들어줬다.[5] 엔진 클러스터링은 쉬운 일이 아니며 클러스터링을 위한 설비들은 불필요한 중량을 증가시키는 물건이다. 괜히 B787을 위시한 항공기들과 로켓들이 고출력 엔진을 달아 엔진 수를 줄이는 게 아니다.[6] 아이러니하게도 약 30년 후 미국에서 설립된 스페이스X는 개발비용 절감을 위해 팰컨 1이 성공하자마자 팰컨 1의 멀린 엔진을 9개 박은 팰컨 9를 선보였고, 그 팰컨 9를 3대 이어붙여 팰컨 헤비를 만들었다. 이러다 보니 팰컨 헤비도 N1 로켓과 비슷하게 중형 로켓엔진 27개를 동시에 점화해야 하게 되는데 팰컨 9 개발 당시부터 컴퓨터를 통해 총괄 제어하는 능력을 확보하여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 거기다 이 녀석은 이 세 개의 1단부스터가 제각기 다시 지상으로 되돌아와 다트가 과녁에 꽂히듯이 수직으로 착륙해 복귀하는 묘기에 가까운 성능을 보여준다. 과거와는 달리 클러스터링 기술이 크게 발전했기 때문.[7] 그리고 스페이스X는 최대 40여개까지 엔진을 갖다 박은 행성간 로켓 스타십 시스템을 제작하며 기어이 이 N1의 30개 클러스터링마저 추월하려고 하고 있다. 4단 로켓이었던 N1과는 달리 딱 2단으로만 구성되는 것도 다르다.[8] 허세가 심하고 국가적 위신을 중요하게 여겨서 미국과의 자존심 경쟁에 몰두했던 흐루쇼프에 비해서, 브레즈네프는 실용적인 관료스타일이라 달착륙 경쟁이 쓸데없이 예산만 잡아먹는 병림픽이라고 생각했다. 이때문에 아무런 실용적 가치가 없어 보이는 달탐사 보다는 여러가지로 쓸모가 많아 보였던 우주 정거장 개발에 관심을 가졌고 이게 살류트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당장 우주정거장은 정찰이나 폭격같은 군사용으로도 얼마든지 쓸 수가 있으니까...[9] 여담으로 영상의 초중반에 사용된 배경음악은 영화 아폴로 13의 발사 장면 OST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