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민해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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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공산당의 군대, 즉 당군(黨軍)이다. 명목상 당군이지만 일당독재국가인 중국에서는 여타 국가의 국군(國軍)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국가 휘하의 군대는 부르주아와 봉건 압제자의 입맛에 맞는 탄압의 도구에 속한다"라는 칼 마르크스의 오랜 이론에 근거하여, "인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집단"이라는 해석을 적용하여 당군을 지향한다. 이에 대해서는 인민군 문서 참고
1948년 중국공농홍군에서 명칭을 개편하였고, 국공내전을 통해 중화민국 국군을 격파하고 중국 본토의 단일 무력집단으로 남아 오늘날에 이르렀다.
2. 이름
정식명칭은 중국인민해방군(中国人民解放军)으로 표준중국어식 발음으로 "중궈런민제팡쥔"이라고 한다. 가끔 중화민국 국군(국민혁명군 또는 대만군)과 헷갈려서 중화인민해방군으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다. 인민해방군(人民解放军) 또는 해방군(解放军)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창군 당시의 이름은 중국공농홍군(中国工农红军)이었으며, 줄여서 홍군(红军)이라는 이름도 쓰였다. 현재 중국군이라고 하면 주로 중국 공산당이 지휘하는 이 인민해방군을 말하며, 제2차 세계 대전(중일전쟁 포함) 당시와 더불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전까지는 중국군이라 하면 장제스와 중국국민당 산하의 국민혁명군과 그 후신 중화민국 국군을 말하므로 주의하자.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군(國軍)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란 정당의 군대이므로, "중국 공산당군"의 약칭으로서의 "중공군"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중공군이라는 용어는 6.25 전쟁 시기의 중국 인민지원군만을 특정하게 지칭하는 용어처럼 쓰이고 있다.
3. 수뇌부
인민해방군의 통수권은 중국 주석이 아닌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있다. 장쩌민 이후 주석은 중앙군사위의 장을 겸직하므로 그게 그거긴 하다.
중공중앙군사위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는 구성원이 완전히 동일하므로 사실상 같은 조직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방부는 중앙군사위에 비해 권한이 작고, 대신 방위산업이나 군사행정 같은 군정권만 행사 가능하다. 사실상 중앙군사위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후방 부대의 군령권 정도는 가지고 있다.
3.1. 중앙군사위원회 수뇌부
대외적으론 국방부장이 국방장관이다. 휘하의 지휘병력이 없을 뿐이지 국방행정에서는 한국의 국방장관 만큼의 권한은 가지고 있으며 중국인민해방군 내의 현역군인으로서의 서열도 1위다. 괜히 펑더화이나 린뱌오 같은 거물들이 국방부장을 맡은 게 아니다. 그리고 1981년까지의 국방부장들은 전원 1954년에 원수에 올랐던 공산정권 1등 개국공신들이었다.
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현역인 부주석들이 있다. 이들은 공산당 중앙정치국원으로 이들의 군 서열은 국방부장 위다. 국방부장은 중앙위원으로 정치국원이 아니다. 인사권은 중앙군사위원회에서 행사하는 걸로 보인다. 인민해방군 조직 운용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비밀로 분류되어 공개되고 있지도 않고,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 중국 외에서도 잘 모른다. 중국 군사무기매니아들이 자주 모이는 철혈망(铁血网)같은 웹사이트에서도 도 인터넷 검열 때문인지 군 조직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제복군인으로 올라가는 거라 서방식으로 보면 문민통제와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당주석이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임하고 있고, 당의 일부인 정치부 소속의 정치장교가 군 조직에 입김을 불어 넣기 때문에 마오쩌둥 시절부터 당은 군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8]
2016년 4월 20일, 시진핑 주석이 중앙군사위 연합지휘중심 총지휘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고 군복을 입고 군 훈련을 총괄 지휘하는 내용이 중국 언론 보도에 나왔다.
대한민국 국군과 비교하여 총참모장이 합참의장과 비슷해 최선임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후근보장부, 정치공작부, 장비발전부의 최선임 장교들과 (구)총참모부의 총참모장(현 연합참모부 참모장)은 다 동격이다. 정치장교를 중시하는 공산권의 특성인데 조선인민군은 아예 정치국장이 김정은 일가를 제외한 제복군인 가운데 1인자로 보고 있다.
3.2. 군종별 최선임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를 제외한 인민해방군 육군, 인민해방군 해군, 인민해방군 공군, 인민해방군 로켓군, 2016년 새로 창설된 중국 인민해방군 전략지원부대의 사령원은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원이다.
2016년 1월 1일 단행된 지휘구조 개편에 따라 기존에 총참모부에서 겸했던 육군사령부 기능을 '육군총부(陆军总部)'를 창설하여 이관하고, 초대 육군사령원에 리쭤청(李作成) 성도군구 사령원을 임명하였다. 또한 우주군과 사이버군 역할의 '전략지원부대'를 창설하고 제2포병 참모장, 중국 군사과학원 원장을 지낸 가오진 중장이 사령원에 임명되었다.
2018년 1월 1일부로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가 당 중군위 예하로 완전히 넘어와 준군사조직에서 정규군의 한 병종으로 변경되었다. 1월 11일에 시진핑 주석 임석 하에 군기수여식이 열렸다.#
3.3. 주임원사단
중국에서 주임원사에 비견될 만한 직위는 부사관 최고 계급인 1급군사장(一级军士长)이다. 중국군은 미군처럼 부사관 역량 강화에 온 힘을 쏟았고 2009년 12월 1일부터 군사원교(军事院校)의 교육을 이수해야 1급군사장으로 진급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만, 미군의 각군 주임원사 개념의 직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군 주임원사를 번역할 때 총군사장(总军士长)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는 한다. 중국이 한동안 계급까지 폐지해 장교도 개판으로 돌아갔던 판국이라 부사관 역량의 길이 쉽지는 않다.
4. 예산
경제력과 군사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숨겨진 국방비가 많거나 추정하기 힘든 경우 그렇다. 중국 경제는 성장중이라 국방예산도 증가중이다. 공식적으로 중국이 발표하는 명목상 국방예산은 지난 13년 간 9배로 증가했다. # , #
5. 병력 배분
2013년 4월 국무원은 '중국무장역력다양화운용', 즉 국방백서를 발간하면서 처음으로 전체 병력 규모와 편제를 공개했다. “중국군 병력 230만 명” 첫 공개 이에 따르면 총 병력은 230만 명 중 육군 85만 명, 해군 23만 5천 명, 공군 39만 8천명이고, 핵무기를 관할하는 제2포병은 비공개했다.[9][10]
육군의 18개 집단군(군단)은 7개 군구에 나뉘어 배속돼 있다. 선양군구에 16, 39, 40 집단군이, 베이징군구에 27, 38, 65 집단군, 란저우군구는 21, 47 집단군, 지난군구에 20, 26, 54 집단군 난징 군구에 1, 21, 31 집단군, 광저우 군구 41, 43 집단군, 청두군구 13, 14 집단군 등 군구별로 2~3개 집단군이 배속되었다고 확인됐다.
그 외에 내부치안 병력인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150만 명(2013년)이 있다. 무경은 2017년까지는중국공산당 정치및법적행위위원회(약칭 정법위) 관할로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통제를 받지는 않았으나 2018년부터 정규군이 되어 중앙군사위 관할로 변경되었다.
2015년 전승절 기념행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2017년까지 병력 30만명을 감축하겠다고 공식선언했다. 감축대상은 구식장비로 무장한 육군의 2선급 부대들이며, 해군과 공군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한다. 또한 18개 집단군을 13개로, 7개 군구를 5개 군구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남은 부대들 대부분을 기계화하여 언제, 어디건 신속개입과 전투 임무 수행이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미군과 달리 주방위군이나 예비군 등의 유사시 예비병력이 별로 없고[11] , 여기에 중국군이 꿈꾸는 수준의 기동력과 개입 능력을 갖춘 미군은 현역 전투사단이 10개인 데다 그 중에도 일부는 경보병사단인 등 극단적으로 부대규모를 줄이고서야 가능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방안이 필요한 상황.
2016년 초에 대대적인 군체제 개편을 단행하면서 군구를 폐지하였다. 현재는 전구로 구분된다.
2017년 7월, 연말까지 병력 감축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했다. 감축된 병력 30만은 실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비전투조직은 민간으로 이양하는 식으로 군개혁의 방향을 잡은 듯하다.#
6. 하위 조직/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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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 부서
- 중앙 군사위원회 판공청[12]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연합참모부[13] (정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정치공작부[14] (정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후근보장부[15]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장비발전부[16]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훈련관리부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국방동원부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징계검사위원회[17] (정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정치법률위원회[18]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과학기술위원회 (부전구급)
- 중앙 군사위원회 전략기획판공실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개혁편제판공실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국제군사협력실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심계서[19] (정군급)
- 중앙 군사위원회 기관사무관리총국 (정군급)
-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서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중부전구 (정전구급)
-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PLA Ground Force)
-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PLA Navy)
-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PLA Air Force)
-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PLARF)
- 중국 인민해방군 전략지원부대(PLASSF 또는 SSF)
- 중앙 군사위원회 연근보장부대[20] (부전구 급)
-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CAPF)
- 중국 인민 해방군 국방대학 (부전구 급)
- 중국 인민 해방군 군사과학원 (부전구 급)
- 중국 인민 해방군 국방기술대학 (정군급)
6.1. 부대 단위
중국 인민해방군은 계급과 별개의 등급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등급으로 당-정-군 간의 직급 비교가 가능하다. 소장 계급이 부전구급 보직이나 그 밑의 정군급, 부군급 보직까지 임명이 가능한 등 매우 유동적이었으나 2019년 12월 개편으로 계급정년이 생기면서 어느정도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시진핑 전용 자리이다.
-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현직 군인이 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이다.
-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정전구급이 겸직하는 형태이다.
- 정전구급: 육,해,공,로켓,전략지원군,무장경찰 사령원과 정치위원, 각 전구사령원과 정치위원에 해당하는 자리이다. 상장만 앉을수 있다.
- 부전구급: 2019년 12월 부로 중장만 갈 수 있는 보직이다. 10년동안 승진하지 못하거나 63세가 되면 전역한다. 중앙군사위원회 15개 기능 부서중 부전구급 부서의 장과 정전구급 부서의 참모장, 정치사업부 서기등의 두번째 가는 보직, 육,해,공,로켓,전략지원군,무장경찰의 참모장과 정치사업부 서기 그리고 전략지원군 우주시스템 부서장과 네트워크시스템 부서장,각 전구 육,해,공군 사령관과 전구 참모장, 정치사업부 서기, 신장 군구와 시짱 군구 사령관과 정치위원에 해당한다. 중국 중앙 군사법원과 군검찰도 여기에 해당한다.
- 정군급: 소장이 앉는 자리이다.육,해,공,로켓,전략지원군,무장경찰의 물류부와 장비부장, 각 집단군, 로켓군 기지, 전략지원군 센터, 전구별 해군 항공대 사령원과 정치위원, 신장군구와 시짱군구 참모장과 정치사업부 서기가 해당된다.
- 부군급: 소장이나 대교가 앉는 자리이다. 공군 기지사령관, 해군 기지사령관과 정치위원이 해당된다. 지방 군사법원과 군검찰도 여기에 속한다.
- 정사급: 2017년 개혁으로 사단이 전부 없어져서 유명무실한 직위이다. 육,해,공,로켓,전략지원,무장경찰 부서의 국장급이며 해군에서는 랴오닝 함장이나 지대장이 맡는다.
- 부사급: 여단급이라고도 한다. 부군급 후근부와 물류부, 정사급 참모부, 정치부를 맡는다.
- 정단급: 연대장급. 부여단급이라고도 불린다. 중앙군사위원회 3단계 부서, 정군급 부 아래 처급, 정사급 후근부, 장비부, 부사급 참모부나 정치부가 여기에 속한다.
- 부단급:
- 정영급: 대대장급
- 부영급:
- 정연급: 중대장급
- 부연급:
- 배급: 소대장.
6.1.1. 육군
- 전구 : 기존의 7대 군구제가 2016년 2윌 1일 이후, 전구 및 함대로 개편되었다.
- 집단군(集团军): 이름은 집단군이지만 실질적인 규모는 군단정도이다. 줄여서 군(军)이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집단군만 70개일 정도로 병력이 많아 야전군-병단-군(집단군)으로 상위제대편제를 했으나 군축으로 현재는 집단군보다 위의 편제는 없다.
- 사(师): 사단에 상당한다.
- 여(旅): 여단에 상당한다.
- 단(団): 3,000명. 연대에 상당한다.
- 영(营): 800-900명. 대대에 상당한다.
- 연(连): 60-250명. 중대에 상당한다.
- 배(排): 소대에 상당한다.
- 반(班): 8-15명. 한국의 분대에 상당한다.
- 오(伍): 3-5명. 공격대다.
6.1.2. 해군
해군은 함대 휘하에 지대, 대대를 두고 있다. 지대는 한국 해군의 전단급에 상당하며 대대는 한국의 전대급과 비슷하나 일치하지는 않는다.
해항(海航)이란 부대가 있는데 해군 항공대 소속의 비행단을 가리킨다.
6.1.3. 공군
전구공군-기지-여단으로 이루어지는 체제이다. 전구 공군사령원은 중장, 기지사령원은 소장, 여단장은 대교가 맡는다.
비행여단 1개당 32기의 전술기를 운용한다.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공군방공관제사령부/공군공중기동정찰사령부/공군공중전투사령부 등의 각 공군기능사령부가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 공군은 각 군구 공군 소속에 여단급의 부대들이 있다. 공도탄여(空导弹旅)가 방공유도탄여단이며 뇌달여(雷达旅)는 레이더여단을 가리킨다.
6.2.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6.3. 사병 충원
중국은 1950년대 징병제를 실시한 적이 있었지만.기본적으로 홍군 시절부터 지원병-모병제를 토대로 하고 있다. 법제상에 전 국민의 병역 의무에 대해 설명이 되어 있으나, 평상시에는 지원제병이 국방을 담당하고 일반 국민은 유사시 민병대로서 활동하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정식으로 징병제를 실시하지는 읺지만, 중국 대학생들은 입학 전에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이수한다고 한다. 중국대륙이 넓은 탓에 중국의 군사 역사상, 특히 통일된 적이 있는 과거 중국의 나라에서 징병제는 외적이 쳐들어온 지방에서만 징집을 했었고 중일전쟁 시기를 제외하면 징병제가 법제화된 시기는 없었다. 적군이 쳐들어와도 아주 그냥 대륙을 확 삼켜버릴 정도만 아니라면 과거처럼 지방징병제를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2009년에 모병제로 아예 바꿨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의 총지휘권이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있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려면 군대에 갔다 오는 게 유리하다.
인적 자원 면에서 매우 뛰어나다. 인구가 워낙 많고[21] 군이 가지는 사회적 명망과 지위가 높다 보니 많은 지원자 중에서도 최고의 인력을 선별해 구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22] 사실상 중국에서 가장 공무원이 되기 쉬운 방법이 바로 (특히 사병으로) 군대를 갔다가 무사히 제대하는 것이라고 한다.[23] 그리고 독재국가답게 중국의 공무원 위상은 한국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 시골 면장[24] 만 해도 폐쇄된 작은 사회라는 특성과 겹쳐지면서 마을에서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고, 경찰에 해당되는 공안 또한 해당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중국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이며, 사형 집행까지 공안이 직접 한다. 물론 공안부가 중국 최강의 권력기관은 아니다. 공안부보다 검찰청이, 검찰청보다 법원이 더 위세가 좋다.
체력검정이 대단히 엄격하며, 지원자 중 안경을 쓴 사람은 무조건 탈락시킬 정도라고 한다.[25] 가산점을 더 받기 위해 무술을 익히는 사람도 많고, 소림사의 수련생 대부분도 군으로 간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군인의 위상도 높고 대민 이미지도 좋다.[26] 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에서 자연재해가 나면 맨 먼저 군대가 출동하여 구호활동을 펼치는데, 홍수가 나면 인간 댐을 만들어 물길을 막는 등 목숨을 걸 때도 많다. 여기에 특전도 매우 많아서, 군대에서 복무했다는 것은 출세와 승진의 지름길로 여겨지고 있으며 군인의 위상도 매우 높다.
사병 근무라도 무사히 제대하면 무조건 공무원 자리가 보장되며 당원 가입도 수월하다고 한다. 퇴역장교들의 대접도 굉장히 좋으며, 국영기업체 임원이나 고위 공무원으로 나가고 있다. 게다가 직업군인이기 때문에 군 복무 중에 상당한 봉급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명령을 받기 싫어하는 고학력자들이 입대를 기피하거나 입대한다고 해도 장교로 와서 사병들에게 온갖 똥군기를 부리기 때문에, 결국 명문 칭화대학 여성 졸업생이 여군 사병[27] 으로 입대하자 중국에서 화제가 된 일도 있다. 기본적으로 중국군에는 입대자의 학력 제한이 없지만 대졸자들은 특히 우대를 받아 사병으로 입대해도 나중에 장교로 승급하기가 매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도 점점 자본주의화가 됨에 따라 퇴역군인들의 대접이 예전만 못하다. 놀랍게도 2016년 10월 중국 예비역들이 군복을 입고 대접이 미흡하다며 중국 국방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28] 한편 현재에는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오냐오냐 키워져 체력이 약한 사람들이 많고 군대 말고도 괜찮은 일자리가 상당히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도시 출신들은 입대를 기피하거나 설령 입대한다고 해도 장교로 오게 되며 농촌 출신들이 사병으로 입대한다. 이런 현상은 같은 모병제인 미군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일이다.
6.4. 장교 충원
과거 당군에서 국군으로 전환한 중화민국군과 달리 인민해방군은 당군인지라 국가 소속의 사관학교가 아닌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휘하의 사관학교와 인민해방군국방대학(人民解放軍國防大學)[29] 을 두고 있다. 사관학교 외에도 간부사관, 학군사관 제도와 학사사관 제도도 두고 있다. 마오쩌둥 행정부 시절의 무계급 시대에는 대부분이 간부사관 출신들로 충원되던 시절도 있었으나 덩샤오핑 행정부 시절의 유계급 시대에 도래함과 동시에 중국인들의 대학 진학이 높아진 현재에는 간부사관의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학군사관과 학사사관의 비중이 늘어났다.
6.5. 급여
2011년 기준으로 위관급 장교는 월 4500에서 4800위안 정도의 기본급을 받으며 한국의 영관급 장교에 해당하는 교관급 장교는 5200에서 7800위안, 장성급 장교는 8800에서 2만 2천 위안을 받았다. 병의 경우엔 400위안이며 부사관으로 남는 경우인 3년차부터 월급이 확 뛴다. 민간의 2배에 가까운 소득으로 중국군의 급여 성장폭은 꽤 높다.
군 생활 5년차인 중국군 하사[30] 의 경우 2013년 6월에 월급으로 총 3442위안이었다.[31] 기본급은 580위안이었지만 이리저리 수당이 많기 때문. 월급 명세서.
7. 불안요소
8. 군가
중국 인민해방군의 상징적 군가인 팔로군 행진곡[32] 은 중일전쟁 당시 조선 출신의 작곡가인 정율성이 작곡했다. 정율성은 해방 후에 북한으로 가서 조선인민군 군가도 몇 곡 작곡했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저우언라이의 요청으로 중국으로 되돌아갔고, 이후 북한에서 연안파에 대한 숙청이 벌어지자 중국에 눌러앉았다.
동요(...) 버전
다음은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이 부른 버전이다.
9. 역사
9.1. 전구제
군구 제를 운용해 왔으나 2016년부터 군구제를 폐지하고 전구제로 전환하였고 중앙,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전구가 새로 설치되었다.
10. 사고
- 문화대혁명 당시 모든 국가기관이 마비되었던 가운데 그나마 덜 흔들렸던 국가 기관이 인민해방군이었다. 심지어 고위직에 있는 원수들이 문화대혁명의 상황에 반발을 품고 장칭 일행을 질책한 이른바 2월 역류 사건도 있었다. 이 때문에 군 지휘관들은 후에 반동으로 몰려 4인방이나 심지어는 국방장관이었던 린뱌오의 공격을 받고 실각하기도 했고, 홍위병이 군부대에 난입하여 군인들을 구타하기도 했는데, 군인들은 마오쩌둥의 비호를 받는 홍위병에게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 2010년 1월 26일 몇 달 전에 서해에서 중국 해군의 골프급 잠수함(탄도탄 발사 시험용으로 1척 보유)이 신형 탄도미사일을 시험 중 자침할 뻔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발사 후 연소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수면을 벗어난 미사일이 그대로 잠수함 머리 위에 추락했다. 덕택에 자기 미사일에 침몰할 뻔했는데 간신히 돌아갔다고 한다.
- 중국 항모의 모항이 될 다롄항에서 원자력 잠수함이 침몰했다는 의견이 있다. 2011년 웨이보에서 이런 소문이 돌았으며 중국 군부는 침묵과 보도관제로 일관했다.
- 여군의 선발기준의 많은 부분이 외모에 관한 것으로 밝혀져 자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중국에 가서 직접 보면 여군들의 몸매는 대부분 쭉빵이고, 외모는 평범 이상인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키 부터도 이미 168~172cm 수준 위주로 선발한다. 이 정도면 중국인 여성치고는 상당한 장신이지만, 중국이 워낙 인구가 넘쳐나는 나라라서 가능하다. 그러나 전투력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중국이 워낙 인구가 넘쳐나는 나라라서 여군을 이렇게 선발해도 급할 거 없고, 후술하듯 정보를 빼내 는 데에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한다.
- 인민해방군 역시 실전경험이 사라진 지 수십 년 이상 지난 군대인지라 의외로 전투 준비 태세나 실전적인 군 운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주변국 군대인 인도군, 한국군 및 자위대 등과 오십 보 백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건 미군처럼 장기간에 걸친 실전경험으로만 해결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 중국과 대만은 미인계를 동원해서 상대방 장성을 포섭하여 정보를 빼내는 경우가 많았다. 2011년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바에 의하면 2007년 수십 명의 중국 고급 공무원과 군 장성들이 체포되었는데, 이는 미모의 대만 여간첩 1명에게 모두 홀려서 각종 정보를 대만 측에 흘린 것이 들통나서였다. 대만군에서도 정보계통의 한 장성이 미모의 중국 여간첩에 포섭되어 기밀을 유출하다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받은 적이 있다.
- 1980년대만 해도 몇몇 중국 공군 조종사들이 J-6(MiG-19)이나 J-7(MIG-21)을 몰고 한국에 망명오기도 했다. 폭격기인 H-5(IL-28의 중국판)을 몰고 오다 불시착하기도 했다. 이들은 대체로 희망대로 대만으로 보내졌고, 기체는 한국 소유가 되었다. 대만 조종사 몇명도 F-5등을 몰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 전체국가답게 군이 운영하는 회사들이 존재했고,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에 경제가 발전되면서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다. 또한 이런 기업을 민간에 불하하면서 엄청난 비리가 존재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마저 지적한 적이 있다. 이는 중국의 독특한 정치 특성상 중국군이 단순한 군대일 뿐 아니라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며 여러 특혜를 받는 조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자바오 총리의 지시에 따라 군 소속 회사들은 현재 거의 민간으로 이전되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총후근부[34] 부부장이었던 구쥔산 중장은 5조 6,151억 원을 축재했다가 체포되었으며, 사형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35] 이 문제를 뿌리 뽑을 생각인지, 2016년 3월에는 시진핑이 군 소유의 모든 기업을 3년 안에 청산할 것이며 민간과의 기존 계약 연장을 불허하는 명령을 내렸다. 군대는 국민들을 위하여 봉사와 헌신을 하는 조직이자 전쟁을 위한 조직이지, 절대로 국민들을 괴롭히며 온갖 이득을 챙기는 조직이자 장사를 위한 조직이 아니다라는 것이 시진핑의 어록이다.
- HQ-9를 비롯해 이미 상당한 무기가 해외로 수출된 바 있고 이들 중 일부는 상당한 성능을 지녔다고 확인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99식 전차 등 많은 과장으로 장식된 무기가 중국군에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같이 확인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중국군이 내놓는 카탈로그 무기 스펙은 신뢰도가 굉장히 낮으며 타국에 의한 교차검증을 통해 성능 확인을 하고 있다.
- 2014년 들어서 총후근부(보급사령부) 사령관인 구쥔산(谷俊山)이 부패 혐의로 군사법원에 기소되고 다른 장성급들도 줄줄이 걸려들자, 중국 정부에서 칼을 빼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오죽하면 장성급 18명이 신문에다가 시진핑에게 충성 선언을 게재했다. 군 개혁으로 장쩌민의 영향력이 완전히 뿌리 뽑힐 것이란 관측이다.
- 삼대기율 팔항주의 때문에 상당히 깨끗하고 정예군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홍군 시절이나 문혁 시절이면 모를까 현재는 기강이 해이해진 상태. 부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여기도 민폐를 저지르는 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Asia Times 같은 영자지에 심심찮게 중국군이 민간인에게 행패를 부린 사건들이 올라온다. 한 예로 중국에서 군 소속 및 군 소유기업의 차량은 백색번호판을 달고 다니는데 이들 차량의 횡포가 많은 원성을 사고 있다. 이 백색번호판 차량들은 고속도로 통행료는 물론, 주차요금도 내지 않고, 과속 난폭운전을 일삼는다. 이 와중에 인명 사고를 일으켜도 처벌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일부 부패 장교들은 민간인에게 이 백색차량번호판을 뇌물 받고 팔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 중국군에도 #가혹행위는 존재한다.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중국이 언론을 통제하는 독재 국가이며 그 중에서도 군은 국가 안의 국가로 군림하는 특권 집단이기 때문이다. 처벌을 엄하게 한다고는 하지만 이런 문제는 이권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되어 있어서 해결이 쉽지 않다.
- 중국군 최고위 장성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돼 퇴임 후 8계급이 강등 되는 수모를 겪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6일 보도했다.
- 2016년 7월초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교전에 벌어졌을 때 중국에서 파견된 유엔평화유지군은 지켜야 할 자리를 버렸다. 네팔에서 보낸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 초소 안에서 벌어진 약탈도 막지 못했다. 이같은 사실은 유엔 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한 보고서에서 나왔다.
11. 제복
12. 전력
13. 계급
인민해방군 창군 당시에는 계급 없는 평등한 인민의 군대라고 하여 계급제도가 없고, 단지 맡고 있는 직책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도록 되어 있었다. 한국 전쟁의 전훈으로 1955년 계급제도가 생겼다가 문화대혁명시기인 1965년 계급이 다시 폐지되었으며, 이후 덩샤오핑 때 인민전 개념을 폐기하고 군의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1988년에 계급이 다시 부활되었다.
참고로, 아래 사진에서 장교 계급장은 오각별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투병과 장교의 계급장에 오각별이 달리는 것이고 기행병과 장교의 계급장에는 육각별이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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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령급(다른 나라의 장성급 장교)
- 대원수 - 유명무실.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받았는지 법제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이 계급을 받은 사람이 없다. 다른 인물들이 잘해야 원수 계급이었던 걸 생각하면 아마도 받는다면 마오쩌둥 정도였겠지만, 애초에 마오 본인은 군 계급 자체를 사회주의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아 일생동안 한 번도 군 계급을 달아본 적이 없다. 참고로 국공내전 시기에 마오쩌둥의 공식 군직함은 총사령관 주더의 정치장교였으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함을 죽는 순간까지 달고 있었다.
- 원수 - 1955년에 계급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국공내전과 중일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주더, 펑더화이, 린뱌오, 류보청, 허룽, 천이, 뤄룽환, 쉬샹첸, 녜룽전, 예젠잉 10명에게 수여되었으나, 이후 문화대혁명으로 계급제가 폐지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문혁 종결 후 계급제가 다시 도입된 후에도 해당 계급을 받은 이는 없다.
- 대장 - '일급상장'이라고도 불리며 다른 나라의 상급대장에 해당하는 계급. 원수와 마찬가지로 1955년에 계급제 도입과 함께 쑤위, 쉬하이둥, 황커청, 천겅, 탄정, 샤오진광, 장윈이, 뤄뤼칭, 왕슈셩, 쉬광다 열 명에게 부여되었지만, 역시 문혁 이후로 아무도 이 계급에 오른 이가 없어서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계급이다.
- 상장(다른 나라의 대장에 해당) 현재 현역군인이 가진 최고위 계급이다.
- 중장
- 소장
- 교관급 장교(다른 나라의 영관급)
- 위관급 장교(대위 계급은 1955년~1965년 기간에만 존재)
일종의 사관후보생이나, 이 계급으로 실무도 뛰며 실습한 뒤 소위 계급을 받는다.
해군, 공군, 인민무장경찰은 계급명 앞에 해군대교, 공군중위, 무경1급군사장 이런 식으로 소속 군 이름을 덧붙인다. 인민해방군에서는 문화예술계의 유력 인사들을 군 소속 예술단이나 문예창작단으로 영입해 장령급 계급을 부여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은 다른 직업군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계급장에 오각별이 아니라 육각별을 사용한다. 시진핑의 부인인 가수 펑리위안도 이런 경로를 통해 소장 계급을 부여받았다.14. 장비
중국의 무기개발은 1950년대부터 확립한 3단계법이다. 첫 번째로 단순 복제, 2번째로 복제품 개량, 3번째로 신형 개발의 순이다. 전투기를 예로 들면 소련제 MIG-21은 1960년대에 J-7로 단순복제를 했고 1980년대 J-8로 복제품을 개량했으며 이렇게 획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독자모델인 J-10이나 FC-1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소총이나 전차, 미사일도 마찬가지여서, 초기에는 AK-47를 단순 카피한 56식 자동소총을 쓰다가, 81식 자동소총으로 개량하고 현재는 독자개발한 불펍식 QBZ-95을 제식 소총으로 사용하고 있으며[40] 전차는 소련제 T-55를 복제한 59식 전차를 쓰다가 현재는 T-72를 개량한 99식 전차를 생산하고 있다.
중국 무기의 짝퉁설 때문에 중국의 무기개발사는 안습 전설처럼 우습게 회자될 때가 많았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중국은 자체기술이나 외부기술의 지원이 거의 없이 맨주먹으로 시작했다는 점이다. 중국이 초기에 어느 정도로 기술이 없었냐면 처음 소련에서 라이센스를 받아 MiG-17 복제사업을 시작했을 때 용접기술이나 금속 가공기술이 없어서 재래식 대장장이들이 손으로 구부려 동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이는 원래부터 기술 강국이었던 영국, 프랑스나 안 되면 여러 낚시로 외부의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었던 이스라엘이나 한국보다도 더 불리한 사정이었다. 하지만 이점도 있었는데 역설적이게도 문화대혁명 당시 인재들이 인문계보다는 숙청 당할 일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공계로 몰리면서 훗날 무기 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물론 당대에는 군의 현대화를 외치던 군인과 기술자와 학자를 "펑더화이의 추종자, 반동"이라고 조져놓았던 희대의 삽질이자 후퇴였지만.
원래부터 백지상태에서 최신 무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서 기술력이 거의 없던 1950년대에 소련과도 틀어져 미소의 위협을 동시에 받게 된 중국이 할 수 있던 가장 최선의 방법은 복제였다. 인도, 일본 같읕 국가들이 전혀 노하우가 없는 백지상태에서 신형 무기를 만들다가 보여준 실수들을 본다면 이미 검증된 무기를 카피하면서 독자적인 기술을 축적하는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41] 다만 무작정 분해를 통한 복제가 합법적인 기술이전보다 시행착오가 많고 개발속도가 느리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도 우수한 인재들을 무수히 갈아가면서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다보니 상당한 기술을 축적하였고., 이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군사 과학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중국은 미국, 소련, 독일,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도 기술을 이전받기가 매우 어려웠다. 거기다가 자체기술 개발은 고사하고 1960년대, 1970년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때문에 국가가 뒤집어지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중국은 소총에서 핵추진 잠수함, 전투기까지 모든 무기를 독자개발해야 했다. 가령 중국제 잠수함 한급급은 바다의 경운기로 종종 까이지만, 이런 거나마 중국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경험 없이 독자기술로 만들었다. 초기에는 중국의 기술이라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없는 기술력으로 무기를 만들다보니 이런 조소를 받는 중국제 짝퉁 무기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복제 → 개량 → 신개발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기술이 축적되었고 그 결과 국제시장에서 팔릴만한 무기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독자적으로 항공기 엔진이나[42] 전투기의 소프트웨어, 위상배열 레이더, 대륙간 탄도 미사일, 스텔스 전투기, 극초음속 항공기까지 독자적으로 개발, 생산하게 되었다. 현재는 연구 인력만 해도 미국과 유럽을 합한것만큼 많고 국방예산도 세계 2위이기 때문에 군사 과학기술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면서 각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3년 10월 나토회원국인 터키는 중국의 S-300 복제품인 HQ-9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무기 구매하기로 까다로운 터키가 구매했다는 것에서 큰 파장이 예상되기도 했었다. 2010년대 이후로는 국제 무기시장에서 수출액이 미국, 러시아에 이어 3위이다.
15. 인물
중화민국 시절의 중국 국민당 출신 인물들은 제외.
- 덩샤오핑: 제3야전군 정치위원으로 중일전쟁, 제2차 국공내전 참전.
- 류위안: 류사오치의 아들이다.
- 마오쩌둥: 중국 인민해방군의 창건자이자, 초창기 전투는 장교 신분으로 직접 지휘하였다. 죽는 순간까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군통수권을 쥐고 있었다.
- 마오안잉: 마오쩌둥의 아들. 6.25 전쟁에 장교로 참전하였고 전쟁 중에 미군의 폭격으로 젊은 나이에 북한에서 전사했다.
- 쑹스룬: 6.25 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 부사령관으로 장진호 전투를 지휘했다. 뛰어난 장군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성격이 굉장히 불같았다. 마오안잉이 쑹스룬의 통역장교였다.
- 저우언라이: 제1대 총참모장.
- 펑더화이
- 린뱌오
- 예젠잉
- 천이
- 쉬샹첸
- 녜룽전
- 허룽
- 류보청
- 화궈펑
- 펑리위안: 시진핑 현 주석의 영부인, 18세에 인민해방군 문예 관련 업무를 시작했으며 현재 현역 계급은 소장이다.
- 런정페이: 화웨이의 창업주이자 현 회장이자 사이버부대 장교 출신이다.
15.1. 한국계 인물
중국 인구 가운데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안 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운동의 일환으로 중국공산당에 가담한 조선인은 꽤 상당했고―한국광복군만 해도 중국에서 활동했다―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한 이후에도 중국 본토엔 조선족이 꽤 남았다. 국공내전 당시 국민당군이 만주국이 멸망한 만주지역에 진주한후 여러 민폐를 끼쳤고, 특히 소수민족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는데, 이때문에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이 다투어 공산군에 입대했고, 이때 조선족은 국민당군 패퇴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이 있어서, 고위직에 오른 이들이 좀 있었다고 한다. 다만 1980년대 북한에 포섭된 조선족 인민해방군 간부가 정보를 넘겼다가 걸려서 간첩죄로 사형에 처해진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43][44]
21세기 들어서 조선족 커뮤니티의 증언에 따르면 현재 조선족의 진급 상한선은 대교(대교는 상급대령의 형태이지만 3성장군인 상장이 타군의 4성장군인 대장 수준으로 대우받고 보직 등에서 미군이나 한국군의 준장에 상당한다.)라고 한다. 2015년 8월 군 인사에서 비록 기술장교이긴 하지만 리셴위 대교가 소장으로 진급하여 오랜만에 조선족 장성이 다시 배출되었다.
- 리영태 (리융타이) (李永泰, 1928-2015)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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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에 팔로군에 입대했다. 한국전쟁 당시엔 인민지원군 공군으로 참전해 미 공군기를 4기 격추했다. 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이유는 중공이 해방군이란 이름으로 보내면 정식 참전이 되어 소련이나 미국이 자극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때 계급이 사라진 뒤에 우한군구의 공군사령관 등을 지냈고 1988년에 중국군에 계급이 부활하자 중장이 됐다. 최종보직은 인민해방군 공군 부사령원(부사령관).
1945년에 팔로군에 입대했다. 한국전쟁 당시엔 인민지원군 공군으로 참전해 미 공군기를 4기 격추했다. 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이유는 중공이 해방군이란 이름으로 보내면 정식 참전이 되어 소련이나 미국이 자극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때 계급이 사라진 뒤에 우한군구의 공군사령관 등을 지냈고 1988년에 중국군에 계급이 부활하자 중장이 됐다. 최종보직은 인민해방군 공군 부사령원(부사령관).
- 조남기 (자오난치) (趙南起, 1927-2018)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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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청원군 출신이다. 1939년 중국으로 이주했다. 6.25 때도 중공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중공군이 북에서 철군할 때, 김일성이 북에 남으라고 요청했으나, 조선인민군의 엄격한 상명하복 시스템이 자신과 안맞다고 생각해서 그냥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45] 아마 남아 있었으면(...) 후근부장을 지냈고 1995년에 그가 퇴임하면서 조선족 장성은 네 명이 남았다. 1995년 기사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을 지냈는데 이는 한국의 부총리급에 상당하는 직위다. 조선족 가운데 가장 출세한 사람이다. 2018년 6월 사망했을때 장례식에 시진핑 국가주석,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할 정도로 큰 예우를 받았다.
충청북도 청원군 출신이다. 1939년 중국으로 이주했다. 6.25 때도 중공군의 일원으로 참전했고, 중공군이 북에서 철군할 때, 김일성이 북에 남으라고 요청했으나, 조선인민군의 엄격한 상명하복 시스템이 자신과 안맞다고 생각해서 그냥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45] 아마 남아 있었으면(...) 후근부장을 지냈고 1995년에 그가 퇴임하면서 조선족 장성은 네 명이 남았다. 1995년 기사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을 지냈는데 이는 한국의 부총리급에 상당하는 직위다. 조선족 가운데 가장 출세한 사람이다. 2018년 6월 사망했을때 장례식에 시진핑 국가주석,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할 정도로 큰 예우를 받았다.
- 리셴위 (李賢玉, 1965-)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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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성 무단장 시 출신이다. 1982년 헤이룽장성 대입시험 이과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베이징대학 무선전자물리학과를 졸업, 중국 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 통신병과에 입대 후 기술장교로써 제2포병의 핵무기 지휘 통제 시스템 "중국검망"을 배치하는 등의 업적을 쌓아 제2포병 장비연구원 엔지니어 총책임자 역임. 중국 정부 선정 우수과학기술인 등에 뽑혔으며, 2015년 8월 제2포병 장성급 인사를 통해 대교에서 소장으로 진급하여 조선족 최초의 여군 장성이 되었다. 계급장의 별이 육각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없는 기술장교라는 한계는 있지만...묘하게 그레이스 호퍼 제독과 이미지가 겹친다.
헤이룽장성 무단장 시 출신이다. 1982년 헤이룽장성 대입시험 이과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베이징대학 무선전자물리학과를 졸업, 중국 인민해방군 제2포병부대 통신병과에 입대 후 기술장교로써 제2포병의 핵무기 지휘 통제 시스템 "중국검망"을 배치하는 등의 업적을 쌓아 제2포병 장비연구원 엔지니어 총책임자 역임. 중국 정부 선정 우수과학기술인 등에 뽑혔으며, 2015년 8월 제2포병 장성급 인사를 통해 대교에서 소장으로 진급하여 조선족 최초의 여군 장성이 되었다. 계급장의 별이 육각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없는 기술장교라는 한계는 있지만...묘하게 그레이스 호퍼 제독과 이미지가 겹친다.
16. 현황
(중국군 레바논 파병부대 - 유엔 평화 유지군)
(중국군에 파견돼 1주일 동안 같이 생활하는 2명의 영국군 교환장교, 중국 육군사관학교(베이징 소재)에서 촬영했다.)
중국 해군은 2020년까지 현역인 랴오닝급 1척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2척의 차기 항공모함들을 추가로 건조하여 총합 3척의 항모전단을 갖출 계획이며 이렇게 되면 미국과 같은 3교대(작전 1척+훈련1척+보급1척)를 사용할 경우 태평양에 중국 항모가 작전상태로 1척이 상시로 떠있는 셈이다. 물론 랴오닝급은 훈련용이라 아주 원활하지는 않다. 만약 남중국해나 동중국해에 중국 항모가 상시 대기할 경우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골치깨나 썩는 셈이다. 항공모함 전단 자체는 정치적인 카드로 꽤나 유용하지만 정작 이 항공모함이 본연의 용도, 즉 군사적인 용도로 어떨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물론 남쪽의 인도 해군을 상대로는 항공모함의 유무가 꽤나 큰 변수겠지만 가장 잠재적 위험도가 높은 가상적국인 한국, 일본 등에게도 유용할지는 의문이다. 특히나 한국의 경우는 굳이 항공모함이 없어도 주요도시를 타격할수 있는 위치에 있고(지도를 보면 한국의 수도권지역과 중국의 베이징을 포함한 경제도시들은 대부분 서해안을 중심으로 가까이 위치해 있다.) 수심이 얕아서 대형 함정(특히 잠수함)의 운용이 어려운 서해안에서 별다른 호위없이 항모를 출격시켰다간 한국 공군 전술기나 지상 발사 대함미사일 포대의 좋은 훈장공급원이 되기 십상이다. 항모가 아니더라도 베이징, 지난, 선양군구에 배치된 600여기의 전투기(J-10, J-11, J-16, JH-7) 들은 공중급유 없이 모두 한반도에 출격할 수 있다.
16.1. 성장
서방 기관이 공개된 정보 중에서 군사비로 넣을 수 있는 부분만을 넣어서 추정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GDP/국방비의 비율이 중국이 2%(1800억 불로 추정), 미국이 3.8%(6400억 불로 추정), 러시아가 4%(800억 불로 추정)이다. 그러나 중국이 정말로 GDP의 2%만 국방비를 쓴다고 보는 사람은 적으며, 대약진운동 당시 수천만이 굶어죽어가는데도 소련에 식량으로 기술 라이센스비를 결제하며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을 수도 있다. 특히 PPP로 보면 차이가 좁아지는 편.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강대국이 지금까지 써온 누적된 국방비와 냉전 이후 쌓아온 수없는 실전 경험 및 노하우 때문에 중국이 곧바로 미국과 러시아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군사보안연구소 글로벌 시큐리티가 구매력 평가 지수를 반영해 추정한 중국의 연간 국방비는 4,500억달러로, 이미 미국을 제외한 나토 상위 8개국의 국방비 합산을 넘으며 당해년의 인도-일본-한국의 국방비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 더구나 증가율은 세계 어떤 국가보다도 높다. 그리고 이 예산은 해군과 공군의 증강에 우선적으로 투입되며 육군은 느리게 증강되는 추세에 있다.
중국은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한 5개국(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 하나며 구소련-미국에 이어서 세계 3번째로 유인우주비행에 성공한 우주기술 강국이다. 또한 2011년 우주왕복선을 퇴역 시킨 이후 러시아의 소유즈를 빌려 타고 있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2010년대 들어서 독자개발한 선저우 시리즈로 유인우주비행도 꾸준히 하고 있다.[46]
또한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를 비교해보면, 중국은 인도보다 10년 빨리 원자폭탄을 손에 넣었고, 소재기술에서도 중국이 티타늄을 제련할 때 인도는 티타늄(아주 빠른 항공기나 우주선의 표면의 재료로는 이를 대체할 재료가 거의 없다.)에 손도 못 대고 있어서 기초적인 실력의 차이가 생각보다 심하다.
강해진 경제력으로 바탕으로 2010년 이전에 이미 군사비가 88조 원 규모다. 근데 문제는 보이는 규모만 88조 원이라는 것과[47] 매년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주변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2자리 수의 군비 증강을 실천하였다.
거기다 대놓고 미국을 겨냥하는 DF-21을 개발해놓고 있다. 물론 중국은 미국에 비해 자기네들은 20~30년이나 뒤졌다고 [48] 괜히 설레발치지 말라고 하지만 항모 격침용 미사일을 개발해놓고 미국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거짓말이다.[49]
중국 인민해방군에 속해있긴 하지만, 거의 독립조직이나 마찬가지인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가 있는데 이들은 공안과는 다른 준군사조직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미군과 한국군이 서해안에서 연합훈련을 대규모로 하자, 이에 대응해 중국(선양군구)도 북한과 연합하여 서해안에서 대규모 연합훈련을 벌였었다.
2012년에는 중국 역사상 첫 항모인 랴오닝급 항모를 실전 취역시켰다. 현재 함재기인 J-15의 양산이 되지 않아서 랴오닝급 항모는 J-15 초도생산분 몇대만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어쨌든 실전배치되어 있다. 중국군의 현재 계획은 앞으로 2020년까지 항공모함 3척을 취역시킨다는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적어도 자국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앞바다에서 만큼은 제해권을 장악하려고 할 것이다.
1997년 7월 1일부터는 홍콩 특별행정구에도 주둔하고 있으며, 홍콩 사람들도 중국군에 지원, 입대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일단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문서를 참조. 그리고 1999년 이후부터는 마카오에도 주둔하고 있다.
2016년 1월 24일 중국이 미국 군사력을 추격하기로 공개 선언을 했었다. (기사)
이미 중국이 한반도 및 일본과 태평양 미군 기지를 감시하는 초장거리 레이더를 운용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2011년부터 운용한 걸로 보이며 탐지거리가 5,500km라고 한다. 헤이룽장성에만 하나 있는 것도 아니고 허베이성, 저장성, 바인궈렁 몽골 자치주(巴音郭楞蒙古自治州; Bayingolin Mongol Autonomous Prefecture) 등에 배치해 중동, 동남아, 인도, 심지어 러시아까지 감시가 가능한 수준이다. 사드와는 달리 어느 고도에서도 항공기는 물론 미사일을 모두 탐지할 수 있다고 하며 중국에서 THAAD 배치를 반대한 이유 중 하나는 사드의 AN/TPY-2 레이더가 중국의 ICBM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동아시아 일대와 동남아시아 일대를 모두 감시하는 초대형 레이더를 3대나 운용하고 있으며 핵무기 또한 증강중이다.
중국의 무기 생산 규모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2위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밝혔다.#
16.2. 군비증강과 현대화
과거에는 징병제였으나, 현재는 경제 발전과 인력의 고급화로 인하여 모병제로 운용하고 있다. 현역병이 230만여 명, 예비군이 80만여 명이다. 기갑/전술 차량 7,470대, 군용기 4,092대, 군함 562척을 보유하고 있다. T-72 차체에 서구권 전차 포탑을 장착하여 개량한 99식 전차(ZTZ-99)전차를 주력 전차로 운용중인데 러시아 2A46M-1(125mm, 55구경)를 카피한 ZPT98 활강포다. 99식 전차는 5가지의 업그레이드형이 있다. A2버전부터 능동방어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KM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군사 과학기술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증가하는 국방예산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있다. 2013년 국방예산 약 130조 원(7406억 2200만 위안)이다. 2012년 실제 집행된 국방비 6691억 2800만 위안보다 10.7% 증가한 것이다. 아시아 1위, 세계 2위의 국방비 지출국이다. 중국의 국방비는 일본을 제외한 인도, 한국, 호주,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국방예산을 합친 것보다 많다.
2기의 군사용 레이더 정찰(SAR) 위성을 발사해 기존의 영상 정찰 위성과 더불어 전천후 감시능력을 확보했다. 또 중국 내륙에서 대만·일본 방향으로 3,000㎞까지 감시하는 초수평선(OTH)레이더를 설치했다. 이런 레이더로 표적을 확인, 공격할 수 있는 DF-21(東風, 둥펑) 미사일 150여 기를 보유했다. 이 중 C형은 오키나와의 미 공군기지를 정밀 공격이 가능하며, D형은 중국에 접근하는 미국 항공모함을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ASBM)이다. 정밀 공격용 순항미사일 DH-10도 수백 기를 배치했다. 또 러시아에서 도입한 다양한 초음속 대함 미사일도 있다. 초음속 미사일들은 잠수함, 수상함, 전투기에 장착돼 항모를 집중 공격한다. 방어 장비로는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인 SA-20 미사일 12개 대대, SA-10 미사일 8개 대대, HQ-9(SA-10 복제형) 미사일 8개 대대가 있다. 28개 대대가 224개의 대형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 발사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대마다 다수의 저주파 장거리 대공 레이더가 있어 장거리 레이더 숫자는 100여 기에 달한다. 그 가운데 중국은 대만·댜오위다오 방면의 해안을 따라 핵심 전력을 조밀 배치했다. 동중국해를 전담하는 난징(南京) 군구의 경우, 타 군구의 비행 기지가 보통 10여 개 내외인 데 비해 이곳은 26개나 된다. 이 지역의 중요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다양한 무인기도 운용 중이다.
중국은 2013년 국방백서에서부턴 핵 선제 불사용이 삭제되었다. 공격용 무기인 항공모함 또한 2030년까지 최대 5척이나 건조하겠다고 밝혔으며 핵 투발 수단도 진전중이다. 중국의 대외 군사 전략인 접근거부 전략에서 한국은 일찌감치 그 거대한 라인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군은 3개 항모전단을 계획하여 2012년에는 첫 항모인 랴오닝 호를 실전배치하였고 2척의 항모를 건조중이며 함재기 J-15의 이착함도 성공시켰다.
2014년 1월 갑자기 발사실험된 중국의 극초음속 비행체 일명 Wu-14에 대한 대만 측의 분석은 일반 탄도 미사일과의 차이점이 일반 탄도미사일은 발사후 대기권으로 재진입하기 전에 탄두가 분리되고 분리된 탄두는 보통 일반적으로 타원형궤도를 그리면서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Wu-14같은 경우 다시 대기권에 재진입한 이후에도 보조추진제의 점화를 통해 추진력을 계속해서 얻어 순항 미사일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며 이때 속도가 마하 10이 넘게되는데 이렇게되면 탄도정밀도와 사격범위가 크게 향상되는 이점과 더불어 현존하는 MD 기술로는 방어가 극히 힘들다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의 MD체계는 상대방이 발사한 탄도탄의 탄도와 속도 방향에 따라 방어할 지점을 미리 지정하고 대응에 나서게 되는데 이 예측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2014년 1월에 중국이 실험한 Wu-14처럼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방향이 계속해서 바뀌면서 극초음속의 속도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면 이 탄두의 진행점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기술이 당장 DF-31에 적용이 되게 된다면 사정거리 연장효과가 이루어지는 만큼 8,000km 정도의 사정거리가 적어도 수천km는 더 연장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CEP도 순항미사일만큼 높아짐으로 DF-31에 생명을 불어넣게 된다고 평가했다. 또한 이렇게 길어진 사정거리를 바탕으로 DF-31 발사기를 그동안 사거리 문제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중국 내륙 지방에 추가 배치하여 북극권을 경유하여 북아메리카 대륙을 직접 타격할 수 있게 되어 미국의 대응능력에 한층 더 부하를 높이게 된다고 평가했다. 결국 저번 실험은 탄도 미사일과 순항 미사일의 장점을 결합한 것으로 일종의 창의적인 발명이며 중국이 미국의 핵(核)억지력에 맞설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실험의 가장 큰 수혜자는 원래 사거리가 짧아서 미 본토를 직접 공격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던 DF-31이 이제 북아메리카 대륙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자국에서 발사해서 바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은 DF-31A와 DF-41 정도가 생존성있는 시스템으로 보여졌는데 이렇게된다면 DF-31마저도 타격권에 들어가게 되는 큰 효과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기술은 ASBM에 적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탐지수단만 강화된다면 이론적으로는 지구 반대편의 항모도 타격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가 된다.[50]
비행방식이 항력 증가 탄도 미사일과 비슷하다. 이 방식은 주로 회피기동보다는 사정거리 연장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이 방식은 미사일을 요격을 힘들게 하는 효과가 분명이 있다. 궤도수중회피기동하는 탄도 미사일치고는 상대적으로 요격이 쉬운 편이다. 이정도도 요격 못한다면 미국의 MD는 회피기동 하는 모든 탄도미사일을 막지 못한다는 말밖에 안 된다.
미국의 MD는 아직 이런 식에 대한 요격을 실증한 사례자체가 없다고 쳐도 중간에 궤도를 수정하는 탄에 대해서 요격을 실증한 사례가 없다.
ASBM의 문제는 기상상태에 따른 제약이 크고 레이저가 거리가 멀어지면 산란되어 버리는 문제가 있다. 어차피 ASBM 자체가 부스터단계에 쓸려고 만든 넘인데 그 부스터 단계를 내륙 깊은 곳에서 하게 되면 이미 날라간 것이다. 그렇다고 그 큰 기체를 들이 밀수도 없다. 그리고 모든 발사대는 이동형 TEL인데 그것을 그리 쉽게 발사 전 단계에서 찾아서 격멸할 수 있는 기술은 현재로서도 거의 요원해 보인다.
이미 ASBM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아니다. 이미 러시아, 미국이나 예전에 실증했던 기술을 센서들의 발전으로 중국이 덕을 보게 된것이다. 물론 목표에 돌입할때의 속도는 마하 10까지는 아니고 마하 4~6 수준으로 떨어진다.
현재 중국은 240~260개의 핵무기를 보유중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탄두를 줄여가는 입장이고 반대로 중국은 계속 집중적으로 핵 전력을 증강해 나가는 중이라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핵 전력으로 미국이나 러시아를 앞설 것이라고 보면 오산인데 중국과 미국, 러시아 양국의 핵 전력은 넘사벽인 수준이다. 당장 프랑스가 중국보다 보유한 핵무기나 배치된 핵무기 숫자가 많다. 그렇다고 중국군이 핵무기 수량이 미칠듯이 늘었냐면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51]
중국은 4종류의 5세대 전투기를 개발하고 있다. J-20, J-31, J-18, 무인 스텔스 전투기 이검은 실전배치가 가까워지고 있고 선양비행기공업집단이 개발한 J-18는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고 단거리에서도 이착륙 할 수 있어 J-15와 함께 항모 함재기로 사용된다. 중국 공군이 제 5세대 전투기 Snow Owl Jet 개발 프로젝트를 AVIC Shenyang Aircaft Corporation에서 진행 중이며 현재 풍동시험 단계다. Snow Owl Jet는 고성능 다목적 전천후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으로 고강도의 임무수행이 가능한 기체를 구현하면서 생산단가를 최대한 낮추는 방향으로 개발 중이다. 초음속 스텔스 전략 폭격기를 개발 중이다. 작전반경은 3,500~3,700Km이다.
다만 중국 내에서도 레이더와 엔진 등의 기술이 부족한 점이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특히 러시아제 엔진을 복제한 자국산 엔진들의 신뢰성이 중국 공군 조종사들에게도 비판 받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는 듯하다. 육군이나 해군에서도 계속 중국제 엔진이나 전자장비의 신뢰성이나 내구도가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자면 중국군의 첨단화를 경계하기도 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과 같이 축적된 기술력이나 경험이 부족하여 시행착오를 겪고 잇는 중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해가는 중국의 국방비와 더불어 많은 연구 인력 및 성장해가는 세계 2위의 R&D 투자 지출액, 오랫동안 축적해온 군사기술의 역량 등을 고려하면 엔진과 레이더 등의 기술부족 문제가 해결되는 건 사실상 시간문제이며 오랫동안 타국의 검증된 무기들을 꾸준히 복제하여 기술력을 축적해오면서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최근 인민해방군 육군에서 돌연 방탄복을 140만개나 주문했다고 한다. 2년 안에 만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대만을 침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학자들은 말했다.#
2020년 북한의 열병식이 공개된 후로 중국 인민해방군의 방탄복을 새로 구입하고 원래 쓰던 것을 북한에 공여한 것이 아니냐고 보는 의견들이 있다.
16.3. 해외 주둔 중국군
17. 개입한 전쟁, 분쟁
- 6.25 전쟁 - 미국과 직접적으로 맞선다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중국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참전했다. 대외적으로는 인민해방군이 아니라 志愿軍(자발적으로 참전한 병사), 즉 의용군이라고 선전했다.
- 창두 전투 - 티베트를 상대로 벌인 전투이다. 이 전투 이후 협상 끝에 사실상 독립국이던 티베트가 중국에 합병되었다.
- 진먼 포격전 - 1950년대 중국 본토 바로 앞의 진먼 섬에서 중화민국군과 주고받은 포격전이다. 포격전뿐만 아니라 상공에서는 양안 간 공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 중국-버마 국경 작전 - 1960년부터 1961년까지 진행되었다. 국공내전 이후 대륙에 남겨진 중화민국 국군 잔당들이 버마일대로 넘어가면서 버마 국경에서 중국을 계속 괴롭히자, 중국과 버마의 합동 군사 작전으로 진압했다.
- 베트남 전쟁 -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 측으로 인민해방군을 파병했다. 이때 남베트남 영토이던 파라셀 제도를 점령했다.
- 중국-소련 국경분쟁 - 기계화된 소련군에 낙후된 장비로 들이밀었다가 압도적인 피해를 입었다.
- 중국-인도 국경분쟁 - 약 1만vs8만의 압도적 병력우위와, 인민해방군의 장기인 보병의 과감한 기동우회와 포위전술로 인도군을 묵사발 만든 전쟁. 특히 중국군이 보급이 어려운 히말라야 산맥 근처를 자기 집 안방처럼 여기던 인도군을 격파하여 소련-미국 양측을 모두 경악시켰다.
- 중국-베트남 전쟁 - 베트남 정규군이 아닌 민병대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걸 본 중국 지도부는 병력감축을 통한 정예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18. 가상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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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는 중국이 3개 진영 중 하나로 나와서 중국군이 미군과 패권을 다투지 않는다. 결국 중국이 미국과 사이좋게 GLA를 잡고 끝난다.[52]
하지만 그 확장팩 제로 아워에선 GLA에게 제대로 발린 미군은 유럽주둔군을 본국으로 후퇴시키며 지구방위를 포기하게 되고, 중국군은 GLA를 정면승부 끝에 패배시키며 유럽과 방위조약을 체결하며 지구방위군으로 등극하는 중국군 최고의 상황이다.
소설 1초 후에서는 EMP 공격으로 막장이 된 미국을 중국군이 점령한다.
메탈슬러그 6에서는 3스테이지의 배경인 상하이에 인베이더들이 침략하자 파견되지만, 모두 연락이 끓기고 플레이어가 만난 중국군들은 모두 정신이 나가있어 주위를 배회한다. 플라잉 패러사이트에게 세뇌당해 플레이어를 공격하기도한다.
폴아웃 시리즈 중 3편에서는 중국군을 시뮬레이션상에서 가상으로 만나 보거나 직접 싸워볼 수도 있고, 구울이 된 중국군을 발견할 수도 있다.
홈프론트에서는 원래 조선인민군 대신 중국이 적으로 등장할 예정이었고 한국 역시 중국의 침공을 받아 병합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을 실을 생각이었으나 북한으로 바꾸고 이 과정에서 스토리가 심각하게 꼬여 버렸다. 사실 본래 계획한 미국 vs 중국 내용으로 게임을 만들었다간 중국에 팔아먹기가 꽤나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53] 물론 폴아웃처럼 대놓고 미국 VS 중국을 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홈프론트는 누가 봐도 중국이 악역인지라 폴아웃과는 또 다르다. 그리고 폴아웃 시리즈에선 미국이나 중국이나 둘 다 공평하게 막장이다.
온라인 게임 이터널시티에서는 한국전쟁 어설트의 몬스터로 만나볼 수 있다. 중공군 보병은 그냥 소총만 몇 발 쏴대는 호구지만 중공군 기관총병(엄밀히는 기관단총병)과 중공군 수류탄병은 PPSh-41 난사와 수류탄 폭발 때문에 정말 치가 떨릴 정도로 악랄한 적이다. 순간적인 조작 미스로 바로 드러눕는 불상사도 종종 터진다.
블랙 옵스 2에서는 미래 파트의 주요 적 세력 중 하나로 등장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이 주축이 된 SDC(Strategic Defense Coalition, 전략적 방위 연합)라는 군사동맹으로, 총사령관인 티안 자오 장군이 자기네 중국 정부한테도 막나가는 강경파인지라 인도, 이란을 공격하고 러시아도 SDC에 끌어들이려 하는 등 공격적인 확장정책을 펴고 있다. 주로 스트라이크 포스 미션에서 상대하게 되며, 플레이어가 어떻게 미션을 진행하느냐에 따라 SDC가 인도, 이란, 러시아까지 전부 다 점령하기도 하고 미군과 협력하여 라울 메넨데즈와 같이 싸워주기도 한다. 멀티플레이에서도 일부 맵에서 플레이 가능 진영으로 등장한다. 미래 배경이라 그런지 현재의 중국군과는 복장이 많이 다르고[54] 전투복에도 오성홍기가 아닌 SDC 마크를 붙이고 있어 중국어로 쭝얼대는 것만 아니면 중국군이라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배틀필드4에선 쳉 제독 주도로 시위대를 죽이고 미국의 태평양함대를 공격(!) 미중전쟁을 일으킬뻔 하다가 진실을 알게 되고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여담으로 싱글에서 고증이 좀 그렇다. 구형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복장을 하는데, 사실은 신형 07식 군복이 나와야했다.
멀티에선 미군을 따라하려했는지 어썰트가 프로텍 헬멧을 끼고 나온다(!)[55] 뭐 실제로 쓰는 곳도 있긴 하지만 매우 극소수이다. 그리고 서포트가 가면을 쓰는데[56] 이는 진짜 중국 무경들이 쓴다고 한다. 그리고 약간 세세하게 따지면 중국군 모델이 기본 군복이 검정색으로 표현되어있으나, 1인칭에선 07식 신형군복으로 변해있다. 제작자가 어지간히 귀찮았을 거라 예상됐으나 산지 등의 맵에선 3인칭도 07식 신형군복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나 이는 약간 07식보다 진하다.(시가전 위장 패턴에 약간 초록빛이 더 난다. 현 중국군 산림 위장과 다르다.) 비명소리가 아주 시끄럽고 지랄맞다.
본토까지 들어온 미군과 러시아군에게 털리고 있고 결국 파이널 스탠드 시점에서 인민해방군은 궤멸 미군과 러시아군이 맞붙게 된다.
대체역사 게임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는 세계정복을 시작한 나치에게 본거지를 털려 전멸당한다.[57]
미군이 군 홍보용 게임인 아메리카스 아미를 만든 것에 이쪽도 자극받았는지 난징군구 지원(캐릭터들 모델링의 군복에 붙은 패치가 "중국인민해방군 난징군구"라 써진 물건)으로 인민해방군 홍보용 게임 FPS으로 광영사명이란 게임을 만들었다. 아메리카스 아미와 비교하자면 이쪽은 군 내부의 병사 교육용(?!)으로도 사용할 목적인지 민간용 온라인 판과 군용 싱글 플레이 판이 따로 있다. 그렇다고 군용 버전이 정말로 군 내부에서만 한정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비매품이란 건 물론 아니다.
도미네이션즈에서 원자력 시대의 중국 고유 유닛이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는 미국, 소련과 함께 핵미사일 보관소가 블로펠드의 다이아몬드 위성 공격에 파괴당한다.
007 네버 다이에서는 중국군 수뇌부 강경파 창 장군이 빌런으로 등장하고 카버의 농간으로 전투기가 격추된다
19. 여담
미국을 비롯한 미국의 우호국에겐 6.25 전쟁때부터 중국군의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었고 한국에서의 중국군의 인식은 16년도 이전까지는 그리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16년에 터진 사드 문제를 시작으로 중국의 이따른 한국에 대한 디도스 공격과 망언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중국군의 인식에도 악영향을 줬다.
중국판 구 일본군, 나치 독일군이라고 할 정도로 최소 자위대만큼이나 인식이 매우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도 이후에 벌인 아베의 최대 병크로 인해 여전히 우호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도 소수 존재하나[58] 그래도 순하게 얘기해야 최소의 만큼정도 밖에 못할 수준이고 직설적이게 얘기하면 "중국군이 북한군, 자위대, 러시아군 보다도 한국에게 위협적이다."라는 반응이 훨씬 많은 편이다.
20. 관련 문서
- 중국 해군 어뢰정 망명사건
-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 중국북방공업(노린코)
- 전승절(중국) - 열병식
- 천안문 6.4 항쟁 : 인민해방군이 인민들을 마구 학살한 사건이다.
- 중국 인민해방군/잠재적 불안요소
- 징병제/중국
- 병역법/중국
- 전국징병망
- 화웨이[59]
- 인민해방군 복무의 끔찍한 현실
[1] 위 그림과 같이 큰별 안에 한자로 八一(팔일)이 새겨진 문장이 인민해방군을 상징하는 문장이며 팔일의 의미는 인민해방군의 시초인 홍군이 탄생하게 된 1927년 난창 폭동 사건의 날짜인 8월 1일을 의미한다. 중국 공산당은 이 사건을 난창 기의(봉기)로 부르며 기념한다.[2] 무장경찰 미포함,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는 약 150만 명 규모의 무장경찰도 휘하에 두고 있으며 인민해방군으로 재편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3] 인민해방군 공군 출신으로, 중국군 역사 최초의 공군 출신 중군위 부주석이다.[4] 영어로는 대장에 해당하는 General이라고 번역하는데, 실제로는 상장이다. 현재 중국의 현역 군인 최고계급은 상장이고, 대장이나 원수는 군 원로들에게 부여한 계급으로 현재는 모두 사망해서 없다.[5] 인민해방군 로켓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방부장에 올랐다.[6] 인민해방군 해군 출신이다.[7] 이전에도 해군 정위들은 육군에서 넘어오는 경우가 다수 있기는 했으나, 먀오화의 경우 해군 정위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단 한 번도 해군에서 근무해본 경험이 없는 오리지널(...) 육군 출신이다.[8] 사실 공산국가의 문민통제는 '당이 군을 지휘한다.'는 원칙으로 표현되며 소련 성립 시절부터 철저히 지켜졌다. 특히 공산국가에서 군대와 군인 출신이 정치에 전면에 나선적은 거의 없다. 이는 공산정권의 존립에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는것을 알고 무리하면서까지 정치장교에게 권한을 주어 직업군인들이 정치에 나서며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는 것을 방지했던 것이다. 지금도 인민해방군 지휘부 전원이 중앙군사위원이다.[9] 총병력 230만은 중앙군사위 관할 병력을 집계한 것으로 보이는데, 육해공군을 합친 숫자는 148만 3천명으로 대략 82만 명 정도가 빈다. 다만 무경 중에 원래 육군 해체 과정에서 빠져나간 부대들이 다수 있고 그 규모가 70~80만 정도이며 이들과 인민해방군 육군이 상당히 밀접한 관계임을 감안한다면 전시 이들을 재편입시킬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10] 중국군은 80년대 부터 지속적으로 감군 중이다. 85년 부터 약 200만 명 정도를 줄였다고 한다.[11] 이는 인민해방군 자체가 공산당원으로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12] 사무국[13] 합동참모부[14] 공작은 사업을 뜻한다[15] 물류지원부[16] 발전은 개발을 뜻함[17] 2015년 11월 시진핑의 중국군 개혁 6대 방향 중 의법치군에 따라 신설되었다. 모든 부서와 전구와 군대 내에 상주하며 비리를 색출하는 부서이다.[18] 2015년 11월 시진핑의 중국군 개혁 6대 방향 중 의법치군에 따라 군법원과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19] 감사실 위원회 전 부서에 상주한다. 2015년 11월 시진핑의 중국군 개혁 6대 방향 중 의법치군에 따라 신설되었다.[20] 합동물류지원군[21] 중화인민공화국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13.93억 명'''이다.[22] 위키러의 경험으로 중국의 지방 국제공항에서 가이드가 없는데 문제가 생겨 일행 중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영어라도 쓰며 해결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공항직원이 영어를 할 줄 몰라 곤란해하고 있는 와중 출국 게이트에서 경비를 서던 군인이 영어를 통역해줘서 무사히 일이 해결된 적이 있다.[23] 단 무사히 제대하지 못하는 경우 불이익이 커서 안 가는 것만 못하다. 선발 후 변심해서 입대를 기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24] 중국에선 촌위서기, 속칭 촌장라고 하며 마을 주민들의 선거로 선출되는 경우도 있으나 위에서 임명하기도 한다.[25] 사실 한국군도 1990년대 이전에는 인민해방군만큼은 아니지만 꽤 까다롭게 굴었다. 이는 출산율이 한창 높았던 시절에 출생한 사람들이 군 입대를 한 시절이었고, 거기에 병역기간이 30개월~36개월에 달하다보니 깐깐하게 따지면서 군대로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발이라서 면제거나 안경을 썼다고 방위에 보내졌던것은 평범했던 일이었다. 물론 중국과 다르게 사병으로 군대를 간다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있던 시절은 아니었다. 그저 군가산점 조금 더 받는 수준. [26] 중국에서는 경찰은 고압적인데 반해 군인은 굉장히 친절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중국에서는 "길을 모르면 경찰보다는 군인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을 지경이다.[27] 병장으로 입대했다. 중국군은 미군처럼 대학 졸업자들은 사병으로 입대 시 병장으로 임관하도록 한다.[28] 중국에서는 시위가 엄격히 통제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위는 정부를 압박해 예산을 더 타내려는 중국 국방부의 묵인이 있나 하는 의혹이 있다. 아니면 반정부시위가 아닌데다 예비역 군인들이라 마구잡이로 때려잡기가 어려워서 일수도 있다.[29] 양성교육을 맡는 사관학교가 아닌 합동보수교육기관이다.[30] 나토 코드로 봤을 때 OR-4로 대한민국 국군이나 미군의 병장에 상당한다. 단 중국군은 이때부터 부사관으로 구분된다.[31] 환율환산 시 60만원 정도이며, 중국 물가를 감안했을때 한국 돈으로 약 100만 원 정도. 구매력 기준 GDP가 한국과 3배 이상 차이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웬만한 중국 회사원들보다 많은 편이다.[32]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이라고도 부른다.[33] 실제 발음은 다소 약화되어 '디'에 가깝다. 이하 병음 단독 표기 'de'에 모두 해당됨.[34] 한국의 군수사+안보지원사를 합한 조직.[35] 사형유예 2년이란 것은 사형인데 2년간 가둬둔 다음에 형 집행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수감 기간 동안 별 문제가 없으면, 종신형으로 감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중국은 부패한 고위공직자들에게 사형유예 선고를 자주 내리고 있다.[36] 단, 우리로 치면 1급함의 함장을 맡는 등 타국의 대령에 상당하는 직책을 받기도 한다. 중국군 입장에선 남들이 보기 어떻든 체감 상 타국의 대령에 해당한다. 한마디로 업무는 준장, 대우는 대령이다.[37] 부사관의 계급제도는 여러 차례 개정되었는데 1988년 계급제도 부활 시에는 군사장-전업군사-상사-중사-하사의 5단계였다가 2001년에 6급~1급사관의 6단계로 증가, 그리고 2009년에 다시 1급군사장~4급군사장+상사~하사의 2종 7단계로 세분화되었다.[38] http://jinlong.co.kr/124594426?blogId=kimyong0919&logNo=124594426&from=relay 참조[39] 굳이 명칭을 1대1로 대입하지 않고 계급 구조만으로 비교한다면 거의 미군 부사관 계급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40] 81식 자동소총을 개량한 QBZ-03도 사용중이나 원본인 AK와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되었다[41] 한국만 해도 무기개발의 시작은 박정희 정권 당시 미국 무기의 분해-재조립부터 시작했으며, 카피도 많이 했다.[42] 항공기 엔진을 제대로 제작하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정도이다.[43] 북한과 중국이 우방국이기는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도 우방국을 위한 간첩행위라고 해도 엄격히 처벌한다. 실제로 미군 정보기관 DIA 소속의 재미교포 로버트 김이 한국쪽에 미군의 내부 정보를 넘겼다가 체포돼서 중형을 받은 사례가 있다.[44] 반면 한국은 적국을 위한 간첩행위만 간첩죄 적용하기 때문에, 우리 군 내부 관계자가 미군이나 미국쪽 방산업체에 정보를 빼돌리고도 그냥 넘어간 사례가 존재한다.[45] 당시 중국군에는 계급제도가 없었고, 군대 분위기도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이었다. 반면 북한군은 김일성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인 상명하복 시스템이었다.[46] 미국은 스페이서X 같은 우주기업들이 유인우주선을 개발하고 있다.[47] 국가예산의 투명도가 낮은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실제 군사비는 공개된 것의 2~3배 정도로 평가한다.[48] 세계적으로도 군 현대화가 잘 이루어진 나라인 대한민국과 미국 간 군사기술 격차는 '''최소 15년''', 미국의 최대 잠재 적국 중 하나인 러시아와 미국 간 군사기술 격차도 '''최소 10년'''이다. 세계적으로 F-22를 (간신하게라도) 대적하는 것이 가능한 전투기를 조금이라도 자체생산해 보유한 국가는 러시아뿐이고, 냉전 시절엔 같이 우주를 제 집 안방 드나들듯 하던 쌍대산맥이었으며, 핵 전력만큼은 세계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데, '''그런 러시아조차 그 모양이다. 미국의 기술력은 넘사벽이다.''' 중국과 미국 역시 최소 18년에서 20년에 필적하는 격차가 벌어져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49] 다만 항모 킬러용 탄도미사일의 경우 과거 소련이 비슷한 물건을 개발하였으나 이건 아니라고 판단하여 초음속 대함미사일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경우와 비교해서 미국 측의 설레발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현재 중국은 당시 소련보다 더 많은 군사위성을 보유한데다가, 당시 러시아가 없던 자체 GPS도 있기 때문에 이것이 무조건 중국 측의 허세라고 보기도 그렇다. 탄도미사일을 요격한다는 MD보다도 훨씬 쉬운 목표가 바로 이 대항공모함 미사일이다. DF-21이 70년대에 달성한 CEP 수준 아직도 못 벗어난 무기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중국이 2010년에 대항모용으로 개발한 DF-21D는 1990년에 개발된 DF-21(CEP 300~400m) 원형과 플랫폼만 같을 뿐 유도장치나 추진장치 모두 다른 미사일이다. CEP 30m 수준인 미국제 퍼싱2 중거리 미사일의 기술이 흘러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50] 하지만 토폴-M의 예를 봤을 때 수평비행을 하게 되면 그만치 연료를 더 써야 하기 때문에 사거리가 감소한다. 물론 이 물건은 HGV - 초음속 글라이드 이동체니까 기존 탄체보다 연료 효율이 좋을 수도 있긴 하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Prompt Global Strike가 미니트맨 III 추진체를 사용한 예가 있긴 하니 이걸 동풍의 탄두에 적용 가능 여부 역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51] 그런데 여기에 관해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은 현재 보유중인 샤급과 진급에만 핵무기 720개탑제가 가능한 수준이고 DF-41같은 ICBM을 포함시키면 720개보다 훨씬 더 늘어난다. 거기다 중국은 1960년대부터 이미 수소폭탄을 개발했는데 그 핵처리 시설의 규모를 판단해볼때 실제론 1000~3000개 수준이거나 그이상일 수도있다.[52] 물론 미국이나 중국이나 서로 싸우는 미션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경우 상대에게 무조건 GLA가 미국, 또는 중국으로부터 강탈한 무기들이라는 배경 설정을 넣어둔다. 다만 중국군 미션 중 GLA에게 미군이 당한 걸 깔보는 듯한 대사는 있어서 서로 간의 자존심 경쟁은 있는 모양이다. 일종의 오월동주 상태.[53] 비슷한 케이스로 영화 레드 던의 리메이크 판이 있다. 덕분에 이쪽은 조선인민군이라고 우기는 인민해방군이 등장한다.[54] 단, 티안 자오가 입은 전투복은 현재 중국군이 입고 다니는 07식 디지털 위장무늬 전투복이다.[55] 반대로 미군은 레일이 달린 옵스코어사의 FAST를 사용하고 러시아군은 바이저를 제거한 LShZ-2DTM Vulcan 을 사용한다.[56] 캠페인에서는 러시아 보급병의 헬멧을 착용한다.[57] 다만 이 시점에는 중국 대륙의 주도권이 장제스의 중화민국에게 있었으므로 조금은 애메하다.[58] 예시로 중국과 대만의 군사적 충돌의 뉴스에서 "친일국가 대만보단 중국이 낫다"라는 댓글이 소수 달린다.[59] 설립자인 런정페이가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버부대 장교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