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란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배구선수. 선수 정보 흥국생명 전성기를 이끌었던 7공주 멤버중의 한 명인 월드클래스 리베로.
2. 선수 생활
초등학교 4학년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처음 배구를 시작했으며, 배구 명문인 경남여자고등학교의 주장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는 레프트 공격수였다. 1995년 슈퍼리그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거의 끝 순위로 간신히 흥국생명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작은키로 사이드 공격수 자리를 맡기에는 무리라 프로에 와서는 리베로 포지션에서 자리를 잡게된다.[2]
최광희와 김해란, 남지연 사이에 위치한 시대에 활동했고. 1998년 슈퍼리그의 리베로 상을 받았으며 2002년 월드리그에서 리시브, 디그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다. 몸 담은 팀은 만년하위 흥국생명이었으나 선수 말년인 2006년에 김연경-황연주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함께하며 꿈에 그리던 우승 트로피를 경력에 담았다. 2000~2006년 까지 국가대표 리베로로 활동했던 구기란은 2007, 2008년 두해 연속으로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2007~2008 시즌을 마친 후, 결혼과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국가대표 경력
- 2000년 월드그랑프리 배구대회, 시드니 올림픽
- 2001년 월드그랜드챔피언쉽
- 2002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부산 아시안게임
- 2003년 월드컵 배구대회
- 2005년 월드그랑프리 배구대회, 아시아여자선수권, 월드그랜드챔피언쉽
- 2006년 월드그랑프리 배구대회
2.2. 수상 경력
- 1998년 한국배구슈퍼리그 리베로상
- 2002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리시브상, 디그상
3. 여담
- 김연경이 입단할 당시에 구기란은 팀내 유일한 70년대생의 최고참이었으며, 김연경이 제일 어려워하는 선배였다.[3] 신입이 당연히 기가 죽기 마련이긴 하겠지만 순해 보이는 외모와는 완전히 다른 구기란의 카리스마는 후술할 여러 사례들이 증명한 바가 있어 수긍이 갈 정도.
- 2002 세계선수권대회 리베로상을 수상한 구기란의 상금 20만 달러를 대한배구협회가 갈취한 사건이 있었다. 국제관례상 국제대회 부문별 수상자는 선수 본인 60%-소속국가 협회 30%-소속팀 10%로 분배하도록 되어있는데, 대한배구협회가 중간에서 몰래 가로채려다 탄로나서 문제가 발생됐다. 이에 구기란이 문제를 제기하고 공론화하자 결국 관례대로 상금을 구기란에게 주고 거기에 약간 생색내기로 배구협회 주관으로 특별선수상을 주는 선에서 마무리지었다.
- 흥국에서만 활약했던 180cm의 거포 양숙경(1977년생)이 2003년에 동기 구기란과 파벌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파벌 싸움의 이유로는 주장인 구기란의 억압적인 태도에 팀원들이 불만이 생겨난것으로, 흥국생명은 양숙경과 정지윤이 2003년 일본 전지훈련 도중 다른 선수들과 불화를 빚어 선수단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을 팀에서 내보내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그 결과 양숙경은 은퇴. 반면 정지윤은 은퇴할뻔하다가 다시 GS칼텍스로 복귀하여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이 파벌 싸움은 기사로 나오기도했다.# 이 사건이 끝인줄 알았지만 다음해에 더 큰 사건이 벌어진다.
- 05-06시즌 일신여상 114연승과 호남정유 92연승을 만들어낸 여자배구 레전드 감독 김철용이 시즌중에 황현주 감독을 밀어내고 흥국생명 사령탑이 된다. 그해 9월 13일 새벽 선수 10명이 숙소를 무단이탈하는데 전날 세화여고와의 연습경기 중 김철용 감독 앞에서 수건을 내팽겨치며 자리를 떠나버렸던 최고참 구기란이 주도한 일로, 일명 '구기란의 난'으로 불린다.[4][5]
내가 책임 지겠다, 회사와는 이야기가 끝났다며 후배들을 이끌고 전임 단장인 당시 흥국화재 사장을 찾아가서 김철용의 해고를 이끌어낸 여장부이다. 김철용 감독의 해고 사유는 선수들과 종교적 갈등을 빚으며 관리 책임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였다. 2003년 방신봉과 이호를 은퇴시키려는 감독의 움직임에 집단이탈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실패한 현대캐피탈의 전례가 있음에도 반란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 김철용 감독 밑에서 코치로 있던 이도희도 같이 짤려 나갔다.#
- 프로필 사진에서 볼 수 있듯히 귀고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당시 현재 보다 팀 규율이 엄격해 아무나 귀고리를 할 수 없었다. 2005년 당시 흥국생명에 귀고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2명뿐이었다. 11년차 구기란과 8년차 이영주. 7년차 이하는 귀를 뚫을 수 없다는 내부 규율 때문이다. 머리를 기를 수 있는 연차는 3년차이고, 염색은 2년차부터 가능했다.
- 은퇴 후 결혼했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근황이 전해지지 않았는데 2019년에 경남 소재 한 대학교 내에 있는 카페에서 근무중이었던 게 목격됐다.#
4. 관련 문서
[1] 10월 3일로 보는 곳도 있으나 배구연맹 홈페이지나 국제스포츠 정보센터 자료에 의하면 3월 10일이 출생일로 기록되있다.[2] 이당시 흥국 주전 레프트는 정은선이었으며, 자주 국가대표로 뽑혔었다. 입단 동기인 양숙경도 주전 레프트 한자리를 차지했고 국가대표에 간간히 이름을 올렸었다.[3] 지금은 흥국생명의 숙소가 1인 1실로 바뀌었지만, 김연경이 입단할 당시에는 2인 1실로 김연경은 최고참이던 구기란과 같은 방을 쓰기도했다.[4] 김철용 감독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 선수들에게 예전부터 종교를 강요하는 일도 있었고, 훈련 방식이 스파르타식으로 구 시대적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트러블이 났던것으로 보인다.[5] 구기란이 자신의 숙소에 달마도를 걸어놓았는데, 김철용 감독이 구기란이 아끼던 달마도를 태워 없애 버려서 이에 화가 난 구기란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계기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는 카더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