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루

 

[image] '''나우루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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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에로 공화국
Ripubrikit Naoero | Republic of Na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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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God's Will First
하느님의 뜻이 먼저다'''
'''정식 국호'''
Ripubrikit Naoero
나우루 공화국
'''국가'''
Nauru Bwiema
나우루의 노래
'''역사'''
1968년 1월 31일 : 독립
'''수도/최대도시'''
야렌 / 데니고모두
'''면적'''
21㎢
'''인구'''
10,781명
'''언어'''
나우루어, 영어
'''종교'''
기독교(국교)
'''정치 체제'''
의원내각제하의 대통령제
'''대통령(국가원수)'''
라이오넬 아이기메아
'''전체 GDP'''
1억 1700만$ (명목)
1억 6000만$ (PPP)
'''1인당 GDP'''
9,030$ (명목)
14,158$ (PPP)
'''공식 화폐'''
호주 달러 , 뉴질랜드 달러
'''ccTLD'''
nr.
'''국가 코드'''
NRU
'''국제 전화 코드'''
+674
'''단위'''
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12
도량형: SI 단위
'''외교'''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
유엔 가입: 1999년
'''여행경보'''
'''특별여행주의보''': '''전 지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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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근대
2.2. 전성기: 자원의 축복
2.3. 암흑기: 자원의 저주
4. 경치
5. 자연
7. 교통
7.1. 항공
8.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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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나우루 섬에 있는 공화국. 섬 면적 21km2로 서울 용산구 내지 도봉구 정도 크기인, 매우 작은 나라다. 적도의 바로 아래, 남위 '''1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기가 그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노란 선이 적도, 별이 나우루. 별이 12갈래로 빛나는 것은 나우루 토착 12부족의 단결을 의미한다. 마셜 제도랑 비슷한 뜻을 담은 국기다.[1]
인구경상북도 울릉군과 거의 비슷하다.

2. 역사



나우루에 관심이 있다면 이 나라의 역사를 정말 간단명료하게 써낸 책, "알바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アホウドリの糞でできた国―ナウル共和国物語; 알바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나우루 공화국 이야기)[2]"도 참고해 보자. 그러나, 하와이 대학교 마노아의 Craig R. Glenn 교수에 의하면 나우루의 구아노는 해양 조류의 똥이 아니라고 한다.[3]

2.1. 근대


나우루는 대략 기원전 1000여년 경에 미크로네시아인들이 들어왔고, 이후로 멜라네시아인, 폴리네시아인들이 들어왔고, 이들은 혼혈화 되어 나우루인이 되었으며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12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나우루의 존재는 1798년 유럽인에게 드러났다. 그전까지는 그저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오세아니아의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섬에 처음 나타난 유럽인인 존 피언(John Fearn)은 섬의 모든 것이 사람 살기에 쾌적하다고 생각해 섬 이름을 기쁜 섬(Pleasant Island)이라고 지었다.
그 후 30~40년 간 유럽인들이 이 섬을 왕래했고, 이들이 가져온 무기와 술의 전래로 섬의 평화는 파괴되고 10년 동안 씨족 간의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70년대에는 섬에 있던 독일 무역상들이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독일 정부에 무기를 요청해 많은 무기들이 원주민들에게 '''대량으로''' 거래되었다. 그후 전쟁과 질병으로 40년 간 인구가 1/3로 감소했고, 독일에 점령당한 1888년 당시에는 여자 인구가 남자 인구보다 30%나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나우루는 1914년까지 독일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다.
1899년 영국의 한 회사가 나우루에서 인광석을 발견해 나우루 섬은 자원적으로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호주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가장 먼저 배 '''한 척'''을 몰고와 독일로부터 나우루를 빼앗는다. 별다른 공격도 없었다고. 이후 나우루 지역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통치하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으로 편입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일본에게 점령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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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항공대일본군 비행장을 폭격하는 모습(1943년).

2.2. 전성기: 자원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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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구아노(동물의 똥)로 섬이 이루어졌고, 그 똥이 인광석이라는 자원으로 변해서 198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가는 부국이었다. 당시에는 미국은 물론, 최고의 경제 호황기였다던 버블경제 시절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달러 대였다. 지금으로 치면 카타르룩셈부르크급의 포지션이었다고 보면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나우루는 호주에 귀속된다. 1951년에 지방 정부 회의가 나우루에 설립되고 섬에 일부 자치행정이 부여되었다. 나우루는 영연방과 합의하에 1968년 독립했다. 1970년에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 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나우루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우루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광업 초기에 국영회사는 광산 지대에 땅을 소유한 나우루 인들에게 선적된 인산 1톤에 대해 1/2 페니씩을 지불했으며, 연간 선적량은 백만 2천 톤에서 2백만 톤에 이르렀다. 20년 동안의 인광석을 채굴했던 신탁회사들의 로열티만 하더라도 '''2억 3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당연히 국민들은 부자가 되었고 워낙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13,000명) 부의 분배도 공평하게 나누어져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오일머니 저리 가라 급으로 돈지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 국민이 모두 잘 살았다. 예를 들자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피지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 같이 쇼핑을 하러 가고, 간선도로가 나라에 '''딱 한 개''',[4] 그것도 길이 18㎞, 제한속도 40㎞/h 짜리만 있어 고속도로가 없는 국가인데도 너도나도 람보르기니, 포르쉐 같은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그것도 두 대는 기본.''' 그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 주유소는 29개나 있고, 걸어 다니기 귀찮아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 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지정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 심지어 그 당시에는 부자들만 가질 수 있던 컴퓨터게임기도 있을 정도였다. '''채굴산업엔 현지인들은 없고 외국 자본가, 외국인 노동자만 있었는 데도 이 정도였다'''. 국민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들이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때웠다.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국인이었다'''. 세금도 없고 주택도 학비도 유학 경비도 병원도 모두 국가에서 대주었기 때문에 그냥 공짜였다. 빨래나 청소도 메이드가 다 해주었다.
어찌 됐든 이들은 이렇게 생각 없이 돈을 탕진했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

2.3. 암흑기: 자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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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채 버려진 나우루의 인광석 채굴 시설들.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광산이 감소하면서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였다. 이때부터 몰락의 전설이 시작된다. 이를 대비해 정부는 바닷가에 어항을 만들어 국민들을 일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손 하나 까딱 않고 놀기만 하다 보니 고기잡이 같은 생활문화는 없어지고, 농사 지을 땅도 인광석 채굴로 없어졌을 뿐더러 농사짓는 법, 낚시하는 법도 취미나 소일거리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잊어버렸다. 심지어 빨래나 요리도 가정부가 맡거나 외식, 혹은 슈퍼마켓에서 냉동식품이나 가공식품을 사와서 때우다 보니 이전부터 농사나 낚시, 빨래, 요리 같은 것을 해온 경험이 있던 장노년층이나 소일거리 삼아하는 이들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이들이 같은 인간적인 삶을 위한 필수 능력도 완전히 잊어버려서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어 옆 나라에 가서 배워야 될 정도가 되었다. 당장 경작지도 닥치는 대로 채굴했기 때문에 국토의 80%가 바위 덩어리만 있는 황무지였다. 현재도 식료품은 수입된 가공식품만을 구할 수가 있으며 생산되는 작물 자체가 없다. 엄밀하게는 열대과일이나 채소가 나우루에 재배되고 있고, 돼지를 키우는 가정도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텃밭에서 채소 기르는 수준이어서 산업이라 말하기 민망할 수준이다. 사실상 농업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무방한 상태이다.
사태를 인식한 나우루 정부는 채굴량을 줄이고 채굴해간 나라에 대금을 요구하였으며 해외 유명 휴양지에 빌딩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등 힘을 썼으나 국내 소비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국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껴 일할 의지가 없었다.
그래도 자산운용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최빈국 수준까지는 안 갔겠지만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보니 국가 자산 운용도 엉망이라서 엄청난 재산을 까먹었다. 정부 예산을 횡령하는 일이 자주 있었고 투자한 사업도 부실한 사업성 검토로 인해 줄줄이 말아먹었다. 게다가 부동산 구입도 바가지 쓰면서 적정 가격의 몇 배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 거래 및 투자에 대한 전문가가 없어 국가예산의 회계 및 감리할 담당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국가 예산 수천만 달러가 증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냥 넘어갔다.''' 이래저래 상당히 막장이었는데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정부 관리들이 '''국가예산을 개인자금과 동일시한 건 너무 흔한 일이었고''', 호주 멜버른에 있는 나우루 하우스라는 개인빌딩 꼭대기층에 대통령 집무실이 있었으며,[5] 경제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경제에 대해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93년도에는 Leonardo the Musical: A Portrait of Love[6]라는 뮤지컬에 '''400만 호주달러'''를 투자하고, 초연이 공연되자 정부의 '''모든''' 각료들이 런던으로 '''당일치기로''' 와서 공연을 관람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그리고 투자한 뮤지컬은 망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부동산에 투자한 게 어디 가지는 않았는지 인광석이 거의 바닥날 때쯤에는 투자해두었던 부동산을 담보로 세계의 여러 은행에서 자금을 융통하였다. 또한 그동안 벌어들인 수익으로 외국인 마피아들을 상대로 국적을 팔고, 스위스를 흉내 내서 세계의 검은 돈을 보관하는 은행업을 시작하였고 이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면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조세 피난처 노릇을 하면서 먹고 살았고'''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자원이 고갈되었어도 몇 년간은 전성기 때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직도 오세아니아에서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부유한 나라에 속하기는 했다. 앞서 말한 것마냥 전성기 시절 모아둔 돈을 아무 생각없이 탕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전성기 시절 모아둔 돈을 거의 이런 투자에 써왔다면 지금도 상당한 부국이겠지만...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나자 상황은 또 크게 바뀌었다.''' 나우루는 검은 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나우루 은행에서 예금이 대량으로 인출되고 국제적으로 제재조치를 먹는 바람에 나우루의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며 순식간에 최빈국으로 굴러 떨어지게 되었고, 2004년에 나우루 은행이 모든 해외 금융기관들 간의 송금 통로가 꽉 막혀버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사실 나우루 국민들은 지금도 계좌 정보가 기록된 통장#s-1 장부상 가진 돈으로는 부자라고 한다. 하지만 나우루 은행은 지금 한 달에 딱 한번, '''임금 지급 때만 업무를 보기 때문에''' 예금된 돈은 당연히 마음대로 찾을 수도 없고, 허공에 떠 버린 상태라서 거지신세인 것이다. 그러니까 기업의 흑자도산이 가계경제 단위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은행 하나 망했다고 이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나우루 은행이 유일한 국립은행[7]이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중앙은행이라 할 수가 있는 한국은행무너졌다는 것이다.'''[8] 미국이 나우루 은행을 파산시켰으니... 심지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외국인들에게 국적을 팔았고 이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인이 나우루 국적을 산 후 중국에서 미국인에게 테러를 저지른 일도 있었다. #
결국 자국 내의 곳간이 바닥난 나우루 공화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오는 보트피플을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난민을 받아주지 않으려는 호주에게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덕분에 나우루 원주민보다 난민 숫자가 더 많아졌는데, 난민을 받을 여유도, 그럴 형편도 안 되면서 받은 탓에 제대로 관리도 못했다. 당연히 난민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나우루에 온 건 아니고 일단 기초적인 생활은 해야 되니까 당연히 나우루 정부에게 일자리를 요구했는데 돈이 바닥난 나우루 정부에서 나 몰라라[9] 하니 섬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나우루 정부는 기자와 인권운동가들의 입국을 막아버린다. 이윽고 2003년 12월 경 난민들에 의해 시위가 벌어져 관광비자 발급이 갑자기 중지되고, 항공, 통신이 완전히 끊기는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 1월에야 호주에서 파견된 구조팀이 왔을 때는 '''대통령 청사가 불타고 있는''' 등 개막장 상태였다.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급격한 사회 구성원의 변화가 망해가는 경제상황과 합쳐져서 대규모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 주원인으로 파악된다. 이후로 나우루는 난민들의 입국을 한동안 기피하게 되나 하나 이후로 난민 수용을 안 하면 현실적으로 먹고살 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난민 수용을 재개했으며 난민 수용 재개 이후로 나우루인들 상당수가 난민 캠프에서 일하면서 살고 있고[10] 난민들도 처음에는 나우루의 환경에 좌절했다가[11] 나중에가면 난민들이 적응하면서 현지인들과 빨래일이나 낚시일, 농사를 같이 하다 보니 나우루 정부도 주민도 난민들도 그럭저럭 현실과 타협하면서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
일이 이 지경까지 가게 된 것은 국토자원을 국가가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알래스카에 있는 지하자원들을 죄다 정부에서 자물쇠를 채워놓고 굳이 외국에서 수입해다 쓰거나 다른 지역의 자원들을 사용한다. 이유인 즉 지구의 자원이 오직 알래스카에만 남아있게 되는 상황이 될 때 미국은 안 그래도 세계 최강대국인 상황에서 '''슈퍼 갑'''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있지만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서 알래스카의 지하자원만큼은 고의로 사용하지 않고 있다. 나우루도 사치를 부릴 게 아니라 정부에서 구아노를 통제해서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게 했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경제부국으로 남았을 것이다. 같은 산유국이라 하더라도 사우디아라비아베네수엘라를 비교해보면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난민들은 쓰레기 청소나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 쇼핑몰[12]에서 근무하는 식으로 그나마 나우루의 밑바닥 경제를 책임져주면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지내며 같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어울려지는 것도 나름대로 기간이 필요한 데다가 현지 난민 시설 직원들의 자질이 나쁜 경우도 허다한지라 난민수용소에 살면 여러모로 지옥을 맛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게다가 나우루 자체가 한 때는 잘 살았다고 해도 깡촌에 가까운 나라이고 난민을 받아들인 것도 어디까지나 돈을 벌려고 받아들인 것이다 보니 인프라가 열악한 데다가, 봉급 수준도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2003년과는 다르게 평화로워졌다고 해도 난민들이 나우루에서의 생활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난민 아동들이 등교를 할 때마다 교도관들에게 강제로 몸수색들 당한다거나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현지인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 갔더니 왕따를 당한다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호주 정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신경 끄고 있고, 나우루 정부도 어차피 호주 정부로부터 벌어먹고 살고 있는 입장인지라 관리에 대해서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여유가 있다면 받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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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새로 선출된 대통령인 바론 와카. 구글 검색에 Baron Waqa라고 쳐 보면 이 사람의 사진들이 나온다.[13]
2013년에는 호주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설치한 난민수용센터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14] 그러나 호주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중앙은행이 붕괴된 지 약 7년 만에 은행이 다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고 2015년에 벤디고 앤드 애들레이드 은행의 나우루 지사 개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설 이후 나우루가 다시 조세피난처화 될 수 있으니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호주 내에서 있었지만,[15] 2017년 6월에 개설 2주년 기념식을 갖는 등 현재까지 그럭저럭 순항하고 있다.
사실 2010년 이후로는 상태가 그나마 나아진 편으로, 한때 2,500달러까지 떨어진 1인당 GDP도 2017년 기준으로는 8,570달러까지 회복한 상태이며, '''90%'''라는 실업률도 많이 떨어져서 2011년 기준으로는 23%로 개선된 상태[16]이고 국가 재정상황도 어느 정도 개선되어서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상당량의 세수를 거두고 있다. 아무튼 현재는 상당수의 나우루인들은 난민캠프에서 일자리를 얻거나 하는 식으로 먹고살고 있으며, 부업으로 고원지대에 있는 코코넛 농장에 가서 코코넛이나 여러 작물 들을 재배하고 온다거나 낚시 등도 하고 있다. 뭐, 전성기 때처럼 마음대로 놀고먹고 해외로 가지도 못하지만[17] 그래도 여유를 가지며 사는 태도는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사정은 열악해서 들리는 바에 의하면 나우루 전국에 전기는 하루에 4시간도 들어오지 않으며 이전에 굴러다니던 자동차들은 죄다 기름이 없어서 내동댕이쳐져 있고, 심지어 식수조차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사실 태평양 군도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광석만 없다면 혹은 존재 자체를 지금까지도 발견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아 놓는다면 나우루는 그저 관광업과 어업을 하는 그 동네 관점에서 그저 그런 국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광석에 너무 의존한데다 이후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나머지, 다른 태평양 군도의 국가들과는 달리 관광업이나 어업 등의 기반산업이 쇠퇴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간혹, 노동의욕을 잃은 나우루의 현실이 너무 비참하게 묘사되자, 산업 이데올로기에 의해 출처도 없이 과장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엄연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른바 Coca-colarization과 관련된 기사도 있다. 그야말로 온갖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 조미료 범벅의 음식 말고는 아예 없다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사실 저것 말고도 저 기사에서 지적하는 나우루의 각종 사회문제들은 나우루가 한창 인광석으로 잘 나가고 있었을 때에도 만연한 사회문제들이었다. 나우루는 전통적으로 바다나 호수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이나 나무에서 나는 코코넛, 빵나무 열매, 후식으로 망고 같은 열대과일을 주로 먹어왔고 돼지고기나 닭고기는 가끔씩 먹던 수준이지만, 한창 경제적으로 잘 살게 되면서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맛의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들이 나우루 인들의 주 식단이 되었는데 현재도 그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나우루에서는 중국 음식이 인기가 있었는데 나우루에 중국인들이 노동자들로 오면서 꽤 많이 살았고 이중 일부는 레스토랑을 차리면서 중국 음식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외에는 서양 음식이나 인도 음식도 들어와 있다. 2010년대 이후로 나우루의 경제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난민수용소에서 빠져나온 난민들이 음식점을 차리면서 중동권이나 미얀마 등지의 음식들도 널리 퍼지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나우루가 작은 섬나라고, 물자도 매일같이 들어오지 않아서 레스토랑 운영에 있어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고 한다.

3. 경제



전통적으로 농업어업을 주로 했고, 간헐적으로 수공업이 이루어졌지만 나우루가 한창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광석이나 생선, 망고, 코코넛, 빵나무 열매 같은 약간의 작물 정도를 제외하면 죄다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고, 인광석이 바닥난 현재도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가장 큰 수입원이 해외 원조다. 상술한 대로 난민을 받으면서 호주에게 지원을 받고 있다. 거의 호주의 식민지, 아니 거의 얹혀사는 수준이다.
그 밖에 자국 영해 근처에서 참치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 참치를 잡아다가 팔면 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참치를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서 못 한다. 참치 어업은 어획권의 거래가 이뤄질 정도로 대표적인 상업적 어업의 일종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나우루에는 이런 상업적 참치 조업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인프라 기반이 없다. 기본적으로 국제적인 대규모 참치 어획 및 거래에서는 신선한 참치의 공급이 최우선인데, 이를 위해서는 참치를 잡은 즉시 처치하여[18] 냉동, 또는 냉장하여 신선도를 잃기 전에[19] 최대한 빨리 목적지로 수송하기 위한 자본-기술집약적 시스템이 필요한 것. 이런 기반 없이는 외국에 내다 팔 만한 산업적 참치 어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우루에 참치를 잡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배를 타고 나가서 참치를 잡아온 후 자신들이 먹기도 하고 보관해두고 이웃 주민들에게 조금씩 떼어 파는 정도의 조업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외에 나우루의 주 산물인 인광석이 남아있는데 고갈되었다고는 하나 아래 지층에 2030년까지 캘 수 있을 정도의 양이 남아있다고 한다. 채굴 비용도 비싸졌고, 인광석이 많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미래가 완전히 보장된 건 아니지만 일단 그런 대로 먹고 살 정도의 양은 있는 셈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전부 캐고 나면 답이 없지만.

4. 경치


[image]
방치해버린 인광석 폐광.
다만, 고원 지대에는 그럴 듯한 과일 농장이 여러 개 있어서 그나마 남아있는 전통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해안 지역도 꽤나 풍광이 좋다고는 하지만, 외국인들을 고용할 돈이 없어서인지 쓰레기 천지라고...

5. 자연


[image]
100여년간 인광석 채굴을 해왔기 때문에 고도가 낮아져 투발루 섬과 마찬가지로 '''지구 온난화'''로 가라앉을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현재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마 나우루 주민 모두 호주가 지정해준 곳으로 단체 이주하고 나우루라는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채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6. 관광




7. 교통



7.1. 항공


'''운행노선 (국제선)'''
기점
종점
운행 횟수
항공사
(닫힘)
브리즈번 국제공항
오스트레일리아
일요일, 1회
나우루항공
추크 국제공항
미크로네시아 연방

코스라에 국제공항

폰페이 국제공항

호니아라 국제공항
솔로몬 제도

마셜제도 국제공항
마셜제도

나디 국제공항
피지

본리키 국제공항
키리바시

'''운행노선 (화물선)'''
기점
종점
운행 횟수
항공사
나우루 국제공항
브리즈번 국제공항
오스트레일리아

퍼시픽 에어 익스프레스
공항은 나우루 국제공항(INU/ANYN)이 유일하며[20], 이 나라에 취항하는 항공편은 나우루의 국적사인 나우루항공이 유일하다. 이 항공사는 인광석 호경기 중이었던 1970년 2월 14일에 '에어 나우루'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것인데, 한때 오세아니아 전 지역에 취항한 데에 이어 심지어 보잉 727일본,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 취항한 엄청난 항공사였다. 이것은 나우루가 작지만 오세아니아를 이어 주는 나라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연하지만 이렇게 수익성도 검토하지 않고 마구 취항하는 바람에 경영은 엉망이었다. 좌석 점유율은 20%를 넘지 못했고, 항공사 운영에만 년 국가 수입의 절반 가량을 탕진할 정도였다고 하니 어지간한 막장운영은 명함도 못 내밀 지경.
결국 인광석이 고갈된 이후로는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전성기에 다섯 대에 달하던 보잉기도 하나 둘 팔아치우는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보잉기마저도 2005년 채권자에게 압류되어 외부와의 항공교통이 두절되는 등 곡절을 겪다가 현재는 대만(중화민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름을 바꾸고 보잉 737-300 4대로 근근히 운항하고 있다. 다만 기체 등록번호는 호주식 번호를 부여받았다.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나우루가 대만의 몇 안 되는 수교국이기 때문. 주 1회, 일요일 호주 브리즈번 국제공항에서 나우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수요가 적어서 항공료는 꽤 비싼 편. 그나마 정부에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반값 요금을 받고 있는데 그마저도 100만원이 넘는다.
나우루에 입국하려는 외국인들은 피지대만, 브리즈번 등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왕복 항공권 발권 시 입국비자 가능. 다만 한국인의 경우는 EU,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국적자 등과 더불어 범죄 기록 제출 면제가 가능하다.

8. 기후


적도 바로 밑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열대몬순기후대에 속하며 연중 무덥고 습하며 대략 연중 기온분포는 최저기온 24도~26도, 최고기온 32도~34도로 형성된다. 11월부터 1월까지가 우기에 속한다. 그렇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실제 기온보다는 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형상 사이클론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이나 가끔 태풍 피해를 겪기도 한다.

9. 외교




[1] 이들 부족들은 같은 나우루어를 썼다고는 하지만, 나우루어도 방언차가 꽤나 심했기 때문에 원활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였다. 다만 20세기 들어서 나우루어의 문어화 및 표준화로 인해서 방언차는 거의 없어졌다. 현재도 부족간의 구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어차피 다들 비슷비슷한 생활을 하고 언어도 비슷해졌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는 편이다.[2] 후루타 야스시 저.[3] 출처: Glenn, Craig, et al., eds. (2000). Marine Authigenesis: From Global to Microbial. Tulsa, OK.[4] 다만 우회도로는 있기는 하다. 인광석 나르는데 인광석 광산까지 이어주는 도로는 필요하니까.[5] 이 빌딩은 나우루 정부가 지었던 것인데 이 빌딩이 완공된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멜버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 빌딩은 나우루가 망한 2004년 퀸즐랜드 투자공사에 매각되었고, 현재는 나우루 하우스라는 이름만 남고 나우루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상태이다.[6] 굳이 해석하면 '레오나르도 뮤지컬: 사랑의 초상화'[7] 나라 별로 펼치는 정책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지만 국책은행 이라고도 한다.[8] 중앙은행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그 나라 경제의 주춧돌이 무너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 나라는 아무래도 일반은행과 중앙은행이 왜 분리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나 보다.[9] 2006년 뉴스위크 지 보도에서 인터뷰한 난민은 기자에게 "생활보조금은 고사하고 가끔 먹는 거 주는 수준이니 이대로 굶어 죽을 바엔 일거리, 그래 물고기라도 잡겠다고 하니까 여기 나우루 공무원들이 뭐라는지 아세요? '''알아서 배 마련하랍니다.''' 세상에,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이러니 난민들도 분노하여 폭동 일으켰던 거죠..."라고 하소연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난민들의 분노가 무색하게 '''나우루 정부에게도 정말 그럴 돈이 없었다.''' 게다가 '''조업권은 거의 전부 외국에 팔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농사를 짓자니 안 그래도 그 좁은 땅 인광석 채굴하느라 농사 지을 땅도 마땅찮고.[10] 물론 난민 캠프에서 일해도 돈을 많이 주지는 않는다. 주당 200 호주 달러를 주는데 태평양 기준으로 친다면 벌이가 나쁜 건 아니지만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수입 수준이 좋다고 할 수가 없다. 그래도 1인당 국민소득이 한때 2,500달러대로 떨어진 시절에 비하면 이것도 감지덕지다.[11] 나우루 섬이 워낙 좁은데다가 섬에서 열심히 일해봐야 벌 수 있는 돈은 고작 푼돈 수준에 불과하고 놀거리도 없으며, 교육시설이 좋은 것도 아닌 데다가 탈출하고 싶어도 비행기는 타기도 힘들고 배를 타고 떠나려 해도 워낙에 외떨어져 있는지라 탈출하기도 힘들다.[12] 물론 나우루에서 쇼핑몰이라고 해도 어차피 인구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그냥 중형 슈퍼마켓인 수준이다. 나우루인들이 전성기 때 피지나 하와이, 호주, 싱가포르 등으로 놀러 간 것도 이 때문이다. 나우루는 한국 기준으로 면적이나 인구나 수준을 못 벗어나기 때문에 시골의 인프라가 부족하듯이 당연한 일.[13] 사실 태평양 섬나라들은 비만율이 매우 심각하다고 하며 원주민들 대부분이 비만이다.[14] 사실 난민들이 턱없이 낮은 봉급에다가 열악한 인프라, 난민 수용시설 직원들의 갑질까지 겹치니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이고 그래서 이런 일이 터진 것이었다.[15] 선진국의 은행들에서는 감시가 심하다 보니 돈세탁이 어렵고, 돈세탁을 위해 법망이 부실한 후진국들에 있는 은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이런 여론이 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나우루는 경제가 망하기 이전에 조세피난처 노릇을 하며 돈을 벌다 보니까 호주에서 경계 여론이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16] 23%도 결코 좋은 수치가 아니다. 30년때 '''대공황''' 당시의 실업률이 최대 25%였다. 개선되었다는게 이따위니 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만무하다.[17] 다만 학생들을 여전히 해외로 유학시켜주기는 한다. 전성기 때는 호주나 뉴질랜드로 보내줬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비교적 유학비가 싼 피지로 보내준다.[18] 참치는 체온이 높아서 잡은 뒤 방치해 두면 체온으로 살이 익어 셀프 바비큐가 되어버린다. 즉, 잡은 즉시 선상에서 처치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용 설비를 갖춘 큰 배가 필수적이다.[19] 참치 교역 초기에는 참치살을 급속 냉동하여 수송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현재는 냉장 상태로 항공 수송하는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항공수송의 높은 비용을 생각한다면 대체로 부피-중량에 비해 가격이 낮은 식재료를 항공 수송하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더구나 횟감으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며칠 정도의 기간 내에 소비지역까지 수송하기 위해서는 원양에서 어획한 뒤 바로 헬기 등을 이용하여 가까운 도시로 수송했다가 다시 장거리 항공편으로 목적지까지 수송하는 막대한 노력과 비용이 소모되는 것이다.[20] 그나마 현재는 사이트조차 닫힌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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