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홍기
葛弘基
일본식 성명 : 아마즈시로 히로무라(葛城弘基)
1906년 4월 14일 ~ 1989년 8월 25일
1. 개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감리회 목사 겸 정치인, 외교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호는 상파(想坡)이다.
2. 생애
1906년 경기도 강화군(현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애국지사 갈형대(葛亨大)[1] 의 아들로 태어났다. 배재고등보통학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하여 개렛 신학교, 노스웨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카고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뒤에는 연희전문학교의 교수로 근무하였다. 1937년 창영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2년 동안 시무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 검거된 후 친일로 전향하여 1938년 6월 18일, 직전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던 이묘묵(李卯默)을 비롯하여 정영도(鄭英道)·김여제(金與濟)·김여식(金麗植)·전영택(田榮澤)·류형기(柳瀅基)·이명혁(李明赫)·박태화(朴泰華)·차상달(車相達)·하경덕(河敬德)·현제명·홍난파 등 12인의 흥사단원과 김기승(金基昇)·김노겸(金魯謙)·노진설·이기윤(李基潤)·최봉칙(崔鳳則) 등 5인의 동우회원 등 17인과 함께 전향성명서를 발표하고 친일단체 대동민우회(大同民友會)에 가입하였으며#, 8월 18일 위 사람들과 함께 흥사단에서 출단 처분을 받았다.#
이후 정춘수 등과 함께 감리교단 내에서 일제에 부역하였다.
8.15 광복 후 1952년 외무부 차관으로 있었으며, 1953년부터 1956년까지 공보실장을 지냈다.
이후 1956년부터 1957년까지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