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족보
1. 문자 그대로 개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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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견종임을 인증하는 혈통서(certified pedigree)를 말한다. 다만 혈통서의 발행 주체가 어디냐에 따라 신뢰도가 갈리기 때문에 혈통서를 발행해주는 곳을 잘 알아봐야 한다. 돈만 주면 발급해주는 곳도 있어서...
2. 개(판)같은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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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초에 특히 발생하는 빠른년생의 개입에 의한 '''개같은''' 족보를 말한다. 위의 개족보는 대학내일의 16학번 개족보를 변형한 것이다. 원본 링크
군대도 안 그러는 세상에 저런 걸 일진마냥 진지하게 따지진 말자. '''애견모임에 처음 얼굴본 강아지들 서열잡는 것'''도 아니고 꼬이면 저것보다 더한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8살에 초등학교 입학해 재수하지 않고 대학입학 했는데 자기보다 3살 어린 1년 선배 학생에게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한다거나...
이런게 문제시되는 이유는 한국이 주로 세는나이 셈법을 따르는데다 특유의 연령에 따라 매기는 서열과 기수제 문화 등이 혼재된 복잡한 서열 사회인 탓이다. 그래서 빠른년생이 끼어들면 호칭과 서열 문제 등으로 꽤나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1]
가까운 친척들 내에서 늦둥이가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 촌수와 나이가 맞지 않는 경우도 이렇게 부른다. 분명 자신은 중학생인데 조카가 있다거나[2] 자신보다 20살은 더 먹은 사람인데 (사촌) 형 / 오빠인 식이다. 이쪽은 '촌수 꼬였다', '항렬 꼬였다'라는 식으로 더 많이 표현한다.
2.1. 근친상간을 속되게 모욕적으로 가리키는 경우
대한민국에서는 외국에서 사촌들끼리 결혼한다는 걸 들면 '''개족보네''' 이런 식으로 표현할 때가 많다. 외국에선 이 일이 개족보까진 아니다. 족보가 없을 수도 있고 합법이니까[3][4] 거기에선 개족보가 아니겠지만. 한반도에서도 신라, 고려 시대만 해도 현재로선 개족보로 볼 결혼이 많았다.
그리고 위의 개의 족보의 경우에도 이른바 '순종'의 경우 그 실상은 이런 근친상간의 연속인 형태가 많다. 육종 자체가 그렇게 해서 원하는 형질을 고착시킨 품종을 개발하는 과정이니까.
2.1.1. 사례
쇼와 덴노의 아내 고준 황후(나가코)에게, 아사카노미야 야스히코 왕은 작은아버지이자 시고모부였다.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은 여기에 더해, 작은아버지이자 시고모부이자 사돈. (고준 황후의 장녀 데루노미야 시게코 공주가,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의 장남과 결혼했기 때문) 그러나 일본 황실의 족내혼 관습은 125대 덴노였던 아키히토 대에서 끊긴다. 아키히토의 아내인 미치코 상황후는 황실과 무관한 재벌 기업의 딸이었고, 126대 덴노 나루히토의 황후인 마사코 황후는 법조인 겸 외교관을 지낸 엘리트 아버지를 둔 엘리트 외교관이었으며, 나루히토 덴노의 남동생 후미히토와 여동생 구로다 사야코도 황실과 무관한 일반인과 결혼했다.
대표적인 근친상간 개족보의 예시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보면 된다. 어찌 이리도 족보를 꼬을 수 있는지 참 정신이 아득해질 것이다(...)
한국사에도 고려왕실 초기에 근친혼이 너무 심해서 가족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많았는데, 한반도 유일의 사생아 출신 군주인 현종(고려) 참조.
현실이 아닌 창작물에서 대표적인 예를 찾자면 단연 그리스 로마 신화. 남매끼리 결혼하고 부모자식 간에 결혼하고 조카랑 결혼하고 난리도 아니다. 사실 어느 문화권의 신화를 찾아봐도 족보상 근친혼이나 근친상간[5] 이 없는 신화가 오히려 없다. 그 이유에 대해 가장 유력한 해석은 '태고의 신들은 족보상 근친 외에는 짝지을 상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6]
여담으로 남매지간은 '''콩가루와 개족보, 둘 중 하나라고 한다.''' 물론 이 말을 남매있는 사람에게 했다간 난리날테니 절대 앞에서 하진 말고 뒤에서도 하지 말 것. 그런데 이걸 남매있는 쪽이 한 거라면...
2.2. 직계존속 구성원의 호칭 대비 나이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경우
나이 30살된 아들을 둔 50대 후반 남자가 21살짜리 여자랑 재혼했다. 이런 경우 30대 아들은 자기보다 9살이나 어린 여자가 '''새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30대 아들은 5살짜리 아들을 두고 있는데, 21살짜리 새어머니가 아들을 새로 낳았다. 그러면 5살짜리 아들한테는 21살짜리 새엄마가 갓 낳은 아들이 삼촌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주변에서 개족보라고 비하하고는 하는데, 남자가 나이 많이 먹고 나서 딸보다 어린 나이의 여자를 첩으로 둔 경우, 보통은 평소 행실이 매우 불량하거나 첩을 둔 후 전처나 전차 자식들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단, 주의하여야 할 것은, '''행실이 불량한''' 형태가 아닌 경우에는 개족보로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가 늦둥이를 낳았다던가, 형제 중 한 명은 20대 초반에, 다른 한 명은 40대 초반에 결혼하고 아이를 두는 경우에는 얼마든지 호칭대비 나이차이가 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개족보라는 말은 멸칭이고 말하는 사람 자신의 집안이 한미하거나 근본이 없다는 자폭이 되기 쉽다. 조금 큰 집안이면 큰 행사가 있을 때 8촌까지 모이는 일도 아직까지 종종 있는데, 그러다 보면 내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보다 내 나이가 많은 경우도 드물지 않다. 특히 과거에는 형제자매가 많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비교적 조혼이던 과거, 조부가 50살 넘어서 낳은 막내아들이 또 만혼에 자식을 늦게 보면, 그 아이는 조부의 장손의 아이에 비해 40~50년 젊을 수도 있다.
2.2.1. 사례
- 조선 선조의 첫 왕비 의인왕후 박씨는 자녀를 낳지 못했고, 그래서 후궁 공빈 김씨의 차남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의인왕후가 죽자 선조는 인목왕후 김씨를 계비로 간택하는데, 이때 선조는 51세, 인목왕후는 19세, 광해군은 28세였다.(…) 인목왕후(소성대비)가 낳은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은 광해군의 이복동생들이지만, 형제라기보다 부모 자식 수준으로 나이 차이가 났다. 심지어 두 이복동생은 광해군의 자녀들보다도 어렸다. 그리고 영창대군의 존재 때문에 왕실에서는 한바탕 소동들이 벌어진다.
- 조선 인조는 첫 왕비 인열왕후 한씨와 사별한 후, 44세의 나이로 15세의 장렬왕후 조씨를 계비로 맞이했다. 인열왕후 소생의 효종은 새어머니 장렬왕후보다 5살 위였다. 훗날 효종과 그의 아내 인선왕후 장씨가 사망한 후, 장렬왕후(자의대비)가 상복을 입는 문제로 예송논쟁이 벌어졌다.
- 조선 영조는 첫 왕비 정성왕후 서씨와 사별한 후, 66세의 나이로 15세의 정순왕후 김씨를 계비로 맞이했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와 며느리 혜경궁 홍씨는 정순왕후보다 10살이나 위였다. 10살이나 어린 소녀를 새어머니, 시어머니로 대우해야 했던 것.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정순왕후보다 7살 아래였다. 명색이 할머니와 손자이지만, 7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
- 조선의 저명한 유학자였던 장흥효[7] 는 당시로서는 꽤 늦은 나이인 35세 때 장계향을 낳았다. 무남독녀였던 장계향이 19세 때 시집을 가고, 몇 년 후에 장계향의 어머니이자 장흥효의 첫 아내인 안동 권씨가 죽었다. 장흥효는 후처를 얻어 자녀를 낳았는데, 이 후처도 안동 권씨였으며 장계향보다 무려 10살이나 어렸다.(…) 당시 장흥효는 61세였고, 후처 권씨는 17세였다. 후처 권씨는 3남 1녀를 낳았고, 10여 년 후 장흥효가 죽자 장계향이 새어머니와 이복 동생들을 돌보았다.
- 북한의 김일성은 장남 김정일(당시 30대)이 아들 김정남을 얻은 해에 서자 김현을 함께 얻었다.
- 가상의 예로는 이 작자가 13살 먹은 외손자까지 있던 시점에서 서자를 만든 경우를 들 수 있다.
2.3. 특정 집단에서 구성원간의 연인관계가 복잡한 경우를 이르는 말
예를 들어, 집단 구성원 A B C와 1 2 3이 있을 때, A는 1의 전 애인이고 지금은 2의 애인이다. 또한 B는 3와 결혼을 전제로 동거했었으나 지금은 1과 사귀고 있다. C는 1과 썸을 타다가 2와 사귀었고, 2와 헤어진 후 지금은 3과 동거를 하고 있다. 라는 상황일 때, 개족보라고 한다. 본인들은 서로 개의치 않더라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구멍동서 같은 느낌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2.4. 기수제 집단
서열이 잡혀 있는 집단 내에서 서열이 무너지는 것을 뜻한다. 보통 서열과 기수가 일치하지 않을 때를 말한다. 보통 이런 상황을 개족보라고 묘사하는 사람은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개족보 문제는 결국 누가 반말하고 누가 존댓말하냐의 문제인데 이런 경우가 무너지는 케이스가 몇 있다. 간혹 누군가(보통은 그 집단의 리더)가 다같이 서로 존댓말하거나 다같이 서로 반말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를 해 버리는 경우도 있지만[8] , 집단 전체의 문화가 서열을 중요시 여긴다면 이것도 쉽지만은 않은 게 문제.
- 신입이 나이가 많은 경우
- 늦게 입사한 사람이 먼저 승진해 선임자가 되는 경우
- 도제식 교육을 하는 집단에서 나이대가 맞지 않은 제자를 들인 경우 : 무협에서 은둔 고수가 느즈막히 어린 주인공을 제자로 받아들여, 주인공이 강호에 나오니 나이많은 고수들의 대사숙뻘쯤 되는 상황인 것은 유명한 클리셰. 바둑계에서도 어린 조훈현이 우칭위안 이후 30년만에 세고에 겐사쿠의 제자로 들어가게 되면서 바둑계 족보를 많이 꼬아놓았다.[9]
- 학교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경우 : 특히 2000년대 중반 들어 6세 1~2월생 이른바 '빠른 생일'들의 입학유예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이에 따른 개족보도 늘어나게 되었다.[10]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선배 소령이 후배 중령한테 기수 운운하며 쌍욕을 퍼부어가며 갈구는 행위가 발생하면 이를 개족보라 하는데 장교들의 세계에서는 상관모독 혐의로 체포된다. 단, 부사관은 수송, 의무, 군사경찰 등의 병과가 보병 병과와는 다르게 40살이 넘도록 중사 계급을 달고 군복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기 때문에 이 때문에 부사관의 세계에서 계급은 주임원사가 아닌 이상 별 의미가 없다. 때문에 장교들은 겉으로는 부사관을 대우하지만 속으로 은연중에 부사관의 이런 짬밥 위주의 서열 정리를 개족보라 여기고 있다. 뭐 그래봐야 직업군인 복무연한 연장과 관련해 장교쪽도 남말하지 못할 때가 곧 오지만. 계급 정년이 지금보다 느슨해지면 장교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거나, 철저하게 계급 위주로 하거나. 사실 장교도 그랬던 적이 있다. 소장 출신이 국방장관에 임명된 적이 있는데, 당시 군에서 개족보 상황이라고 들고 일어났지만 임명권자(=대통령)가 까라는데 별 수 있나. 삼군의 대장 계급 참모총장이 소장 출신 국방장관에게 경례했다. 그리고 직업군인 임용 과정에 변화가 생기면서 초급 장교 계급과 기수의 불일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2.5. 스포츠의 개족보
개족보(스포츠) 문서로.
[1] 간단히 말해서 한국에선 나이와 기수가 곧 서열 매기기용 소재로 사용되므로, 나이/기수 쪽에서 더 앞선 사람들은 보통 나이/기수 쪽에서 더 뒤에 있는 사람이 자기 밑으로 꿇고 들어가는걸 당연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이나 기수 중 한 쪽이 어긋날 경우 서열관계가 당연히 뒤집힐 우려가 있기에 (예시로 재수 안한 빠른 98년생이 재수~삼수를 한 97년생보다 기수가 앞서간다던가 하는 것 등)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풍조가 암암리에 있다. (당장 초등학교 꼬맹이들만 해도 1살 차이로 나뉘는 연령 서열 문제에 대해 꽤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다보니 연령이 더 어린 사람과 같은 기수 취급을 받거나 연령이 더 어린 사람보다 더 후발기수 취급을 받는 것에 은근 예민한 사람들이 많은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2]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가능하다.[3]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양권에 비해서 덜 부정적으로 본다는거지 레드넥에 대한 인식 등을 보면 서구권에서도 가까운 친척간의 결혼은 기괴하게 본다. 일본에서도 드문 일로 보고. 반대로 아랍에선 정말 흔하다. 사촌을 잠재적인 약혼자로 볼 정도.[4] 아랍은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인데, 사촌끼리의 결혼은 전혀 이상하지 않게 보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문제되지 않을 부분을 근친상간으로 본다. 바로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두 남녀 아이는 결혼할 수 없다는 것.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둘은 거의 친남매로 취급 받기 때문에 둘이 결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본다고.[5] 경우에 따라선 심지어 근친강간까지도.[6] 예를 들어 가이아와 우라노스, 폰토스는 모자간이면서도 또 사이에 자식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리스 신화 내의 태초신이라 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어 자식을 낳기 전에는 다른 신이나 인간이 애초에 없는 상태였으리라는 것을 생각해보자.[7] 경당일기의 저자[8] 이런 사례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해 왔을 때 선수들 사이의 강한 위계질서 문화를 없애기 위해 모두 서로 반말하라고 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9] 조훈현과 비슷한 나이대인 조치훈은 기타니 미노루의 제자인데, 기타니는 조훈현의 사형 우칭위안과 친구다. 역시 기타니 밑에서 유학한 조남철 같은 한국의 선배 바둑인들도 마찬가지[10] ex) 빠른년생인 자신의 생일은 99년 1월 18일인데, 한 학년 아래 후배의 생일이 99년 1월 10일인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