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
한자 : 宰相
영어 : Chancellor
재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주례(周禮)이다. 주례에 따르면 재상은 본래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 주는 요리사를 의미했으며,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대 사회에서 제사는 지도자의 통치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지도자의 제사를 돕는 요리사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신하로 뜻이 바뀌었다. #
재상은 군주제 국가의 2인자로써 군주를 보필하는 관료들의 우두머리이다. 재상은 군주의 명을 받아 자신의 책임으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조직의 대규모 개편, 막대한 재정지출, 외국과의 동맹 및 선전포고, 고위관료의 임명 등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군주에게 명을 받아야 했지만 그외 사소한 사항에 대해서는 재상은 자유롭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었다. 수상이나 총리와 비슷한 뜻이기는 하나 현대에서 이 두 단어는 의원내각제나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행정부의 실질적 수반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리고 옛 대한제국 시절 때는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직책이 존재했는데 이는 동일한 직책명을 가진 현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처럼 선출되는 정부수반의 의미는 없었고 그냥 군주가 임명하는 재상과 같은 위치였다.
그래도 현대를 제외한 옛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도 재상의 권력과 대우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였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본래 술탄이 주최하던 국무회의를 훗날 재상이 주최하고 이끌었으며 프로이센 왕국에서는 그 유명한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국가의 실질적인 중심이 되어 독일의 통일을 주도하였다. 이는 물론 통상적으로 국가의 2인자라는 위치의 작용이 크기는 하였으나 위와같이 모든 재상들이 큰소리를 낸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군사정권 국가에서의 비군인 출신 재상이나 유능하고 비범한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라면 재상은 그저 쩌리에 불과한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 현대의 부통령과도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1]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재상 중심으로 정치를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정도전이 이러한 주장을 하였는데, 왕은 어쩔 때는 유능해서 나라를 잘 이끌어가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정한 자격에 따라 선발되어 나라를 운영하는 재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태조 이후 태종이 올라서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다만 이는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지나치게 극단화시켜서 이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과연 정도전이 왕권을 약화시키고 재상권을 강화시키려 한게 맞느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꾸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시대에 따라 재상의 역할을 한 관료는 삼공, 승상, 태위, 상국등이 있으며 대다수의 왕조에서는 승상이 재상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상국은 승상보다 한단계 격상된 위치로 소하 이래로 폐지된 지위였으나 동탁이 부활시킨 이래로 권신들의 찬탈코스로 활용되었다. 태위는 삼공에 속해있을 당시는 셋중 최선임자로 재상의 위치였으나 삼공의 멤버가 다른 관직으로 바뀌자 실권은 사라진 바지사장이 된다.
일본에서 재상(宰相)이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주가 임명한 관료 중에서 수장을 뜻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의 관직을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재상보다 턱없이 낮아서, 그냥 참의(参議) 관직을 가진 다이묘들을 부르는 말에 불과했다. 참의는 조정의 행정 조직인 태정관의 차관직 중 하나였다.[2] 이것도 중앙정부가 무력화 되는 무로마치 막부 이후 전국시대 쯤 되면 별 의미없는 명예직 정도밖에는 안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세 일본의 관위와 역직 문서를 참고 바람. 호소카와 타다오키나 우키타 히데이에 등등의 다이묘들이 이 관직을 갖고 있었다.
무가 정권이 폐지된 이후에는 총리의 별칭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한다. 빌리켄 재상, 다루마 재상, 원맨 재상, 괴짜 재상 등.
서양의 중세 봉건제도에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불리는 동양의 재상과는 달리 재상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잘해야 왕의 직속 부하 중에 제일 높은 놈 정도. 때로는 재상보다 왕의 집사장(물론 하인들을 관리하는 집사가 아니라 섭정이나, 왕의 대리인을 의미한다)을 더 높이 여긴 경우도 있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직책인 궁재 역시 왕의 비서급으로 시작해 재상급까지 권한이 성장한 케이스이다. 평민 입장에서야 이것도 굉장한 직위였지만 백작이나 공작 같은 진짜 귀족이 보기에는 그렇게 매력적인 직책은 아니었다. 이런 세습 작위 영주들은 국왕 밑에서 국왕이 시키는 뒤치다꺼리를 하기보다 자기 영지에서 영지관리하면서 왕노릇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실제로도 중세 중기까지는 백작이 때때로 재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공작이 재상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것도 나라마다 좀 다른데 전통적으로 재상직의 권위가 높았던 잉글랜드는 백작이 재상에 임명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프랑스는 대부분 성직자나 기사출신이었다. 폴란드나 헝가리도 거의 성직자들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좀 특이한데 오토 1세가 마인츠 대주교에게 재상직을 내린 이후 마인츠 대주교가 대대로 제국 재상(Reichserzkanzler)을 겸임했고, 쾰른 대주교가 이탈리아의 재상을 맡았으며, 트리어 대주교가 갈리아 재상직[3] 을 맡았다. 이들은 선제후이자 주교공으로 물론 세습직이 아니었고, 그중엔 비귀족출신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1306년부터 1320년까지 제국재상이자 마인츠 대주교였던 '아스펠트의 페터'의 아버지는 성 막시민 수도원에서 일하던 일꾼이었다.[4] 스페인 왕국의 전신이 되는 카스티야 왕국 및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재상은 톨레도 대주교가 맡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산티아고 대주교가 맡은 경우도 있었다.
재상은 왕을 제외하고는 행정의 최고 책임자였으므로 국가 운영을 위해서 당연히 학식있는 사람이 임명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중세 유럽에서 학력이 높은 사람은 대부분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에 성직자가 재상이 되는 경우가 제일 흔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리슐리외나 후계자인 쥘 마자랭도 성직자 출신이다. 그 밖에 평민, 기사, 남작 등도 똑똑하다 싶으면 재상에 임명하기도 했다. 재상은 관료 중 제일 높은 직책이었기 때문에 평민 출신이라고 해도 왕이 남는 남작령 하나 주고 귀족으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았고, 더 흔한건 성직자에게 교회령 하나 주고 귀족으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것도 달라진다. 중세 후기 중앙집권이 강해지면서 재상의 권력도 강해지게 된다. 근대에 이르러 봉건영주들이 권력을 잃고 고급 관료화 되면서 재상에 대한 인식도 왕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직위로 점차 변화하게 된다. 잉글랜드는 15세기에부터 공작이 재상이 된 사례가 있었으며, 18세기쯤 되면 공작들이 총리[5] 가 되는 경우가 흔하게 있었다. 워털루 전투로 유명한 웰링턴 공작도 총리직을 수행한 적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8세기까지도 여전히 성직자나 법률가 출신이 흔하고 귀족 출신 재상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지위는 웬만한 귀족보다 훨씬 강했다.
재상으로써 유명한 실존 인물들은 철혈재상이라 불린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서필, 서희, 서눌, 류성룡, 리슐리외 등 수없이 존재한다.
창작물에서는 같은 정치관료인 대통령이나 군주인 국왕에 밀려 등장이 많지는 않지만 주로 중세 배경의 창작물이나 판타지물, 영지물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섭정이나 권신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영지물일 경우 작품 특성상 반드시 등장한다. 선역으로 등장할 경우 주인공이나 주인공 동료들의 조력자 포지션을 맡지만, 선역보다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은 편.
아랍권 국가의 재상(Vizier)은 대부분 순진하고 무능한 국왕을 앞세워서 국정을 장악하는 사악한 섭정처럼 묘사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알라딘의 자파, 파이널 판타지 11의 라즈파드, 파이널 판타지 XV의 아덴 이즈니아가 있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는 소협의회의 수관(King's Hand)이 재상 역할을 맡는다.
진격의 거인에서는 총통이라는 직책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는 본래 공화국의 국가원수를 뜻하는 단어이지만 해당 작품에서는 국왕을 섬기는 신하인 재상처럼 그려진다.
사극에서는 당연히 등장하지만, 정작 왕이나 왕실 인물, 장군, 혹은 예술가들이 사극의 주역을 자주 맡는 것에 반해 재상을 주인공으로 다룬 사극은 의외로 드물다. 특히 한국 사극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시기인 조선시대에 재상을 주역으로 다룬 사극은 한명회나 정도전, 징비록 정도.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영의정은 원칙적으로 최고의 관직이기는 하지만, 실권은 이조의 감독권을 지닌 좌의정[6] 이나 병조의 감독권을 지닌 우의정보다 떨어졌고, 대부분 나이 많은 원로 대신이 영의정을 맡았기에 역동적인 생애를 다루는 사극의 주인공으로서는 적합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과거 정통사극 때는 왕이 주인공으로 나올 때 재상들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악역으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요즘의 퓨전사극으로 들어서서는 재상들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고 나와도 거의 악역으로 나온다.
영어 : Chancellor
1. 개요
군주제에서 군주의 국정을 통할하는 최고 책임자. 군주제 국가에서는 대개는 재상을 두었으며 이는 왕족이 아닌 관료가 임명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이다. 위대한 업적을 세운 재상은 "대재상" 혹은 "명재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상국, 승상, 시중, 문하시중, 영의정, 태정대신, 한국의 삼국시대에는 상대등(신라), 상좌평(백제), 국상, 막리지(고구려) 등의 직책명으로 존재했다.한문제: 모든 일을 담당 관리들이 각자 맡아서 한다면, 재상인 경이 하는 일은 무엇이오?
진평: '''재상이란 직위는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고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순조롭게 하며, 아래로는 천지 만물의 생육을 제때에 자라게 하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무하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백성들로 하여금 황실에 의지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주고, 관리들을 감독하여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 사기 진승상세가. 군주제에서의 재상의 역할을 명료하게 설명한 발언이다.
재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주례(周禮)이다. 주례에 따르면 재상은 본래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 주는 요리사를 의미했으며,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대 사회에서 제사는 지도자의 통치 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지도자의 제사를 돕는 요리사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신하로 뜻이 바뀌었다. #
2. 역할
재상은 군주제 국가의 2인자로써 군주를 보필하는 관료들의 우두머리이다. 재상은 군주의 명을 받아 자신의 책임으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조직의 대규모 개편, 막대한 재정지출, 외국과의 동맹 및 선전포고, 고위관료의 임명 등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군주에게 명을 받아야 했지만 그외 사소한 사항에 대해서는 재상은 자유롭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었다. 수상이나 총리와 비슷한 뜻이기는 하나 현대에서 이 두 단어는 의원내각제나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행정부의 실질적 수반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리고 옛 대한제국 시절 때는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직책이 존재했는데 이는 동일한 직책명을 가진 현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처럼 선출되는 정부수반의 의미는 없었고 그냥 군주가 임명하는 재상과 같은 위치였다.
그래도 현대를 제외한 옛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도 재상의 권력과 대우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였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본래 술탄이 주최하던 국무회의를 훗날 재상이 주최하고 이끌었으며 프로이센 왕국에서는 그 유명한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국가의 실질적인 중심이 되어 독일의 통일을 주도하였다. 이는 물론 통상적으로 국가의 2인자라는 위치의 작용이 크기는 하였으나 위와같이 모든 재상들이 큰소리를 낸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군사정권 국가에서의 비군인 출신 재상이나 유능하고 비범한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라면 재상은 그저 쩌리에 불과한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 현대의 부통령과도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1]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재상 중심으로 정치를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정도전이 이러한 주장을 하였는데, 왕은 어쩔 때는 유능해서 나라를 잘 이끌어가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정한 자격에 따라 선발되어 나라를 운영하는 재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태조 이후 태종이 올라서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다만 이는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지나치게 극단화시켜서 이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과연 정도전이 왕권을 약화시키고 재상권을 강화시키려 한게 맞느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꾸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3. 동양권 국가에서의 재상
3.1. 한국의 재상
3.2. 중국의 재상
시대에 따라 재상의 역할을 한 관료는 삼공, 승상, 태위, 상국등이 있으며 대다수의 왕조에서는 승상이 재상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상국은 승상보다 한단계 격상된 위치로 소하 이래로 폐지된 지위였으나 동탁이 부활시킨 이래로 권신들의 찬탈코스로 활용되었다. 태위는 삼공에 속해있을 당시는 셋중 최선임자로 재상의 위치였으나 삼공의 멤버가 다른 관직으로 바뀌자 실권은 사라진 바지사장이 된다.
3.3. 일본의 재상
일본에서 재상(宰相)이라는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주가 임명한 관료 중에서 수장을 뜻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의 관직을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나라의 재상보다 턱없이 낮아서, 그냥 참의(参議) 관직을 가진 다이묘들을 부르는 말에 불과했다. 참의는 조정의 행정 조직인 태정관의 차관직 중 하나였다.[2] 이것도 중앙정부가 무력화 되는 무로마치 막부 이후 전국시대 쯤 되면 별 의미없는 명예직 정도밖에는 안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중세 일본의 관위와 역직 문서를 참고 바람. 호소카와 타다오키나 우키타 히데이에 등등의 다이묘들이 이 관직을 갖고 있었다.
무가 정권이 폐지된 이후에는 총리의 별칭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한다. 빌리켄 재상, 다루마 재상, 원맨 재상, 괴짜 재상 등.
4. 서양권 국가에서의 재상
서양의 중세 봉건제도에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불리는 동양의 재상과는 달리 재상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잘해야 왕의 직속 부하 중에 제일 높은 놈 정도. 때로는 재상보다 왕의 집사장(물론 하인들을 관리하는 집사가 아니라 섭정이나, 왕의 대리인을 의미한다)을 더 높이 여긴 경우도 있었다. 메로빙거 왕조의 직책인 궁재 역시 왕의 비서급으로 시작해 재상급까지 권한이 성장한 케이스이다. 평민 입장에서야 이것도 굉장한 직위였지만 백작이나 공작 같은 진짜 귀족이 보기에는 그렇게 매력적인 직책은 아니었다. 이런 세습 작위 영주들은 국왕 밑에서 국왕이 시키는 뒤치다꺼리를 하기보다 자기 영지에서 영지관리하면서 왕노릇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실제로도 중세 중기까지는 백작이 때때로 재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공작이 재상을 맡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것도 나라마다 좀 다른데 전통적으로 재상직의 권위가 높았던 잉글랜드는 백작이 재상에 임명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프랑스는 대부분 성직자나 기사출신이었다. 폴란드나 헝가리도 거의 성직자들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좀 특이한데 오토 1세가 마인츠 대주교에게 재상직을 내린 이후 마인츠 대주교가 대대로 제국 재상(Reichserzkanzler)을 겸임했고, 쾰른 대주교가 이탈리아의 재상을 맡았으며, 트리어 대주교가 갈리아 재상직[3] 을 맡았다. 이들은 선제후이자 주교공으로 물론 세습직이 아니었고, 그중엔 비귀족출신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1306년부터 1320년까지 제국재상이자 마인츠 대주교였던 '아스펠트의 페터'의 아버지는 성 막시민 수도원에서 일하던 일꾼이었다.[4] 스페인 왕국의 전신이 되는 카스티야 왕국 및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재상은 톨레도 대주교가 맡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산티아고 대주교가 맡은 경우도 있었다.
재상은 왕을 제외하고는 행정의 최고 책임자였으므로 국가 운영을 위해서 당연히 학식있는 사람이 임명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중세 유럽에서 학력이 높은 사람은 대부분 성직자들이었기 때문에 성직자가 재상이 되는 경우가 제일 흔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리슐리외나 후계자인 쥘 마자랭도 성직자 출신이다. 그 밖에 평민, 기사, 남작 등도 똑똑하다 싶으면 재상에 임명하기도 했다. 재상은 관료 중 제일 높은 직책이었기 때문에 평민 출신이라고 해도 왕이 남는 남작령 하나 주고 귀족으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았고, 더 흔한건 성직자에게 교회령 하나 주고 귀족으로 만들어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것도 달라진다. 중세 후기 중앙집권이 강해지면서 재상의 권력도 강해지게 된다. 근대에 이르러 봉건영주들이 권력을 잃고 고급 관료화 되면서 재상에 대한 인식도 왕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직위로 점차 변화하게 된다. 잉글랜드는 15세기에부터 공작이 재상이 된 사례가 있었으며, 18세기쯤 되면 공작들이 총리[5] 가 되는 경우가 흔하게 있었다. 워털루 전투로 유명한 웰링턴 공작도 총리직을 수행한 적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8세기까지도 여전히 성직자나 법률가 출신이 흔하고 귀족 출신 재상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지위는 웬만한 귀족보다 훨씬 강했다.
5. 기타
재상으로써 유명한 실존 인물들은 철혈재상이라 불린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서필, 서희, 서눌, 류성룡, 리슐리외 등 수없이 존재한다.
창작물에서는 같은 정치관료인 대통령이나 군주인 국왕에 밀려 등장이 많지는 않지만 주로 중세 배경의 창작물이나 판타지물, 영지물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섭정이나 권신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영지물일 경우 작품 특성상 반드시 등장한다. 선역으로 등장할 경우 주인공이나 주인공 동료들의 조력자 포지션을 맡지만, 선역보다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은 편.
아랍권 국가의 재상(Vizier)은 대부분 순진하고 무능한 국왕을 앞세워서 국정을 장악하는 사악한 섭정처럼 묘사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알라딘의 자파, 파이널 판타지 11의 라즈파드, 파이널 판타지 XV의 아덴 이즈니아가 있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는 소협의회의 수관(King's Hand)이 재상 역할을 맡는다.
진격의 거인에서는 총통이라는 직책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는 본래 공화국의 국가원수를 뜻하는 단어이지만 해당 작품에서는 국왕을 섬기는 신하인 재상처럼 그려진다.
사극에서는 당연히 등장하지만, 정작 왕이나 왕실 인물, 장군, 혹은 예술가들이 사극의 주역을 자주 맡는 것에 반해 재상을 주인공으로 다룬 사극은 의외로 드물다. 특히 한국 사극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시기인 조선시대에 재상을 주역으로 다룬 사극은 한명회나 정도전, 징비록 정도.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영의정은 원칙적으로 최고의 관직이기는 하지만, 실권은 이조의 감독권을 지닌 좌의정[6] 이나 병조의 감독권을 지닌 우의정보다 떨어졌고, 대부분 나이 많은 원로 대신이 영의정을 맡았기에 역동적인 생애를 다루는 사극의 주인공으로서는 적합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과거 정통사극 때는 왕이 주인공으로 나올 때 재상들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악역으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요즘의 퓨전사극으로 들어서서는 재상들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고 나와도 거의 악역으로 나온다.
[1] 대통령이 임기중 문제가 발생하여 사망하거나 하야 및 탄핵된 경우 등의 상황에서 비로소 부통령이 모든 국정을 수행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대통령이 건재하기에 부통령은 자리에 있어도 있으나 마나한 느낌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엄청 유능하면 부통령은 위의 쩌리 재상과 같이 존재감 자체가 잊혀진다. 그리고 부통령이 더 유능하면 당 입장에서도 그냥 대선 출마에 그 사람을 내걸지 부통령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현재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인 건 알아도 부통령인 펜스를 아는 건 이 사람이 많이 활동해서이지 부통령 자리 때문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 한정으로 부통령이라는 직책 자체가 굉장히 부정적인데 제1공화국 당시 후계 구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부통령 한 번 해보겠다고 3.15 부정선거를 터뜨린 이기붕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안습하지만 제3공화국 시대가 되면서 대통령 제도만 부활시키고 굳이 부통령은 부활시키지 않았던 이유가 다 있다.[2] 태정관의 순위는 태정대신 - 좌대신, 우대신(여기까지 장관) - 대납언 - 중납언 - 참의(여기까지 차관) 순이다. 한마디로 전혀 높은 관직이 아니었다.[3] 다만 트리어 대주교의 재상으로서의 임지가 부르고뉴인데 부르고뉴 공국이 있었던 만큼 그냥 명예직에 가까웠고, 부르군트 제2왕국(아를왕국)이 사라지고 프랑스 땅이 된 뒤에는 재상으로서는 아예 이름뿐인 관직이었다.[4] 궁정백(Pfalzgraf)이나 선제후(Kurfürst)는 신성로마제국의 강력한 영주들이었지만 원칙적으로 재상(Kanzler)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궁정백은 그냥 공작 아래-백작위인 세습 작위직이였고, 그중 라인-팔츠 궁정백이 의례상 제국 집사장도 겸직인 선제후라서 일부 공작보다도 권세가 강했다. 근데 사실 라인 궁정백조차 선제후 자격 때문에 대우받은거지 영지 자체는 조그만 팔츠들을 얽기섥기 엮어놓은거라 진짜 공작들보다 권력이 꼭 세다고 말하기도 힘들다.[5] 명예혁명 이후 재상(Chancellor)에서 총리(Prime Minister)로 명칭이 바뀐다.[6] 조선시대는 문관의 권력이 강했기 때문에 문관의 인사권을 맡는 이조를 감독하는 좌의정이 보통 최고의 실권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