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谷山 拓氏 곡산 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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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 황해북도 곡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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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척위공(拓謂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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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시조'''
| 척준경(拓俊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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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0명'''[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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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래
시조 척위공은 곡산의 가난한 향리였으나 아들의 공으로 검교대장군이 되었다. 아들
척준경은 고려 무신으로 동여진을 정벌한 공으로 합문지후에 제수되었고 후에 길주전투에서 공을 세워 공부원외랑이 되었다. 후에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올랐다. 그 유명한
이자겸과 사돈 관계이기도 했다.
2. 멸문
이미
조선 초기에 멸성이 되었다고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이자겸의 난이 일어난 후
고려 중~말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3. 실존 인물
- 척위공 - 검교대장군. 고려의 여진 정벌 당시에도 살아있었고, 공을 세운 아들 척준경 덕분에 상을 받는다.
- 척준경 - 문하시랑 평장사, 이부상서 참지정사 등을 역임.
- 척준신 - 척준경의 동생. 형을 잘 둔 덕에 미관말직에서 병부상서로 승진한다. 그러나 이자겸을 축출할 때 최탁과 오탁 일파에게 살해당했다.
- 척순 - 척준경의 아들로 내시[2]
고려의 내시는 흔히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 명문가 자제들만 역임할 수 있는 자리였다. 내시를 역임한 대표적인 인물은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의 아들이자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것으로 유명한 김돈중이 바로 내시였다. 또한 내시를 역임한 후 재상이 될 수도 있었다.
와 호부원외랑을 지냈지만 이자겸을 축출할 때 삼촌 척준신과 함께 살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