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중학교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 장위3동 한천로 95길 28에 위치한 일반계 사립 중학교다. 1934년 5월 20일에 개교한 사립남학교다. 자유학기제 연구 학교로 지정되어 자유학기제를 2014년부터 실시하였다.
2. 역사
2.1. 학교 연혁
3. 교훈 및 상징
3.1. 교육목표 및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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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학교 상징
3.2.1. 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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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바깥의 원은 땅과 하늘을 상징하고 청색과 남색은 희망과 이상을, 노란색 건물은 전통을 상징한다.
3.2.2. 교화#s-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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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럽고 우아한 모습을 지닌 수수꽃다리는 믿음과 사랑을 상징한다.
3.2.3. 교목#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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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은은한 향기로 사철 푸른 향나무는 정의와 진리를 상징한다.
3.2.4. 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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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교 특징
장위동으로 학교가 이전하면서[6] 학교 교명 변경 논의가 있었으나, 학생들을 국보 1호로 키우자는 의견에 따라 교명을 변경하지 않았다. 이전 당시 장위중학교는 개교하지 않았으므로, 만약 교명을 변경하였다면 장위중학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월계중학교가 되었을 수도 있다.[7]
중앙계단의 폭이 좁고 매우 가파른 관계로 발을 헛디디면 응급실행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계단이 더 미끄러워서 학생들 전부 손잡이를 잡고 계단을 올라야할 정도로 심각하다. 따라서 선생님들이 가급적이면 뛰지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다치는 학생이 꼭 한 둘씩 생긴다.
학교 교복이 너무나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참고하자.
체벌로 악명이 높고[8] 완장을 패용한 선도부원 제도 , 주번 등 옛날의 잔재가 짙게 남아있는 학교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복이 바뀔 때부터 개선되어 현재 그런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
'''4대천왕'''이 존재했다. 그 선생님들의 별칭은 도치(역사)[9] , 돌핀(사회,도덕) [10] , 재발이(기술가정으로 들어오시면서 생물수업으로 들어오시기도 했다.....), 윤발이(음악)이다. 이 중 현재까지 남대문중학교에 계신 선생님은 재발이 선생님이다. 현재 교감을 달았다. [11]
4대천왕이 한 분 빼고 역사가 된 후, '''신 4대천왕'''이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임팩트가 부족해서인지 묻혔다.
운동장이 매우 아름답게 작기 때문에 체육장(또는 체육능력측정)을 같은 재단 소속 학교인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했다.(2020년 현재에는 바이러스로 인해 체육능력측정을 하지 않았다.) 운동장이 얼마나 좁은지 축구공을 뻥차면 바로 상대편 골대에 들어간다. 여담이지만 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설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엄청 좁아서..라는 소문이 있다. [12]
사실 이 학교 학생회나 선도부의 임명 방식이 엄청난 정치판이다. 담임교사가 학생회나 선도부 담당교사인 경우, 본인의 반 공부 잘하는 학생 원서를 교사가 내고 면접 대충 봐도 합격시켜주거나,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선도부라는 방패을 씌워주는 경우가 많았다. 추가적으로,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고 낙선되어도 학생회 자리를 우선적으로 내주기 때문에 안전빵으로 선거에 출마하는 학생도 있었다.
본래 장위동, 석관동의 남학생들이 배정되었으나,[13][14] 최근 장위동 재개발이 전면적으로 진행중인 탓에 장위동 학생들이 대폭 감소함에 따라 번동에서도 학생들이 배정되고 있다....(오현초 졸업생들 지못미...)
2009년부터 시행된 고교선택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문계열 고교 진학 희망자들은 석관고, 경동고[15] , 용문고(2000년대 이전에 입학한 학생들은 용문고는 갈 수 없었다) 등으로진학했으며, 간혹 경신고, 동성고, 홍대부고 진학자들도 있었다. 특성화고(실업계열 고교) 진학 희망자들은 같은 재단 소속인 광운전자공업고로 많이 진학하였으며, 휘경공업고교,
노원구 소재의 특성화고교들(서울아이티고, 미래산업과학고 등)로도 진학하였다.
5. 학교 시설
5.1. 본관
건물이 매우 긴 편이지만, 화장실은 왼쪽 끝에만 있으며, 교실에서 급식을 먹던 시절에는 잔반과 식판을 건물 양쪽 끝에서만 회수하였기 때문에 복도 중앙 교실에 배정받은 학생의 고생이 매우 심하다. 사실상 중앙현관, 화장실이 매우 가까운 앞반이 학교다니기엔 가장 편했다.[16]
5층[17] 엔 미술실과 음악실, 과학 1, 2실과 도서실, 컴퓨터실이 위치하고 있으며, 예술제를 할 때 미술실과 과학 1, 2실, 도서실을 이용한다.
1학년 8학급, 2학년 8학급, 3학년 9학급으로 이루어져 있다.[18] 1층엔 학급 1개와 교무실, 공작실[19] , 유도장, 다목적실 등이 존재한다. 예술제를 할 때 다목적실을 이용한다. 엘리베이터는 급식 외에는 탈 수 있는 존재가 없다. 5층엔 미술실과 음악실, 과학 1, 2실과 도서실, 컴퓨터실이 위치하고 있으며, 예술제를 할 때 미술실과 과학 1, 2실, 도서실을 이용한다.
학교에 '''매점'''이 없는데 없는 이유는 매점을 지을 자리가 없다고 한다.[20] 학교가 워낙 좁고 시설도 안좋은데다 교장선생님의 반대로 매점 설치는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남학생 특성상 기존의 쓰레기도 아무곳에다 버리고 다니고, 외부에서 들여온 음식물 포장 쓰레기들이 넘쳐나는데 매점이 생겼을 때 쓰레기 처리는 안봐도 뻔하다.
골목길에는 정문이, 큰길에는 후문[21] [22] 이 있다. 학생들은 정문으로 등교하며, 후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존재는 급식과 전세버스 뿐이다.
최근 컴퓨터실 컴퓨터를 교체했다. (2018년 10월 즈음에는 모니터도 교체했다.)'''i5 6500'''이라는 학교 컴퓨터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스펙을 가졌지만, 내장 그래픽이다. 또한, 2018년 12월6일 현재 1학년 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좁은 운동장에 체육관을 지으면서 더욱 좁아졌다.[23] 따라서 2개반 이상이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면 운동장이 다 찰 정도다.
또한 급식실이 없어서 각 반 교실 내에서 급식을 먹는다. 하지만 2020년 1월에 체육관, 급식실이 공사 완료되어서 이제 이것도 옛말이 되었다...
2018년 여름에 농구대를 교체하였다. [24]
5.2. 체육관
2019년 착공하여 2020년 초 완성된 건물로[25][26] , 급식실과 체육관이 위치한다.
여담으로 2019년 내내 공사를 하면서 가뜩이나 좁기로 유명한 운동장이 더 좁아져서 학생들이 체육활동을 하기에 힘든 환경이 되어[27] 특히 체육관을 완공해도 몇번 사용하지 못할 3학년들의 불만이 가장 강했다. 그래도 3학년들의 마지막은 새로 만든 체육관에서 보내주려 하였지만 2020년 희대의 전염병이 터져버리며 그들은 평소처럼 교실에서 졸업했다.
6. 학교 생활
6.1. 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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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웃긴 '''골판지 교복'''을 학생들에게 착용시킨 학교이다.[28]
게다가 더 가관인 점이, '''하의는 청바지.''' 교복 부활 시기에 이 학교에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서 교복이 저렴하게 나오게 하려고 저렇게 디자인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MBC 시사메거진 2580 1996년 3월 3일 방영분 참조)
당시 교복은 장위시장, 학교 앞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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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복도 정상은 아니었는데 명찰 색(파란색, 녹색, 빨간색) 단색의 맨투맨이었다. 2016년 새로운 교복과 체육복 세대의 신입생이 선배들 체육복 꼬라지 보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29]
그래도 2016년 신입생부터 굉장히 깔끔하고 평범한 새 교복을 착용하게 되어 남대문중 교복의 악명은 이제 옛 역사가 되었다.
6.2. 주요 행사
6.2.1. 남대문 예술제
1년에 한 번, 10월 말에 예술제를 개최한다.
예술제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문학작품, 미술작품, 과학발명품 등이 다목적실, 과학실, 도서실, 미술실에 전시되며, 학생들의 지원에 의한 공연이 개최된다.
6.3. 운동부
6.3.1. 축구부
1980년대 중반, 코미디언 서영춘의 아들인 서동균이 남대문중학교로 전학과 함께 축구부에 들어왔다. 당시 서영춘이 축구볼을 많이 기증했다는 후문이 있다.
2017년 초까지는 축구부가 존재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았는지 해제되면서''' 축구부였던 학생들이 모조리 축구부를 보유하고 있는 다른 중학교로 전출되었다. 비록 해체되었지만,
축구감독 최강희(축구인), 축구선수 박주호가 남대문중학교 축구부 출신으로 남아있다.
6.3.2. 농구부
학교가 축구는 못하는데 농구는 잘한다고 한다. 가끔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아온다. 따라서 농구부는 계속 존치되고 있다.
7.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7.1. 버스 노선
7.2. 철도
8. 사건·사고
8.1. 교감 비리 및 감사 협박 사건
2017년 11월 1일, 성북구의 한 사립학교에서 일어난 비리와 그 태도에 대한 뉴스가 떴다. 링크 기사에 따르면, 감사관에게 목을 치겠다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것을 본 남대문중학교 학생들은 어느 학교며 어느 교사인지 바로 알게 되었고, 졸업생의 댓글로 실명이 공개되어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지게 되었다.
당사자의 평소 행실 또한 성희롱으로 충분히 고발이 가능[31] 한지라 학생들 사이에선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9. 출신 인물
10. 관련 문서
[1] 학교법인 광운재단에 소속된 거의 모든 학교가 사용 중인 교훈이다.[2] 남대문중학교 인근 주택단지의 재개발이 완료된 곳에서는 여학생들의 원거리 통학을 우려해 남대문중학교의 남녀공학을 원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관련 글들이 등장하고 있기도 하고. 그러나, 2000년대 초 대부분의 공립중학교와 일부 사립학교가 남녀공학화 되었을 때 같은 재단소속의 광운중학교는 끝까지 남자중학교로 살아남았다. 광운학원 자체가 전자, 공업쪽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3]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주위 인구가 줄어들어 학생이 적다.[4] 2017년 4월 달에 리뉴얼 되었다.[5] 현 재학생들의 아버지 세대부터 30년 이상 남대문중에서만 교사생활을 했던 인물이다. 4대천왕 버금가는 빠따질로도 유명해서 남대문중 출신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 교사 재직시 담당 과목은 체육.[6] 실제로 남대문중학교는 서울특별시 중구 봉래동1가 124에 위치하였는데, 좌측으로는 서울역, 우측으로는 남대문이 위치하였다. 1960년대에 장위동으로 이전하지 않았더라도, 도심 인구의 감소와 도심지 재개발로 인해 학교 위치의 이전은 언젠가는 이루어졌을 것이다.[7] 역시 이전 당시 월계중학교는 개교 이전이었고, 같은 재단 소속 초등학교인 광운초등학교의 교명 변경 전 명칭이 '월계국민학교'였기 때문에 월계중학교로 변경되었을수도..[8] 하단에 서술할 교감의 비리와 막말 사건으로 기자들이 학교에 자주 출입할 때, 교사들의 무기(...)를 모두 처분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그래서 학교 역사와 교사의 경력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무기들이 사라졌다. [9] 갑빠를 움직이며 도치송을 따라 부르게 하였다. 존나게 맞고 피똥싸 피똥피똥싸~~ 수업 자체는 재밌었다.[10] 가로세로집합, 줄줄이 2초, 물레방아 등등 담당 학급의 학생들의 실력 진작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도봉산에서 구입해 온 주걱이 포인트였으며, 4대천왕 중에서도 탑랭크에 속하는 분이다.[11] 간혹 4대천왕에게 걔기는 학생들이 있긴 했으나, 이들을 한 번 겪고 난 이후부터는 절대로 걔기지 못하였다. 속칭 날라리 학생들도 이 분들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었다.[12] 운동장이 좁은 것은 사실이나, 인근 월곡중학교 운동장보다는 확실히 크다.[13] 사실 길건너편에 같은 재단인 광운중학교에서 월계동 남자를 싹싹 긁어가기 때문에 남대문중학교는 최대한 장위동과 석관동에서 남자를 긁어모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장위동 인수가 줄어들면서... [14] 이로 인해 인근 장위중학교, 월곡중학교, 석관중학교는 남학생 수에 비해 여학생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여초학교였다. 최근에 조금 완화되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상술된 3학교는 여학생 비율이 더 높다.[15] 근처에 위치한 석관고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많이 진학하는 학교였다.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에서 남대문중학교 동창들을 제법 많이 만났다.[16] 하지만 교무실과는 매우 가까워서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 그리고 체육관과는 멀다.[17] 컨테이너 건물이며 외관공사를 거치며 타일을 붙였다. 그래서 여름엔 매우 덥고 겨울엔 매우 춥다. [18] 불과 몇 년 전만해도 학년당 10학급씩 있었으나, 남대문중학교 배정지역인 장위동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학급 수가 감소했다. 입학생 수만 보자면 학급 수를 더 줄여도 문제 없으나, 학급 수를 쉽게 줄일 수 없는 사립학교의 특성과 추후 장위동 재개발이 완료되었을시의 학생 수 증가를 대비하기 위해 학급 수 감축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임.[19] 1990년대 후반에는 이 곳에서 기술가정 수업을 실시했다. 상당히 음침한 분위기였고, 담당 선생님이 당시 4대천왕 중 한 분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알아서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공작실이라는 이름답게 각종 공구들도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20] 이 글을 작성하는 사람은 1990년대 후반부에 남대문중학교에 다녔었는데, 이 당시에도 매점은 없었다.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좌측(광운초등학교쪽) 농구대 뒷편의 1층 창고가 매점이었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 매점이 폐쇄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매점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 앞 담벼락에서 쉬는시간마다 학교 앞에서 분식, 군것질거리를 판매하시던 아주머니께서 담벼락에서 군것질거리를 판매하시기도 하셨다. 재개발로 인해 학교 앞 주택단지가 큰 도로와 아파트로 바뀌었기 때문에 아련한 옛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21] 과거에는 이 후문이 정문이었고, 현재의 정문은 없었다.[22] 1990년대 후반부에는 이 후문 옆이 우유급식판을 수령하고 반납하는 공간이었다.후문과 가장 가까운 학교 1층 출입구로 들어가면 보건실이있었고, 1학년 10반, 2학년 10반, 3학년 10반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우유를 더 먹고 싶었던 2, 3학년 선배들은 간혹 1학년 교실로 와서 우유를 가져가곤 했다. 물론 4대천왕 선생님들에게 이 사실이 전파되어 그런 행동을 한 선배들이 숙청된 이후로는 다시는 이런 일이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4대천왕 선생님들은 정말 파워가 막강했다.[23] 1960년대에 남대문중학교가 장위동으로 이전했을 때만 하더라도 남대문중학교의 부지는 남대문중학교 부지 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위치한 광운초등학교 부지까지 포함된 매우 넓은 부지였다. 따라서 축구뿐만 아니라 야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운동장 규모였다. 본관 앞 구령대 아래에는 체육 기자재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야구헬멧, 배트 등이 정리과정에서 나올 정도였다. 단, 광운초등학교가 광운대학교 교내에서 개교하고 이후 남대문중학교 부지의 절반을 가지고 이전해옴에 따라서 남대문중학교의 부지는 확 좁아지게 되었다.[24] 학교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농구대를 교체한 이유가 바로 '''봉고차가 농구대를 들이받아서(...)'''이다. 또한, 지금은 학교 내에 있는 모든 농구대를 전부 교체했다.[25] 체육관이 지어진 부지에는 농구코트와 냄새가 정말 심하게 날 것 같은 1층짜리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이 화장실은 본관 4층 화장실이 신설되고 난 후, 개조공사를 거쳐 창고로 활용되기도 했다[26]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남대문중학교 본관에는 홛장실이 1층, 2층, 3층에만 존재했다. 4층의 교실 1개의 크기를 줄여서 줄인 공간만큼의 크기를 복도로 만들고, 3층 화장실 위에 4층 화장실을 만들어서 4층 화장실을 갈 수 있는 통로로 활용했다.[27] 인근 월곡중학교의 운동장이 더 좁은 것이 사실이다. 월곡중학교의 경우 기존 운동장 부지에 체육관을 짓게 될 경우, 운동장 전체가 없어질 수 있을 정도로 소규모운동장을 보유하고 있다.[28] 교복 브랜드 업체의 담합으로 인하여 교복 가격이 비싸짐에 따라 교복을 강제적으로 양복 자켓에 청바지로 통일해버렸다.[29] 사진에 나온 건물이 남대문중학교의 본관이다. 가운데에 대각선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있는 부분이 앞서 서술된 공포의 중앙계단이다.[30] 평일 출·퇴근 시간대 한정 일 2회 왕복[31] 칠판에 성기와 유사한 형체를 그리거나 검열 같은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는다. '''남학교라고는 해도 그런 말을 좋아하는 학생만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