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
慶州 天馬塚 障泥 天馬圖


'''소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분류'''
유물 / 일반회화 / 영모화조화 / 동물화
'''수량/면적'''
2점
'''지정연도'''
1982년 11월 16일
'''제작시기'''
신라시대(5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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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외선 사진
복원도
1. 개요
2. 그려져 있는 동물은 천마?
3. 그 외
4. 관련 항목
5. 바깥고리
6. 국보 제2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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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대발굴이었다. 신라의 예술혼이 천년의 긴 세월 동안 암흑 속에서 살아 있었구나. 그 기쁨도 잠시, 환희의 절정에 달한 순간 '아차! 나와서는 안 될 유물이 나왔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1]

천마총 발굴단장 김정기의 술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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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주시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 장니[2]로, 국보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신라고구려백제와 달리 고분에 벽화를 그리는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천마도는 지금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신라회화이다.

2. 그려져 있는 동물은 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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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외선으로 찍은 사진
육안으로는 색이 바래 거의 보이지 않았던, 천마(?)로 추정되던 말의 머리에 날카로운 이 2개 달렸다. 이는 파지릭 문화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 시대차이에도 불구하고 연관성을 찾기도 한다. 파지릭 문화 역시 돌무지덧널무덤이라는 무덤양식으로 신라의 무덤양식과 똑같아서 고고학자들이 연관관계를 연구 중인 테마.
실제 말에게는 뿔이 없기 때문에, 이 뿔에 주목해서 그림 속 동물이 이 아니라 영물인 기린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22년(1440) '동궁의 말다래에 기린을 그리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말다래에 기린을 그리는 역사적 사례가 있었던 것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여전히 천마, 즉 말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측이 우세하기 때문에 천마도와 천마총이란 이름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천마 지지자의 주장으로 천마도 주변에는 말 안장, 발안장 등 여러 실제 말과 관련된 용품이 나왔기 때문에 천마도는 기린이 아니라 말임이 확실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천마도가 말안장 장니에 그린 그림이라는 점도 '말'을 그린 그림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요소.
한편 일각에서는 천마도의 동물이 용마라는 설도 있다.

3. 그 외


대부분 사람들이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가 무덤 벽화라고 알지만, 사실은 무덤 부장품으로 있던 말다래[3]에 그려진 것이다. 초기 신라의 무덤양식은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입구가 없으며 돌방 없이 나무로 널을 짠 것으로 끝이기 때문에 벽화가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다. 무덤 내에 '벽'이 없으니 '벽화'는 애초에 있을 수가 없다. 고구려나 백제가 있던 지역에서는 고분 벽화가 여럿 남은 것과 달리 신라는 벽화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당대의 회화라고 할 만한 것은 천마도와 그 외 몇몇 정도로 적은 편이다. 다만 돌무지덧널무덤은 도굴이 어렵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금관이나 귀걸이 등 지금까지 남은 부장품은 고구려나 백제보다 신라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장니의 예시로 올라온 좌측의 사진은 신라토기도기 기마인물형 명기이다.
중학교 2학년과 고1, 그리고 수능에서 국사를 볼 작정인 학생이라면 이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보기에서 벽화를 골라야 하는데 천마도를 슬쩍 끼워넣는 것은 각종 국사 시험에서 단골 낚시 문제이기도 하다. 특히, 고구려 고분들과 같이 사진으로 내놓고 벽화냐고 낚는 문제는 심심찮게 나온다. 당연히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므로 주의할 것
영남대학교의 메인 로고이다. 인문관에 가면 크게 그려져 있다.

4. 관련 항목



5. 바깥고리



6. 국보 제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에 그려진 말(천마)그림이다. 가로 75㎝, 세로 53㎝, 두께는 약 6㎜로 1973년 경주 황남동고분 155호분(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천마도가 그려져 있는 채화판은 자작나무껍질을 여러 겹 겹치고 맨 위에 고운 껍질로 누빈 후, 가장자리에 가죽을 대어 만든 것이다. 중앙에는 흰색으로 천마가 그려져 있으며, 테두리는 흰색·붉은색·갈색·검정색의 덩굴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천마는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으로, 다리 앞뒤에 고리모양의 돌기가 나와 있고 혀를 내민 듯한 입의 모습은 신의 기운을 보여준다. 이는 흰색의 천마가 동물의 신으로, 죽은 사람을 하늘 세계로 실어나르는 역할이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5∼6세기의 신라시대에 그려진 천마도의 천마의 모습 및 테두리의 덩굴무늬는 고구려 무용총이나 고분벽화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신라회화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는 그림이다. 또한 신라회화로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으로 그 가치가 크다.



[1]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사1기사2를 참조. 요약하면, 오랜 세월 동안 격리된 유물이 갑작스럽게 외부 공기나 햇빛에 노출될 시 손상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보존 처리 과정에서 온·습도 조절마저 여의치 않아서 문화재관리국 전체에서 국장실 한 곳에만 있던 에어컨을 급하게 뜯어 옮겼다고. 천마총 발굴은 우리나라에서 보존과학이 최초로 도입된 발굴이었다고 한다. 초기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던 듯.[2] 장니(障泥). 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옆 양편에 늘어뜨려 놓은 가죽제 마구로 '말다래'라고도 한다.[3] 장니:障泥, 말을 탄 사람의 발에 흙이 튀지 않도록 말안장 옆 양편에 늘어뜨리는 가죽제 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