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가능성

 


법학 용어로, 사인이 적법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형법위법행위책임을 묻지 않게 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다.
형법의 범죄체계론의 역사에서 고전적 범죄 체계론 하에선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방위할 방법 없는 친족에의 위해를 통해 강요된 행위 역시 유죄로 인정해야 한다는 모순점에 도달하게 되기에[1] 이후 책임의 검토에서 기대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협박 등을 이유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대가능성이 없다"라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인(private person)이 적법한 행위를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지존파 사건의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는 살인범들의 협박에 의해 살인행위에 가담했는데, 그녀는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았다. 그 여성이 잔혹살인범들의 협박을 거부하고 살인이란 위법행위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NLL 근처에서 조업하다가 납북된 어부들이 북한 당국의 강요에 의해서 김일성묘를 참배하고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구호를 외쳤다는 사실이 귀환 후 발각되었지만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지 않은 것 역시, 그들에게 그런 걸 거절할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경우는 매우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인정된다. 당장 위에 예시로 나온 살인마들에게 감금돼 협박당하거나 북한에 납치당한 상황들이 조금만 생각해봐도 보통 상황은 아니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 형법 12조 중에서

친족 또는 동거의 가족이 본인을 위하여 전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제151조 중에서

또한, 기대가능성의 개념은 근대 법체계에서 법률을 지키느라 인륜을 저버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한 방어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가족이 현상수배범일 때 현상수배를 받는 가족을 해당자를 수배하는 수사기관에게 잡히지 않도록 숨겨준 것이 들켜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이 있다. 판례가 아니라 법이다. 범인은닉죄 참조. 가족이 곤궁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도와주는 것은 법 이전에 명백한 윤리에 의한 사항이고, 해당자가 현상수배범이라는 이유로 가족이 그를 숨겨주는 것마저 법으로 처벌한다면 이는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가족에게 패륜을 강제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그 본인은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을 현상수배범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조항이다.[2] 물론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감싸는 쪽을 택하곤 한다.
저것 말고도 일반인들에겐 좀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증거인멸죄. 한국 등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범죄자가 자기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는 증거인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아예 자수할 예정이었던 게 아닌 이상 범죄자가 자기 범죄행위의 증거를 없애는 건 너무 당연히 하는 행위이기 때문, 즉 이런 행위를 하지 않을 기대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3] 단 타인의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경우엔 성립되고, 자신의 범죄의 증거를 타인을 시켜 인멸했을 때에도 교사한 것으로 인정된다. 또 자신의 범죄의 증거를 적극적으로 인멸했음이 드러났을 때에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니더라도 '개전의 정이 없다', 쉽게 말해 '뉘우칠 생각이 없다'라고 하여 형이 더 무거워질 수는 있다.
법률의 실효성과는 다른 점이, 기대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사인이 위법한 행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법 집행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1] 고전적 범죄체계론에선 행위자가 위법한 행위를 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검토 없이 책임이 인정되었다.[2]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겹친다. 국가기관이 해당자를 범죄자라고 매우 강하게 의심해서 현상공고를 내걸고 현상수배를 때려도, 재판에 의한 유죄판결이 이뤄지지 않은 이상 해당인 본인이나 해당인의 친지, 가족들은 해당인이 무고하다고 믿을 신념의 자유가 있고 실제로도 해당인이 무죄라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범인의 부모형제나 친척들마저 그를 믿어주고 숨겨주는 것을 그 자체로 범죄로서 처벌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일지 생각해보자.[3] 영미법계에서는 이 경우도 증거인멸죄가 된다. 이렇게 보면 언뜻 대륙법계 쪽이 더 안 좋은 것 같겠지만, 양쪽 다 장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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