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젤 딕슨
1. 개요
KBL의 전 외국인선수.
자유계약제도 시절 150kg에 달하는 육중한 체구를 바탕으로 KBL의 샤킬 오닐로 군림하며 많은 화제를 몰고왔던 선수로, 비록 부상이 잦아 오래 활약은 못했지만 한때 KBL의 외국인선수 선발 트렌드를 몸무게 위주로 바꾸게 만든 선수이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별명은 '''"Big Jelly"'''. KBL 활동 당시 별명은 .[2]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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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주립대 시절 기록
명문 컨퍼런스인 ACC 소속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 입학한 딕슨은 2학년때부터 점차 선발센터로 기회를 잡으며 특유의 강력한 파워를 무기로 대학무대에 적응해 나갔으나, 부족한 볼핸들링과 느린 스피드로 인해 출장시간이 들쭉날쭉했고 팀도 워낙 약체였던 탓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3학년때 딕슨은 평균 8.1점-6.4리바운드를 올리며 괜찮은 활약을 보였지만, 이후 새로 부임한 감독이 팀을 트렌지션 오펜스 위주로 재편하면서 스피드가 약점이던 딕슨과 마찰을 빚었고, 이에 딕슨은 팀을 떠나 1시즌 유급을 불사하며 선벨트 컨퍼런스 소속의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로 전학을 선택하게 된다.
웨스턴 켄터키 시절 기록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에 4학년으로 편입한 딕슨은 부동의 주전센터로 자리잡으며 03-04 시즌에 평균 15.9점-10.3리바운드로 선벨트 컨퍼런스 득점 5위, 리바운드 1위를 차지하는 대활약을 보여준다. 특히 이 시즌 딕슨은 '''야투율 67.8%'''라는 놀라운 기록을 찍으며 '''전미 야투율 1위'''에 등극, NCAA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선벨트 컨퍼런스 퍼스트팀에 선발된다.
워낙 약팀들에서만 활약한 탓에 NCAA 토너먼트에 한번도 얼굴을 비추지 못한 딕슨은 2004년 NBA 드래프트에서 어느팀의 부름도 받지 못했고, 이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 프리시즌 계약을 맺고 시범경기를 치르지만, 벤 월러스, 다르코 밀리시치 등이 있던 피스톤즈에서 버티지 못하고 금새 방출되고 만다. 이후 유럽 상위권 리그인 그리스 리그로 진출해 04-05 시즌을 보내지만, 11경기 평균 4.1점-4.8리바운드의 부진한 활약으로 리그의 다른 미국선수들의 성적과 큰 차이를 보인채 방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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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엔 덴버 너겟츠와 프리시즌 계약을 맺지만, 역시 한달만에 방출되며 최종 로스터에 드는데 실패했고, 이후 NBDL 드래프트에 지원해 전체 2순위로 선발되어 NBDL 페이엣빌 패트리어츠에서 05-06 시즌을 보내던 중, 역시 05-06 시즌 진행중이던 KBL의 부산 KTF 매직윙스 추일승 감독의 스카웃을 받아 KBL에 첫발은 딛는다.
2.2. KBL 1기 부산 KTF 매직윙스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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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KTF가 마크 샐리어스를 퇴출시면서 대체 선수로 와서 2006년 1월 MVP에도 선정되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과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2006년 2월 25일 오리온스전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플레이오프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부랴부랴 켄 존슨이 대체선수로 왔으나 KTF는 딕슨의 공백을 이겨내지 못하고 5위 KCC에게 2패를 당하면서 플레이오프 7연패에 빠지면서 시즌을 마친다. 2006년 9월 4일, KTF는 나이젤 딕슨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필립 리치를 영입하면서 임팩트 있던 KBL 1기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2.3. 해외리그 시절
2.4. KBL 2기 (트라이아웃 시절)
2.4.1. 안양 KT&G 카이츠 → 부산 KT 소닉붐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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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 시즌을 앞두고 트라이아웃에서 KT&G에 지명되었으나, 도날드 리틀과 2010 KBL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 상위 지명권이 KT&G에게 가는 조건으로 나이젤 딕슨은 4년만에 부산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KT&G 시절에도 17경기에 출장해 평균 17.5점 8.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여전한 위력을 뽐냈다.
2.4.2. 서울 삼성 썬더스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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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슨의 KBL에서의 마지막 경력인데, 노엘 펠릭스의 부진으로 인해서 삼성은 부랴부랴 나이젤 딕슨을 영입했다. 하지만 복귀전이었던 S-더비에서 테렌스 레더가 친정팀을 폭격해서 삼성은 패배했고, 딕슨 역시 애런 헤인즈에 밀려 서브용병으로 48경기에서 평균 12분 42초, 6.85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고 팀은 27승 27패, 5할 승률로 6강에 갔지만 6강에서는 전주 KCC 이지스에게 스윕으로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3. 여담
- 웨스턴 켄터키 대학교 시절, 경기 도중 강력한 덩크로 골대를 박살낸 적이 있다.동영상
- 자유투 성공률은 상당히 저조한 편이다. 한 때는 자유투가 에어볼이 된 촌극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1] 145kg는 05-06 시즌 처음 KBL 왔을때 공식 몸무게. 4년 후 다시 KBL에 왔을땐 몸이 더 불어서 160kg(넘는다는 설도 있다.)였다.[2] 인종차별적 의미가 담겨있어 딕슨 본인이 매우 싫어했던 별명으로, 딕슨 본인이 수차례 사용을 자제해달라 요청했지만, 우리의 기레기들은 그딴거 가리지 않고 주구장창 "킹콩 대활약!!!"이라며 기사를 써대곤 했었다. 10년전에 비해 그나마 의식이 성숙한 지금이면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만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