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희(배구)
1. 소개
대한민국의 전직 배구 선수, 현 남양초등학교의 코치.
대한민국 여자 배구계의 레전드. 그리고 물샐 틈 없는 수비, 빠른 공격을 팀 컬러로 했던 정통 대한민국 여자배구 최후의 보루였다.
2. 선수 생활
1993년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일합섬 여자배구단에 입단했다.[2] 최광희는 청소년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할 정도로 실업 입문 당시 즉시 전력감으로 통했고, 당시 김남순의 팀이자 슈퍼리그의 콩라인이었던 한일합섬 전력의 한 축으로서 루키 시즌부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창 연승 가도를 달리던 LG정유를 뛰어넘지 못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여자배구 팀들이 줄줄이 해체하는 가운데 한일합섬도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결국 한일합섬이 창단 9년 6개월 만에 해체되면서 최광희 역시 실업자 신세가 되어 1998 시즌 슈퍼리그에 뛸 수 없었다. 시즌이 끝나고 팀이 해체된 후, 여름 오프 시즌에 드래프트를 통해 한국담배인삼공사(이하 KT&G)에 이적했다.[3]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날 때 즈음 KT&G는 베테랑 김남순과 최광희의 가세로 꼴찌 팀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KT&G는 다크호스가 될지언정 현대건설이나 공사 라이벌인 도로공사와 나란히 하는 강팀이 되기에는 뭔가 모자랐고, 2000년대 초반 좋은 신인(김세영, 이효희, 임효숙, 박경낭 등)들이 들어오고 나서야 강팀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 때부터 최광희는 팀의 큰언니 역할을 자처하며 후배들을 이끌었고, KT&G의 주포로 맹활약하며 2005년 V-리그 원년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MVP를 차지하며 최광희 본인은 물론 KT&G 프랜차이즈 최초의 우승을 이끌었다. 공수 양면에서 고른 활약과 팀의 큰언니로 후배들을 잘 이끈 리더십이 돋보였다.
최광희의 진가는 국가대표팀에서 빛났다. 물론 성인배구 초반 넘사벽의 선배들 때문에 주전 날개 공격수로서의 기회를 얻을 수 없지만, 1996년 리베로#s-4.1제가 도입되면서 대표팀의 거의 최초의 주전 리베로로 활약했고, 2000년대 들어 대표팀의 주포로 활약했다. 2000 시드니 올림픽 8강[4] ,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 6위, 2004 아테네 올림픽 8강을 이끌었다.
하지만 멸사봉공으로 뛴 탓인지 선수 말년에 가서는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시달려야만 했고,[5] 2006-2007 시즌 후반부에서는 더 이상 허리 부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리베로로 전향하며 시즌을 마감한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KT&G의 최하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팀을 위해 열심히 활약한 그녀의 모습에 많은 팬들은 '광희본좌', '여자배구 대통령'이라 칭송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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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 시즌 개막전에서 여자배구 선수로는 사상 최초로 은퇴식을 치렀다. 최광희는 15시즌 동안 정들었던 배구 코트를 떠나면서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고, 배구팬들 역시 은퇴하는 레전드의 뒤안길을 함께 했다. 리베로는 윙스파이커 임명옥에게 넘겼다.
2.1. 국가대표 경력
- 올림픽 : 1996 애틀랜타, 2000 시드니, 2004 아테네
- 세계선수권 : 2002
- 월드컵 : 1995, 1999, 2003
- 월드그랑프리 : 1995, 1996, 1999, 2000
- 그랜드챔피언스컵 : 2001
- 아시안 게임 : 2002
- 아시아선수권 : 1995, 1999, 2001
2.2. 개인 수상
- 2003 아시아선수권 득점상
- 2005 V-리그 챔피언결정전 MVP
3. 플레이 스타일
플레이 스타일은 날개 공격수로서 키가 작지만 힘을 이용한 돌파와 상대 블로커를 이용한 공격을 선호했다. 돌파공격과 상대 블로커 벽을 이용한 터치아웃을 많이 유도했던 스타일. 쉽게 말하자면 신진식과 비슷하다고 볼 수있다. 그만큼 배구 지능이 뛰어났던 선수였다. 수비는 그야말로 넘사벽 수준이다. 한일합섬 시절부터 김남순, 구민정의 대각에 서서 보공 역할을 했고, 국가대표팀에서도 장윤희, 정선혜 등을 보조해 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2000 시드니 올림픽 때 국가대표 리베로로 활약하기도 했고, 비록 부상 때문이긴 했지만 선수 말년에 리베로로 활약하며 당시 구멍났던 KT&G의 후위 라인을 든든히 지켰다.
이런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최광희는 정통 대한민국 여자배구 최후의 보루로 평가받았으며, 최광희의 은퇴는 바로 정통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종언과 함께 현재 '김연경과 아이들'로 불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배구의 시작을 알리는 분기점이 되기도 했다.
4. 은퇴 이후
은퇴 후 2008년부터 실업 팀 화성시청 남자배구단의 코치와 대한배구협회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원으로 활약했다. 특히 2012 런던 올림픽 4강은 '김연경의 쇼타임'이 컸지만, 오랫동안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면서 축적된 최광희의 전력분석 역시 큰 힘을 발휘했다.[6] 미래에 여자프로배구 감독이 되고 싶은게 꿈이라고 한다.
2013-14 시즌 올스타전을 앞두고 펼친 V-리그 출범 10주년 역대 베스트 7의 수비형 레프트 부문에 뽑혔다. 역대 베스트 7 중 유일한 은퇴 선수[7] 로, V-리그 출범 후 단 3시즌만 뛰었지만 역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선수를 팬들은 잊지 않았다.
2016년 서남원 감독이 대전 KGC인삼공사의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전략코치로 부임했다. 2007년 은퇴 이후 9년 만에 코칭스태프로 인삼공사에 돌아왔다.
5. 여담
- 2003 월드컵에서 한국의 스타 플레이어로 소개되었다.#
6. 관련 문서
[1] 선수생활 중에 진학했으며, 은퇴 후 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이수 중이었다.[2]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는 한일그룹이 재단으로 있던 학교로, 한일전산여고 출신 졸업생들은 한일합섬 배구단에 그대로 입단했었다.[3] 김남순도 동 시기에 이적했다고 나왔으나 그건 아니고, 팀 해체 후 당시 한전 선수인 김철수(현 한전 감독)와 결혼해서 공백기를 가졌다. 출산한 후 김형실 당시 담배인삼공사 감독의 제의로 2000년 4월에 복귀했다.[4] 당시 대한민국 배구 여자 대표팀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메달권 입상이 유력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세계구급의 전력을 갖췄다. 그러나 8강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통한의 패배를 당하며 메달 획득의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된다.[5] 6급 장애 판정을 받을 정도로 안 좋았다고 한다.[6] 중계 때 서브를 넣는 자리 뒷편에 항상 전력분석관석에 앉아 있는 최광희가 화면에 찍혔다.[7] 참고로 나머지 베스트 7은 다음과 같다. : 공격형 레프트 - 김연경(터키 페네르바흐체 SK), 라이트 - 황연주(현대건설), 센터 - 양효진(현대건설), 정대영(GS칼텍스), 세터 - 김사니(아제르바이잔 로코모티브 바쿠), 리베로 - 김해란(도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