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1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1991년 KBO 신인 드래프트 (공식 명칭: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1차 지명과 2차 지명, 신생팀 쌍방울의 특별지명으로 진행되었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1990년 11월 5일까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 중 1명을 뽑았다. 연고지가 겹치는 LG와 OB는 앞서 이틀 전인 11월 3일에 1차 지명을 마쳤다.
3. 쌍방울 특별지명
1990년 11월 13일에 신생팀 쌍방울은 2차 지명에 앞서 10명을 지명했다.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 투수 : 강길용(광주일고-동국대), 김동수(마산상고-경성대), 박성기(전주고-원광대), 박진석(군산상고-원광대), 정창화(영남대)※
- 내야수 : 김기태(광주일고-인하대), 김상재(부산상고-동아대), 송인호(보성고-원광대), 정학원(군산상고-원광대)
4. 2차 지명
1990년 11월 20일 서울특별시 KBO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대학교 졸업 예정자, 실업팀 소속 선수들, 고교 졸업 후 1년이 지난 선수들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1]
4.1. 지명방식
지명방식은 매 라운드마다 1990 시즌 성적 역순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라운드에 제한은 없지만,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꼴찌팀은 1라운드에서 2명을 지명한다. 신생팀 쌍방울은 앞서 10명을 특별지명했기에 2차 지명에서는 제일 마지막으로 밀려났다.
4.2.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5. 드래프트 평가
- OB 베어스 : 최상위 지명에도 불구하고 망한 드래프트. 건진 선수가 김익재말고는 없다. 1차 지명 황일권은 아마 최고의 컨택 히터로 명성을 날렸고, 억대 이상의 계약금을 요구하다 결국 OB구단과의 트러블로 인해 1차 지명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업야구 한국화장품에 입단해버렸다. 2년 후 OB에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재 입단했지만, 실업야구의 낮은 수준에서 알미늄 배트에 익숙해진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별 볼일 없는 선수로 사라지게 되었다. 2차 지명자 중에서도 그나마 김익재가 1군에서 역할을 했는데, 2차 1지명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1군에서 좌완 불펜과 좌완 원포인트 정도를 오가다가 OB 베어스 항명파동에 휩쓸려 1995년 지명할당되었고, 이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좌완 원포인트로 활약하다가 은퇴한다. 이 정도 경력의 선수가 이 해 1차 1픽이었던 OB 최고의 지명이었다.
- 롯데 자이언츠 : 박정태와 전준호.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차 지명자 1명에 2차 지명자 2명을 뽑은 롯데로써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 둘은 남두오성의 일원으로 활약하여 이듬해 롯데의 V2를 이끌었다. 전준호는 1997년에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현대왕조를 건설했고, 박정태는 은퇴할 때까지 롯데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이 둘에는 많이 미치지 못 하지만 이 해의 나머지 한 명의 2차 지명자였던 김태석은 불펜과 선발을 오가면서 활약하였으며 1996년에는 2점대 방어율로 깜짝 커리어하이를 기록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1군급 투수로써 역할을 하였다.
- 태평양 돌핀스 : 는 훼이크고 당시 고려대에서 2루수로 활동하며 일발장타가 있다고 알려진 염경엽을 지명했다. 근데 그 일발장타는 행방불명됐고 기대 안 했던 수비 포텐만 터진 염경엽 외에는 건진 선수가 없다. 사실 염경엽도 프런트나 감독으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드러냈지, 선수 시절 성적은 그다지 변변치 못하다. [2] 1차지명자였던 전일수는 부상으로 거의 나오지 못하고 타자 전향까지 시도했으나 방출되었고 이후 LG에 입단해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다시 구위가 저하되면서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이후 KBO 심판으로 악명(?)을 떨치는 중.
- 빙그레 이글스 : 기대했지만 실패한 픽과 기대하지 않았던 중박 픽. 당시 지역 최고 포수 유망주였던 양용모를 1차 지명했고, 주전이던 김상국과 함께 출전 시간을 양분하며 제법 쏠솔한 활약을 펼쳤으며, 발빠른 포수라는 특색을 가지고 외야수로 출장하기도 했으나, 사고를 친 바람에 방출되었고, 결국 저니맨으로 여러 팀을 떠돌게 된다. 이 해의 2차 1지명자인 김인권은 첫 해 신인왕급 활약을 보였으나, 당시 사이드암은 체력이 크게 소모되지 않는다는 야구계의 잘못된 속설로 인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첫 해 무리하게 혹사를 하게 된다. 결국 김인권의 이후 선수 생활은 좋지 않았던 점이 아쉬울 뿐. 다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크게 성공적인 드래프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2차 2라운더 임주택이 좋은 대타요원으로 성장했고 특히 99년 우승에도 역할을 했다.
- 해태 타이거즈 : 김기태 거르고 오희주. 해태 스카우트는 김기태와 우완 정통파 강속구 투수로 기대치가 높던 오희주[3]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투수 보강 차원에서 오희주를 지명했다. 그러나 김기태는 팀의 중심타자가 된 반면, 오희주는 입단한지 2년만에 LG로 트레이드되어 1997년 은퇴했다.[4] 2차에서도 고작 두 명을 지명했고 당연히 뚜렷한 활약을 보인 선수는 없었다. 즉 1차, 2차 지명 모두 망했다.
- 삼성 라이온즈 : 삼성 멸망. 이 해 삼성은 극심한 신인지명난을 겪었으며 결국 지역 내 그나마 괜찮은 포수였던 이영재를 1차지명자로 뽑지만 3년만에 방출된다. 2차 1지명자였던 윤용하가 그나마 대타 요원으로 활약한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3년만에 태평양에 현금 트레이드 되었다. 지역신인조차 형편없어지기 시작한 이 시점에도 이 해 드래프트 후 2차 지명 6명 중 4명이나 지명을 포기해버렸고, 1명은 1년만에 방출, 그리고 이 해 드래프트 선수 전원이 고작 3년만에 모두 팀을 떠나는 희대의 폭망 드래프트가 되었다. 이 해 드래프트는 삼성 역사상 최악의 드래프트로 손꼽히게 된다.
- LG 트윈스 : 다이스 갓인데 2차 지명은 썩.... 다이스 갓이 보우하신 것으로 강력하게 의심받는 LG 트윈스답게 이 해에도 승리하여 송구홍을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송구홍은 비록 송구홈(...)이 되긴 했지만 LG 트윈스 역사상 최고의 3루수가 누구냐고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2차 지명을 크게 망치며 리그 밸런스에 일조(...)를 했다. 언급할 선수도 없다시피 한 수준. 대신 고졸 연고 자유 계약으로 입단한 이종열이 2009년까지 롱런했다.
- 쌍방울 레이더스 : 김기태, 조규제. 김기태는 쌍방울의 해결사가 되었고 군산상고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 조규제는 입단 첫해부터 쌍방울의 수호신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2차 지명 언더핸드 김기덕은 특유의 와일드한 투구폼으로 중간과 선발, 마무리를 오가며 김현욱에 버금가는 김성근(...)의 믿을맨으로 쉴새없이 굴려지는 등 맹활약 했고, 박진석 역시 선발진의 한 축으로 그럭저럭 활약 했다. 박성기도 입단후 4년동안 평균 10승, 150이닝 이상을 던지는 활약을 해줬다. 한편 고졸 연고 계약으로 입단한 투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가 바로 쌍방울 최후의 에이스였던 김원형.
6. 이모저모
- 위의 드래프트 현황을 보면 알겠지만 드래프트에서 각 팀마다 고작 많으면 2명, 적으면 하나도 못 건지는 수준으로 드래프트 풀이 약해졌다. 이는 당시 선수층이 얇아진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1980년대 후반부터 고졸 우선 지명이 활성화되면서 대부분 대졸만 뽑히는 2차지명에서는 좋은 선수가 줄어든 것이 이 해 드래프트부터 표면화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한동안 반복되다가 1996년 1차지명 제한과 고졸 우선 지명 제한이 생길 때까지 반복되었다.
- 태평양에 1차로 지명된 전일수와 삼성에 1차로 지명된 이영재는 프로에서는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고, 은퇴 후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쌍방울 3라운드에서 김기덕이 지명되고, LG 4라운드에서 동명이인 김기덕이 지명되었다. 이와 같이 동명이인이 같은 신인 지명에서 지명된 사례는 전무후무하다. 더군다나 둘은 대학 동기다.
- 쌍방울에 7라운드 지명된 유호는 1990년 연습생으로 입단했다.
- LG에서 3라운드에 지명받은 나진균은 나중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사무국장이 되며, 이후 대한야구협회의 사무국장이 되었다.
- 이 드래프트에서 2013년에 현역으로 뛴 감독 2명을 배출했다. (김기태, 염경엽)
- 쌍방울의 특별지명이었던 정학원은 정명원의 동생이다. 정학원과 정명원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형제간 투타대결을 벌인 형제이다. 결과는 정명원의 삼진으로 마무리되었다. 정학원은 백업으로 활동하다가 4년만에 은퇴한다.
- 삼성의 고졸우선지명자였던 허삼영은 현재 삼성의 전력분석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가 2020년 삼성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 태평양에 4라운드 지명된 김병주는 현 KBO 심판과 동명이인이다.
- 태평양 3라운더 백성진은 현 LG 트윈스의 스카우트 팀장이다.
[1] 주의해야 할 것은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2] 실제로 당시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약하던 김성갑 현 화성 히어로즈 감독도 아마추어 때에는 알아주던 타자였다.[3] 좌규제 우희주소리를 들을 정도였다.[4]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프런트는 투수수급을 위해 오희주를 선택했는데, 김응룡감독은 김기태를 원했다. 그 결과는 뭐 아시는대로. 코감독이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사무실 의자를 뿌셨다는 확인불가한 후문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