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숙황후 한씨

 


'''남송의 황후
恭淑皇后 | 공숙황후
'''
'''시호'''
공숙황후(恭淑皇后)
''''''
한(韓)
'''출생'''
1165년
'''사망'''
1200년
'''재위'''
남송의 황후
1194년 ~ 1200년
'''배우자'''
영종(寧宗)
'''부친'''
한동경(韓同卿)
1. 개요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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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恭淑皇后 韓氏
1165년 ~ 1200년
중국 남송시대의 황후로, 13대 황제였던 영종의 황후였다.

2. 상세


한씨는 상주 출신으로, 한동경과 안국부인 장씨의 사이에서 1165년에 태어났다. 한씨의 집안에는 북송시대에 인종, 영종, 신종 등 3대를 섬긴 명신 한기가 있었는데, 한씨는 바로 한기의 6대손이다. 당시 남송의 재상으로는 태종의 8대손인 조여우와 한기의 증손인 한탁주가 있었는데, 한씨의 아버지인 한동경은 바로 한탁주의 조카였다. 즉 한탁주는 한씨의 종조부가 된다.
한씨는 언니와 함께 입궁하여 1186년에는 효종의 손자인 평양군왕 조확과 혼인하고, 신안군부인으로 책봉되다가 이후 광종이 즉위한 이후 숭국부인으로 책봉된다. 당시 효종의 뒤를 이은 황제 광종은 황후였던 자의황후에게 휘둘리며 결국 태상황이었던 아버지 효종과도 멀어지게 되고 효종 사후 할아버지의 장례를 지내자는 가왕 조확의 간청도 듣지 않는 등 조정의 신망을 잃어갔다.
당시 남송의 재상이던 조여우와 한탁주는 1194년에 광종을 퇴위시키고 그 자리에 가왕 조확을 즉위시키면서, 숭국부인이었던 한씨도 조확의 즉위와 동시에 황후로 책봉되었다. 한씨는 경원 6년(1200년)에 사망하였고 사후에 공숙황후로 추시되었다.
한씨의 종조부인 한탁주는 조확을 즉위시킨 이후 자신이 권력에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하여 영종이 즉위한 이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경원 연간[1]에 조여우를 탄압하고 당시 명망있는 학자인 주희 등 59명의 신료들을 탄압하는 경원의 당금을 일으켰다.
한탁주의 권세가 점차 커지자, 그의 조카이자 공숙황후 한씨의 아버지였던 한동경은 삼촌인 한탁주가 교만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이 한씨의 아버지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지 않고 정치에 감히 관계하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한동경이 1199년에 죽고, 이듬해에 황후가 죽은 이후 한탁주는 자신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하여 무리하게 금나라에 북벌을 감행하였고, 북벌의 실패로 인해 결국 한탁주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공숙황후 한씨는 영종과의 사이에서 조준(趙埈)[2]과 조탄(趙坦)[3]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으나, 두 아들 모두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요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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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95년~1200년[2] 1196년에 태어났으나 바로 그 해에 사망하여 연충혜왕으로 추봉되었다.[3] 1200년에 태어났으나 바로 그 해에 사망하여 빈충온왕으로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