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릭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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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무덤 양식
3. DNA 연구
4. 파지릭 문화에 대한 역사기록

Pazyryk Culture

1. 개요


알타이 지역에 분포된 스키타이의 초기 철기시대 문화. 스키타이시베리아의 초기 문화라고 여긴다.[1] 여기에서 발견되는 대형 고분을 '쿠르칸'이라고 하는데, 알타이 지역이 영구동토층에 있어서 무덤 자체가 얼고 그 밑의 시체가 미라화되어 중요한 발견이 많이 있었다.

2. 무덤 양식


무덤양식이 신라의 고분과 같은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 시대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식이 똑같아서 한국 고고학계가 크게 관심한다. 무덤 속 부장품도 신라의 부장품과 놀랄 정도로 유사한 부분이 많다.
파지릭의 대형고분은 직경 25-50 m로 호석을 돌리고, 그 안에 자갈을 수 미터 높이로 채워 봉분을 만든다. 이 적석부가 무덤 내부를 태양열로부터 차단하여 영구동토층을 만들었고, 그 안에 외부의 물이 유입되면서 거대한 얼음층을 형성했다. 이 때문에 파지릭 고분에서 유기물이 완벽하게 보존된 것이다.
파지릭문화에서는 청동제련이 매우 발달했다. 반면에 서아시아-중앙아시아흑해 연안보다는 훨씬 늦은 기원전 5세기에야 소수 철기가 등장하지만, 그나마도 소량이며 기존의 청동제를 그대로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이나 의 제련도 활발했는데, 어떤 유물에는 15~20 μm 남짓한 가는 금사를 만든 것도 있어 당시 수공업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수공품에 반해서 노동도구는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무덤을 파는 데 쓰이던 곡괭이은 나무가지와 그에 달린 옹이를 이용해서 거칠게 가공된 것이다. 반면에 가죽, 양탄자, 모피 등은 고도로 가공해 사용했다.

3. DNA 연구


파지릭문화의 주체를 형질인류학적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파지릭인들은 크게 유럽인(코카서스) 계통, 몽골로이드 계통, 그리고 두 인종이 섞인 계통으로 나뉜다.
구체적으로 '''몽골로이드 계통'''은 알타이지역의 신석기시대부터 발견되는 몽골로이드형과 자바이칼쪽 형태(후에 흉노 문화를 형성한 주체)적 특징을 공유한다. 이로 볼 때 코카서스 인종이 자바이칼몽골로 이동하면서 파지릭의 코카서스-몽골로이드계 주민이 형성된 듯하다.
'''코카소이드 계통'''은 기본적으로 카자흐스탄 지역과 유사성이 있다. 알타이 지역에 기존에 존재하던 아파나시에보(Afanas’evo) 문화와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밝혀졌다.[2] 이는 파지릭문화가 카자흐스탄샤카족 문화와 친연성이 많다는 것과도 부합하는 것이다.
1996년에는 우코크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 3구의 조직편에서 채취한 표본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분석을 한 결과, 코카소이드몽골로이드가 동시에 나왔다. 몽골로이드는 현존하는 민족과 비교할 때 북아시아 퉁구스축치인, 코랴크인과 같은 고시베리아계 민족 등과 가장 가깝다고 나타났다.

4. 파지릭 문화에 대한 역사기록


크게 고대 그리스의 기록과 중국의 역사서로 나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스키타이와 싸브라마트의 동쪽 초원지대에 사는 유목민족 중 강성하고 또 스키타이 지역과 교류를 하는 민족을 '스키타이인'들이라고 통칭했고, 페르시아에서는 '샤키Shaki인'이라고 했다.
알타이 지방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단지 그리스 신화에서 알타이를 신화적으로 지칭해서 '황금을 수호하는 그리핀'이라고 했는데, 파지릭 고분에서는 그리핀을 묘사한 금박을 입은 나무장식이 발견되어서 그 기록이 고고학적 유물과 부합됨이 밝혀졌다. 한편 중국에서는 이들을 새인(塞人)이라고 지칭했다. 그런데 새인(塞人)은 '변방塞의 사람人'이란 뜻일 뿐, 구체적인 민족명이 아니다. 그래서 '새인'을 파지릭문화의 주체로 직접 대입할 수는 없다[3].
[1] 스키토-시베리아 유형이라고 부른다.[2] 아파나시에보 문화는 센툼어군 계열의 토하라인들과 관련있다고 한다.[3] 다만, 한자 塞가 사카라는 민족명의 음차라는 설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