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옹

 


簡雍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평가
5. 기타
6.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 는 헌화(憲和). 유주 탁군 사람.
유비와 함께 했던 촉한개국공신 중 한 명이다.
삼국지집해에 따르면 그의 본래 성씨는 경(耿)이었지만, 유주 사람들이 이를 간(簡)으로 발음했기 때문에 발음에 따라 간으로 성을 바꾸었다고 한다.

2. 정사


유비동향이자 친구. 어려서부터 유비와 친하여 유비거병한 이후로 그의 막료로 활약했다. 유비를 따르던 모든 인물 가운데 간옹은 관우, 장비와 함께 최고참이자 개국 공신이다.
간옹은 항상 유비에게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었고, 때때로 그는 사신 역할도 수행했는데, 유비가 형주에 이르자 간옹은 손건, 미축과 함께 종사중랑(從事中郞)이 되었다. 종사중랑은 참모의 직위이니 간옹은 책사 역할도 수행했다는 뜻이다.
익주 정벌 시절 간옹이 유장에게 사자로 나서자 유장이 그를 보고 매우 아꼈다. 후에 유비가 성도를 포위하자 간옹을 보내 유장을 잘 설득해서 항복시켰고, 간옹은 소덕장군(昭德將軍)에 임명되었다. 익주가 평정되자 대우를 이적, 손건 등과 버금하게 했다.
유유자적한 풍채와 생각에다, 성품은 찬찬하지 않고 오만하고 방종하며 질탕했다. 유비가 자리에 앉아 있어도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몸을 기대어 있었다. 이렇게 예법에 맞는 몸가짐이 엄숙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행동하였다. 제갈량 앞에서 회의에 참석할 때도 혼자 걸상 하나를 차지하고 목에 베개를 베고 누워 말하니 참으로 뻔뻔했다(이상 삼국지 촉서).[1] 그래도 아무런 벌이나 미움을 사지 않았으니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성격이었던 모양이다. 자기 상관들 앞에서 남들은 다 앉아 있는데 홀로 목베개를 높이 벤 채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든 기분 나빠할 법도 한데 기록에는 그런 묘사가 전혀 없다. 한편, 법정 앞에서는 벌떡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있고(첫 번째 댓글) 여자 제갈량 루리웹 연재분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는 출처가 불확실하다. 그래서였는지 레진 연재분 40화 간손미 화(로그인 필요, 유료)에서는 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전해지는 일화 가운데 음담패설에 가까운 것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유비가 곡식을 아끼기 위해 금주령을 내려 법령에 따라 술을 담글 때 사용되는 기구를 가진 사람까지 처벌하는 명령을 내리려 하였다. 하루는 유비와 간옹이 거리에 나가 단속을 하였나 보다. 번득이는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간옹은 지나가던 남녀를 가리키며 둘이 간음을 저지르고 있으니 잡아야 한다고 유비에게 주장했다. 유비가 어떤 이유에서 그러한 주장을 하느냐고 간옹에게 묻자, 간옹은 "저들은 도구(성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술을 담그려는 자와 똑같다(彼有其具,與欲釀者同)"[2]라고 말했다. 유비는 웃으면서 술을 담글 때 사용되는 도구를 지닌 사람까지 처벌하려던 생각을 그만뒀다고 한다.정사 삼국지 촉서 8권 간옹전[3][4]
그러나 유비군의 익주 평정 후부터는 간옹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그의 말년이 어땠는지, 그의 삶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알 수 없으며, 자손에 대한 기록도 없다. 유비가 황제를 칭할 때 그의 이름이 없는 걸 보아 손건과 더불어 유비의 익주 점령부터 한중 공방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그는 유비가 거병한 이래 끝까지 변심하지 않고 유비를 따르다 죽은 충신이라고 평할 수 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점술 능력도 가지고 나오는데 당양 벌판에서 조조군에게 추격당하기 직전, 깃발이 부러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점을 쳐보고 유비에게 뒤따르는 난민들을 버릴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유비는 이를 완강히 거절하였고 간옹은 싸움에 휘말렸다가 길바닥에 쓰러진 채 조운에게 발견된다.
또한 연의에서는 유장에게 사자로 갔을 때 이때 간옹이 위세를 부렸다가 과거의 지인이라는 진복에게 꾸짖음을 듣고 얼른 행동을 고치는 일화가 나온다.

4. 평가


유비 세력이 적지 않은 세월을 유랑하며 이리저리 구르고 고생했음에도 계속 살아남아 유비의 보탬이 된 걸 보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추측할 수 있다. 관우와 장비야 당대의 인간흉기들이라지만 간옹은 딱히 무인이 아니었음에도 익주 평정 직후까지도 살아남았다. 다만 유비의 유랑 과정이 매우 험난했음을 감안하면, 간옹도 장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무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간옹은 단지 군주의 친구라는 이유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한고제도 친구는 쳐냈고 부하들을 잘라냈으며 믿을 수 있는 신하들만 데려갔다. 그 외 그 어떤 왕을 봐도 서열관계가 확실한 보스와 조직원의 관계지 유비의 간옹처럼 말 편하게 하는 친구를 데려간 경우는 거의 없다.[5] 하후돈도 조조와 친구처럼 지냈다고 하지만 결국 가족에다가 충실한 부하였다. 이건 간옹이라는 인물의 능력을 반대로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탁월한 능력을 딱히 보여준 바가 없는 것 같은데도 개국공신에다 높은 반열에 오르는 데 누구도 반발하지 않았다. 제일 오래된 숙신이니까 그냥 넘겼을 수 있겠지만 그 이후 특별히 아무 일도 안 한 것이 아닌 거의 의협집단의 접착제로서 그 누구에게도 적의를 얻지 않았으며 특별히 거기까지 따라가고 살아남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심지어 저런 입지임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에도 딱히 연루되지 않고 깨끗하게 살다 갔다.

5. 기타


손건, 미축과 함께 '간손미'로 묶이기도 한다.
조조의 별명인 "난세의 간웅"을 입력하다가 오타로 "난세의 '''간옹'''"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나무위키에도 한동안 그렇게 써 있었을 정도(...)

6. 미디어 믹스




[1] 의자는 입식 문화권으로 바뀌는 당나라, 송나라 때에나 등장하는 물건으로 삼국지 시대에도 역시 의자가 있긴 있었으나, 돗자리를 깔고 거기에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예의였다.[2] 아래 하씨어림 등의 다른 문헌 중에서는 '彼有淫具,與欲釀同', '저들은 간음의 도구[淫具\]를 갖고 있으므로'로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들도 있다.[3] 이 이야기는 하씨어림(何氏語林)에도 실려있고, 이 책과 세설신어를 합친 세설신어보에도 실려있다(세설신어에는 실려있지 않다).하씨어림 19권 해당 부분 번역 그 외에도 대여섯 개의 문헌에 여기저기 실려있는 유명한 일화인데 여기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4] 이를 참조했는지 진삼국무쌍 7 맹장전 장성 모드에서도 유비로 플레이를 할 때 마을에 있는 간옹과 대화를 하면 금주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5] 서양까지 넓게 본다면 나폴레옹 1세가 황제가 되어서도 말 놓고 다녔던 장 란 정도. 하지만 장 란은 나폴레옹의 친구이기 이전에 능력자였으며, 또 나폴레옹의 세가 기울기 직전에 죽었기 때문에 나중에까지 좋은 친구로 남았을지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