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고쇼

 


(きょう(((しょ | Kyoto Imperial Palace
교토고쇼의 정전인 자신전(紫宸殿, 시신덴) 전경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주요 건축
5. 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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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토고쇼의 지도.
일본 교토부 교토시 카미교구에 위치한 궁전이다. 영어명은 Kyoto Imperial Palace.
역사적으로 금리(禁裏), 내리(內裏)라고 불렸으나 천도 이후 교토 어소라고 부르게 되었다. 헤이안 시대 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헤이안 시대 양식을 간직한 정전 자신전(紫宸殿)과 일상생활을 하였던 어상어전(御常御殿) 등이 보존되어 있다.
참고로 공식명은 초기 명칭 그대로 평안궁(平安宮/ 헤이안큐)이다. 이 궁궐이 황거였을 시절 덴노들의 거처가 죄다 평안궁으로 적혀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그냥 교토어소(京都御所), 교토황궁(京都皇宮) 아니면 그냥 어소(御所)라고 부른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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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년에 간무 덴노가 지금의 교토인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했을 때는 고쇼가 헤이안쿄 북쪽 가운데의 광활한 부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도성을 가로지른 주작대로를 기점으로 도성 서쪽이 습지대라 거주하기 부적절해 도심이 점차 동쪽으로 옮겨갔고, 고쇼 또한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2km나 이동하면서 면적도 초기 궁전보다 협소해졌다. 여기에 오닌의 난 때 교토가 불바다가 되고 센고쿠 시대의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덴노가 고쇼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몇몇 덴노들은 귀족들의 저택에서 지내기까지 했다.
그래도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아시카가 요시미츠가 고쇼 부지를 확장하기 시작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를 정비했으며, 에도 시대에도 8차례 중건했다. 1855년(안세이安政 2년)에 마지막으로 중건하여 지금 같은 모습이 되었으므로 '안정내리(安政内裏/안세이 다이리)'라고도 불린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주요 전각을 해체해 부재를 보관한 적도 있었다.
관람객휴게실 안에는 과거 어소의 도면을 전시 해 놓고 있는데, 해당 도면들을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는 현재보다 전각의 수가 훨씬 많았으나 상당수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3. 특징


가마쿠라 막부 중기에 고곤 덴노가 거주하기 시작한 이래 메이지 시대 초기까지 약 550년 동안 일본 황실이 소재했던 곳이다. 교토 사람들 중 일부는 교토에서 도쿄로 공식적으로 천도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도쿄의 황거천황이 임시로 머무는 행궁이며 교토고쇼가 정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쇼와 덴노까지는 이 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으나, 아키히토 덴노는 도쿄의 황거에서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이 곳 자신전에 보관된 어좌대를 해체한 후 황거에서 조립해 사용했다가 다시 교토어소로 갖다놓았다. 오늘날에도 천황, 황후, 황태자, 황태자비가 교토를 방문할 때 또는 국빈이 방문했을 때 영빈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교토의 3대 마츠리 중 하나인 지다이마츠리의 행렬이 이 곳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천황의 행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내 외국인 모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행사이다.
주변 지역은 주택가이며, 흔한 일본의 주택가답게 해가 지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스산한 느낌도 든다. 새벽에는 교토어소 안을 걷거나 외곽을 달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궁내청 참관 안내 사이트

4. 주요 건축


'''사진'''
'''설명'''
'''건례문(建礼門, 켄레이몬)'''
어소의 정남문이자 가장 격식이 높은 문으로,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덴노 부부 또는 외국 국가원수가 방문할 때만 열린다.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을 얇게 벗겨서 이은 히와다부키(檜皮葺)로 되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승명문이 나온다.
'''승명문(承明門, 쇼메이몬)'''
건례문을 지나면 나오는 문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히와다부키로 되어 있다. 승명문 동쪽에는 장락문(長楽門, 쵸라쿠몬), 서쪽에 영안문(永安門, 에이안몬)이 있으며, 승명문을 지나면 자신전이 나온다.
'''자신전(紫宸殿, 시신덴)'''
어소의 정전으로 조하, 덴노의 즉위식, 황태자 책봉, 외국 사신 접견 등 조정의 공식적인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내부에는 즉위식 대 사용하는 덴노의 어좌인 타카미쿠라(高御座)가 있다. 자신전 정면에 펼쳐진 정원에는 하얀 자갈이 깔려 있고 시신덴 정면 좌우에는 왼쪽에 벚나무를, 오른쪽에 나무를 식수했는데 이는 조정의 문무백관을 상징한다. 지붕은 히와다부키로 되어 있다. 여름에 더운 교토의 기후 때문에 다른 전각들이 바람을 들이기 위해 동향한 반면, 군주는 남면(南面)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1] 자신전은 동향이 아니라 남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칸 수 역시 천자의 격식인 9칸으로 되어있다.
'''청량전(清涼殿, 세이료덴)'''
청량전 북서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헤이안 시대 초기에는 덴노의 침전이었으나 중기부터 편전+정전의 역할 일부를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황후의 어좌인 미쵸다이(御帳台)가 있다.
'''춘흥전(春興殿, 슌코덴)'''
자신전 동쪽에 있는 전각이다. 1915년 다이쇼 덴노의 즉위식 때 사용할 미쿠사노카무다카라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졌다.
'''제대부의 간(諸大夫の間, 쇼다이부노마)'''
입궐한 신하들이 덴노를 알현하기 전 대기하던 공간이다. 내부는 토라노마(虎の間), 츠루노마(鶴の間), 사쿠라노마(桜の間)로 나뉘어 있는데, 신분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 순서에 따라 장지문에 그려진 호랑이··벚꽃 그림으로 구분했다.
'''소어소(小御所, 고고쇼)'''
자신전 건물의 북동쪽, 오이케니와 정원을 바라보면서 세워져있는 노송나무 껍질로 엮어만든 팔작지붕의 전각으로, 헤에안쿄 시절의 내리에서는 볼 수 없는 어전이다. 성년식등의 행사에 사용되며 또한, 천황이 쇼군(將軍)이나 제후와 만나는 장소로써도 사용되었다. 왕정복고의 포고가 내려진 후의 '소어소회의'는 1867년 12월 9일밤에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신덴즈쿠리(寢展造)양식을 기본으로 하며 안채는3칸으로 나누어 다다미를 깔고 천장이 있는 쇼인즈쿠리(書院造) 양식이다. 덧문은 아래위 두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윗쪽은 바깥쪽으로 밀어 열도록 되어 있으명 아래쪽은 격자로 만들어져 있다. 1954년에 소실되어 1958년에 복원되었다.
'''어학문소(御学問所, 오가쿠몬쇼)'''
'''어상어전(御常御殿, 오츠네고텐)'''
'''어삼간(御三間, 오미마)'''
'''영춘(迎春, 코슌)'''
'''어량소(御涼所, 오스스미쇼)'''
'''청설(聴雪, 쵸세츠)'''
'''황후어상어전(皇后御常御殿, 코고오츠네고텐)'''
'''비향사(飛香舎, 히교샤)'''

5. 가는 방법


교토 시영 지하철이마데가와역, 마루타마치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케이한 전철 종점 데마치야나기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다. 또한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가 왕복 2차선 도로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1년에 봄과 가을 2번만 닷새 동안 일반 공개가 있으며, 해당 기간 이외에 관람을 원하는 경우 궁내청 참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참고로 영어 안내 코스는 예약하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2달 전에 들어가도 만원인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 영어안내 코스가 만원이면, 일본어 한마디 못해도 일본어 표준코스로 가야만 한다. 외국인이 일본어 표준코스를 예약하려면 홈페이지를 일본어버전에서 영어버전으로 바꿔야 한다.
2016년 7월 26일부로 연중공개로 변경되었다. # 입장료는 무료지만 입장 전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한다. 또한 계절별 개관 시간이 다르며 휴관일도 그때그때 다르므로 위 링크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1] 중국에서 유래한 유교적인 원칙이다. 북극성이 하늘의 북극점에 있으므로 다른 별들은 북극성에 비하면 전부 남쪽에 있다. 북극성을 군주에 비겼으므로, 군주도 북쪽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도록 궁궐을 설계하였다. 똑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의 경복궁이나 중국의 자금성도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