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Z-122
1. 개요
중국 인민해방군이 개발했다고 결국 취소하게 된 중국의 최초의 국산전차가 될뻔했던 전차이다. 이 전차는 원래 T-55를 소련에게 공급받았던 중국이 중국-소련 국경분쟁이 1969년이 발발하면서 T-62와 같은 신형전차들을 전혀 공급받지 못하면서 전력격차가 커진 형태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국경분쟁후 소련은 중국에게 신형무기 인도를 철저하게 통제하기 시작했고 중국으로서도 소련이 국경분쟁에서의 무기의 질적 우위를 과시한 점은 중국으로서도 위협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지상무기에서 가장 기초적인 군수체계인 전차를 국산화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중국에게는 당시 전차개발 기술이 부족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T-55를 베이스로 하는 개발을 1970년 3월에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개발은 전혀 순조롭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바로 중국의 모든걸 수십년뒤로 후퇴시키는 문화대혁명이 진행중이던 시점이었으니 제대로 개발이 될리가 없었다. 기술인력이 죄다 반동으로 쓸려나가던 시절이니 당연도 했다.
첫 시제품인 WZ-122A는 1970 년 9월 25일에 완성되었다. 총 3대의 시제차량은 전차의 주포탑과 궤도 및 휠은 기존의 소련제와 거의 동일하다시피한 디자인 스타일이었지만 현가장치와 같은 일부 구성 요소에서는 소련제와도 달랐다. 게다가 특이하게 차체 좌우 양측에 2연장 대전차미사일 발사대를 설치했다. 부족한 기갑공격력을 강화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나 실효성이 의문이 될 수 밖에 없었다.[1] 하지만 나온 수준은 당시 중국 기술력으로는 개발이 불가능한 엔진과 화학제품에 요소들은 어떻게 수요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목표는 거창하게 소련의 T-64를 뛰어넘고 서방의 레오파르트1, M60 패튼을 뛰어넘는 ROC를 적용했지만 중국에서 실용화가 도저히 되지도 않고 생산기술력 자체도 없는 물건이 나온 것이었다.
결국 대대적인 ROC 수정이 적용되어서 1년뒤인 1971년 1월 17일에 WZ-122B의 시제품이 양산되어서 1973년까지 여러가지 시행착오 및 시험테스트를 거쳤으나 성능미달만 확인을 하게 되고 결국 1974년에 최종적으로 개발이 종료가 된다. 중국에서는 80식 탄극(80式坦克)이라는 명칭으로 80식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는데 이는 개발중지가 난 이후 4년뒤 1978년 4월에 오종신형차량 예금지급령(五種新型車両会戦領小組)이 발표되면서 소련의 T-72를 뛰어넘는 국산전차를 만들려고 했으나 당연하게 실패했다. 시제차량만 WZ- 1223/1224/1226/1226F2가 각각 나오게 된다. 하지만 큰 성과가 없었고 결국 개혁개방시기였던 만큼 서방의 기술을 적용해서 이리저리 변경되었으나 끝내 중국의 국산 전차는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 개발은 중국의 88식 전차 시리즈의 최초인 80형 전차의 개발기초적 형태가 되었고 나중에 96형 전차와 99형 전차로 기술적 계보를 잇게 된다.
2. 제원
추가정보추가정보2추가정보3
어째서 120mm라는 기준을 잡았는지는 상당히 불명이다. 다만 당시 소련제 전차의 주포가 115mm인 점을 감안하여 더 강력한 주포를 위해 적용한 것인지 아니면 서방에서 개발중이던 최신 120mm를 적용한 것인지도 불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