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 지역
1. 국제연맹 위임통치(1920~1947)
원래 나우루 지역은 독일령 뉴기니의 일부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 호주가 이 지역에 많은 인광석을 노리고 독일 제국으로부터 나우루를 탈취하였고, 이후 패전국인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승전국인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위임통치를 하게 되었다.
이후 1940년 나치 독일이 식민지를 빼앗긴 보복을 가해 태풍으로 정박해 있던 호주와 영국의 선박을 크릭스마리네의 보조 순양함[2] 을 동원, 격침시킨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이 1942년에 점령했으며,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1,200명이 노무자로 끌려갔다. 거의 500명이 사망했으며 생존한 737명이 귀환할 때는 섬의 인구가 천명에도 못 미치게 된다. 또한 당시 일본군 기지에는 위안소가 있었는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황선순 할머니가 위안부로 끌려갔던 곳이 바로 이곳 나우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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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항공대가 일본군 비행장을 폭격하는 모습(1943).
2. UN 신탁통치(1947~1968)
2차대전 종전 이후 일본 제국으로부터 다시 반환되었으며, UN이 출범하며 이 지역은 신탁통치로 전환되었다. 수임국은 이전과 동일.
1951년부터 자치권을 획득하였으며, 이후 원주민들에 의한 독립 요구가 커져 1966년에는 입법평의회가 설치되었고, 1968년에는 영연방과의 합의 하에 영국 여왕을 국가원수로 모시지 않는 영연방 공화국으로서 완전히 독립하였다.
[1] 1942년~1945년 까지는 실질적으로 일본 제국의 남양 군도에 속해 있었다.[2] 독일 해군이 상선으로 위장하고 통상 파괴를 위해 투입한 함정. 당시 독일 해군은 타 국적선박으로 위장한 무장 상선을 세계각지에서 운용하였다. 독일 해군이 태평양 한 가운데 갑툭튀하여 연합국을 공격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이유 때문. 그 이후 요코하마로 귀항하던중 미 해군 잠수함 타폰에 의해 격침당하며 이후로 독일 해군은 태평양에서의 무장 상선 운용을 중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