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 조씨(영조)

 

[각주]


'''조선 영조의 후궁
귀인 조씨 | 貴人 趙氏
'''
'''출생'''
1697년(숙종 33년) 10월 16일
'''사망'''
1780년(정조 4년) 12월 14일
(향년 84세)
'''본관'''
풍양(豐壤)
'''부모'''
부친 조태징
모친 밀양박씨
'''부군'''
조선 영조
'''자녀'''
2녀
(1녀) 옹주 (조졸)
(2녀) 화유옹주
'''묘소'''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 32[1]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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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영조의 후궁. 화유옹주의 생모.

2. 생애


영고께서 집안을 바르게 하여 / 寧考正家

교화가 이남에 두루 미치니 / 化洽二南

영령이 이에 순응하여 / 靈維順序

그 마음을 밝게 살폈네 / 洞屬其心

의복을 검소하게 하여 / 衣不曳地

기리는 말이 궁중에 퍼졌고 / 譽播宮闈

희미한 저 작은 별에 / 嘒彼小星

오히려 남은 광휘가 있었네 / 尙有餘輝

화유옹주와 무덤이 가까워 / 和柔近岡

신리가 매우 편안하니 / 神理孔安

행차가 지나는 이날에 / 輦過是日

한 잔 술을 따르네 / 迺斟一尊

《홍재전서》, 淑嫒趙氏墓致祭文

사위의 가문인 창원 황씨 가문에 전해지는 《영세보장(永世寶藏)》의 묘표에 따르면, 1716년(숙종 42년) 10세의 나이로 궁녀가 되었고 나이 29세에 숙원이 되었다. 1740년(영조 16)에 영조의 열 번째 딸 화유옹주를 낳는다. 살아생전의 기록의 별로 남아있지 않고, 다른 후궁인 영빈 이씨숙의 문씨에 비하면 존재감도 흐릿한 편. 오죽하면 사극에서도 배우들이 이 역할로 나온 적이 없다.
그러나 영빈 이씨는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가 먼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숙의 문씨는 폐출되어 사사되었으니 존재감은 없어도 조씨의 삶이 나름 평온하고 안락했다고 볼 수 있다.
정조에 의해 종1품 귀인으로 품계가 오르고 2년 뒤 사망했다.[2] 조씨의 사후에 제사는 사위 황인점(黃仁點)의 가문인 창원 황씨 집안에서 지내게 되었다.
조씨의 묘소는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 산32(원미로281번길 35)에 있는데, 인근에 화유옹주와 사위 황인점의 합장묘가 같이 있다.
[1] 귀인 조씨의 묘는 본래 부천시 작동 산 112-19에 조성되었으나, 2005년 4월 현재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2] 정조실록 5권, 정조 2년 3월 2일 임술 2번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