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복국인

 


'''서진 초대 군주
烈祖 宣烈王 | 열조 선열왕
'''
'''묘호'''
'''열조(烈祖)'''
'''시호'''
선열왕(宣烈王)
''''''
걸복(乞伏)
''''''
국인(國仁)
'''연호'''
건의(建義, 385년 ~ 388년)
'''생몰 기간'''
? ~ 388년
'''재위 기간'''
385년 ~ 388년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의 십육국 중 하나인 서진의 건국군주이다. 시호는 선열왕(宣烈王)으로 묘호는 열조(烈祖)이다.

2. 생애


걸복국인은 선비족 걸복부의 수령이었던 걸복사번(乞伏司繁)의 아들로 태어났다. 걸복국인의 아버지였던 걸복사번은 371년에 전진의 왕통과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걸복부의 근거지였던 도견산(度堅山)이 왕통의 기습을 당해 부락이 전부 부견에게 항복하면서, 걸복사번은 결국 전진에게 굴복하였고 남선우로 임명되어 장안에 머무르게 되었다. 선비의 발한(勃寒)이 농우를 침범하자, 부견은 걸복사번을 사지절, 도독토서호제군사, 진서장군으로 삼아 발한을 토벌하도록 하였고, 걸복사번은 발한 토벌에 공적을 세운 뒤 376년에 사망하였다.
걸복국인은 걸복사번 사후 걸복부의 수령이 되어 아버지의 남선우 지위를 계승하였다. 이때는 전진의 황제였던 부견이 화북을 통일하여 화북 최강의 세력으로 거듭났고, 강남의 동진을 토벌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하는 상황이었다. 383년, 부견은 동진 정벌을 앞두고 걸복국인을 동진 정벌의 선봉으로 삼았다. 그리고 동진 정벌을 위해 출정하려는 찰나, 걸복국인의 숙부인 걸복보퇴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한 부견은 걸복국인을 걸복보퇴의 반란 진압에 파견한다. 이때 걸복국인을 걸복보퇴의 반란 진압에 보낸 것이 결과적으로 걸복국인에게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걸복보퇴는 조카인 걸복국인이 온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하여, 조카를 후하게 대우하였다. 이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동진에게 패배하자, 걸복국인은 농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385년, 부견이 요장에게 살해되자, 걸복국인은 대도독, 대장군, 대선우, 영진하2주목(領秦河二州牧)을 칭하고 건의(建義) 연호를 선포하며 서진을 건국한다. 걸복국인은 서진을 건국한 이후 흉노, 강족과 대립하여 세력을 확대하였고, 부등의 세력 하에서 원천왕(苑川王)이 되었다. 걸복국인은 388년에 사망하였으며, 사후에 즉위한 걸복국인의 아우 걸복건귀에 의해 열조(烈祖) 선열왕(宣烈王)으로 추존되었다.

3. 둘러보기


'''서진의 역대 군주'''
서진 건국

'''초대 열조 선열왕 걸복국인'''

2대 고조 무원왕 걸복건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