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운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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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광운대학교, 光云大學校, KWANGWOON UNIVERSITY ('''KWANGWOON'''''')
국문 약칭은 광운대/팡대[9] /광대[10] 이고, 영문 약칭은 KWANGWOON/KW/KWU 이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 소재의 4년제 종합 사립대학교이다. 주변에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는 서울•수도권 전철 1호선과 경춘선 그리고 GTX-C[11] 광운대역[12] 이 있다. 재단은 학교법인 광운학원이다. 교훈은 참·빛(Veritas et Lux), 상징은 비마(飛馬, 페가수스)이다. 광운대는 이공계열 중심이며 '''전통적으로 공학 및 자연 계열 학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광운대학교의 전자정보공과대학 및 전자공학과는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설립되었다.'''[13] 즉, 광운대학교의 전자정보공과대학 및 전자공학과는 대한민국에서 최초(最初)설립•최고(最古)유지•최대(最大)규모이다.
1934년에 조광운 박사가 설립한 조선무선강습소가 모체이다.[14] 광운대학교라는 이름은 당연히 조광운 박사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그 후 조선무선공학원, 광운전자공과대학, 광운공과대학 등으로 교명을 변경해 오다가 1983년에 광운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1987년에 종합대학교 개편과 함께 종합대학교로 승격했다.
2. 역사
광운대학교(조선무선강습소부터)의 초대 이사장 및 설립자의 이름은 조광운(曺光云)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도 '광운대학교' 라 이름지어졌다. 조광운은 1899년 4월 11일(양력)에 태어났는데 그의 호는 '화도' 이며 학교 건물중 '화도관' 이라는 건물에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조광운의 10대 시절. 최소 1910년 이후, 즉 경술국치 이후에 상하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이쪽 일에 관련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언급은 되지 않았으나 그의 학문적인 재능이 당시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에게 인정받아 그는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 와세다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가 30대가 될 때까지 그는 여러가지 직업을 경험했는데 첫째로는 쌀가마니 운반노동자, 둘째로는 택시 운전사 , 그리고 일본 부잣집의 지배인으로 일했는데 그 부잣집 사이에서 그의 근면 성실함이 꽤 인정받았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하던 도중, 그는 자기가 모았던 재산을 전자 기업에 투자를 했는데 그 투자가 잭팟이 터져서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 물정 없던 16세 청소년이 뭘 알겠는가. 사기꾼에게 털리고 재산을 흐지부지 탕진하여 90퍼센트의 재산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돈을 가지고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일본으로 부터 백열전구를 수입해서 파는 사업이였다. 그러다가 사업을 확장하여 일본으로 부터 기계를 수입하여 전자 조립 공장을 만들었으며 한국부터 만주까지의 이쪽 관련 사업에 꽤 큰 손이였다고.. 이렇게 돈을 잘 벌어들인 결과 겨우 20대에 몇백만 달러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재벌이 되었다.
그의 사업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몇년이 지나자 조광운은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을 보면서 '이 돈을 더 뜻깊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파나소닉의 전신 마쓰시타 전기산업 주식회사의 설립자였던 마쓰시타 고노스케로부터 '교육기관을 설립해 보는게 어떻겠소?' 라는 조언을 들었고, 그 생각에 동의한 조광운은 1934년 '조선무선강습소'를 설립하고 그후 1963년에 광운전자공과대학, 마침내 1988년 4년제 종합대학 '광운대학교'로 인가를 받아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학교를 만든 설립자 자체가 전자공학에 몸을 담고 있었고 학교의 시작또한 '조선무선강습소' 라는 전자공학 전문 교육기관. 한국에서 전자공학의 처음과 끝을 함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일보 대학평가 연구순위에서도 2010, 2011, 2012 3년 연속 전임교원 1인당 논문 순위 2위를 달성하였고, 외부 연구비 2위, 교내 연구비 8위
단 학교가 현재 상태에서 입결로나 내외적으로나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단의 파워가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 보인다. 미국 최대 명문으로 인정받는 칼텍의 경우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한자리 수에 불과한데, 중앙일보 대학평가 기준 2012년에 비해 5~6명 정도 꽤 많이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교수 1인당 학생 수가 31명 수준으로, 국내 상위권 대학인 서카포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많은 편이다.(카이스트 15명, 포항공대 '''3~4명''', 서울대 11~12명 수준). 학원에서도 소수정예를 좋은 학원이라고 홍보하듯이 다수를 위한 강의보다 소규모를 위한 강의가 더 효과적인건 사실이나, 많은 교수 임용을 위해서는 교수의 임금이 증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재단의 부족한 파워가 한 몫한다고 보여진다. 사립대 1위인 연세대의 경우 교수 1명 당 19명 정도인데, 10명의 차이는.. 매우 커보인다.
물론 교수의 숫자가 곧 질로 연결되는건 아니다. 그런데 교수의 숫자가 늘어나면 교수 1인당 강의부담비율이 적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교수가 자기 개인 연구에 투자할 시간과 노력이 많아지고 그것은 곧 기존보다 다량의 그리고 양질의 논문 연구가 가능해진다는 것. 그렇게 연구능력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학교수준도 상승하게 된다.
2.1. 연혁
이하 내용은 광운대학교 연혁이다. 자세히 보려면 광운학원 80년사 참조
3. 상징
광운대학교/상징 항목 참조
3.1. '광'과'팡'
광운대학교 명칭을 한자로 하면, 光云으로 작성한다. 빛(光)과 구름(云)이 겹쳐질 때 빛이 구름을 뚫고 비춰나오는 모습이 마치 '팡(乓)' 터지는 순간의 불꽃과 연기 처럼 보이며, 불꽃이 열정이라는 뜻이 있고, 광운의 '광'이 '팡'으로도 보이는데 귀여운 어감 때문에 '광'을 이용한 줄임말 보다는 '팡'을 이용한 줄임말을 더 선호한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광'을 이용하여 광운대와 연관된 명칭을 만들기도 하지만, '팡'을 이용하여 광운대와 연관된 호칭을 만드는 것이 더 인기가 있다. 광운대학교 KWBC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엔터테인 관련 영상에서도 "팡-하!"라고 말할 정도다.
위의 이유로 광운대학교를 세 글자로 줄여서 부를 때 '광운대'라고 한다. 두 글자로 줄여서 부를 때는 '광대'라고 하기도 하지만, '팡대'라고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인터넷에 팡대를 치면, 광운대와 관련된 내용이 우선적으로 많게 나온다.)
마찬가지로 '팡'을 두 번 연속하여 '팡팡이'라는 호칭으로 학우들을 부르는 것이 더 대중적이다.
3.2. 호칭
두가지 호칭이 있다.
첫 번째는 대중적이고 격식없는 호칭인 '팡팡이'이다.
두 번째는 격식있는 호칭인데, 과거 짧은 기간 동안에 학우들 간에 호칭을 '빛우'라고 불렀던 기간이 있었다[18] .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사용해도 상관없다.
4. 교통
광운대학교/교통 문서 참조
4.1. 광운대역
서울•수도권 1호선과 경춘선 그리고 GTX-C[19] 의 광운대역[20] 문서 참조. 참고로 광운대학교의 교통은 '''좋은 편'''이다.
5. 전공(학부)
광운대학교/학부 문서 참조.
5.1. 학풍
광운대학교는 이공계열과 실용학문을 중시한다. 그의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전통적으로 공대가 강하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학과가 순수학문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공계열 중심의 학교라서 전체적으로 본인의 학업과 기술이 중요하다는 관념이 있다. 그래서 학교의 교직원들과 교수들 그리고 학생들도 학교 홍보에는 거의 신경쓰지 않으며 오로지 연구나 공부에만 신경쓴다.
광운공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회에 수많은 선배들이 포진해있어 전통을 유지중이다. 특히 전자정보공과대학의 전자공학계열 학문은 대한민국 최초 및 최대규모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학부와 석박사 과정 모두 한국최고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5.2. 전자공학시초
화도 조광운 박사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1934년에 광운대학교의 전신인 조선무선강습소를 설립했고,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을 조선(한국)에 최초로 들여왔으며, 전자공학을 학문으로써 광운대학교의 전신에서 조선(한국) 최초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광운대학교의 전자공학과 및 전자정보공과대학은 대한민국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재학생들 사이에서 '광운전자'•'광전'•'팡대전자'•'팡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에 공학이라는 학문은 홀대받던 시기였고, 현대에 와서야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화도 조광운 박사는 선구안이 있었던 것.
5.3. 고시반
광운대(팡대)도 고시반이 존재하는데, 사법고시반•행정고시반•공인회계고시반•기술고시반 등이 있다. 주로 연촌재에서 생활한다. 광운대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학교들 보다 재학생 수가 1/2 또는 2/3 정도이며 문과 비중이 낮아 고시반을 적극적으로 푸쉬해주지 않는데, 그에 비해 합격자 수는 문과 비중이 높은 비슷한 수준의 다른 학교들과 비슷하다. 2020년 CPA 합격자 수만 해도 7명 이상이나 나왔다.
6. 전공(대학원)
광운대학교/대학원 문서 참조.
7. 캠퍼스
광운대학교/캠퍼스 및 시설 항목 참조
8.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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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총학생회 및 학교 본부 측이 참여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재단의 수익용 기본재산 납부를 이행할 것이 요구되었고, 2017년까지 0%(0원)였던 법정 부담 전입금이 3억 8천만원 납부되었다.
사실 학교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0년에 발표된 각 대학별 적립금 목록에서 순위권 안에 들었고, 흔히 아는 한국외대•단국대•명지대•상명대•서경대•삼육대 등의 학교들 보다도 많이 적립해놓았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팡대의 행보를 보면, 학교를 위해 돈 쓰기 싫어하는 모습을 대놓고 티낸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http://infor.sahak.or.kr/portal_main.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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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학별 적립금 목록
2015년 사립대학 법인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
2014년 사립대학 등록금 의존율 현황
8.1. 부설교육기관
광운학원에는 유치원(1개교)·초등학교(1개교)·중학교(2개교)·고등학교(1개교)·대학교(1개교)·정보과학교육원(1개원)·언어교육원(1개원) 등이 존재한다. 정보과학교육원과 언어교육원에 대해서는 상세 설명을 참고하자.
8.2. 정보과학교육원
광운대학교 정보과학교육원 참조
8.3. 언어교육원
광운대학교의 영어 및 외국어 수업을 맡고 있으며 토익등 외국어시험 신청 및 실시 및 외국어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문화관 111호 즉 동해예술문화관 111호에 위치하고 있다.
- 교과과정상의 교양영어 교과목 운영
- 공인 어학시험 성적(TOEIC,TOEFL) 접수
- 어학 강좌(영어회화, TOEIC 등) 운영
- English Clinic 운영
- 동ㆍ하계 집중영어 프로그램 운영
- 광운 TOEIC 시행
- 재학생 영어 경시대회 개최
- 영어특강 개최
9. 학생회
광운대학교/학생회 문서 참조
10. 동아리
광운대학교/동아리 문서 참조
11. 학생자치기구
광운대학교/학생자치기구 문서 참조
12. 생활및문화
광운대학교/생활문화 문서 참조.
13. 이야깃거리
광운대학교/이모저모 문서 참조.
13.1. 입시전형
- 정시: 자연계열은 수학 가형 응시자만 모집한다. 게다가 문과는 수학 반영 비율이 높은 편이다. 또한, 타 대학들과 똑같이 절대평가 영어 반영 비율이 20%이다. 2014학년도 입시(2013년 수험생)부터는 개편된 수능 방식에 따라 자연계열에서 수리 '나/A'형 응시자를 모집하지 않는다.[21] 수능 개편 전에 잠시 동안 나형 응시자를 모집했을 때는 나형 지원 가능 공대들[22] 중에 가장 높은 입결을 자랑하여서 나형과 가형 구분의 의미가 거의 없었긴 했었지만. 영어 과목의 절대평가 시행 이후에는 자연계 기준 (영어 교과 과목을 제외하고) 평백 88%~으로 형성되어있다(2019년 기준).
- 수시: 대표적으로 학생부(교과), 학생부(종합), 논술 전형이 있다. 참고로 광운대학교는 2015년도 입시(2014년 고3 수험생)부터 특기자 전형을 축소하거나 폐지하였다. 2019년도 입시부터 소프트웨어 특기자 전형이 추가되었다.
14. 상권
광운대학교/상권 문서 참조.
15. 출신인물
광운대학교/출신 인물 문서 참조.
16. 사건사고
광운대학교/사건사고 항목 참조.
[1] 2016년에 학교 측이 학생들로 부터 홍보 슬로건을 받았고, 이 슬로건이 대상을 탔다. 2016년 이전에는 '따뜻한 가슴으로 기술을 품다'였다. 2016년에 대상을 탔던 슬로건에 대해서는 공식 홈페이지와 광운대학교 신문사 홈페이지에 작성되어있다.[2] #8a1601[3] 화도 조광운 박사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후 1934년에 광운대학교의 전신인 조선무선강습소를 설립했으며, 그곳에서 전자공학을 학문으로써 조선(한국) 최초로 가르쳤다.[4] 제10대 총장.[5] 학교에 재적하고 있는 모든 학생의 총 인원 수를 뜻하는 것이 아님.[6] 휴학생 3,500명 미포함. 재적학생수는 11,672명.[7] 휴학생 미포함.[8] 이 중에 외국인은 25명.[9] 광운대학교 명칭을 한자로 하면, 光云으로 작성한다. 빛(光)과 구름(云)이 겹쳐질 때 빛이 구름을 뚫고 비춰나오는 모습이 마치 '팡(乓)' 터지는 순간의 불꽃과 연기 처럼 보이며, 불꽃이 열정이라는 뜻이 있고, 광운의 '광'이 '팡'으로도 보이는데 귀여운 어감 때문에 '광'을 이용한 줄임말 보다는 '팡'을 이용한 줄임말을 더 선호한다. 그런 이유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광'을 이용하여 광운대와 연관된 명칭을 만들기도 하지만, '팡'을 이용하여 광운대와 연관된 호칭을 만드는 것이 더 인기가 있다.[10]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 광대라는 뜻이 더 강하기 때문에 잘 쓰지는 않는다.[11] 예정 및 확정[12] 코레일이 주관한 두 번의 주민 투표 모두에서 광운대 관련 역명을 넣는 것에 대해 8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역명이 미래지향적이라는 조건도 갖추었다. (월계 및 노원과 관련된 역명은 부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못 하다는 이미지가 있으며 성북과 관련된 역명은 지명이 맞지 않아서 부적합하며 그 외 생각했던 지명과 관련된 역명은 이미 다 사용 중이라서 부적합한 것에 비해, 광운대 관련 역명은 미래지향적이라서 적합하다.) 또한, 코레일 측에서 역명을 변경했을 때 광운대학교 측에서 수혜자 비용 부담 원칙으로 인해 5억을 지불했다.[13] 정확히는 조선(한국)에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을 들여온 사람이 화도 조광운 박사이고, 전자공학이라는 학문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가르친 곳이 1934년에 설립된 광운대학교의 전신인 조선무선강습소라는 의미이다.[14] 정확히 말하자면, 첫 번째로 조선무선강습소가 설립되었고, 두 번째로 조선무선강습소에서 남대문중학교의 전신과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의 전신이 파생되었고, 세 번째로 상기 학교들이 정식 학교로 인가를 받고, 네 번째로 그 학교들을 운영할 광운재단의 전신이 설립되었고, 다섯 번째로 광운재단에서 광운대학교의 전신이 파생되었다. 상기 언급된 재단과 학교들은 조광운 박사에 의해 설립되어 파생분리되었기 때문에 광운학원 측에서 광운대학교의 뿌리를 조선무선강습소로 본다. 더 알고 싶으면, 광운학원80년사를 참조하자.[15] 광운대학교의 전신인 조선무선강습소는 전자공학을 학문으로써 조선(한국) 최초로 가르치기 시작했다.[16] 대한민국 최초의 전자공학과이다.[17] 대한민국 최초의 전자정보공과대학이다.[18] 선배님들께서 학생운동 시기에 서로를 칭하실 때 사용하셨다 .[19] 예정 및 확정[20] 코레일이 주관한 두 번의 주민 투표 모두에서 광운대 관련 역명을 넣는 것에 대해 80%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역명이 미래지향적이라는 조건도 갖추었다. (월계 및 노원과 관련된 역명은 부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지 못 하다는 이미지가 있으며 성북과 관련된 역명은 지명이 맞지 않아서 부적합하며 그 외 생각했던 지명과 관련된 역명은 이미 다 사용 중이라서 부적합한 것에 비해, 광운대 관련 역명은 미래지향적이라서 적합하다.) 또한, 코레일 측에서 역명을 변경했을 때 광운대학교 측에서 수혜자 비용 부담 원칙으로 인해 5억을 지불했다.[21] 그 전에는 단 몇 년만 나형 응시자를 모집했고, 그 외에는 항상 가형 응시자만 모집했다.[22] 현 숭실대와 국민대 등 일부 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