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코마츠 덴노

 



[image]
'''시호'''
고코마츠 덴노(後小松天皇, 후소송 천황)
''''''
모토히토(幹仁)
'''능호'''
후카쿠사북릉(深草北陵)
'''생몰'''
1377년 8월 1일 ~ 1433년 12월 1일
'''재위'''
1392년 11월 19일 ~ 1412년 10월 5일
'''연호'''
에이토쿠(永徳)→시토쿠(至徳)→가쿄(嘉慶)
고오(康応)→메이토쿠(明徳)→오에이(応永)[1]
'''황거'''
교토 어소(京都御所)
1. 개요
2. 생애
3. 가계도


1. 개요


일본의 제100대 천황. 북조의 제6대 천황이자, 마지막 천황.

2. 생애


북조 제5대 고엔유 덴노의 첫 번째 황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모토히토(幹仁). 어머니는 나이다이진 산조 기미타다의 딸 산조 타카코(三条厳子)이다. 고코마츠 덴노에게 정식으로 맞이한 황후는 없었고 여섯 명의 황실 배우자를 두어 총 4남 2녀를 얻었다.
그는 남북조시대에 북조의 황자로 태어나 히노 스케노리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382년 아버지 고엔유 덴노양위를 받아 다섯 살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고엔유 덴노가 상황(上皇)이 되어 정치를 담당하였다.
이 시기 무로마치 막부아시카가 요시미츠쇼군이 되어 세력을 확장하고 안정된 정치기반을 다지면서, 무로마치 막부가 장악하고 있는 북조 역시 강성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된 남조는 ‘계속 대항하지 말고 북조와 화의해야 한다‘는 화친파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고, 이에 남조의 고카메야마 덴노는 1392년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미츠에게 화의를 요청하였다. 고코마츠 덴노는 남조의 고카메야마 덴노와의 화의에 따라 ‘북조 측과 남조 측에서 교대로 황위(皇位)를 계승할 것’과 ‘고코마츠 덴노의 황태자는 남조 측의 황자를 세울 것’이라는 조건에 합의하였다. 고코마쓰 덴노는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고카메야마 덴노로부터 덴노의 상징인 삼종의 신기를 넘겨받아 1392년부터 북조의 덴노가 아닌 일본의 정식 덴노가 되었다. 이로써 약 60년 간 분열과 혼란이 지속되었던 일본의 남북조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고코마츠 덴노는 고카메야마 덴노와의 합의를 깨고 자신의 차남인 미히토 친왕을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그리고 1412년 8월 29일 양위하여 미히토 친왕을 쇼코 덴노로 즉위시키고 자신은 스스로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쇼코 덴노가 병약했다는 것이다. 쇼코 덴노가 아들을 둘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쇼코 덴노의 동생 오카와노미야가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고코마츠 덴노는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하였다. 그래서 북조의 스코 덴노의 손자 후시미노미야 사다후사 친왕을 쇼코 덴노의 후계자로 만들려고 했지만 쇼코 덴노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쇼코 덴노가 아들 없이 사망하자, 고코마츠 상황은 사다후사 친왕의 아들인 히코히토 친왕을 유자(猶子)[2]로 삼아 고하나조노 덴노로 즉위시켰다. 이로써 고코마츠 덴노는 쇼코 덴노에 이어 고하나조노 덴노에 이르기까지 2대에 걸쳐 상황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고코마츠 덴노는 1433년 12월 1일 5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근대 이래 일본 역대 천황으로서 남조가 정통성을 인정받으면서 고코마츠 덴노를 제외한 북조의 천황들은 정식 천황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추호(追号)인 고코마츠(後小松)은 58대 고코 덴노의 별호인 고마츠노미카도(小松帝)에서 따온 것이다.

3. 가계도


  • 비(妃) : 코혼몬인(光範門院) 히노니시(후지와라) 스게코(시시)(日野西(藤原) 資子) (1384-1440) - 히노니시 스게쿠니(日野西 資國)의 딸
    • 제2황자 : 미히토 친왕(実仁 親王) - (쇼코 덴노)
    • 제3황자 : 오카와노미야(小川宮) (1404-1425)
    • 제1황녀 : 리에 여왕(理永 女王) (1406-1447)
    • 양자 : 히코히토 친왕(彦仁 親王) - (고하나조노 덴노)
  • 텐지 : 다이나곤텐지(大納言典侍) 칸로지(후지와라) 츠네코(켄시)(甘露寺(藤原) 經子) - 칸로지 카네나가(甘露寺 兼長)의 딸
  • 궁인 : 히노니시(후지와라)씨(日野西(藤原)氏) - 히노니시 스게쿠니(日野西 資國)의 딸
  • 궁인 : 오요에노 츠보네(小兵衛局) 미나모토씨(源氏)
    • 제2황녀 : ? (1412-?)
  • 궁인 : 시라카와(미나모토)씨(白川(源)氏) - 시라카와 스게타다(白川 資忠)의 딸
  • 궁인 : 후지와라씨(藤原氏)
[1] 이 시기에 오에이의 외구(応永の外寇)라 불리는 조선의 3차 대마도 정벌이 있었다.[2] 성씨를 바꾸지 않고 입양하여 후견하는 형태로 양육하는 자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