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공주

 

'''길선 공주'''
'''봉호'''
길선[1]
'''직위'''
대명태황공주

대명태황재보

'''가족관계'''
계후 고씨[2](어머니)
선선대 황제(아버지)
6황자[3](남편)

'''국적'''
대명태황
1. 개요
2. 소개
3. 작중행적
4. 기타


1. 개요


작약만가: 불환곡의 등장인물.
봉오제 행사 때 처음으로 등장. 중년 나잇대의 태황 황족 여성으로, 오륜공주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이고[4] 중년이던 황후와는 비슷한 연배로 보여, 당시는 황제의 누나 혹은 여동생으로 추정되었다. 혈연인 탓인지 황제와 어느 정도 얼굴상이 비슷하다.[5] 다만 첫 등장시엔 황제보다는 좀 더 온화한 인상으로 나왔다.[7]
운이 그녀와 오륜공주를 통틀어 '재보 숙모님들'이라 부르는 것을 보아 이복 형제와 혼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적통과 순수혈통에 집착하는 모습 때문에 그녀 또한 황후 소생의 적통 황녀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며, 그녀가 유일한 적통이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인 황자는 지금의 황제에게 제거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2. 소개


'''황제의 누이가 아니라 고모였다.''' 선선황제(금상의 할아버지)가 말년에 계후로 들인 태황인 고씨가 낳은 유복녀이다. 본인에게는 조카가 되는 선황(금상의 아버지이자 길선의 이복오빠)의 6황자(금상의 이복형제)와 혼인했다.

3. 작중행적


봉오제 때 황실 여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면서 첫 등장했다. 유일한 적통 황자인 2황자가 롱희의 처소에서 쓰러지는 사건이 터지자, 바로 롱희를 포박하라고 하고 롱희의 폐궁유폐까지 주장하는 걸로 보아 평소에도 롱희를 싫어했던듯. 덕빈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에 의하면 원래 태황의 황족들은 적통에 대해 무척 집착하는 편이라, 후궁이나 후궁 소생 황자에 대해 안 좋게 생각했던 듯.[8] 평소에 소거를 예뻐했다고 하는데도 정작 그들의 어머니인 롱희를 유폐시키는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걸 보면 무서운 사람이다. 황제의 말에 의하면 '바독범처럼[9] 치밀하고 소름돋는 권력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10] 소거의 재롱을 보며 하하호호 웃다가도 뒤로는 바로 그 소거의 어미를 처형하자고 주장[11]하는 등 황족의 이중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는 인물.
18화에서 황제에게 '그대가 그토록 원하는 권력을 줄테니 황후의 견제역(내명부 감시역)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 부탁을 듣자마자 황제가 황실의 권력구도를 황제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바꿀 겸 황후를 축출할 겸 그런 부탁을 했다는 것을 눈치챈다. 그리고 "폐하. 폐하는 저를 아직도 저를 그렇게 평하시는군요" 하고 음험한 표정으로 비웃듯이 답한다.[12]
19화에서 그녀의 사연이 본격적으로 밝혀진다. 길선은 선선대 황제(현 황제의 조부)가 말년에 새로 혼인한 계후에게서[16] 얻은 적통 황녀였다. 선대 황제(현 황제의 부친)에게는 딸 뻘인 여동생, 지금의 황제에게는 누나 뻘인 고모인 셈. 하지만 유복녀로 태어난 데다 모후 역시 권력이 약했던 탓에[17], 이복 오라버니(현 황제의 부친)인 선대 황제에 의해 정략혼으로 국외를 떠돌아다녔다고 한다.[18]
정치외교 차원에서 여러 번 혼인했던 모양인데, 훗날 선대 황제가 황권 강화 및 황실 내부의 결속을 위해 태황으로 불러들어 6황자(선대 황제의 아들이자 현재 황제의 형제. 즉 길선에게는 조카)와 혼인하게 되었다. 즉, '''길선은 현 황제와 고모-조카인 동시에 제수-시숙(아주버님)이고[19] 운/봉림/소거에게는 고모할머니인 동시에 숙모인 것이다.''' 1황자 운이 10회에서 길선 공주와 오륜 공주를 "재보 숙모님들"이라고 칭한 것이 이 때문. [20][22]

"폐하,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이 길선이 눈이 멀어 늙은 몸으로 젊은 친족과 혼인해 권력도 부도 빼앗아가는 탐욕스런 계집이라고 모욕하지만, 제 입에 칼을 물리고 그걸 명령한 것은 폐하의 부황이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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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선 자신의 언급에 의하면 가장 먼저 정략혼을 위해 국외로 나갔던 시기에 '''겨우 8살'''.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1학년이다. 게다가 정략혼 대상이었던 첫남편은 비슷한 나이라 함께 자라며 정을 쌓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길선을 보호하고 돌봐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무려 '''젖먹이'''(...) 젖먹이 남편을 품에 안고 숨죽이며 살았다고 말아는 걸 보면 그 시절의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을 듯하다.[23]
이후로도 자주 정략혼을 하러 국외로 떠밀리듯 나가게 되었다는 걸 보면 첫 남편과도, 그 이후의 남편들과도 안 좋게 끝난 듯. 길선 자신은 이 세월이 매우 힘들었는지 태황을 매우 그리워했다고 말한다.[24]
결국 귀향을 하긴 했는데 이조차도 선황이 길선을 다시 한 번 이용해 먹을 작정으로 불러들인 것이었으며, 이번의 결혼 상대는 선황의 6남, 즉 길선 본인의 3촌 조카였다. 이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은 권력 안정화를 위해 동생과 아들에게 근친혼을 강요한 선황을 비난한 게 아니라, 길선을 두고 "권력에 탐욕을 내어 늙은 몸으로 염치도 없이 젊은 친족과 결혼했다"고 씹어댔다고 한다. [25]
자신이 황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당한 것들에 대해 설움이 꽤 많이 있었는지, 황제에게

'''"제가 황자였다면 그리 보내지진 않았겠지요. 제가 황자라면 이 땅에 돌아오기 위해 이런 신분으로 황궁 문을 밟을 필요도 없었겠지요. 제가 황자였다면, 이 좁은 곳을 벗어나 제 발로 걸으며, 선황이신 큰 오라버니와 정치를 논하며[26]

같은 황족으로서 모든 것을 동등히 누렸겠지요!"'''

라고 말한다. 그러나 뒤이어 피식 하고 웃으며 황제를 위해 자기가 쌓은 독을 쓰겠다고 답함으로써 황제의 제의를 따르겠다는 뜻을 밝힌다.[27]
왕자들이 장성한 2~3부에선 어째서인지 비중이 0이다...정말로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28]
4부에서 오래간만에 언급된다. 동방 궉씨[29] 일파와 자신을 은밀히 연결하라는 황후의 명을 받은 대귀족들이 길선 재보의 눈을 피해[30] 황후와 궉씨 가주를 만나게 할 방법을 궁리한다. 등장은 없지만 대귀족들이 그녀의 눈을 피할 필요를 느끼는 걸로 봐서 내명부 내에서 감시망을 키고 단단히 감시중인걸로 보인다.
77화에서 엄청 오랜만에 등장(…) 황제을 태자로 세워 황후파를 견제할 패로 쓰게 되면서 길선의 쓸모가 다하자, 2황자와 전쟁에 출전하기 전에 운에게 '''길선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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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에서 자신이 있던 방안에서 운이 군사들을 이끌고 들어오자 "무엄하다, 누구의 사람이냐! 감히 이 길선을 이렇게 가둬놓고 성할 줄 아느냐?!"[31][32]라고 소리친다. 운이 검을 뽑으며 폐하의 명으로 길선재보 당신을 죄인으로 처벌하겠다고 말하자,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지지만 이내 이를 비웃으며

'''그럼 죄목이나 읊어봐라!'''

'''필경 네 아비가 얼기설기 맞춰놓은 것이겠지!'''

'''토사구팽! 이제 1황자 네놈이 말을 잘 듣는 개가 되었으니 이 길선을 버리는가?'''

'''허나 웃기지 마라! 그 솥이 한번만 끓을 것이라 누가 그러더냐!'''

라고 소리치면서 황제가 자신을 버리고 처리할려는 것을 바로 눈치챈다.[33]
여기서 '''지금의 황제가 황좌를 노릴 때 황족을 설득하고 비호하며 황제의 정통성을 대신해 준것이 바로 길선공주라는 것이 밝혀진다.''' 심지어 황제가 자신의 친모인 혜공경비와 이복형제들을 시해한 것을 무마시켜 준것도 바로 명대제[34]의 마지막 적통인 길선공주였다. 속으로 더이상 더러운 사막 귀신들[35][36]에게 피말리며 이리저리 팔리기 싫어서 무엇하나 가진 것 없는 네놈(현 황제)을 숙정가의 딸과 함께 황제로 만들어 주었더니 이런식으로 배신하냐며 황제에 대해 치를 떤다.
하지만 이내 차분하지만 신랄하게

'''어리석은 태자야.'''

'''(어리석은 나.)'''

'''황제가 차지한 옥좌에는 평생 피가 흐를 것이다.'''

'''그 자는 제 힘으로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따위 없는 이 땅에 왜 돌아오려 했을까.)'''

라고 운에게 말한다. 또한 지금은 이 길선을 죽이려고 운을 이용하지만 차후엔 자신처럼 운을 꺾으려 다른 이를 쓸 것이라면서, 운의 어미운의 동생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오늘의 운과 같은 짓을 하게 할 것이니

'''황제의 명을 들으면 너는 끝내 죽어가는 짐승이 될 것이다.'''

라고 황제의 이중성과 의심병에 대해 경고한다. 이윽고 운에게 '''"나를 살려라! 네 아비에게 그랬듯이, 이번엔 너를 황제로 만들어주마!"'''라고 제안한다. 그순간 누군가가 검을 뽑는다.
79화에서 검을 뽑은 사람은 길선공주의 내관으로 보이는 사람[37]이 주인을 위해 단도를 들고 운에게 달려들자 그를 제지한 전거이였다. 급기야 황제의 심복인 태내관이[38] 다른 군사들을 들여와 길선공주를 포박하고 억지로 바닥에 눕힌다. 이에

'''황제는 미쳤어! 제 손으로 나를 죽이고도 관료들과 황가가 제 기능을 할 것 같은가!?'''

'''이 나라를 망칠 각오로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고서야..!!'''[39]

라고 경악한다.
하지만 운은 길선공주를 놓아주며 사실은 단 한번도 사막 귀신같은 이 자를[40] 황위에 올리실 생각이 없으셨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자 운의 말에 순순히 수긍하며

'''"네 놈같은 심성으론 이 짐승들의 나라에서 살아갈 수 없어. 하물며 너처럼 위선떨며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 놈으론 그 짐승들을 통치할 수도 없지...!"'''

라고 차갑게 말한다. 심지어

'''"한번도 널 내 핏줄로 생각한 적이 없다."'''

라며 운에게 대못을 박는다.
이로서 길선공주가 1부에서부터 롱희와 그녀의 아들들을 싫어한 이유가 황족으로서 적통에 대한 자부심이나 집착이 아닌,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자신이 팔려가다시피 시집갔던 외국의 사막 귀신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게 밝혀졌다.[41] 위에서 말한 것처럼 평소에 운과 소거를 예뻐했던 것도 전부 가식이었으며 애초에 외국인 소생의 서자인 그들을 자기 핏줄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어서 자신의 최후만은 운에게 사무치길 바라고 자신과 운이 무엇이 다르냐며

'''나는 누구보다 정통한 혈통이었으나 한평생 여인으로만 살아야 했고'''

'''너는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피 섞인 서자.'''

라고 일갈하면서 "인의를 삼키다 쓰러진 네 시체가 나와 같진 않아야 할텐데."라고 운의 최후를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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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길선.[42]
이윽고 마지막 순간에 젊은 시절의 자신이 시녀들[43]과 함께 말을 타고 모후에게 달려가는 회상을 하며[44][45]

'''너와 내가 무엇이 달랐을까.'''

'''나 역시 사람이었는데.'''

라고 한탄하다가[46] 결국 운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길선을 죽인 운은 그 자리에서 충격을 받아 오열하고 그녀의 시신은 내관들이 수습한다. 이후에도 운은 길선의 말을[47] 계속 곱씹으며 "재보. 당신이 이겼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단 한번도 제대로 숨 쉰적 없이 떠나겠군요..."라고 슬퍼한다.
결국 길선공주도 황후처럼 처음엔 황제의 강력한 우군이었으나[48], 황제의 비대한 권력욕과 견제, 의심병 때문에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버려진 것이다. 길선공주가 이성을 잃고 분노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
82화에선 길선을 암살한 사실을 감춘 황제에 의해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공표되어 화려하게 장례식이 치러진다. 장례식에 참석한 롱희는 길선이 정말 사망했다는 사실에 긴장하는데, 그 이유는 내명부에서 황후 세력이 득세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다름아닌 길선이 하고 있어서 롱희나 성빈같은 힘없는 후궁들도 보호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49] 하지만 그렇게 황후를 제어하던 길선이 이젠 사라졌고, 그녀를 사라지게 만든 황제는 사실상 황후가 추후 내명부에서 뭔 짓을 일으키든 신경 안 쓰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나 다름없으니, 롱희를 비롯한 뒷배 없는 후궁들의 처지도 이제 위태롭게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4. 기타


처음에는 단순히 권모술수에 익숙한 황족하면 떠오르는 "이중적/위선적인 인물"로 보여졌지만, 19화를 기점으로 길선에 대해서도 권력에 집착하게 된 현재의 자세가 만들어진 사연 때문에 독자들이 동정적인 시선으로 길선을 바라보는 분위기. 그리고 공주인데도 불구하고 정략혼 도구로써 철저히 이용당하며 살았던 그녀의 처지를 통해, 신분 높고 귀하다는 공주들도 황가의 권력 관련 폐단들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준다.[51][52] 덕빈은 죽기 직전 황제에게 '시집을 반복해 이리저리 팔려나가면서 황적이나 신분만 겹겹이 가지면 행복이냐'며 일갈했다. 딱 저 말처럼 살아온 길선공주를 가까이서 지켜본 덕빈이기에 더욱 더 소의공주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본성을 드러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인상이 엄청나게 다르다. 첫등장 때만 해도 온화하고 기품있는 황녀의 인상을 선보였지만[53] 본성을 드러냈을 땐 11화의 그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음험하고 소름끼치는 인상으로 변하며 눈빛에서도 대놓고 성깔이 드러난다.
타국 출신의 후궁 롱희를 경계하고 싫어하며, 롱희가 누명을 썼음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도 빠르게 롱희를 제거할 기회가 오자 이때다 하고 치워버리려는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롱희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놓고 까내리다가 성빈까지 싸잡아 욕하는 말실수를 저지르자 아차 하는 반응을 보이며 성빈에게 약간 미안해하는듯한 이중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원인은 불명.[55]
사막 너머의 나라 쪽으로 정략혼을 갔던 길선이 거기 사람들을 '사막 귀신' 이라 부르며 적대하는 걸로 봐서 단순히 문화와 언어 등이 다른 낯선 곳에 어릴 적부터 가서 환경적으로 힘들었던 것 외에 그 동네 사람들(길선 기준으론 외국인들)에게 꽤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다는 추측을 하는 이들도 있다. 정황상 외국인보고 싸잡아서[56] 귀신이라 불러댈 정도로 극렬한 외국인 혐오를 보일만한 사건이 충분히 과거에 있었던 걸로 보인다.
일가친척 사이의 성관계는 많은 경우 여성의 의도가 아니라 큰 발언권과 힘을 가진 남성 가주에 의해 강제로 발생한다는 조사결과가 많은데[57] 이를 보여주기 위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롱희를 쳐내려 했던 악행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정략혼이나 근친혼의 희생자가 되어야만 했던 상류계층 여성들의 입장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라며 평판이 달라지고 있다.
작약만가 서리꽃 시점에서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훗날 결국 황제에게 처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58] 그리고 결국 토사구팽 당한 것이 확정되었다.
길선 본인은 남자였다면 자기가 외국에 이리저리 정략혼 대상으로 이용당하는 수모를 당하지도 않고 당당하게 선황과 정국에 대해 의논하고 그랬을거라 자부하지만, 남자로 태어났다면 자기 이복형[59]에게 오히려 황위 계승 서열싸움의 경쟁자 중 하나로 치부되거나 뒷방 황족[60] 주제에 권력을 나눠먹으려 든다고 고깝게 여겨져서[61] 더 빨리 처리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62][63]
게다가 아무리 현 황제가 황제가 되는걸 도왔다 쳐도 길선이 남자 황족이었다면 당연히 출가재보가 아니라 쭉 황실에 잔류하는 형태로 남아있을테니 권력욕과 견재심이 매우 강한 현 황제에게 더 경계당했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다.[64]
단물만 실컷 빼먹히고 비참하게 버림받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최후와, 죽은 후 나온 환영에서의 길선이 청춘미 넘치던 활기찬 황녀로써 친한 시녀들과 함께 '모후를 보러 간다' 식의 언급을 하며 사라진 것 때문인지 독자들에게 많은 동정표를 받고 있다. 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불쌍하다는 의견이 주류. 그러나 드물지만 비판의견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결국 자신의 인생을 괴롭게 한 황제와 대놓고 대립각을 세우기보단 결국 만만하고 무고한 롱희 쪽만 공격하는 등 강약약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군상이면서[65] 불리해지니까 불쌍한 자기 입장만 강조한다는게 그 이유.[66] 여하튼 어느 쪽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어찌보면 불환곡의 황후와 많은 공통분모를 지니면서도[67] 불환곡에서의 그들의 결말이 꽤 대비될 예정이라는걸 보면 아이러니하다.[68]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싫어했던 롱희 모자가 황후의 서슬 아래서 그나마 좀 숨통 트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켜준 대상도 '''다름아닌 길선이었다.''' 그녀 개인은 롱희 모자 3명을 죽을 때까지 편집증적으로 싫어할 뿐이었지만, 이와는 별개로 그녀가 내명부의 관리자 역할을 맡아 황후가 완전히 내명부를 먹어버리지 못하게 견제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롱희를 비롯한 황후 반대 파벌도 어느 정도 숨통 트이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 이를 볼 때 비록 상대에게 악감정을 품더라도 공사는 철저히 구분해서 일 잘 하는 타입으로 보인다.[69]
늘 한결같은 패션을 유지하시는 분이다. 사실 등장횟수 자체가 좀 적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70] 그러나 재등장하면서 완전히 다른 복장과 장신구를 달고 나와서 드디어 단벌황녀 포지션에서 해방되었다.

[1] 이름이 아니라 봉호일 확률이 매우 높다.[2] 태황인이라고 한다.[3] 선대 황제, 즉 황제의 부황의 명을 받아 어릴때부터 국외를 정략혼으로 떠돈다. 시간이 지나 선대 황제의 태자가 정해지고, 선대 황제는 길선을 불러들여 황권을 위해 최종적으로 6황자와의 혼인을 명한다. [4] 오륜공주는 못해도 20대쯤 되어보이는 젊은 인상이다.[5] 둘 다 얼굴이 갸름한 계란형이고 눈매도 조금 닮았다.[6] 황제의 부탁에 '그러지요' 라고 대답하며 물러가려 할 때 지은 표정.[7] 11화에선 소거의 재롱에 눈물까지 흘리며 웃거나 황제의 부탁에 따라 물러갈 때 매우 온화하고 기품있는 표정[6]을 지어보였기에 온화한 인상이 더 강했다.[8] 나중에야 드러나지만 길선공주 자신이 '적통 황녀로 태어났지만 정략혼으로 팔려 다니느라 그 고귀한 신분에 걸맞게 예우받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적통에 대한 자부심이나 집착이 더 강한 듯.[9] 참고로 바독범이란 말은 표범의 옛말이다. 바독은 바둑의 동의어인데 표범의 모피 무늬 때문에 점이 바둑처럼 난 범 = 바독범이라는 말이 나온듯.[10] 헌데 우습게도 '''길선을 그리 평한 황제 자신이 훨씬 더한 인간이다.''' 길선이 아무리 지독해도 '''제위가 탐나서 친어머니를 궁중 암투에 밀어넣어 죽인 패륜남보다 더하겠는가?'''[11] 실제로도 롱희가 모함받았고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13화에서 은근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롱희를 처벌하자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다.[12] 배경의 음영처리가 붉은 기가 들어서 꽤 소름돋는다(...) [13] 다른 북방가문인 하씨나 나부타살씨(특히 하씨)는 대놓고 중앙에서 차별하고 경계하며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그래도 뭔갈 좀 줘서 회유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찍어누를 기회만 노리고 있다.[14] 태황은 자신들과 외국인들도 차별하지만 지역끼리도 서로 또 차별하는데, 특히 중앙의 지역 차별이 심한 편이다. 대놓고 차별한다는 북방지역 중 그나마 좀 괜찮게 취급받는 숙정씨는 '''개국공신''' 겸 불환곡 시점 황제와 중요한 정치적 결탁을 맺은 상태니 무시할 수 없어서 취급이 좀 좋은거고,[13] 서방의 강씨도 딸을 후궁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던건 금광산이라는 매우 가치 높은 것을 중앙에 바쳐서 가능한 거였다.[15] 중앙이 아닌 다른 지방이라면 선황이 그 지방을 회유하기 위해서, 혹은 중앙을 누르기 위해 고른 지방 세력가일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자세한게 안 나와서 문제(...)[16] 선황 입장에선 말년에 들인 황후인데다 이미 후계자(현 황제의 아버지)가 있던 시점일테니 그냥 정치적 동맹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모후가 권력이 약해서 길선 입장에선 있으니만도 못한 어머니이긴 했지만 그래도 후궁도 아니고 황후로 책봉된 걸 보면 최소 중앙 귀족이거나[14] 거기에 준하는 신분[15] 소생이었을듯.[17] 길선의 모후 고씨는 선선대 황제가 노년에 황후와 사별 후 새로 들인 계후였고, 불과 몇 달 뒤에 선선대 황제가 붕어하여 청상과부가 됐다고 한다. 창창한 젊은 나이에 죽을 날 받아 둔 노인네와 혼인한 셈.... 당연히 고씨는 황실에서 입지를 다질 시간 따위 없었을 것이며, 만약 남편이 길선공주의 출생 이후까지 살았더라도 이미 장성한 황태자가 있는 마당에 갓 들어온 계후가 입지를 얼마나 넓힐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18] 이역만리 사막 건너의 나라라고 말한다. 작가의 전작인 서리꽃에서 언급되고 작약만가 본편에서도 언급되는 나라들이라 해봤자 이목, 탄, 태황 정도이니, 이름만 언급되지 않았을 뿐 완전 새로운 지역의 나라가 언급된 셈. 길선이 자기가 정략혼으로 보내진 나라를 사막 건너의 나라라고 했으니 아마 현실의 중동지방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혹은 사막 '''건너의''' 나라라 했으니 중동을 벗어나면 나올 서역(서양)에 해당하는 나라일수도 있다. [19] 운이 길선을 '''숙모(작은어머니)'''라고 부르기 때문에 길선의 남편은 현 황제의 친남동생 혹은 이복남동생으로 추정된다.[20] 그녀의 황실 내 족보 포지션 때문에 황가가 얼마나 꼬이고 꼬인 개족보를 지녔는지 독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준 셈이다. 현실의 합스부르크 가문결혼 동맹을 위해 근친혼을 밥먹듯이 시전해서 끝내 유전병을 피해가기 힘든 개족보가 탄생하고 말았다. 이쪽은 삼촌과 여자 조카가 결혼하는 사례도 나왔으니 남자 조카와 결혼한 길선과 비견될 만하다.[21] 작중 길선이 선황 때문에 현 황제의 이복동생과 결혼하게 되자 세간에서 그녀를 욕했다고 한다.[22] 현재도 여러 나라에서 생각보다 사촌 이상의 촌수와의 결혼은 근친혼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존재했고 과거에도 친척끼리 결혼하는 사례가 여러 나라에서 없잖아 있었으나, 태황의 문제는 근친혼을 너무 지나치게 자주 시전했다는 것. 게다가 무려 삼촌지간끼리 시전한게 욕먹는 걸 보면[21] 태황의 세간에선 근친혼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볼 가능성도 높다.[23] 요즘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하자면 '''아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초등학교 1학년짜리 여자아이가 자기보다 6~7살은 더 어리고 걸음마도 못하는 젖먹이 남자애 하나 끌어안고 언어도 안 통하고 낯선 사람만 우글거리는 외국에 가서 주변 눈치 열심히 살펴가며 숨죽이고 살아왔다'''는 것이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을 듯. 게다가 길선 왈, 자기 입에 칼(아마 협박을 빗댄 말인듯)을 물리고 그리 하도록 시킨 게 현재 황제의 아버지인 선황이라고(...). 자식뻘 되는 한참 어린 이복 여동생을 갖다가 외교용 도구로 철저하게 굴려먹은 셈.[24] 길선이 외국 출신 후궁인 롱희를 그닥 곱게 보지 않는 이유에는 적통을 매우 중요시하는 태황 황실 출신이어서 외국에서 온 후궁을 싫어하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과거에 외국인들 사이에서 무척 힘들게 살았기에 그런 자신의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롱희를 싫어하는지도. 혹은 자신이 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눈치 보고 머리를 썼던 경험이 있어서, 롱희 역시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순진하고 얌전하기만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예민하게 경계하는지도 모른다.[25] 서리꽃 연재 당시 작가는 '태황에서 황족 및 귀족들 사이의 근친혼이 성행하기는 하나, 너무 가까운 친족이면 좋게 보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래서 아무리 황실이라지만 3촌 근친혼이 보기 좋지 못한 일로 여겨져 욕을 좀 먹었던 모양. 문제는 이를 주도한 건 선황인데 비난은 길선이 받았다는 것이다. 옛날엔 황제를 함부로 까내릴 순 없었을테니 아마 만만한 길선이 화살받이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26] 이 부분에서 황제는 뭔가 겸연쩍은 사실을 눈치챈듯 침묵하며 표정을 살짝 굳혔다. 길선의 권력욕을 보고 경계를 더 강화한 걸지도(...)[27] 다만 황제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있는 걸로 봐선 황제는 여전히 길선을 경계하거나 이전보다 더욱 경계하게 된듯. [28] 3부 마지막까지 길선은 나오지도 않는다.[29] 덕빈의 일가.[30] 1부에서 내명부 감시 역을 맡았기 때문으로 보인다.[31] 이를 볼때 황제 혹은 운의 명령으로 줄곧 방안에 감금되있었던 듯 하다.[32] 첫 등장한 1부 시점에서 십여년이 지난 4부에서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모습으로 등장한다.[33] 이를 볼 때 예측이야 했지만 이 상황에 대해 대단히 빡친 걸로 추측된다.[34] 정황상 길선공주의 아버지이자 현 황제의 할아버지인 선선대 황제의 시호인 듯하다.[35] 정략혼을 위해 강제로 팔려가다시피 시집갔던 사막 건너의 외국 사람들을 의미하는 듯하다.[36] 또한 사막 귀신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길선이 정략혼이란 명분으로 팔려가다사피 여기저기 시집가서 고향에도 돌아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얼마나 치를 떨었는지 알 수 있다.[37] 그런데 독자들 사이에서 이 사람이 과거 운 휘하의 의관으로 나온 평 조와 닮았다는 말이 종종 나오긴 한다. 남남인데 디자인이 닮게 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38] 이전화에서부터 분노한 길선공주가 운에게 황제의 쿠데타에 대한 진상을 폭로하자 움찔하며 바로 내관들을 내보내고, 제아무리 황명이라지만 일개 내관에 불과한 사람이 어서 공주를 죽이라고 태자인 운을 닦달한다. 이걸 보면 이 태내관도 황제가 어떻게 황좌를 차지했는지에 대해 길선공주만큼 자세히 알고있으며 그 진상을 숨기려고 한 듯. 심지어 79화에서는 자신은 운이 직접 길선공주를 처단하는지 끝까지 지켜보란 명을 받았다며, 태자의 몸으로 명을 어기는 것은 반역이라며 명색인 태자인 운마저 압박한다. 이 말에 운의 측근인 전거이도 울컥한다. 다만 이 태내관의 태도를 봐서 대놓고 황제가 운의 감시역으로 붙여놨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기에 이러는 것일수도 있다. 길선과 황제에 대한 진상을 자세히 알 정도로 황가의 어둠에 대해 박식한 인간이기까지 하므로.[39] 길선공주의 이 예측은 세월이 흐른 뒤 그대로 들어맞는다. 운을 태자로 책봉한 황제로 인해 황후마저 리미터를 해제하고 본격적으로 물불가리지 않고 황실 암투에 뛰어들면서 황실의 구도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 결국 황제가 아들인 운마저 처형한 뒤 태자 자리는 통제불능의 2황자에게로 넘어가고 그가 황제가 되면서 태황은 완전히 막장으로 굴러 떨어진다.[40] 운은 송하국 출신 롱희가 황제와의 사이에서 낳았으므로 외국 혼혈이다. 외국인들에 대해 문자 그대로 치를 떠는 길선이 외국인 피가 섞인 자신 역시 좋아할 리가 없다는걸 알고 하는 말.[41] 정황상 롱희와 운, 소거는 길선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존재로 기억속에 자리잡은 외국인들을 투사하는 매개체가 되었던 모양.[42] 젊은 시절엔 황가 사람들 특유의 갸름한 얼굴형과 또렷한 느낌의 눈매, 선하고 활달한 인상을 지닌 미녀였다는게 밝혀졌다.[43] 작중에선 딱 이 때만 등장하고 늙은 길선 옆에선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들이다. 독자들은 정황상 이들이 롱희 휘하의 주수, 후수, 희사처럼 태황 측에서 길선을 따라 길선을 보필하던 친한 사이의 시녀들이었다고 추측중이다. (그러나 더는 그녀 곁에 없는걸로 봐서 길선보다 먼저 명을 달리했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가는 길에 더 이상 자기 곁에 존재하지도 않는 그녀들을 회상할 정도라면 꽤 기억 속에 깊이 남은 존재이긴 했던듯.[44] 이날 회차의 댓글에서는 이 길선의 젊은시절 말타는 모습이 회상이 아니라 한번도 황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길선이 죽어서야 자유로워진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미 죽은 모후에게 간다는 표현도 그렇고...[45] 아이러니하게도 비록 회상, 혹은 심상에 불과하지만 작중 처음으로 어떠한 계략도 없이 진심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나왔다.[46] 그런데 최후에 운과 자신이 뭐가 달랐냐며 자기 역시 사람이었다는 말을 남긴 걸 보면 길선이 최후의 순간에 운과 자신을 똑같은 처지의 '황가에서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사람' 이라고 공통분모를 지닌걸 인정한 걸로 보인다.[47] '''"너(길선공주)와 내(운)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48] 황후는 숙정가를 원한다는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이미 정해진 약혼마저 파기하고 황제와 혼인해 군사들을 대줘 지금의 황제가 황좌를 차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49] 애초에 황제가 길선에게 내명부의 감시 역할을 맡긴 것도 황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정작 황후를 견제하는 역할을 운에게 떠넘기면서 길선의 쓸모가 다하자 가차없이 그녀를 버렸다.[50] 본인이 나서는 경우도 제법 있었지만 꼭 본인이 나서지 않는다고 쳐도, 당시 태자의 반대파들이 자기 세력 강화로 뒷방 왕족이나 뒷방 황족이 될 왕의 아들들을 구심점 삼는 경우도 없잖아 있었다.[51] 다른 하나는 소의공주. 소의공주 역시 엄연히 황제의 큰딸로 당당한 공주였으나 어른들의 권력 싸움에 휘말려 정신지체가 되고, 결국에는 요절한다. 공주보다 일단 더 취급이 좋아보이는 황자들도 답이 없는데, 그 혈통상 매우매우 손대기 힘든 적통 황자인 봉림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둘(운, 소거)의 사실상의 취급은 정말 안습하다. 애초에 왕자/황자의 경우 정략혼용으로 쓰일 위험이 낮은 대신 '''지들끼리 자리 두고 다퉈야한다'''. 공주는 적통이어도 여자의 왕/황위계승을 허가하는 동네가 아닌 이상 자동적으로 계승전쟁에서 제외되기에 계승권을 이유로 숙청당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시피 하지만, 왕자/황자의 경우 혈통이 얼마나 뒤쳐지느냐는 고사하고 여차하면 왕위/황위에 앉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늘 있었기에[50] 숙청당할 위험으로만 치자면 공주보다도 더 높았다.[52] 서리꽃 연재 시점만 해도 리빈을 비롯한 후궁들이 구르거나 험한 취급을 받는 모습이 자주 나왔는지라 독자들 사이에선 '''차라리 공주가 더 낫겠다''' 하는 의견이 나왔으나 (서리꽃 시점까지만 해도 후궁들 간의 암투만 부각되었기에 공주들의 경우 황제의 애정 가지고 싸울 일도 없어보이고 출가재보해서 황실 빠져나가면 그만인 것처럼 보였기에 이런 말이 나온듯.) 길선과 소의공주의 사례로 그것도 옛말이 되었다. [53] 사실 이 때도 머리 찧은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은 채로 자기와 황제에게 호소하는 운을 '''참 심드렁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나와서''' 본성은 결코 온화하고 선하기만 한 인간이 아니라는게 약간이나마 암시가 되긴 했다. 진짜로 온화하고 선하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운이 그런 몰골로 등장하자 저런 표정부터 짓는게 아니라 바로 걱정부터 했을 것이다.[54] 길선이 성빈 나잇대에 강제로 타국에 보내져 고생한 걸 고려해보면 둘의 유년기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원인일 수도 있다.[55] 롱희와 성빈은 사실상 타국에서 볼모로 온 왕족이라는 점에선 신세가 비슷하므로, 길선이 단순히 그녀들의 신세에 대한 동정을 성빈에게만 적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아마도 길선 입장에서 롱희는 타국 출신이나 황제의 총애를 받고 아들을 둘씩이나 둔 데다가 롱희의 조국 송하를 속국 입장에서 벗어나게 해준 원인이기까지 하니 타국인 주제에 태황 황실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힌다 생각해서 경계하는 반면, 성빈은 세력 하나 없는 패망국의 볼모 신세여서 경계할 필요가 있거나 거슬릴 건 없다 해서 반응이 유한 것일지도 모른다.[54][56] 자신과는 같은 황가 일원이라는 연관점 외엔 거의 무관한 롱희와 어린 아들들마저도 그냥 덮어놓고 외국인이라며 싫어할 정도였다.[57] 현대 사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라면, 연상의 남성 가족구성원이 어린 여성 가족구성원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한다거나, 오빠가 여동생을 성폭행한다거나.[58] 그냥 등장 및 언급이 없을 뿐이지 그럭저럭 잘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길선이 자신의 조카와 근친혼을 했고 황제가 형제들을 살해하고 황위에 등극하는 것을 도왔다는 걸로 보아, 권력을 위해 자신의 남편까지 처리했을(최소한, 황제의 등극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남편을 납작 엎드리고 살게 억눌렀을) 가능성이 높은 걸 기억하자.... [59] 불환곡 시점에서 현 황제의 아버지.[60] 황위 계승서열에서 최종적으로 밀려난 황족들을 편의상 축약해서 빗대는 말. 그 유명한 태종이나 세조도 한때 이런 시절이 있었고 왕권이 탐나 결국 일을 쳤다. 이 둘의 사례 말고도 뒷방 왕족/황족이 된 사람들이 왕위/황위를 노리고 왕실/황실 내에서 내란을 시도하는 경우는 꽤 있었다.[61] 길선 스스로가 선황과 함께 정치를 논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계승서열에서 밀려난 황족이 가만히 자기 자리보전만 하는게 아니라 정치판에 직접 끼어든다고 의사표명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짓이다. 이런 뒷방 황족들에게 별로 우호적이지 않고 권력 독점적 성향이 강한 황제라면 이들이 자기 정치판에 끼어들으려는 시도 그 자체를 매우 불쾌하게 여길 가능성이 있다.[62] 불환곡 11화에서 현 황제는 선황도 절대권력을 지녔다는 투로 언급하는데, 황제가 절대권력을 지녔다는건 걸리적거릴만한 신하들이나 여타 황족들은 죄다 누르거나 치워버리는데 성공했다는 말이 된다(...) 여자여서 황위 계승권 싸움에 끼지도 못할 길선이야 그나마 정략혼으로 외부에 보내졌겠지만 황위 계승권을 쥘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기에 선황이 절대권력을 쥐는데 방해가 될지도 모를 선황의 남자 형제들이라면 '''처리당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없다고 단언하기 힘들다.[63] 게다가 길선의 경우 제아무리 모후의 권력이 없다 해도 엄연히 '''적통'''이므로, 남자였다거나 태황이 남녀 불문하고 황위계승권을 얻을 수 있다면 후궁 소생보다도 선황에게 더 거슬리는 경쟁자로 비춰졌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길선 본인의 생각과 달리 길선 본인은 그냥 성별 불문하고 '''황실에서 권력 낮은 계후와 선황의 직계혈통으로 태어난 것부터가 운이 없었던 셈'''에 가까웠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64] 당장 작약만가 세계관만 해도 길선의 조카인 현 황제가 권력 얻겠답시고 자기 형제들을 상대로 살육극을 찍었거니와, 현실 역사에서도 왕실/황실에 잔류한 선왕/선황의 자제가 나중에 현 왕/황제와 적대하거나 아예 그들을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하는 사례가 없잖아 있었다. 당장 조선의 이 사람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65] 이 점에서 똑같이 롱희 일파를 견제하긴 했어도 황제에게 그냥 설설 기는 대신 대놓고 대립각을 세우며 나서는 황후와 비교하는 이들도 있다. [66] 사실 동정론을 펴는 독자들도 길선이 마냥 무고하고 억울하기만 한 선인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의 과오를 인정하되, 본인의 인생을 남에게 휘둘리면서 힘겨운 삶을 살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연민하는 것.[67] 원래라면 황제가 될 수 없었을 불환곡의 현 황제가 황제가 되는데 매우 크게 일조했지만 절대권력에 대한 강대한 집착과 의심암귀, 주변 사람들을 툭하면 습관마냥 토사구팽 처리하는 악질적인 습성을 지닌 황제 때문에 황제에게 찍혀서 불이익을 보게 되었다는 것.[68] 길선은 황제에게 토사구팽을 당해 역사의 뒤안길 행을 당하지만 황후는 오히려 불환곡 한정으로 최후의 승리자 포지션이다. 아마 둘의 입장 차도 최후를 가른 걸로 보이는데 황제가 함부로 해치지 못할 정도로 뚜렷한 세력을 구축한 황후와 달리 길선은 황제를 장기적으로 주구장창 견제하며 자신을 못 죽이게 만들법한 큰 파벌을 지니지 않았기에 더 만만한 쪽으로 찍혀서 먼저 처리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길선이 일부 독자들이 지적하듯 결국 황제 권력에 붙었을 뿐인 뒷방 늙은이가 되었던 것도 황후처럼 황제를 뚜렷히 견제할 의지를 확고하게 유지해줄 정도로 강한 세력을 가지지 못했고 이후에도 구축하는데 실패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고.[69] 롱희를 미워하는게 앞섰다면 황제 명령이 있고 이점을 준다 해도 롱희와 대립하는 황후의 손을 들어 진작에 협공하여 롱희를 실컷 쪼아댔을지도 모를 노릇이다.[70] 다만 이분보다 출연장면이 더 많은 롱희성빈 덕빈등도 늘 똑같은 옷만 주구장창 입고 나오는게 잦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