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오호십육국시대)

 



'''진'''
'''秦'''
[1]
[image]
파란색 부분[2]
'''385년 ~ 400년, 409년 ~ 431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전진'''
'''북하'''
'''별칭'''
'''서진'''(西秦)
'''위치'''
중국 간쑤
'''수도'''
용사성(勇士城), 금성(金城)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성'''
걸복(乞伏)
'''국가원수'''
선우,
'''주요 황제'''
태조 의무황제 여광
'''언어'''
선비어, 중세 중국어
'''문자'''
한자
'''종교'''
불교, 도교, 유교
'''종족'''
선비족, 한족
'''현재 국가'''
중국
1. 개요
2. 역대 군주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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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西秦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선비족의 한 부류인 걸복부(乞伏部)의 사람 걸복국인(乞伏國仁)이 세운 나라이다. 본래 국호는 당연히 그냥 '''진'''(秦)이고, 높여 부르면 '''대진'''(大秦)이었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왕조가 많아 구분을 위해 '''서진''', 혹은 걸복진(乞伏秦), 북진(北秦), 호진(胡秦)이라고 부른다. 다만 진이란 국호는 2번째 군주인 걸복건귀(乞伏乾歸) 대부터 실제로 썼다. 진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하기 전까지 포함하여 이 정권이 있던 기간은 385년 ~ 400년과 409년 ~ 431년이다. 중간의 400년 ~ 409년에는 후진(後秦)이 복속시켜서 나라가 잠시 사라졌었다.
제1대 군주 걸복국인은 대선우(大單于)를 칭했고, 전진(前秦)이 원천왕(苑川王)에 책봉했다.
제2대 군주 걸복건귀는 처음에는 대선우와 하남왕(河南王)을 병용해서 칭했다가, 전진이 양왕(梁王)에 책봉했다. 394년에는 진왕(秦王)을 칭했다. 400년 ~ 409년 후진에 복속하여 나라가 잠시동안 망하고 걸복건귀는 망명생활을 했다가, 409년에 나라를 되찾아 다시 진왕을 칭했다.
431년, 북위(北魏)에게 패배하여 퇴세 상태에 있던 북하(北夏)에게 망했다.
불안정한 치세로 수도가 자주 바뀌었다. 수도였던 곳은 금성(金城), 용사성(勇士城), 원천서성(苑川西城), 원천(苑川), 담교(譚郊), 정련(定連), 남안(南安) 등이다.

2. 역대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열조(烈祖)
선열왕(宣烈王)
걸복국인(乞伏國仁)
건의(建義) 385년 ~ 388년
385년 ~ 388년
-
2대
고조(高祖)
무원왕(武元王)
걸복건귀(乞伏乾歸)
태초(太初) 388년 ~ 400년
경시(更始) 409년 ~ 412년
388년 ~ 400년, 409년 ~ 412년[3]
원평릉(元平陵)
3대
태조(太祖)
문소왕(文昭王)
걸복치반(乞伏熾磐)
영강(永康) 412년 ~ 419년
건홍(建弘) 420년 ~ 428년
412년 ~ 428년
무평릉(武平陵)
4대
-
여무왕(厲武王)
걸복모말(乞伏暮末)
영홍(永弘) 428년 ~ 431년
428 ~ 431년
-

3. 기타


이 정권의 군주는 천왕(天王)이나, 황제를 칭한 적이 1번도 없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천자(天子)처럼 행세해서인지 대선우(大單于)[4]의 칭호를 썼고, 천자만 쓸 수 있는 묘호능호를 썼다.
[1] 395년부터 채택한 국호. 그 이전의 군주는 387년 원천왕(苑川王), 388년 하남왕(河南王), 389년 금성왕(金城王), 394년 양왕(梁王)의 칭호를 갖고 있었다. 411~414년에는 다시 하남왕(河南王)으로 불렸다.[2] 분홍색은 후량, 후량 남쪽의 무색인 곳은 토욕혼, 녹색은 후진, 후진 동쪽은 서연, 서연 동쪽은 후연, 후연 북쪽은 북위, 북위 북쪽은 고차, 남쪽의 노란색은 동진이다.[3] 400년 ~ 409년 사이 후진(後秦)에 복속.[4] 선우의 본래 뜻이 천자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