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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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를 향해 돌진하고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 한복판에서라도 너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
'''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
'''내 마지막 숨을 너에게 뱉어 주마.'''
― 본문 중에서
모비 딕은 허먼 멜빌의 대표작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고전 소설이다.[1] ''''''Call me Ishmael.'''
2. 배경과 특징
19세기 미국의 포경업계는 큰 번영을 구가했다. 포경선 수는 전 유럽의 포경선을 다 합친 수의 세 배나 많았다. 당시 미국의 고래잡이들을 오랫동안 괴롭히던 거대하고 흉포한 고래 ‘모카 딕Mocha Dick’에 대한 이야기가 1849년 《니커보커 매거진》에 실렸는데, 이보다 앞선 1820년에 일등항해사 출신의 오웬 체이스는 <포경선 에섹스 호의 놀랍고도 비참한 침몰기>를 펴내면서 ‘모비 딕’이란 흉포한 고래가 서경 119도의 적도 바로 남쪽에서 에섹스 호를 침몰시켰다고 쓰기도 했다. 허먼 멜빌은 ‘애커시넷’호를 타고 고래잡이를 나갈 때 이 책을 읽었고 나중에 모비 딕을 쓰기 전 오웬 체이스의 아들과 만나서 정보를 얻기도 했다. 모비 딕의 모티브는 바로 이 <포경선 에섹스 호의 놀랍고도 비참한 침몰기>였다. 1820년 11월 20일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포경선 에식스호(Essex)가 거대한 숫컷 알비노 향유고래에게 공격당해 침몰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사나운 고래로부터 탈출한 21명의 선원이 태평양 한가운데서 식량부족으로 살아남기 위해 죽은 동료선원들의 인육을 먹는등 비극적인 스토리에서 멜빌은 영감을 얻고 한때 고래잡이 선원이었던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해양소설이다.'''『모비 딕』은 진정한 서사시다. 창조 신화, 복수 설화, 민간전설, 창조하고 또 파괴하고자 하는 상충하는 충동을 엮어 이 모든 것을 지구의 광대한 대양을 배경으로 펼치며, 미국의 강력한 원형을 거의 전부 구현했다.'''
― 너새니얼 필브릭 (미국 역사가)#
소설속에 나오는 흰머리 향유고래 이름, 모비 딕(Moby Dick)은 `거대한' 이란 모비(Moby,대물)와 남자의 성기를 일컫는 딕(dick)의 합성어인데, 실제 에식스호를 사납게 공격한 늙은 수컷 알비노 이빨고래에서 유래한 것이다. 향유고래 특유의 권투장갑모양 머리로 두 차례 박치기하여 선체에 구멍을 내면서 238톤의 에식스호를 단 10분만에 침몰시켰다. 19세기 당시, 칠레 남부 모카섬에서 주로 출현하며 포경선을 공격하여 떠들썩 했던 늙고 거대한 모카딕이란 흰색 알비노 향유고래가 실제 있었다. 일반 고래는 포경선만 보면 피하거나 물 속으로 도망가기 바쁜데 거대한 모카딕은 오히려 맹렬히 달려들어 이마로 박치기를 하고 큰 꼬리지느러미(Tail Flukes)를 내리치면서 매우 난폭하게 고래잡이배와 선원들을 공격하였다. 1838년, 이 고래가 잡혔을 때 몸에 19개의 작살이 꽂혀 있었고 엄청난 양의 고래기름과 용연향이 있었다고 한다. 향유고래는 수컷이 암컷보다 매우 크게 성장하는데 20세기 초까지 이런 늙은 향유고래들에 의해 포경선 공격은 대양 곳곳에서 발생하였다. 모비 딕은 바로 길이 30m, 몸무게가 80톤이 넘는 늙은 수컷 알비노 향유고래와 페루의 사납기로 유명한 모카딕(Mocha Dick)이란 거대한 흰 고래를 보고 작가가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이빨고래의 이름이다.
모비 딕은 서구권에서 작가의 영혼과 철학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데 이 작품을 쓴 당시 허먼 멜빌의 나이는 무려 31살이었다. 작품은 거대한 흰 향유고래 모비 딕과 에이허브 선장의 싸움을 그리고 있으며, 작가가 원양포경선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된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선상과 선상에서의 생활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자세하다. 이 작품은 큰 마음을 먹고 읽어가야 할 만큼 두툼한 분량을 자랑한다.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문체도 매우 장대하여 읽기 피곤하며, 중간에 갑자기 극본으로 문체가 바뀌거나 뜬금없이 고래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나오는 등 다양한 장르의 문학이 뒤섞여있어서 읽기가 까다롭다. 다행히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극도로 난해한 문체는 아니다. 근성으로 읽어낼 수 있다. 한 장은 이야기 진행, 한 장은 철학적 질문이나 고래에 대한 묘사/정보가 번갈아서 나온다고 보면 된다. 모비 딕은 거대한 흰 고래를 죽이려는 집념에 사로잡혀 바다를 헤매는 에이해브의 추적에 얽힌 이야기지만 본서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고래학’이다. 고래의 생태와 활동, 포경 기술과 포획한 고래의 처리 및 가공에 대한 설명은 너무도 상세하여 마치 교과서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이유로 지난 세기 초까지 이 소설은 도서관의 문학 서가보다 오히려 수산업 서가에 꽂혀 있곤 했다. 멜빌은 타이피를 쓸 때도 남태평양에 관한 모든 문헌을 샅샅이 뒤진 끝에야 작품을 완성하였고, 특히 이 모비 딕을 쓸 때는 그 과학적 정확성에 완벽을 기하고자 했다.'''『모비 딕』은 긴 책이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한 문장이라도, 한 구절이라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에 어느 정도 시간을 할애하고, 읽으면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뭔가 긴박하고 긴요한 할 말이 있어 불쑥불쑥 등장하는 유령들처럼, 책을 쓰는 동안 멜빌의 몸을 타고 흘렀던 다양한 목소리에 이입해 글을 느끼는 것이다.'''
― 너새니얼 필브릭 (미국 역사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대자연에 대한 겸허함은 물론 모든 생명체에 대해 자성조차 없었던 기독교 문명의 오류와 자만, 그리고 인간의 타락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 첫마디에 `나를 이스마엘이라고 부르라'는 말은 곧 작가가 주류인 기독교 사회에서 벗어난 중간자로서,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의 기독문명과 식민지 야만인들의 타종교와 우상숭배등 기타 문명조차 모두 객관적 시각으로 동등하게 본다는 암시이고 선언이기도 하다. 선장 아합과 이스마엘이란 주인공과 퀴퀘그란 세번째 주요인물을 통해 문명과 야만의 차이는 무엇이고 믿음의 본질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묻기도 한다. 나레이터 이스마엘은 고래(바다)의 분노와 인간 사회의 욕망과 타락을 객관적 시각으로서, 그리고 신(神)과 인간에 대한 재성찰 및 선과 악에 대해 냉소적 입장을 표명한다. 모비 딕은 거대한 고래를 꿈꾸며 대양을 누비는 고래잡이 선원들의 이국적 생활과 선장 아합의 복수극 그리고 식인종 출신의 선원등 뱃사람들의 남다른 애환을 그려 재미와 흥미를 불러 일으키는 해양탐험 소설이지만 단순히 낭만주의적 바다탐험과 거대한 향유고래 포경업에 관한 소설만은 아니다. 모비딕은 19세기 당시 세계 최대의 포경업으로 미동부지역을 휩쓸던 부와 사치, 그리고 물욕과 탐욕의 자본·물질주의와 노예·신분제도 및 신을 잃어버린 기독교 문명과 청교도사회의 썩고 비린내나는 현실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24만 단어와 전체 135장으로 매우 긴 구성으로 된 미국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문학의 대표작인 모비딕은 장편소설로서 산문의 깊이와 아름다움,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며 비극적인 대서사시로 19세기를 대표하는 영문학계의 금자탑이다. 모비딕은 멜빌의 사상관과 예술성이 드러나는 대표작이며 오늘날에도 미국을 대표하는 문학이면서 다양한 계층에서 꾸준히 읽히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탐험소설이다. 어린 시절, 대부분 삭제본으로 아합선장의 복수극과 이에 맞서는 거대한 모비딕 그리고 포경업에 관해서만 낭만적 해양탐험소설로 처음 접하였겠지만, 성년이 되어 완역본으로 다시 한 번 읽어보면 매우 독특한 소설형식과 18,9세기 당시 사회상과 포경업의 배경은 물론, 근세 서양사와 기독교 문화 및 그리스도교 정신을 순례할 수 있는 대서사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모비딕에는 성경을 비롯하여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리어왕이 있고 존 밀턴의 실락원 그리고 미셸 드 몽테뉴, 찰스 다윈,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서구 문학 고전 160여 작품을 함께 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높은 철학적 사고와 문학, 신앙 및 자연관 그리고 고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인문·사회적 통찰의 휴머니즘을 함께 할 수 있는 걸작이다. 본격적인 줄거리가 전개되는 1장부터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고래의 종류와 생태, 서식 환경, 해부학적ㆍ화석학적ㆍ생명생성학적 특징, 포경의 역사와 기술, 포경 방법과 장비 등등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정보가 세세하게 다루어진다. 놀랍도록 꼼꼼한 이 기록들은 멜빌이 도서관의 책들을 통해 얻어낸 것이며, 그는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자신의 이 소설을 “도서관을 누비고 대양을 편력한” 결과의 소산이라고 말했다.'''『모비 딕』을 읽는다는 것은 포경선에서 여러 해 동안 강렬한 경험을 하고, 자기가 본 것 전부를 마음에 새기고, 7년쯤 더 지나 셰익스피어, 호손, 성경 등등을 읽고 흡수한 다음, 젊은 시절의 경험을 앞날에 공포할 목소리와 방식을 찾아낸 작가를 마주하는 일이다. 결국 바로 여기에서 『모비 딕』이라는 소설의 위대하고 탁월한 힘이 나온다. 그 힘은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아니라 자기가 보는 것의 경이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포용력 있고 감수성 예민한 영혼을 가진 작가에게서 나온 것이다.'''
― 너새니얼 필브릭 (미국 역사가)#
또한 이 책은 서사시의 유산에 진정으로 부응한 최초의 소설로 평가 받는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아이네이스, 신곡, 실낙원 등 멜빌은 이 모든 시들의 영향을 받아 동시에 소설로서 역사적인 장소와 시간의 복잡성을 그려내려고 시도했다. 모비 딕은 세속적 민주주의와의 종교의 화해, 노예제와 인종 차별에 관한 도덕적 문제, 급속하게 발전하는 경제에서의 임금 노동의 장소와 관련된 경제적 문제, 성 역할과 섹슈얼리티에 관한 형이상학적 문제들을 무려 19세기에 이 책으로 설명했다. 그는 사회 계층이 고정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 미국에서 행동 규칙을 명확히 정립했다. 또한 자연과학이 인지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시대이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아마도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그들이 한때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 모든 문제들은 성경, 셰익스피어, 존 밀턴과 함께 계속해서 설득력 있는 대화를 동반한 모비 딕에서 설명했다. 또한 모비 딕은 한 시대의 문제들, 즉 미국인들에게 유산으로 남아 있는 문제들이 해결될 뿐만 아니라, 주장을 뒷받침하고 어떤 시대에서도 볼 수 있는 아름답고 진실하게 들릴 수 있는 구절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시대에 걸맞은 산문 스타일을 발전시켰지만 또한 현대의 관용어와 용어에 부합하는 성경적인 영어 글쓰기의 위대한 업적에도 힘입었다.
3. 차례
4. 영향력
출판 당시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멜빌이 일흔 두 살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모비 딕은 미국에서 고작 '''3,200부'''가 팔렸다. 1851년 가을 모비 딕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이 소설을 헌정받은 작가 너새니얼 호손과 호손의 아내 소피아 정도를 빼고는 아무도 모비 딕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허먼 멜빈 사후 20세기 중반, 비평가 루이스 멈포드, 대학교수인 레이먼드 위버, 작가 서머셋 몸의 극찬을 시작으로 멜빌 부흥 운동이 일어나고 재평가를 받게 되면서 '''현재는 미국 소설의 고전 중 고전이자 명작으로 추앙받으며, 수많은 작가와 철학자, 심지어 대통령에게 영감을 주었다.'''
멜빌이 죽고 수십 년 후, 1917년 미국 작가 칼 반 도렌은 모비 딕을 미국 낭만주의의 정점이라고 부른 1921년 연구 <아메리칸 소설>에서 멜빌의 가치에 대해 산문화한 최초의 작품이 되었다. 또 레이먼드 위버의 전기 <허먼 멜빌: 뱃사람 그리고 신비주의자>(1921)가 출판될 무렵 영미 문학계에서 멜빌과 모비 딕에 대한 관심은 최고조가 되었고, 이후 단테나 셰익스피어, 밀턴이나 도스토옙스키와 비교해서 그의 위대성을 논하는 평문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위버는 그가 쓴 평전에서 모비 딕을 “19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소설적 상상력”이라고 상찬한다. 이후 <모비 딕>은 인간 사유의 깊이와 광활한 상상력의 한 정점을 표상하는 대작으로 세계문학의 판테온에서 빠트릴 수 없는 대작으로 평가되었고, 영국의 소설가 서머셋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 중 하나, 노벨연구소가 주최한 전세계 작가들이 뽑은 세계 100대 문학작품의 하나#. 영어권 작가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책 중 하나#로 뽑히는 등 오늘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The Greatest Books of All Time 현대 영어권 작가들[2] 에게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작품 중 하나이다. 수 많은 영어권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으며 특히 토마스 핀천, 코맥 매카시에게 매우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자 매카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E. M. 포스터[3] , 마거릿 드래블, 브렛 이스턴 엘리스[4]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조이스 캐롤 오츠[5] , 실비아 플라스 등 당대의 문호들이 좋아하는 책으로 꼽았다. 국내 작가 중에서는 이문열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멜빌의 모비 딕이 영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보적이다. 소설 한 편 안에 상징주의와 자연주의, 진지한 철학적 탐구와 모험소설의 흥미를 모두 쓸어담은 그의 작품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멜빌만의 가치를 담고 있다.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투쟁과 파멸을 그린 전율적인 모험소설이자 최고의 해양문학, 미스터리와 공포가 충만한 미국식 고딕소설이자 뛰어난 상징주의 문학 또는 자연주의 문학으로 다양한 각도로 해석되고 평가되는 작품이다. 소설에는 고래와 포경업에 관해 인류가 탐색하고 축적해온 지식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명상들로 가득하다.
예컨대, 모리스 블랑쇼는 "상상적인 것과의 만남"에서 다음과 같이, 오디세우스와 에이허브를 비교하면서 평한다.
모비 딕은 출간한지 160년이 지났는데도 주목받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현대적 메시지'를 첫손에 꼽았다. 소설에는 포경선에서의 고된 생활에 대한 묘사가 자세히 나온다. 선원들이 어렵사리 잡은 고래를 처리하고 잠시 숨을 돌리려고 하면 또 다른 고래가 나타나는 패턴이 반복된다. 허먼 멜빌은 이에 대해 "인생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적었다.확실히 에이하브가 모비딕과 만나는 것은 단지 멜빌의 책 속에서일 뿐이다. 그러나 이 만남이 비로소 멜빌로 하여금 그 책을 쓸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 또한 확실하다. 이 만남은 그것이 일어나는 모든 면을 초월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위치 설정하려고 하는 모든 시간을 초월한 만남, 이 책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일어났다고 생각될 만큼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엄청나며 독특한 만남인데 그것은 또한 작품의 미래 속에서 그에 상응한 일개의 대양이 된 한 작품이 체현하게 되는 저 바다 속에서 단 한 번만 일어날 수 있는 만남인 것이다.
에이하브와 고래 사이에서는 아주 애매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형이상학이라는 말로 형용할 수 있는 어떤 연극이 펼쳐지고 있는데, 같은 싸움이 세이렌과 오디세우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 연극이나 싸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각 당사자는 자신이 전체가 되려하고 절대적인 세계가 되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이 상대방의 절대적 세계와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데, 어느 쪽도 이 공존이나 만남 이상으로 더 큰 욕망을 품고 있지는 않다. 에이하브와 고래를, 세이렌과 오디세우스를 동일한 공간 안에서 다시 연결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오디세우스를 호메로스로, 에이하브를 멜빌로 만드는 은밀한 염원이다. 바로 이것이 이 결합으로부터 생겨나는 세계를, 가능한 모든 세계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하며 가장 무시무시하고 가장 아름다운 세계로 만드는 비밀스러운 염원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세계는 한 권이며, 이 책 이외에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에이하브와 오디세우스 중에서 가장 큰 권력의지를 가진 자가 가장 분방하게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아주 사려깊은 완고함이 있고 이것은 세계 지배로 귀결된다. 그의 교활함은 자신의 능력에 제한을 가하는 척하는 데 있다. 다른 힘과 대면하는 경우에 자신이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을 냉정하게 계산하여 추구하는 데 있다. 만약 그가 어떤 한도를 넘지 않고, 현실 세계와 세이렌의 노래가 그를 유혹하여 편력하게 만드는 상상적 세계간의 간극을 유지한다면 그는 전체가 될 것이다. 그 결과는 그에게는 일종의 승리이고, 에이하브에게는 일종의 암울한 패배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인데, 오디세우스는 에이하브가 본 것을 몇 번인가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들으면서도 완강하게 저항한 반면에 에이하브는 자신이 본 이미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것은 한쪽이 변신을 거부했던 반면, 다른 쪽은 변신 속으로 빨려 들어가 거기서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련 후에 오디세우스는 예전과 똑같은 자신으로 되돌아 가고, 세계는 아마도 이전보다도 빈곤해졌지만, 보다 확고하고 확실한 것으로서 다시금 나타난다. 에이하브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멜빌 자신에게 세계는, 단 하나의 이미지가 주는 매혹이 그를 끌어당기는 저 세계 없는 공간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블랑쇼, 도래할 책, 심세광 번역, 그린비, 21~23쪽
모비 딕을 완역한 황유원 시인은 "어떻게 보면 사람의 삶이라는 게 영원히 쉬지 못하고 노력만 하다가 죽는 것인데, 포경선에서의 작업은 인생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서 현대인도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설은 우리가 속한 사회나 집단을 돌아보게 한다. 신문수 서울대 영어교육과 명예교수는 "멜빌은 다양한 인종의 선원들이 배 안에서 힘을 합쳐 고래를 잡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종 차별 문제 등을 비판적으로 다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면은 점점 다문화 사회로 변하는 현시대에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양근 문학평론가(부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소설 속 포경선은 사회의 모형이자 일종의 소우주를 상징"한다. (모비 딕 다시 읽기 중에서) 황 시인이 "포경선은 국가, 리더는 선장, 국민은 선원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 시인은 "에이해브 선장은 좋지 않은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기에 동조하거나 반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집단의 전형을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고 말했다."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를 한 번 끝냈다 해도 뒤에는 두 번째 항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두 번째 항해를 끝냈다 해도 뒤에는 세 번째 항해가, 그 뒤에도 또 다른 항해가 영원히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 세상에서의 우리의 노고란 그처럼 모두 끝이 없고 견뎌내기 힘든 것들이다."
모비 딕의 또 다른 가치는 사소한 것을 보편적인 주제로 밀고 나가는 힘에서 나온다. 총 135장으로 구성된 책엔 장마다 '포경 밧줄' '고래 그림' '돛대 꼭대기' '나침반과 바늘' '구명부표' 등 고래와 포경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담겼다. 황 시인은 "멜빌이 작은 소재에서 시작해서 결국에는 인간 보편적인 이야기까지 끌고 가는 것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포경 밧줄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해 밧줄에 얽힌 듯 살아가는 인간에 관해 이야기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5. 작품과 관련된 말들
이자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월트 휘트먼만이 모비 딕의 작가와 함께 정점에 앉아 있습니다. 모비 딕과 풀잎은 두 권의 위대한 미국 책입니다. 풀잎은 거의 흠잡을 데 없는 모비 딕의 기적과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이후 성취하기 어려웠던 ‘진정한 독창성’이 19세기와 20세기 미국문학에서 일부 성취되었다고 한다면 그 시작은 멜빌이다.'''#
'''그저 우연히 『모비 딕』을 집어들게 되었을 뿐이고 지난 삼십 년간 멜빌에 대해 열 번쯤 떠올려봤을까 싶었는데, 첫 장을 읽자마자 나는 나의 문체가 멜빌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 노먼 메일러 (미국 소설가)#
'''저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부터 미국 현대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말했을 때 그가 틀렸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럽 문명을 통째로 삼킨 책인 모비 딕에서 시작됩니다.'''
― E. L. 닥터로 (미국 소설가)#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놀라운 작품 가운데 하나.'''#
'''그것은 어느 누구도 동일시하지 않은 것과 같은 바다의 서사시다; 그것은 [……] 상당히 성가신 책이다. 그러나 모비 딕은 위대한 책이며, 매우 위대한 책이며, 지금까지 쓰여진 바다에 관한 책중 가장 위대한 책이다. 그것은 영혼에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 D.H. 로렌스
'''『모비 딕』은 손에서 내려놓자마자 ‘내가 썼더라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 책이다.'''
'''의식의 은유적 행위에 대한 극적인 탐구. 이 책을 읽을 때면 늘 내 마음이 확장되는 느낌이 든다.'''
― 메릴린 로빈슨 (미국 소설가)#
'''멜빌은 이 위대한 소설에서 바다뿐 아니라 인간 정신의 은밀한 부분까지 탐색한다. 장난스러우면서도 흉포한 흰색 고래를 통해 작가는 삶과 죽음 그리고 신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완벽하게 상징화했다.'''
― 선데이 타임스#
'''허먼 멜빌은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다. 『모비 딕』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단테의 『신곡』과 같은 수준의 문학작품이다.'''
― 루이스 멈포드 (비평가)#
'''미국 문학은 『모비 딕』과 함께 시작했다.'''
― E. L. 닥터로 (미국 소설가)#
''' 『모비 딕』은 단순히 한 권의 책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리얼리티, 즉 문학이 소화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리얼리티를 보여준 작품이다.'''
― 러셀 브랭큰십 (문학비평가)#
'''사려 깊고 까다로우며 그 어디에도 속한 적 없이 별나고도 다정한 이 남자가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책의 예술성에 기여한 성취만은 불멸하리라.'''
'''지혜롭고, 재미있고, 마음을 사로잡는 멜빌의 서사시는 미국 문학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책은 거의 나에게 구세주다. 나는 항상 모비 딕을 쿠란, 또는 성경을 읽는 것과 비교한다.'''#
― 필립 호어 (미국 작가, 문학 교수)
'''19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소설적 상상력.'''
― 레이먼드 위버[8]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모든 위대한 미국 소설들의 조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미국의 성경과 가까운 책.'''#
'''미국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양 문학의 본질이 담겨 있는 책이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으려 애쓰는 개인으로서, 헌법에 명시된 이상에 도달하려 애쓰는 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에게는 이전 어느 때보다도 『모비 딕』이 절실히 필요하다.'''#
― 너새니얼 필브릭 (미국 역사학자)
'''이제 모비딕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세계의 세력 다툼, 그리고 그러한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국가를 반영하는 텍스트로 읽힌다.'''
― 닉 셀비 (미국 문학 비평가)#
'''스케일이 다른 작품이다. 단순히 문학이 아니라 인간과 우주에 대한 철학이 들어있다.'''
― 마루야마 겐지 (일본 소설가)#
'''『모비 딕』은 19세기 상상력에 정점을 찍은 “위대한 미국 소설”로 불린다. 거대하고 흉포하지만, 섬세하고 정교한 이 작품의 매력은 수세대의 걸친 세계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혼란에 빠뜨리고, 심지어 좌절시키기까지 했다. (중략) 그러나 이 소설의 복잡한 짜임새나 규모는 어떤 방법으로도 완벽하게 요약할 수 없다. 심지어 이 소설은 자기 자신과 거대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야기를 앞으로 밀어내고, 탐험하고, 사색하려는 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말이다. 『모비 딕』은 사상의 광포한 바다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 리더쉽, 권력, 산업주의, 노동, 확장, 그리고 자연 등 미국의 모든 형상과 지위에 대한 위대한 고찰이다. 피쿼드 호와 거기에 타고 있는 각양각색의 선원들은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이 혁명적인 소설은 수많은 문학 작품과 전통에서 그 바탕을 빌려왔으며,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놀랄 만큼 자유롭게 오간다.『모비 딕』 이전까지는 미국 문학사상 그 어느 누구도 이렇듯 강렬하고 야심만만한 작품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모비 딕』에서 독자는 난해한 형이상학과 고래의 거죽을 벗기는 기술, 소금물에 젖은 타는 듯한 드라마를 모두 맛볼 수 있다. 『모비 딕』은 비가(悲歌)이자 정치 비평이요, 백과사전이요, 모험담이다. 이 작품을 읽는 순간, 독자는 주인공들이 겪는 놀랍고도 힘겨운 사건들을 낱낱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6. 줄거리
소설은 위의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는데, 꽤 유명한 문장이다. 적어도 19세기 미국 문학 작품 중에선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9] "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라 번역하기도 하지만, 본명이 따로 있는 화자가 이스마엘이라는 가명을 쓴 것이므로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로 번역하는 쪽이 옳다. 번역판에 따라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다오," "나는 이스마엘. 그렇게만 불러다오," 나를 이슈미얼이라 불러달라," 또는 "내 이름을 이슈메일이라 해두자."라고 번역한 것도 있다. 80년대 축약판 아동문고에서는 "내 이름은 알 거 없고 그냥 이스마엘이라고 불러줬으면 한다..."라고 나오기도 했다.'''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Call me Ishmael).'''
기독교권에서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은 추방자, 쫓겨난 자를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이스마엘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들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래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자식이 태어나지 않자 사래가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이라고 권했고,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 후 사래가 천사의 계시를 받아서 이름을 사라로 고치고 아들 이삭을 낳았고, 이삭의 자리가 위협당한다고 생각한 사라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냈다. 사막을 헤매는 모자의 울부짖음을 듣고 가엾게 여긴 야훼는 하갈의 눈을 밝혀 샘을 찾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이삭의 자손인 유대인과 이스마엘의 자손인 아랍인은 대대로 사이가 나쁘게 되었다는 것이 유대 쪽에서의 신화적 기원이다.
비극적인 서사시 <모비 딕>은 소설의 화자 이스마엘이 포경선에 올라 이 항해의 목적을 알게 되기까지를 그린 부분,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태평양까지 이어지는 항해 부분, 마지막으로 모비 딕과의 결투와 ‘피쿼드’호의 침몰을 그린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이야기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고 가는 것은 에이허브가 아닌 화자 ‘이스마엘’이다. 그는 에이허브 선장이 이끄는 포경선 ‘피쿼드’호에 승선하여 흰 고래 ‘모비 딕’을 쫓는 항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다. 엄혹한 삶의 현실을 밑바닥까지 체험한 이스마엘은 침착하고 냉정하고 분석적인 태도로 우리에게 세상이라는 가면 너머의 진실을 보여주며(그는 멜빌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파멸을 향해 내달린 ‘피쿼드’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물이 되어 동료의 죽음을 대가로 얻은 삶의 비밀을 세상에 전한다.
이스마엘의 눈에 비친 선장 에이허브는 불가지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고 또 직접 자신이 알아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존재였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모비 딕에 대한 복수의 일념에 사로잡혀 판단력이 경도된 에이허브 선장은 이스마엘을 비롯한 선원 모두에게 ‘모비 딕’보다 더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선장의 분노는 우주 질서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가로막았으며, 결국은 파멸을 초래한다.
태평양에서 펼쳐진 3일간의 대격투. 이스마엘은 바다와 함께 에이허브와 모비 딕의 대결을 지켜본다. 거기에는 삶의 한가운데로 쳐들어와 만사를 부질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싸늘한 침묵(죽음), 그리고 어떠한 기록도 허락지 않는 바다의 관용 또는 무자비함이 있을 뿐이었다. 바다는 한순간에 ‘피쿼드’호를, 선장의 불같은 원한과 집착을 거대한 동심원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겨 흔적도 없이 삼켜버린다.
작품은 과거 모비 딕에게 당해 한쪽 다리를 고래 뼈 의족으로 대체하고 고래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는 선장 에이허브[10] 가 포경선 피쿼드 호를 이끌고 모비딕을 뒤쫓는 내용. 거대한 흰 고래 모비 딕과 에이허브 선장의 대립구도가[11] 갖추어져 있다. 마지막 싸움에서 에이허브 선장은 모비 딕에게 던진 작살의 밧줄이 목에 감기는 바람에 끌려가고, 성난 모비 딕은 피쿼드 호를 들이받아 박살내며, 화자이자 주인공 이스마엘을 제외한 전원이 전멸한다.
배리모어가 주연한 영화에서는 고래가 죽지만 이후 영화판은 모두 원작에 따랐다. 원작은 에이허브 선장이 작살 밧줄에 묶여 끌려가고 모비 딕이 피쿼드 호를 들이받아 박살낸 후 퀴퀘그의 관을 타고 표류하던 이스마엘이 다른 배에 구조되는 것으로 끝난다. 모비 딕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불명. 여담으로 마지막에 이스마엘은 퀴퀘그의 관에 매달려 간신히 살아나는데, 이 관은 항해 도중 열병에 걸렸던 퀴퀘그가 죽을 때 사용하려던 관이었으나 의지의 힘으로(...) 퀴퀘그가 살아나면서 더이상 관이 아니게 되었다. 소설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로 보면 된다.
7. 해석
모비 딕 상징주의의 끝없는 깊이
모비 딕은 오늘날까지 다양한 해석이 오가고 있다. 2010년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모비 딕』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김석희 번역가는 "시대나 독자에 따라 읽는 방식이나 가치가 바뀔 수 있는, 재해석의 가능성이 많은 작품"이라며 "처음에는 선원과 고래의 싸움이 신과 인간의 대립 관점에서 읽혔지만, 나중에는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경고로도 읽힐 정도"라고 전했다. 그는 번역 후기에서 『모비 딕』을 "복잡 미묘하게 잔물결이 이는 해수면처럼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다양한 빛을 내는 소설"이라고 평했다.
모비딕에 대해서는 실존주의적, 현상학적, 신비평적, 마르크스주의적, (신)역사주의적, 해체주의적 비평 등의 다양한 해석이 있어왔다. 그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이스마엘(Ishmael)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과 에이헵(Ahab)을 중심으로 보는 시각으로 야분되어 왔다. 에이헵이 모비딕이라는 흰고래를 추적하는 이야기는 작품의 1/3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으며 나머지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서술과 희곡적 장면을 제외하면) 1인칭 화자인 이스마엘의 사색과 진술로 이루어져 있는바 이스마엘을 중심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이스마엘의 사색이 차지하는 분량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관점의 근거는 몇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로 등장인물로서의 이스마엘이, 모비딕 추격이라는 목적을 위해 선원들을 이용하는 독단적이고 독재적인 에이헵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마엘은 에이헵과 달리 자신의 관점을 타자에게 강요하기보다는 퀘퀙(qUEEQUEG) 같은 야만인과 우정을 나누고 그의 미신적 종교행위에 동참할 만큼 타자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또한 선원들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있는 에이헵과 달리 이스마엘은 향유고래의 기름을 짜면서 동료선원의 손을 기름덩어리와 혼동해 주무르는 장면에서처럼 동료인간과 화합하는 인간적 면모를 보인다.
이스마엘 중심으로 이 작품을 해석하는 두 번째 이유는 화자로서의 이스마엘의 특징 때문이다. 이 소설은 이스마엘의 발언에서 시작해서 유일하게 생존한 그의 에필로그로 끝맺는 만큼 화자로서의 이스마엘의 목소리는 작품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 질문, 충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어떤 경우에는 독자들의 반박을 미리 서술함으로써 참여를 유도한다. 이스마엘의 이런 대화적이고 민주적인 서술 행위는 마법적인 카리스마로 선원들을 자신의 목적으로 끌어들이는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에이햅의 언술행위에 대한 대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스마엘이 에이햅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이 상징주의적이고 개방적인 시각 때문이다. 에이햅도 사물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포착하긴하지만 모비딕을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듯이 사물의 다양한 상징적의미를 풍유적인 단일한 의미로 환언한다. 반대로 이스마엘은 사물의 상징적 다양성과 의미의 불확정성을 수용한다. 고래의 머리에서 꼬리, 그리고 분수에 이르기까지 고래의 모든 면에 대한 관찬로가 사색을 시도하지만 그는 항상 최종적인 의미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의미의 다양성을 수용한다. 이스마엘의 이런 개방적인 태도가 궁극적으로 멜빌의 시각을 대변한다고 봄으로써 많은 평자들은 모비딕을 이스마엘 중심으로 해석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스마엘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에이햅이 모비딕을 추격하는 이야기가 여전히 모비딕의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에이햅은 이스마엘과 비교해서 단순히 부정적인 인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에이햅이 모비딕을 추격하는 이야기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왜 에이햅이 그토록 모비딕에 증오를 느끼는가이다. 화자는 그 직접적인 이류를 에이햅이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이 절단된 다리를 대신한 의족이 우연히 그의 사타구니를 찌름으로써 결국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에이햅은 광적으로 변하고 모비딕을 아담 이래로 인류를 괴롭혀온 모든 악의 화신으로 규정하며 그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모비딕에 대한 에이햅의 증오는 자신이 입은 상터에 대한 복수행위보다 더 복잡란 이유를 지닌다. 피쿼드(pEQUOD)호가 출항한지 얼마 후 뒷갑판에서 에이햅이 선원들을 모아놓고 항해의 목적이 모비딕 추격이라고 털어놓고 설득하는 연설에서 에이햅은 모비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그에 의하면 모든 가시덕인 사물들은 가면들이며 모든 사건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그러나 추론의 능력이 있는 무엇인가가 활동하고 있고 인간의 벽에 갇힌 죄수와 같은 신세로서 그 벽을 꿰뚫어야 하는데 모비딕이 바로 그 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비딕에 대한 에이햅의 증오는 단순히 그가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어서가 아니다. 에이햅은 "그 알 수 없는 것이 주로 내가 증오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듯이 모비딕이 어떤 비밀을 은폐하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게 증오를 퍼붓는 것이다. 이렇듯 모비딕에 대한 에이헵의 증오는 인식론적인 문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 때문에 모비딕은 자연적인 고래가 아니라 복잡한 상징적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에이햅은 모비딕을 추격하기 전에 40년 동안 고래잡이를 해온 인물이다. 고래잡이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의 과정이며 동시에 고래를 포획하고 잘라서, 기름을 짜 상품화하는 과정임을 생각한다면, 에이햅은 거의 평생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달에 공헌한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비딕의 추격이 낸터킷 시장에서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모비딕은 짐승일 뿐이나는 1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의 반문에 맞서 모비딕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에이헵은 분명 자본주의적 이익 추구에 반대하거나 회의를 느끼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과연 모비딕에 대한 에이햅의 해석과 증오는 얼마만큼 정당화 될 수 있는가? 에이햅과 달리 이스마엘은 모비딕을 처름 목격하는 순간 모비딕의 신성을 발련함으로써 모비딕이 악마적인 존재라기 보다 신적인 존재라고 느낀다. 따라서 작품 내에서도 모비딕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모비딕의 상징성은 여전히 해석의 문제로 남는다.
모비딕을 논할 때 간과할 수 없는 또다른 점은 피쿼드호의 항해가 에이햅의 모비 딕 추격이라는 개인적의 복수의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작품 여러곳에서 피쿼드 호는 미국의 배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으며 특히 [모비딕]이 대폭 수정되던 1850-51년에 미국은 노예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국가적 분열의 위기흐 겪고 있었다. 따라서 [모비 딕]은 위기에 놓인 미국의 운명에 대한 상징적 텍스트로도 읽힐 수 있다. 피쿼드 호의 갑판이 미국의 정치적 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여러가지 비유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국가와 배의 비유이다. 당시에 국가와 국민을 배와 선원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피쿼드 호의 상징적 의미도 당대의 이런 사회적 정치적 담론에서 통용되던 비유와 연관되어 있다. 모비딕을 미국의 운명에 대한 상징적 텍스트로 읽을 수 있는 또다른 근거는 피쿼드 호의 선언들의 구성이다. 일부 비평가들은 피쿼드호의 항해사들과 작살잡이들이 미국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종과 지역을 나타낸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피쿼드 호의 선원이 30명이라는 점은 [모비딕]이 씌어지던 1850년에 미국이 모두 30개의 주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과 연관된다. 이런 인유들은 모두 피쿼드호가 미국을 상징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해준다. 따라서 에이햅과 선원이 가상의 정치 지도자와 국민의 관계를 보여주며, 피쿼드호의 운명은 곧 미국의 운명에 대한 상징으로 해것할 수 있다.
모비 딕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평자들이 에이햅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을 당대의 정치인들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지나치게 환원적이라 하겠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에이햅이 선원들을 모비딕 추격이라는 목적으로 결속시키려는 시도와 그 결과를 당대의 문맥에 맞추어 해석해보는 것이다. 에이햅이 선원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결속시키고자 하는 행위는 당시에 노예제에 대한 논쟁으로 분열된 미국을 하나의 통일체로 묶고자 했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상징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에이햅은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형상화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에이햅의 위대함은 그가 독단적이고 전제적인 방법으로 결속을 이루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파괴했다는 점에서 크게 훼손된다. 에이햅이 "신적이지 못하지만 또한 신과 같은 "모순된 인물로 그려지는 것도 부분적으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피쿼드 호와 선원이 미국과 미국민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면, 에이햅이라는 지도자에 의해 궁극적으로 침몰하게 되는 피쿼드호의 운명은 곧 도래할, 남북전쟁으로 인한 파멸의 길을 걷는 미국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며, 이스마엘의 생존과 그의 회고적 서술 행위는 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볼 수 있다.
8. 등장인물
8.1. 등장하는 흰 향유고래
이름의 뜻은 모비 딕 참조.여기까지 와서도 그는 여전히 손으로 코를 막은 채 소리쳤다.[12]
"부통 드 로즈[13]
, 이봐! 부통 드 로즈에는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나?""여기 있어." 건지 출신 사나이가 뱃전에서 대답했다. 알고 보니 그는 일등항해사였다.
"그런데 부통 드 로즈 봉오리여! 흰 고래를 보았나?"
"무슨 고래?"
"'''흰 고래. 향유고래야. 이름은 모비 딕이라네.''' 못 봤나?"
"그런 고래는 들어본 적도 없네. 카샬로 블랑슈[14]
! 흰 고래라고? 아니, 못 봤네.""좋아, 그럼 나는 잠깐 본선에 갔다가 곧 다시 오겠네."
560~561쪽
소설의 말미에 분명하게 고래의 종을 밝히므로, 많은 사람들은 작가가 소설에 등장하는 고래의 종류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으나, 모비딕은 향유고래[15] 가 맞다. 실물이 필요한 매체에서도 대개 향유고래가 등장한다.
그러나 분명한 종을 지정하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하기도 하고, 작품내 묘사되는 모비딕의 크기로 가늠하자면 모비딕의 크기는 흰긴수염고래에 버금가는 크기이고, 또 시종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장황한 묘사가 분위기를 그렇게 끌고 가는 면도 분명히 있으므로, 모비딕은 소설적으로 창안된 환상적인 종류의 향유고래로 오인하기 굉장히 쉽다.
모비딕은 백색의 거대한 고래로 수많은 포경선을 침몰시킨 고래들의 수호자이며, 반대로 고래잡이들 사이에서는 악명 높은 적이다. 몸에는 그 동안 고래잡이들이 던진 작살과 그로 인한 흉터가 가득하지만, 그 누구도 모비 딕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작중에서는 거경(巨鯨)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보통 백경(白鯨)이나 모비 딕으로 호칭된다.
모비딕은 에이허브 선장의 한쪽 다리를 물어가서 에이허브는 다른 고래뼈로 만든 의족을 달고 다니게 되었는데, 선장은 복수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16]
도중에 모비딕에게 당한 다른 선장이 이끄는 새뮤얼 엔더비 호라는 영국 포경선도 만나는데 거기 선장은 모비딕에게 팔 하나를 잃었으나 "목숨 구했으면 그만이오, 복수는 허무한 거 아닌가요? 그 고래놈 죽인다고 잘려나간 다리가 돌아오기라도 한답디까?"라는 태도를 보인다. 물론 에이허브 선장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17]
모비딕을 추적하면서 레이첼 호라는 다른 낸터킷 배를 만나는데 이 배의 선장은 모비딕을 만나 추적하다가 선원들과 아들이 탄 보트를 잃어버린 채였다. 선장은 에이허브에게 아들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에이해브는 거절하고 모비딕을 계속 추적한다.
결국 모비딕은 에이허브 선장이 던진 작살에 찔리지만, 모비딕은 배를 부수어 버린 뒤 바닷속으로 잠수하며 밧줄에 목이 걸린 에이허브 선장까지 함께 끌고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주인공 이스마엘을 제외한 '''전원이 전멸'''해버리며, 이스마엘은 같은 선원인 원주민 출신의 퀴퀘그의 관을 타고 표류하다가 선원들을 찾는다며 도와달라던 그 레이첼 호에게 구조받는다. '''그들은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다가 남의 자식인 나만 구했다⋯'''는 대목으로 소설은 막을 내린다.
9. 번역
번역이 상당히 어려워 제대로된 완역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국판의 번역 초판은 1954년 로버트 딕슨의 요약본을 을유문화사에서 출판된 노희엽의 번역이 가장 오래됐다. 최초의 완역본은 경희대 교수 양병탁에 의해 1959년 발표되었다. 하지만 초판은 현대어와는 상당히 다른 표현으로 많아 난해했고 1995년 중앙미디어판에 이르기까지 여러번 개정판을 내놓았다. 이때의 제목은 모비 딕이 아닌 백경이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백경'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백경은 하얀 고래라는 뜻으로 원래 일본에서 쓰던 번역 제목이다. 한국에도 이 제목으로 들어왔다가 2000년대 와서 모비 딕이라는 제목으로 차츰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줄곧 내고 있기에 세월이 갈수록 백경이라는 제목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모비 딕의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멜빌의 문체 때문이다. 멜빌은 한 문단에 세미콜론과 하이픈, 구두점과 관계대명사 등을 사용하며 하나의 복잡한 유기체와도 같은 복문을 쌓아 올린다. 모비딕을 완역한 황유원 시인은 "멜빌은 어떤 소재든 한번 물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며 모든 이야기의 극한까지 간다"며 "보통은 '이쯤 했으면 됐겠지'라며 끝낼 법한 순간에서 멜빌은 몇 걸음 더 걸어 들어간다."고 말했다. 또한 김석희 번역가는 "멜빌의 문장은 다의적이고 함축적이고 상징적이어서 문학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번역자에게는 애매모호해서 무슨 뜻인지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난관이 너무나도 많았던 작품"이라고 회고했다.
가장 많이 추천되는 번역판은 김석희 번역가[18] 가 번역한 '작가정신'판과 시인 황유원 번역가가 번역한 '문학동네'판이다.
2010년에는 작가정신에서 그야말로 모비 딕 백과사전이라고 불릴만한 일러스트판이 나왔다. 번역은 김석희 번역가의 번역 그대로이며 고래에 관한 방대하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며 소설 속에 나오는 고래학(學)과 포경업에 대한 멜빌의 치밀한 기록을 훌륭하게 뒷받침하는 생생하고도 섬세한 일러스트들이 풍성하게 수록되었다. 서두에서부터 ‘고래’에 대한 ‘어원’ 탐구와 문헌 ‘발췌록’이 등장하고, 작가의 체험과 도서관에서 조사하고 연구한 고래와 포경에 대한 갖가지 지식이 총망라된 소설을 소개한다.
2019년에는 멜빌 탄생 200주년을 맞아 문학동네는 일러스트판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멜빌 부흥을 대중적으로 견인한 록웰 켄트판 '일러스트 모비딕'이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좋은 내용물, 합리적인 가격으로 평이 좋다.
10. 대중 매체에서
10.1. 영상화
영화와 드라마, 애니로도 몇 번이나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만든 1926년 흑백판 무성영화는 마일라드 웹(1892~1935)이 감독하고 존 배리모어(1882~1942)[19] 가 주연하고 워너브라더스에서 배급했다. 이 작은 '''악랄한 고래 때문에 장애인이 된 선장이 약혼녀를 놔두고 바다에서 투쟁해서 고래를 잡고 귀환한다'''는 내용으로 욕을 푸지게 먹었다(...). 게다가 제목도 The,Sea beast...바다 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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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이 1956년에 만든 존 휴스턴 감독에 그레고리 펙이 에이허브 선장을 연기한 영화이고 가장 완성도를 높이 인정받고 있지만 링컨과 흡사한 외모로 등장한 에이허브 선장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20] 배급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MGM/UA).
영화 내용이나 세부적인 고증은 원작과는 달라서, 스토리가 많이 생략되어 있고, 원작의 페달라 등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도 많으며 주인공과 스타벅, 퀴퀘그를 제외하면 다른 인물들은 비중이 아주 작다.
이 영화 촬영 당시 당시 기술로는 어쩔 수 없이 세트 촬영에 물을 가득 부어서 고래를 합성하여 찍는 수준이라 필름을 이중복사함으로서 전체적으로 어둡게 그렸다. 촬영당시 실제로 밧줄이 뒤엉켜서(소설에서 이렇게 죽어나가는 이들이 여럿 있다.) 배우들이 물에 빠져서 헤엄을 못 치는 터에 하마터면 집단으로 익사할 뻔했다든지, 세트로 만들어진 고래에 묶여 칼을 쑤셔박으며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에이허브를 연기하던 그레고리 펙은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팔이 잘릴 뻔했다든지... 그리고 모비딕의 공격으로 침몰하는 배를 찍다가 튕겨진 배 파편이 몇몇 배우를 세게 치는 바람에 다쳐서 실려나간다든지 그야말로 고생 실컷하면서 찍었다고 한다.
모비 딕을 연극무대에서 다룬 작품을 연출하고 에이허브 역을 맡은 오슨 웰스는 이 영화에서 목사로 나온다.
컬러 필름 상태가 좋지 않아서, 2020년 시점에서는 좋은 화질로 보기 힘든걸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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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호주 Air Programs International에서 50분짜리 단편으로 애니로 만든 바 있다. 감독은 리차드 슬랩친스키. 80년대에 세계명작특선 애니메이션 시리즈(원 제목은 Famous Classic Tales)로 KBS-1로 더빙 방영했는데 엄청 간추리긴 했어도 원작 핵심을 꽤 잘 표현했다. 방영판에서 에이허브 성우는 고 김계원. 이스마엘 성우는 김도현이 맡았다.
1998년에 3부작 TV로 미국과 호주에서 합작으로 나왔는데 E.T.에서 주인공 엘리엇을 맡았던 헨리 토마스가 이스마엘을, 패트릭 스튜어트가 에이허브를 맡았다.[21] CG가 좀 뒤떨어지지만, 내용은 56년 작에 비해서 의외로 원작 고증에 맞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목사는 56년 작의 에이허브인 그레고리 펙이 열연한다. 국내에서는 2000년 초반에 비디오로 소개되었는데 180분에 달하는 영화를 100분 남짓으로 줄이다보니 뭔가 앞뒤 연결이 되지 않았다.
2011년에는 본고장 미국이 아닌 독일과 오스트리아 합작으로 2부작 TV 미니시리즈(이것도 180분)가 새로 나왔다. 윌리엄 허트가 에이허브, 에단 호크가 스타벅으로 나오며 화려한 캐스팅과 최신 CG로 무장했지만 정작 드라마가 재미없다는 평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음 단락에서 다루는 등장인물 간 감정이 거의 표현되지 않았으니 지루할 수 밖에...
원작을 읽어본 사람들에게 원작의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와 비극적 박력을 충분히 살려준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직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 단편 영화보다는 10부작 정도의 드라마로 영상화하는 것이 알맞을 정도로 원작 자체가 방대하기도 하지만, 소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의 장광설과 고래학 강의는 영상화가 힘들어서, 영화에서 원작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어렵다.
2015년 하트 오브 더 씨라는 영화로도 다루어졌다. 다만 이 영화는 정확히 말하면 소설 모비 딕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다. 모비 딕의 바탕이 된 에식스 호 사건과, 멜빌이 그걸 듣고 소설을 쓰는 과정에 대한 작품. 론 하워드가 감독하고 토르의 크리스 헴스워스와 벤 휘쇼, 킬리언 머피 출연하였다.
10.2. 기타
- 꾸러기 수비대 27화의 배경. 바다는 사막으로, 포경선은 커다란 캐터필러가 달린 전함, 모비 딕은 거대한 흰털의 두더지로 바뀌었다. 다만 원작에선 복수와 집착의 화신이었던 에이허브를 로망이 넘치는 선장으로 묘사하는 등[22] 아동용으로 많이 순화 되었다. 어릴 때 꾸러기 수비대를 통해 모비 딕을 처음 알고 이후 성장해서 원작을 읽은 사람은 많이 충격받았을 것이다.
- 데자키 오사무의 백경 전설도 이 소설을 우주로 배경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애니라고 할 수 있겠다.
- 메탈 맥스 2에서 오마쥬되기도 했다.[23]
- 블레이드 러너의 유명한 명장면의 명대사가 소설 속에서 에이해브 선장을 바라보던 1등 항해사 스타벅의 독백과 유사하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항목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