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덕(1973)

 

'''이름'''
김재덕
'''생년월일'''
1973년 5월 1일
'''출신지'''
광주광역시
'''학력'''
광주상고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1년 고졸우선지명 (해태)
'''소속 팀'''
해태 타이거즈 (1991~1998)
'''지도자'''
광주동성고등학교 코치 (2003~2012)
광주동성고등학교 감독 (2013~)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6'''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강상진(1986~1988)

'''김재덕(1991~1998)'''

김자윤(1999~2000)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4. 여담


1. 개요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선수. 현재는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시절


광주상고 시절 유명한 거포였고, 1991년 고졸우선지명으로 데뷔하여 프로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간간히 대타로 활약했다.
1995 시즌, 2군에서 남부리그 최다 홈런인 7개를 때려내면서 감독의 눈도장을 찍었다.
1996 시즌에 70경기에 출장하여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며 199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정명원이 등판한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9회말 2아웃 상황에 동봉철의 대타로 출전했으나, 낙차 큰 포크볼에 삼진 아웃을 당하며 경기가 끝났고 KBO 역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을 당한 팀이 되었다. 결국 한국시리즈 통산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해태의 8번째 우승멤버가 되었다.
그 후,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팀은 모기업의 부도로 인하여 선수단 규모를 축소하게 되며 1998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며 은퇴했다.

3. 지도자 시절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병역을 끝마친 후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윤여국 감독과 여러 감독 밑에서 모교인 광주동성고 코치를 맡게 되었고, 당시 감독이었던 신동수KIA로 떠난 2011년 말부터는 잠시 감독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다가 김종모가 감독으로 오자 다시 코치를 맡게 되었다. 김종모가 한화 수석코치를 맡게 되어 팀을 떠난 후 2013년부터는 감독으로 내부승격되었다.
2018년에는 '''청룡기 우승을 차지'''하며 15년 만에 모교를 다시 청룡기 왕좌의 자리에 올려놓았다.[1] 우승 후 인터뷰에서 "솔직히 8강, 4강이 목표였는데 우승을 해서 기분이 매우 좋다. 결승전 이제원, 오승윤이 마운드에서 잘 버텨줘서 너무 고맙다. 2003년 첫 번째 청룡기 우승 때는 모교 코치였는데 그 때 생각도 나고, 너무 고맙다." 라는 소감을 밝혔다. 인터뷰

4. 여담


  • 김기훈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50이닝 이상 등판시키며 혹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자마자 관리를 해주며 적절히 등판시켰다. 특히 2학년 시절 압도적인 피칭으로 3학년이 되기 전부터 김기훈이 이미 KIA의 1차 지명으로 확정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영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등판간격을 더 관리했다. 그 결과, 201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김기훈이 1차 지명을 받게 되며 김기훈을 부상 없이 무사히 KIA로 보낼 수 있게 되었다.[2]

[1] 전국대회 마지막 우승은 2005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였다. 3학년 한기주, 2학년 양현종, 1학년 윤명준이 마운드를 지켰다.[2] 1차 지명을 받은 이후에도 꾸준히 관리를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