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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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황오제 시기 전설상의 법관이다. 전욱의 후손으로[8] 요임금, 우임금과 순임금을 3대를 모셨으며 순임금에게 고성(皋城) 땅[9][10] 을 하사받았다.
오형을 제안, 오교(가르침)를 가르쳤고 그 공은 우왕에 뒤치지 않는 정도라고 한다.
통지 씨족략(通志 氏族略)에 의하면 성(姓)은 언(偃)이고,[11] 씨(氏)는 고(皋) 휘는 요(陶)이나 통자(通字)와 이체자의 문제로 고요(皋繇), 구도(咎陶), 구요(咎繇), 고요(皐繇), 고요(皐陶) 등으로 표기가 갈리고 아들인 백익(伯益)이 영성(嬴姓)을 받아서 영요(嬴繇)라고 불리기도 한다.
2. 가르침
오형(五刑)은 다섯 개의 형벌을 일컫는 단어다.
1. 얼굴에 문신(글자)을 새기는 묵형(墨刑)
2. 코를 베어버리는 의형(劓刑)
3. 발목을 베어버리는 비형(剕刑)
4. 궁형
5. 사형
오교(五敎)는 다섯 개의 가르침을 일컫는 단어다.
1. 아버지는 의롭고(義)
2. 어머니는 자애롭고
3. 형제는 우애를 지키고
4. 아우(第)는 형을 공경하며
5. 아들은 부모에게 효성(孝)스러워야 한다.
3. 전설상의 기록
순임금이 곤#s-2을 이어 우를 대신해 치수사업을 지시했을 때, 우는 사양하고 설, 후직, 구요를 추천했다. 그러나 순은 우에게 치수사업을 맡겼으며 구요에겐 이런 당부를 남겼다.
구요는 해태(해치)라는 짐승으로 판결을 했다고 전해지며 해치는 죄인을 구별할 줄 알아 구요가 죄인을 가려내기 힘들 때 해치를 내보내 판결하였다. 죄인이면 들이받고,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었다.皋陶,现在蛮夷侵扰华夏,坏人为非作歹,你就担任司'''法官'''(士),处刑要让人信服,流放罪分为不同等级,而远近不同。只有公正明允,才能取得民众的信任
현재 오랑캐들이 화하[12]
를 침략하여 어지럽히고 악한 자들이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그대가 '''법관(法官)'''이 되어 그들을 다스리면 사람들이 믿고 따를 것이다. 처벌은 여러 방법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하고 명백해야만 민중의 신임을 얻을 수 있다.
4. 기타
별칭은 옥신(獄神)인데, 이는 구요가 오형을 제정해서 옥신이라는 존칭이 붙었다.
또한 구요는 우가 치수사업을 맡을 때도 공을 세워 봉지[13] 를 하사받았고 구요의 봉지는 육안국(六安國)이라 칭해졌다. 우는 지혜로운 법관 구요를 자신의 후계로 삼으려 했지만 구요는 우보다 먼저 사망했다. 그로부터 약 몇천년이 흐른 뒤, 당나라의 현종(玄宗)이 구요를 덕명황제(德明皇帝)로 추존하여 사후 황제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5. 둘러보기
[1] 통지 씨족략(通志 氏族略)의 기록[2] 皋의 통가자이다, '고' 발음이 있기는 하다.[3] 皋의 이체자이다.[4] 본래 '도' 발음이 나지만, 이름에 쓰일 때는 '요' 발음이 난다.[5] 陶의 동자(同字)이다.[6] 신당서 종실세계표(新唐書 宗室世系表)[7] 육안국 제후.[8] 가계는 전욱-대업-여화-고요 아니면 전욱-(아들)-여수-고요이다.[9] 지금의 육안(六安).[10] 그래서 고(皋)씨가 되었다.[11] 춘추시대에 있었던 나라인 육(六)과 요(蓼)의 국성이 언(偃)으로 고요의 후예들이다.[12] 중국(中國)의 옛 이름.[13] 고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