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론
階級論 / Theory of class
사회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어서 두 개 이상의 집단으로 분열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 막스 베버의 계층론과 이름은 비슷하나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계급론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으나[1] 사회적 계급분열의 근본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노예제와 봉건제)에서는 계급분열이 신분의 차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나 전통이나 종교에 의해 신성화되고 있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는 두 개의 계급으로 뚜렷하게 분열하게 된다. 한쪽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노동력만을 소유할 뿐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계급분열의 근본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자 하는 시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제일 먼저 18세기~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스미스와 리카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여러 계급으로 분열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관계와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스미스는 지대에 의해 생활하는 지주,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이윤으로 생활하는 자본가, 임금에 의해 생활하는 노동자의 세 가지 기본 계급에 의해 사회의 전 생산물에 대한 소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급분열의 근본원인은 소득을 얻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역사가 티에리, 미네(F. Mignet), 기조(F. Guizot) 등은 여러 종류의 혁명사를 연구, 혁명은 계급투쟁의 발로이기 때문에 정치사를 이해하는 관건은 제 계급의 경제적 조건에서 구해야 한다고 통찰하였다. 그들은 계급의 발생 원인을 침략에서 찾아,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여 지배계급으로 군림함으로써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예를 들어 생시몽은 프랑스 사회가 '게으른 자'와 '산업가'의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산업가 속에 노동자와 기업가를 포함시키고 노동자와 부르주아를 구별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서 계급과 계급투쟁에 관한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한 사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였다. 그들은 사적 유물론에 의거하여 계급분열이 영원한 것이 아니며 계급사회나 분열된 계급의 다양한 형태는 역사적으로 변화해간다는 것, 사회의 계급분열과 사회의 물질적ㆍ경제적 생활의 제 조건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런 사회에 여러 가지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사회의 생산양식으로부터 설명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이전 사상가들의 통찰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나가면서 그것을 통일적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나아가 계급은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단계에만 존재하며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모든 계급의 소멸과 계급 없는 사회에 이르는 과도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명확히 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를 정립했다. 이리하여 계급과 계급투쟁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계급은 역사적으로 사회적 분업의 발생ㆍ발전 및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의 출현과 관련하여 발생한다. 그리하여 노예소유자와 노예가 최초의 계급사회인 노예제 사회의 기본적 계급이고, 토지를 소유하는 지주(귀족)와 지주에 종속되는 농노가 그 다음에 성립하는 봉건 사회의 기본적 계급이며, 자본을 소유하는 자본가와 그들에게 노동력을 파는 프롤레타리아가 봉건제 내부로부터 발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계급이다.
피착취계급은 자기의 노동을 통해 일체의 사회적 부를 만들어내지만, 그 부를 점유하는 것은 착취계급이다. 이러한 계급간의 제 모순이 필연적으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투쟁을 발생시키지만, 계급사회와 계급투쟁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는 특별한 위치에 선다. 노예소유자에 대한 노예의 투쟁, 봉건지주에 대한 농노의 투쟁은 하나의 착취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교체를 초래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회적 모순이 드러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 모순을 지양하는 사회주의를 만들어냄으로써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를 철폐하고 계급사회를 종결시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영원히 없애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해방한다.
프롤레타리아는 그러한 필연성과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적 유물론의 계급론과는 달리, 오늘날 사회학자들의 계급에 관한 견해의 특색은 계급을 수입이나 직업적 위치에 기초한 '계층' 개념으로 해소시킨다든가, 또는 계급의 정의에 맞서서 계급분열의 물질적 기초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계급의 존재를 인간의 물질적 생산의 여러 측면에 결부시키고, 계급을 사회 전체의 내부의 한 부분, 혹은 한 서열이라고 규정하는 점에 있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는 “계급이란 사회심리학적인 분석개념으로 성격상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존재이고, 계급의식에 의존하여 성립한다”고 하는 센터스(R. Centers)의 정의가 있다.
원래는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론이기에 국내에서는 이런데 관심을 가지는게 좌파이거나 '''빨갱이''' 취급받을거라는 인식이 있어왔다. 물론 학문적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나 실제 운동권인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나 일반인이 접하기엔 꽤 힘든 분야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 전세계적으로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수저계급론이 대두되고, 덩달아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생기면서 양극화 치료를 위해 연구할 필요성이 생기고 있다.
1. 정의
사회가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어서 두 개 이상의 집단으로 분열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 막스 베버의 계층론과 이름은 비슷하나 분명히 다르다!
이러한 계급론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 왔으나[1] 사회적 계급분열의 근본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노예제와 봉건제)에서는 계급분열이 신분의 차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나 전통이나 종교에 의해 신성화되고 있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는 두 개의 계급으로 뚜렷하게 분열하게 된다. 한쪽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노동력만을 소유할 뿐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2. 계급론 이해의 역사
이리하여 자본주의 시대에 들어와 비로소 계급분열의 근본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자 하는 시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제일 먼저 18세기~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스미스와 리카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여러 계급으로 분열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관계와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스미스는 지대에 의해 생활하는 지주, 자본으로부터 나오는 이윤으로 생활하는 자본가, 임금에 의해 생활하는 노동자의 세 가지 기본 계급에 의해 사회의 전 생산물에 대한 소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급분열의 근본원인은 소득을 얻는 방식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19세기 초반 프랑스의 역사가 티에리, 미네(F. Mignet), 기조(F. Guizot) 등은 여러 종류의 혁명사를 연구, 혁명은 계급투쟁의 발로이기 때문에 정치사를 이해하는 관건은 제 계급의 경제적 조건에서 구해야 한다고 통찰하였다. 그들은 계급의 발생 원인을 침략에서 찾아,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여 지배계급으로 군림함으로써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예를 들어 생시몽은 프랑스 사회가 '게으른 자'와 '산업가'의 두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산업가 속에 노동자와 기업가를 포함시키고 노동자와 부르주아를 구별하지 않았다.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서 계급과 계급투쟁에 관한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한 사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였다. 그들은 사적 유물론에 의거하여 계급분열이 영원한 것이 아니며 계급사회나 분열된 계급의 다양한 형태는 역사적으로 변화해간다는 것, 사회의 계급분열과 사회의 물질적ㆍ경제적 생활의 제 조건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런 사회에 여러 가지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사회의 생산양식으로부터 설명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이전 사상가들의 통찰을 근본적으로 개혁해 나가면서 그것을 통일적으로 파악했다.
그들은 나아가 계급은 생산의 일정한 역사적 단계에만 존재하며 계급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모든 계급의 소멸과 계급 없는 사회에 이르는 과도기에 해당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명확히 하여 과학적 사회주의를 정립했다. 이리하여 계급과 계급투쟁의 이론은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사적 유물론에 따르면 계급은 역사적으로 사회적 분업의 발생ㆍ발전 및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의 출현과 관련하여 발생한다. 그리하여 노예소유자와 노예가 최초의 계급사회인 노예제 사회의 기본적 계급이고, 토지를 소유하는 지주(귀족)와 지주에 종속되는 농노가 그 다음에 성립하는 봉건 사회의 기본적 계급이며, 자본을 소유하는 자본가와 그들에게 노동력을 파는 프롤레타리아가 봉건제 내부로부터 발전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계급이다.
피착취계급은 자기의 노동을 통해 일체의 사회적 부를 만들어내지만, 그 부를 점유하는 것은 착취계급이다. 이러한 계급간의 제 모순이 필연적으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투쟁을 발생시키지만, 계급사회와 계급투쟁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는 특별한 위치에 선다. 노예소유자에 대한 노예의 투쟁, 봉건지주에 대한 농노의 투쟁은 하나의 착취형태로부터 다른 형태로의 교체를 초래하는 것에 불과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사회적 모순이 드러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그 모순을 지양하는 사회주의를 만들어냄으로써 생산수단에 대한 사유를 철폐하고 계급사회를 종결시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영원히 없애고 인간을 총체적으로 해방한다.
프롤레타리아는 그러한 필연성과 역사적 사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적 유물론의 계급론과는 달리, 오늘날 사회학자들의 계급에 관한 견해의 특색은 계급을 수입이나 직업적 위치에 기초한 '계층' 개념으로 해소시킨다든가, 또는 계급의 정의에 맞서서 계급분열의 물질적 기초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계급의 존재를 인간의 물질적 생산의 여러 측면에 결부시키고, 계급을 사회 전체의 내부의 한 부분, 혹은 한 서열이라고 규정하는 점에 있다. 그 전형적인 예로서는 “계급이란 사회심리학적인 분석개념으로 성격상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존재이고, 계급의식에 의존하여 성립한다”고 하는 센터스(R. Centers)의 정의가 있다.
3. 기타
원래는 공산주의나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이론이기에 국내에서는 이런데 관심을 가지는게 좌파이거나 '''빨갱이''' 취급받을거라는 인식이 있어왔다. 물론 학문적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나 실제 운동권인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으나 일반인이 접하기엔 꽤 힘든 분야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래 전세계적으로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수저계급론이 대두되고, 덩달아 사회주의적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생기면서 양극화 치료를 위해 연구할 필요성이 생기고 있다.
[1] 현실적인 문제로 늘 대두되었기에 실질적으로는 인류역사 이래로 쭉 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