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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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시절과 민영화 직후, 그리고 현재 쓰이는 로고.
'''Télévision française 1'''(프랑스 제1텔레비전). 다만 이것은 공영방송이었을 당시의 명칭으로 지금은 그냥 이니셜 '''TF1'''만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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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최대의 민영방송국. TF1은 TF1 그룹[4] 이 운영하는 프랑스 최대 민영 TV 채널로 본래는 공영이었던 것을 1987년에 민영화했다.[5] 프랑스 방송 시장 중 약 24%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국제 뉴스 채널인 프랑스 24의 주주 중 하나이다. 자매 채널로 LCI, 유로 스포츠, TF6, TMC 등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2. 역사
1935년 4월 26일 프랑스 체신부 산하로 설립된 국영방송 'Radio-PTT Vision'(라디오페테테비지옹)이 시초이다. 유럽에서 오전시간 방송을 최초로 시도하였다. 1937년 방송 방식을 기계식에서 브라운관식으로 변경하면서 명칭도 'RNT'로 바꾸고 2차대전 직전까지 방송이 유지되었다. 이후 2차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하면서 프랑스어 방송이 중지되고 독일어 방송이 행해지는 등의 굴욕을 겪기도 했다. 해방 이후 텔레비전 방송은 국영방송국인 'RTF'가 담당하게 되었다.
1963년에 두번째 채널이 개국되면서 기존의 채널은 'RTF 채널 1'로 개칭되었다. 이 시기에 차츰차츰 TV가 보급되면서 전국적인 방송망을 갖추게 되었다. 다만 당시 프랑스에서도 TV는 사치품이라는 개념이 강했고,[6] 방송시간도 평일에는 12시부터 2시, 5시에서 11시로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1959년에는 제한적인 형태의 광고가 시작되었는데, 주로 지역 특산물에 대한 홍보 방송이 주를 이루었다.
1964년 6월 27일 RTF는 공사화(公社化)되어 ORTF가 되었다. 그러나 명목상으로만 공영방송이 되었을 뿐 경영면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간섭하고 있었으며, 보도프로그램들은 대다수가 친정부 논조였다. 그래서 68운동 당시에는 시청자들의 시청거부 운동은 물론,[7] ORTF 사내에서조차 직원들이 대거 파업에 돌입해서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1968년 10월에는 상표가 드러나는 일반적인 상업광고를 블록광고 형태로 허용하고 언론보도의 논조를 완화해보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1974년 7월 28일에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프랑스의 단일 공영방송국 체제는 종언을 고했다.
1974년 12월 31일을 끝으로 ORTF는 해체되었고[8] 'ORTF 채널 1'은 'TF1'로 분리 독립했다. 그리고 이때서야 컬러 정규방송이 시작되었다.[9] 70년대 초까지 프랑스에서는 기술적 문제로 아날로그 VHF 대역에서는 컬러방송을 하는 게 불가능해서라고 한다.
민영화 이전~민영화 직후 로고를 바꾸기 전까지는 '첫번째 채널'이란 뜻의 'La Une'란 별칭도 혼용되었다.
2.1. 민영화와 그에 따르는 비판
1987년 당시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에 의해 세계적인 건설기업인 부이그한테 넘겨져 민영화되었다.[10] 그러나 프랑수아 미테랑이 재선된 후에도 재 공영화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았는데, 이미 격변기를 거친 방송계를 다시 들쑤시기엔 뭐했고 미테랑도 부이그와 사이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던데다 공영화의 실익도 별로 없다는 점 등이 그 이유였다. 다만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에 의하면, 정작 미테랑은 TF1을 다시 공영화하고 싶어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과 민영화된 지 2년만에 다시 국유화시킬 경우 이를 빌미로 다수당이 바뀔 때마다 집권당 마음대로 산업과 은행제도를 바꿀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또 당시 총리였던 로카르도 반대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어쨌든 이 시기에 광고규제도 완화되고 미국 TV프로그램을 수입하거나[11] 스포츠 중계권을 대거 사들이거나 여타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제작-방영하면서 A2와 FR3, 카날 플뤼[12] , 라생크[13] 등을 제치고 프랑스 방송 채널의 1인자가 되었고, 민영화된 TF1은 자크 시라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논조면에서 특히 친시라크적인 색채를 띄게 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1995년 대통령 선거 당시 총리[14] 였던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시라크를 도왔고 ,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는 라오넬 죠스팽이 3위로 낙선하고 장 마리 르펜이 17%의 득표율로 결선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TF1에서 치안에 대해 부정적인 논조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죠스팽을 공격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15]
1993년 당시 주간조선에 연재되던 이원복의 '현대문명진단'에서 '르 피가로'를 인용하여 민영화 당시 TF1의 막장 간접광고를 깠던 적이 있다. 이를 테면 토크쇼에 초대된 게스트에게 유명한 사회자가 이런 식으로 말을 건다.
이런 행태에 대해 비판 기사가 나가자 그 사회자는 "내가 광고를 했다니? 그냥 보고 듣고 느낀 대로만 말했을 뿐인데!" 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고 한다."어서오십시오~ 이야 이 '''라도''' 시계 정말 좋네요! 오, '''쁘렝탕 백화점'''에서 사셨다고요? (블라블라) 그런데 '''피츠''' 세제는 '''물리넥스''' 세탁기랑 참 잘 맞지 않습니까? ...(중략)... 하하하, 나중에 시간 되시면 '''쟈끄''' 카페에서 한 잔 하시죠. 뭐 저는 평소에는 '''메종 뒤''' 카페에서만 마십니다마는."
2.2. 프로그램
3. 여담
프랑스에선 방송사가 매출액의 얼마를 의무적으로 투자해야한다는 법이 제정되어있기 때문에 카날 플뤼, 프랑스 텔레비지옹과 함께 영화계의 큰 손으로도 꼽힌다.
2005년 SBS와 문화협정을 맺기도 했다.#
3.1. 프랑스 축구 대표팀경기 독점생중계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프랑스 본토와 해외영토(단, 누벨칼레도니와 프랑스령 폴리네지는 자체 국가대표팀과 자체 축구협회를 따로 운영한다. 둘 다 오세아니아 축구연맹 소속)에서 TF1이 모든 프랑스 남자 국대 경기의 독점중계권을 보유한다.
TF1의 프랑스 남자 국대 경기 중계권 범위: 친선경기, UEFA 네이션스리그, UEFA 유로 지역예선, UEFA 유로 본선, FIFA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FIFA 월드컵 본선.
TF1과 BeIN 스포츠 프랑스 법인은 다른 나라 대표팀간 축구경기의 프랑스 내 중계권을 공유한다.
카날 플뤼가 프랑스 리그 1의 매주차 경기 중 1경기(매주 토요일 17시[17] )를 생중계하고, BeIN 스포츠 프랑스 법인이 전경기를 유료생중계한다.
[1] 등기상의 명칭은 약어가 아닌 긴 이름을 사용중.[2] 채널 1번[참고자료] TF1 개국일, RTF 개국,ORTF 분리
라디오비전-PTT, 첫번째 프랑스 텔레비전
프랑스의 라디오, 텔레비전의 역사[3] 1987년에 민영화[4] 정확히는 부이그(Bouygues)라는 건설회사 소유이다.[5] 한국과 반대로 1970 ~ 80년대 프랑스는 '''제1채널이 오락 위주였고''' 제2채널인 A2, 제3채널인 FR3가 시사교양 위주였다. 그래서 첫번째 채널이 민영화된 것이다.[6] 1957년 기준으로 TV보급률은 6%내외였고 1961년에는 13%에 도달했다.[7] 당시에는 ORTF의 대안이라며 무허가 라디오 방송을 차리는 일도 있었다.[8] 3개의 TV전문 방송국(TF1, A2, FR3)과 1개의 라디오 전문 방송국(라디오 프랑스), 프랑스 방송광고공사(RFP), 송출전문 회사인 TDF와 국립영상제작소(SFP), 국립시청각연구소(INA)로 쪼개졌다.[9] 컬러방송은 1965년 ORTF 제2채널이 처음이다.[10] 원래는 공영방송국 3곳 중 2곳을 민영화할 예정이었지만 이에 대해 반발이 많았고, 정치적 고려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TF1만 민영화되고 말았다는 후문이 있다.[11] 그래서 현재도 편성비중에서 자체제작 드라마가 별로 없고 미국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12] 이후 이 이름으로 에스파냐 등 유럽 이곳 저곳으로 진출한다.[13] 이탈리아의 메디아셋이 설립한 민영 방송국. 그러나 당대에 설립된 민영방송 치곤 인기가 없어 1992년에 4월 12일자 방송을 끝으로 폐국했다. 이후 해당 주파수는 한동안 비어있다가 1994년 프랑스 텔레비지옹이 교육방송국을 차렸다.[14] 1993년 총선에서 보수진영이 승리하면서 총리로 재임했다.[15] 그런데 정작 죠스팽은 공영방송 광고규제를 강화해서(시간당 최대 12분에서 시간당 9분으로 축소) TF1 경영에 간접적이나마 도움을 줬던 전적이 있기는 하다. 사실 죠스팽도 TF1의 광고수입 증가를 의도한건 아니지만.[16] 다만 이쪽은 후원사다.[17] 프랑스 시간. 4-10월 서머타임 적용
라디오비전-PTT, 첫번째 프랑스 텔레비전
프랑스의 라디오, 텔레비전의 역사[3] 1987년에 민영화[4] 정확히는 부이그(Bouygues)라는 건설회사 소유이다.[5] 한국과 반대로 1970 ~ 80년대 프랑스는 '''제1채널이 오락 위주였고''' 제2채널인 A2, 제3채널인 FR3가 시사교양 위주였다. 그래서 첫번째 채널이 민영화된 것이다.[6] 1957년 기준으로 TV보급률은 6%내외였고 1961년에는 13%에 도달했다.[7] 당시에는 ORTF의 대안이라며 무허가 라디오 방송을 차리는 일도 있었다.[8] 3개의 TV전문 방송국(TF1, A2, FR3)과 1개의 라디오 전문 방송국(라디오 프랑스), 프랑스 방송광고공사(RFP), 송출전문 회사인 TDF와 국립영상제작소(SFP), 국립시청각연구소(INA)로 쪼개졌다.[9] 컬러방송은 1965년 ORTF 제2채널이 처음이다.[10] 원래는 공영방송국 3곳 중 2곳을 민영화할 예정이었지만 이에 대해 반발이 많았고, 정치적 고려도 있었기 때문에 결국 TF1만 민영화되고 말았다는 후문이 있다.[11] 그래서 현재도 편성비중에서 자체제작 드라마가 별로 없고 미국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다.[12] 이후 이 이름으로 에스파냐 등 유럽 이곳 저곳으로 진출한다.[13] 이탈리아의 메디아셋이 설립한 민영 방송국. 그러나 당대에 설립된 민영방송 치곤 인기가 없어 1992년에 4월 12일자 방송을 끝으로 폐국했다. 이후 해당 주파수는 한동안 비어있다가 1994년 프랑스 텔레비지옹이 교육방송국을 차렸다.[14] 1993년 총선에서 보수진영이 승리하면서 총리로 재임했다.[15] 그런데 정작 죠스팽은 공영방송 광고규제를 강화해서(시간당 최대 12분에서 시간당 9분으로 축소) TF1 경영에 간접적이나마 도움을 줬던 전적이 있기는 하다. 사실 죠스팽도 TF1의 광고수입 증가를 의도한건 아니지만.[16] 다만 이쪽은 후원사다.[17] 프랑스 시간. 4-10월 서머타임 적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