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조씨(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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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의 후궁. 화유옹주의 생모.
그러나 영빈 이씨는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가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숙의 문씨는 폐출되어 사사되었으니 존재감은 없어도 조씨의 삶이 나름 평온하고 안락했다고 볼 수 있다.
정조에 의해 종1품 귀인으로 품계가 오르고 2년 뒤 사망했다.[2] 조씨의 사후에 제사는 사위 황인점(黃仁點)의 가문인 창원 황씨 집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씨의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32(원미로281번길 35)에 있는데, 인근에 화유옹주와 사위 황인점의 합장묘가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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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영조의 후궁. 화유옹주의 생모.
2. 생애
사위의 가문인 창원 황씨 가문에 전해지는 《영세보장(永世寶藏)》의 묘표에 따르면, 1716년(숙종 42년) 10세의 나이로 궁녀가 되었고 나이 29세에 숙원이 되었다. 1740년(영조 16)에 영조의 열 번째 딸 화유옹주를 낳는다. 살아생전의 기록의 별로 남아있지 않고, 다른 후궁인 영빈 이씨와 숙의 문씨에 비하면 존재감도 흐릿한 편. 오죽하면 사극에서도 배우들이 이 역할로 나온 적이 없다.영고께서 집안을 바르게 하여 / 寧考正家
교화가 이남에 두루 미치니 / 化洽二南
영령이 이에 순응하여 / 靈維順序
그 마음을 밝게 살폈네 / 洞屬其心
의복을 검소하게 하여 / 衣不曳地
기리는 말이 궁중에 퍼졌고 / 譽播宮闈
희미한 저 작은 별에 / 嘒彼小星
오히려 남은 광휘가 있었네 / 尙有餘輝
화유옹주와 무덤이 가까워 / 和柔近岡
신리가 매우 편안하니 / 神理孔安
행차가 지나는 이날에 / 輦過是日
한 잔 술을 따르네 / 迺斟一尊
《홍재전서》, 淑嫒趙氏墓致祭文
그러나 영빈 이씨는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가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숙의 문씨는 폐출되어 사사되었으니 존재감은 없어도 조씨의 삶이 나름 평온하고 안락했다고 볼 수 있다.
정조에 의해 종1품 귀인으로 품계가 오르고 2년 뒤 사망했다.[2] 조씨의 사후에 제사는 사위 황인점(黃仁點)의 가문인 창원 황씨 집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씨의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32(원미로281번길 35)에 있는데, 인근에 화유옹주와 사위 황인점의 합장묘가 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