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아초 치아노
1. 개요
귀족 작위까지 포함한 정식 이름은 제2대 코르텔라초 부카리 백작 잔 갈레아초 치아노(Gian Galeazzo Ciano, conte di Cortellazzo e Buccari). 한국 국내에는 뮌헨 협정과 추축국 결성에 모두 참여한 이탈리아 외교관쯤으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이탈리아의 외교관 및 외무장관. 1903년 토스카나에서 태어났다. 1930년 무솔리니의 장녀인 에다와 결혼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 주중 이탈리아 공사를 지낸 적이 있으며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 중 중재를 맡아 송호정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조정인으로 참관했다. 이 때문에 장쉐량이 1933년 유럽 외유를 떠났을때 그와 교류했으며 장쉐량에게 파시즘 물이 들게 했다. 일설에는 장쉐량이 치아노의 아내와 바람을 피었다고.(...)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에서 세운 군공으로 외무장관에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내내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외교업무를 맡다가 전쟁이 이탈리아에 불리해지자 장인어른인 무솔리니에 반대하여 그를 합법적으로 실각시키려했다.
그러나 사위가 자신을 배신하려한다고 격분한 무솔리니에게 합법적으로 사형을 당했다. 만약 연합군이 1년만 빨리 로마에 입성했다면 징역형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1943년 연합군이 로마로 당도하기도 전에 독일군 특수부대가 그를 반 파시스트 혐의 및 반역으로 체포해 버렸고 결국 나치의 괴뢰정부인 살로 공화국에서 사형을 당한다.
무솔리니가 반대파들을 숙청하다가 치아노 또한 포함된 것을 보고 사위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는 루머가 있으나 근거가 부족하다.
3. 대중매체
1985년작 드라마 무솔리니에서는 라울 줄리아가 치아노 역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