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살인

 

1. 개요
2. 부작용
3. 대표 사례
4. 관련 문서


1. 개요


합법적으로 정적을 척살하는 행위.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법률적으로 말이 되는 법조항을 악용하여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하는데 사용한다. 후진국에서 빈번하게 터지는 일이다. 직접적으로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기 때문에 독재자들이 애용한다.

2. 부작용


얼핏 보면 정적 제거에는 굉장히 효과가 좋은 방법이다. 대상의 이미지를 왜곡할 수 있고, 정적의 사후에는 그 측근과 가족에게 오명까지 뒤집어 씌워 사회적으로 매장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정부에 대한 엄청난 불신감을 안겨 주기 때문에 후유증이 굉장히 길게 남는다. 또한 이 과정에서 사형제를 악용하여 그로 인한 부작용이 크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형 폐지론에 강력한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1]
당장 사형제 폐지국들 중에 기존의 선진국이 아니면서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형집행을 동결하거나 폐지한 국가는 거의 다 사법살인 경력이 있는 나라들이다. 또한 이런 사법살인이 다른 나라에 널리 알려지면, 사법살인이 일어나는 국가의 이미지가 추락하여 국제망신이 되기도 한다.
뭔가 모순적이지만, 사법살인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법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법학계와 미디어 역시 존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게도 쉽게 알려지며 그럴 경우 제대로 문제가 된다. 인민혁명당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그 날을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이라고 깐 게 이런 이유다.

3. 대표 사례


사법살인을 당한 인물과 사법살인의 배후 순서다.
왕씨 몰살 문서 참조
당시 러시아와 일본은 범죄인 인도 조약조차 맺지 않았던 상황이므로 기본적으로 러시아에서 재판이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일본 정부는 무리를 해서 안중근을 일본으로 끌고 왔고, 일본 정부가 사법부에 사형을 선고할 것을 요구했다. 저 재판을 진행하던 일본 검사는 안중근의 인품에 감화되어 사형집행 날짜를 1달 가량 미뤄주고 안중근이 자서전 쓸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성경 속에 기록된 최초의 사법살인. 예수가 받은 사형 판결은 사실상 날치기였다. 사실 빌라도 본인은 예수에게 채찍형이나 몇 대 때리고 추방하려 했으며 실제로도 '바라바'라는 흉악범을 디밀고 '설마 바라바같은 흉악범을 석방시키진 않겠지?'라는 생각으로 예수와 바라바 중 누굴 석방할 거냐고 물었는데 그 답변이 바라바였다.
국내에서도 민주화 이전까지 많은 사법살인이 있었지만 인민혁명당 당원에 대한 사형판결은 정당성도 극히 결여되었을 뿐더러 규모도 컸다.
최창식 대령은 단지 신성모 장관의 명령에 따라 한강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이행했을 뿐인데 신성모는 모든 잘못을 최창식에게 뒤집어씌웠다.

4. 관련 문서



[1] 그 예시로 더불어민주당이해찬 의원은 인민혁명당 사건의 영향으로 사법살인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공식적으로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 김구 사건도 사법살인으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김구 건은 총기를 사용한 암살이라 애초에 완전한 불법이고, 형식상 합법적 재판의 형식을 띠는 사법살인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