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수(1966)
1. 개요
전 해태 타이거즈, LG 트윈스, OB 베어스 소속의 좌완 투수. 전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
2.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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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말년에 쏠쏠히 활약했던 LG 트윈스 시절. (출처 : 포토로)
1986년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당시 타이거즈에 흔치않은 좌완인지라 자주 기용되었다.
특히 1991년에는 45경기에 출장하여 176.2이닝을 소화했고, 14승 7패 5세이브를 거뒀고 평균자책점은 2.45를 달성하는 등 선수로서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게다가 무려 5완투 2완봉을 거뒀다. 거기에 진기한(진귀한 이라고 봐도 될듯) 기록을 세웠는데, 176.2이닝동안 무사구(데드볼)였다. 이것은 훗날 양현종이 2017년에 200이닝을 무사구를 던지며 깬다.
해태에서 100이닝 이상 던진 햇수가 5년이나 있고, 그 중에서 2년은 두자리 승수도 달성했다. 통산 기록을 보면 1000이닝 가까이 던지면서 평균자책점은 3.51을 거뒀다. 해태가 아닌 다른팀이였더라면 충분히 2선발급이었으나, 당시 같은 팀의 슈퍼 영웅들에 밀려 선발과 계투를 오가는 중무리로 기용되었다.
투구 스타일은 좌완 강속구 스타일이 아닌 기교파였다. 구위는 같은 팀의 김정수가 더 좋았지만, 제구는 신동수가 더 좋았다고 평가받는다.
1992년 9월 17일 대전 빙그레전에서 장종훈에게 40호 홈런을 허용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그렇게 1993년까지 해태에서 좋은 활약을 했으나, 1993년 12월에 있던 한대화+신동수+허문회+김봉재를 LG로 넘기고, 김상훈, 이병훈을 받는 트레이드를 통해서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그 뒤 LG에서 좌완계투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1997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1998년 OB 베어스에 입단해 재기를 노리지만, 부활에 실패하고 그대로 은퇴한다.
3.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를 한 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2005년이 지난 뒤 경질되었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모교인 광주동성고와 서울고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2009년 9월부터는 광주동성고 감독을 잠시 맡기도 하였다.
2011년 10월 26일에는 당시 선동열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투수코치로 친정팀에 돌아왔다. 2018년 6월 8일, 이대진 투수 코치가 2군으로 내려가면서 1군 투수 코치로 승격되었다. # 하지만 이후 후반기가 시작되는 2018년 7월 17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 2018년 10월 19일 팀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이후 문희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영선고 코치로 부임했으며 문희수 감독이 중도 퇴임하면서 감독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영선고 야구부가 2019년 일정이 마무리되는대로 해체할 예정이라 사실상 시한부 감독인 셈. 팀의 해체 후 세광고 코치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