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기름
1. 개요
말 그대로 고래에서 짜낸 기름. 한자로는 경유(鯨油)라고 한다.
2. 상세
포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가장 포경이 활발했던 시기에 고래를 잡는 동기가 바로 고래기름이었다. 기름 자체로 램프를 밝히는 연료가 될 뿐더러 양초, 비누 제조, 윤활유, 피부 미용유 등 다양한 활용도가 있었기 때문. 특히 산업 혁명 시기는 원양항해, 원양포경을 위한 기술이 발달함과 동시에 '''윤활유'''의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에 온 바다 고래를 무자비하게 잡아들이는 포경 활동이 활발했다. 아래에 언급하겠지만 아직 석유화학공업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의 식물이나 생선 등의 지방을 이용한 기름으로는 그 수요와 품질을 도저히 맞출 수 없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고래기름이 가장 효율적이었다.
고래기름에 대한 수요가 절정에 이를 때는 원양에서 고래를 잡아 기름을 채취하고 '''고기는 바다에 내다버릴 정도'''였다고. 물론 포경 역사 초기에는 어디까지나 고래고기가 주 목적이었고, 근대 포경에서 고래고기를 내다버린 것은 수익성뿐 아니라 보존의 문제도 한 몫 한다. 모항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먼 바다에서 고래를 잡을 경우 기름을 채취하면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지만 고기는 집에 가기 전에 썩어 문드러질 확률이 100%이므로... 여기에 질량 대비 수익성의 문제까지 더해진 결과, 공격적인 포경으로 고래를 잡으면서 기름으로 배를 가득 채우고 고기는 즉석에서 식량으로 삼거나 버리는 행태가 반복되었다. 반면에 유럽 근해에서 고래를 잡을 때는, 잡은 고래를 바닷가로 끌어다가 기름, 수염, 고기, 내장, 혀 할 것 없이 모조리 분해해서 팔았다. 초기에는 지방조직을 소금에 절여 운반했으나 장거리 항해에서 지방이 변질되는 문제가 생겼고, 피하지방 조직을 얇게 썰어 튀겨서 액체 상태의 기름만 뽑아내는 것으로 방식이 바뀐다. 그리고 쓸모가 있는 고래수염을 제외한 단단한 뼈와 내장 부위는 그냥 바다에 버렸다.[1]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보다 효율적인 기름 채취를 위해 지방조직 이외에 고기, 내장, 뼈까지 전부 얇게 잘라 '''압력솥에 푹 삶아서''' 기름을 짜냈다.
그리고 간단하게 고래기름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여러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고래의 종 및 부위에 따라 기름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 조명용으로 쓰기 좋은 종은 수염고래류, 윤활유나 향유로 쓰기 좋은 종은 향유고래이며 물개나 바다코끼리 기름도 종류에 따라 용도가 약간씩 다르다. 이빨고래류와 수염고래류의 기름의 성질이 다르다고 한다. 글리세리드를 주성분으로 하는 수염고래류의 기름(수경유)는 식용으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향유고래나 돌고래 등 치경류의 기름은 알코올과 지방산이 에스테르를 이룬 왁스 성분이라 식용으로는 부적절하다. 과식하면 폭풍설사를 일으키는 주범인 기름치의 기름 성분도 같은 왁스 성분이다.
고래기름 산업이 몰락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고래의 멸종 위기였다. 지나친 포경으로 인해 고래의 개체수가 줄어들자 고래를 잡고 싶어도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두 번째는 다양한 대체재의 발달이었다. 기존의 생선기름, 식물성 기름, 가축기름 등의 비슷한 수준의 대체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그럭저럭 경쟁이 가능했다. 그러나 석탄/석유 관련 중화학공업의 발달로 플라스틱을 비롯한 싸고 좋은 대체재를 훨씬 싼 값에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게 가능해져 굳이 비싼 돈 들여가며 점점 귀해지는 고래를 잡을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었고, 사람들의 관심 역시 고래기름에서 멀어져갔다. 현대에는 산업용 수준으로 고래기름을 쓰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품질만 따져 볼 때 고래기름 중 향유고래의 액상 왁스는 엄청나게 품질이 좋은 고급 물질로서 다른 물질로 100% 대체는 불가능하다. 램프 연료로 사용할 경우 악취가 없을 뿐더러 매우 밝은 빛을 내고, 자동차의 윤활유 등으로 사용할 경우 고온에서도 점성을 잃지 않아 1970년대까지도 애용되었다. 또한 다른 유지와 달리 오래 방치해도 상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향유고래를 잡을 수는 없으니 결국 쇠퇴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