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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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문의 변(禁門の変). 하마구리어문의 변(蛤御門の変)이라고도 불린다. 8.18 정변으로 교토에서 쫓겨난 조슈가 하마구리 문 전투를 시작으로 교토에서 일으킨 반란. 처음엔 조슈가 우세를 점하는 듯 보였으나, 사츠마와 아이즈가 교토의 황궁을 방어하는데 성공하면서 이내 패배하게 된다. 이는 제1차 조슈정벌의 원인이 된다.
2. 상세
고메이 덴노가 양이 토벌의 명령을 내리면서, 존왕양이 사상이 일본 내에 퍼지게 된다. 그러면서 존왕파와 양이파의 세력도 불어나는데, 그 중에는 사츠마와 조슈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조슈는 시모노세키 전쟁과 8.18 정변, 그리고 뒤따른 이케다야 사건까지 겹치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완전히 밀려난 상태였고,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정변을 일으켜 쇼군의 권력을 천황에게 되돌리려는 계획을 세운다.[1]
여하튼, 그렇게 계획을 세운 조슈번은 1864년 8월 20일, 교토의 하마구리 문을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처음에는 막부군을 상대로도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사츠마와 아이즈가 연합하여 교토의 황궁을 성공적으로 방어하면서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다. 이 때 조슈가 퇴각하는데 시간을 벌기 위하여 교토에 불을 질렀는데,[2] 이 불이 번지면서 타카츠카사 가[3] 의 저택이 불타기도 한다.
이어서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고, 조슈는 교토에서 완전히 퇴출된다. 그러면서 천황의 국사어용계(国事御用掛)[4] 였던 나카야마 타다야스[5] 가 책임을 지고 교토에서 쫓겨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막부는 이 일을 계기로 1864년에 일어나는 제1차 조슈 정벌을 계획하게 된다.
[1] 그러나 천황에게 권력을 되돌리는 것보다도, 천황을 이용하여 다른 파벌에 대하여 정치적인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컸다고 볼 수 있다.[2] 퇴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투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질렀다는 설도 있다.[3] 고셋케 중 하나인 공가.[4] 막부 말기에 국사를 논의하기 위하여 설치된 관직[5] 고메이 덴노의 첩이자 메이지 덴노의 어머니 나카야마 요시코의 아버지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