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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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피스톤즈 No.3'''
'''벤자민 캐머런 "벤" 월러스
(Benjamin Cameron "Ben" Wallace)
'''
'''생년월일'''
1974년 9월 10일 (49세)
'''출신학교'''
쿠야호가 커뮤니티 칼리지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교
'''신장'''
206cm (6' 9")[1]
'''체중'''
113kg (250 lbs)
'''포지션'''
센터, 파워 포워드[2]
'''드래프트'''
'''미지명'''[3]
''' 소속팀'''
워싱턴 불릿츠/위저즈 (1996~1999)
올랜도 매직 (1999~2000)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0~2006)'''
시카고 불스 (2006~2008)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08~2009)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009~2012)
'''등번호'''
30번(워싱턴)
4번(올랜도,클리블랜드)
3번(디트로이트,시카고)
6번(디트로이트)
''' 수상내역'''
'''NBA 챔피언 (2006)'''
'''NBA 올해의 수비수상 4회 (2002, 2003, 2005, 2006)'''
NBA 올스타 4회 (2003-2006)
'''올-NBA 세컨드 팀 3회 (2003, 2004, 2006)'''
올-NBA 서드 팀 2회 (2002,2005)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 팀 5회 (2002-2006)'''
NBA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 (2007)
[image]
'''2004'''
'''2002년~2003년 NBA 올해의 수비수상'''
디켐베 무톰보

'''벤 월러스'''

론 아테스트
'''2005년~2006년 NBA 올해의 수비수상'''
론 아테스트

'''벤 월러스'''

마커스 캠비
'''2002년~2003년 NBA 올해의 리바운드왕'''
디켐베 무톰보

'''벤 월러스'''

케빈 가넷
'''2002년 NBA 올해의 블락왕'''
테오 래틀리프

'''벤 월러스'''

테오 래틀리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영구결번'''
No. 3
1. 소개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2.2. 왜 미지명됐나?
2.3. NBA 언드래프티의 전설로
3. 플레이스타일
4. 기타


1. 소개


'''BIG BEN'''
NBA 농구선수. 괴물같은 수비력과 리바운드로 리그를 평정했던 언드래프티의 전설이며, 동시에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명'''이다.
드래프트에서 뽑히지도 못한 무명의 선수로 NBA 선수생활을 시작,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전성기 때 센터로 활약하며 이름을 날렸으며 수차례 올스타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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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빅맨을 막기 위해 웨이트 중독에 가까운 몸관리로 피트니스 잡지의 커버에 오르기도 했다.[4]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월러스는 1974년 9월에 앨라배마에서 태어났다.(11남매중 10번째고 남자형제중 막내) 벤은 어릴적부터 가난했기에 용돈을 벌기위해 근처 농장에서 알바를 했고 형제들과 3:3이나 4:4농구를 하며 심심함을 달래곤 했다.
NCAA 디비전2에서 MVP를 수상하는등 활약했지만 포지션 대비 너무나도 작은 2부 대학출신 4학년을 뽑는 팀은 없었고, 보스턴에서 섬머리그에 초청했으나 장신 스윙맨으로 쓰려고 생각했을만큼[5] 특색없는 그저그런 C급의 유망주에 불과했고 빠르게 방출당했다.

2.2. 왜 미지명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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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시절 배드 보이스 2기 스타팅 5인방.
포지션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
센터
파워 포워드
이름
천시 빌럽스
리처드 해밀턴
테이션 프린스
벤 월러스
라쉬드 월러스
신장
6ft 3in
6ft 6in
6ft 9in
6ft 9in
6ft 11in
이 사진 하나가 말해준다. 벤 월러스는 프로필상 6피트 9인치, 206cm라고 돼있지만 저 아프로 헤어스타일 때문에 속기 쉽지만 실제 착화 신장이 같아야 할 옆 테이션 프린스보다 작고, 리처드 해밀턴보다 조금 크다. 이때문에 벤 월러스의 실제 착화 신장은 신발 신고 6피트 8인치, 203cm, 맨발키는 잘봐줘도 201cm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이 정도 신장은 월러스의 데뷔 기준 쳐도 NBA에선 빅맨으로 뛰는 것이 불가능하고, KBL에서도 평균적인 빅맨 용병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NBA에서 스몰 포워드로 포지션 전환하려 했지만 당연히 실패하고 방출당한 것.

2.3. NBA 언드래프티의 전설로


NBA 입성에 실패하고 이탈리아 리그로 방향을 잡던 그를 눈여겨 본 것은 똑같이 201cm의 신장으로 NBA에서 빅맨으로 활약한 단신 빅맨의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빅맨이자 1978시즌 NBA 파이널 MVP였던 웨스 언셀드 당시 워싱턴 불리츠의 단장. 당시 워싱턴에는 전체 1순위 크리스 웨버와 주완 하워드가 자리잡고있어 많은 기회를 얻지는 못한다. 이후 조금씩 출장시간을 늘려가며 활약하지만 아이작 오스틴과 3:1의 트레이드에 포함되며 올랜도로 트레이드 되고 여기서 월러스는 주전으로 출전하며 평균 4.8점 8.2리바운드 1.6블럭을 기록하면서 괜찮은 빅맨으로 점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한시즌후 처키 앳킨스와 함께 2:1로 그랜트 힐과 트레이드 되었다. 사실 말이 2대1 트래이드지 이때 앳킨스와 월러스는 자유계약 선수였던 슈퍼스타 힐을 아무 대가 없이 잃기 싫었던 디트로이트가 얻어온 "덤"에 가까웠다. 그러나 월러스는 디트로이트에서 기량을 만개한다.
월러스는 올스타에 선정되고 올해의 수비수상을 쓸어담았고 디트로이트는 루키시즌 한시즌만에 철저한 무명에서 트레이시 맥그레이디를 괴롭히는 수비수로 변모한 테이션 프린스, 트위너라 평가절하당하던 시절을 뒤로 하고, 준수한 득점력과 괜찮은 수비력 등이 디트로이트의 팀농구 시스템과 잘 맞아떨어져 좋은 가드로 인정받기 시작한 천시 빌럽스, 중거리슛의 달인이었던 리처드 해밀턴 등을 중심으로 탄탄한 팀을 구성했지만, 02-03시즌까지는 동부의 강자 정도로만 인식되고 '진지한 우승후보'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03-04시즌을 앞두고 명장 래리 브라운을 영입하고 시즌 중반에 슈퍼스타였지만 멘탈이 문제가 많았던 사고뭉치 라쉬드 월러스를[6] 영입한 '배드보이즈 2기' 디트로이트는 사고를 친다. 당시 2004 NBA 파이널 상대는 전당포 라인업을 자랑하는 LA 레이커스, 거의 모든 전문가와 팬들은 레이커스의 손쉬운 승리를 예상했으나 결과는 4:1로 디트로이트의 압도적 우승. 1패도 코비 브라이언트의 기적같은 위닝샷으로 당한 것. 월러스는 매치업 상대인 샤킬 오닐과 10cm, 30kg 이상 피지컬차이가 났으나 파울트러블 없이 그를 효과적으로 막았고[7], 스탯은 쌓았으나 더블팀을 몰고다니며 골밑을 파괴하던 샤크는 없었다. 월러스의 맹활약과 다른 팀원들 특히 백코트에서 LA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면서 결국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이후 05-06까지 올해의 수비수상을 거머쥐며 리그내 최고 수비수의 입지를 다시한번 다졌다. 04-05시즌 준우승, 05-06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진출등 디트로이트는 명실상부 동부 최강의 팀이였고 월러스는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계약을 기대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는 조금씩 줄어가는 운동능력과 스탯, 팀 페이롤 등의 문제로 계약에 난항을 겪었고 월러스는 시카고 불스와 4년 60mil의 계약을 맺는다. 크고 작은 부상속에서도 이전만은 못했지만 여전히 신뢰할만한 리바운더에 수비수로 제 몫을 다했다. 07-08시즌 도중 팀의 하락세 속에서 시카고 클리블랜드 시애틀의 3자 트레이드로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 된다.
클리블랜드에는 이미 노련한 장신센터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가 있었고 월러스는 주로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출장한다. 잦은 부상에 떨어지는 운동능력으로 완연한 하락세에 접어든다. 08-09시즌 이후 피닉스의 샤킬 오닐과 트레이드 된다. 피닉스는 팀의 샐러리를 줄이기 위해 월러스를 방출한다. 이후 디트로이트와 계약을 맺는다.
돌아온 디트로이트에서 3시즌을 더 뛴후 은퇴했다.

3. 플레이스타일




'''21세기 NBA를 대표하는 첫 빅맨 수비수'''
공격 부문에서는 기여할 것이 거의 없는 선수다. 스윙맨으로 쓰려고 했던 만큼 슈팅폼과 스트로크는 나쁘지 않지만 손목이 쉽게 피로해지는 문제 때문에 슛은 없는 수준이였다. 자유투조차 커리어 평균 41.4%의 성공률로 역대 최악인 선수로 '핵어샥'과 비슷한 개념의 작전인 '뱅어벤'이란 작전도 있었다. 주워먹기를 담당하며 필드골 5할정도를 기록하다 그의 공격비중을 늘린 래리 브라운 감독 부임이후 .421까지 떨어질만큼 공격에는 재능이 없는 선수였다.
이러한 공격력의 부재에도 괴수급 수비력만으로 탑클래스 센터가 되었다. 디켐베 무톰보와 함께 역대 최다 수비수상 수상자. 빅 벤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신장은 센터 기준으로 호빗에 가까웠으나 (본인말로는 신발을 벗고 201cm = 6ft. 7inch 정도라고) 7'2(218cm가량)에 달하는 긴 윙스펜과 버티컬 39인치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점프력 그리고 엄청난 힘으로 이를 상쇄했다. 활동량과 스피드가 출중해 헷지를 가장 깊숙히 들어가는 선수였고 때때로 앞라인의 선수도 막을 수 있을만큼 사이드 스텝도 뛰어났다. 손이 빠르고 패싱레인을 자르는 수비에도 능해 스틸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이 선수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수비수였냐면, 배드보이즈 2기시절 그가 결장한 경기에서도 디트로이트는 상위권의 수비팀인데, 그가 출장한 경기에서는 상대팀의 득점이 5점가량, 필드골이 5%정도 하락하면서 최고의 수비팀으로 변모한다.
다만, 센터로서 1:1수비는 명성에 비하면 다소 부족한 편, 아무래도 타고난 신장과 체중이 모자라다보니, 샤킬 오닐, 야오밍 같은 S급 센터를 상대로는 고전하는 편이였다. [8]
그가 최강의 수비수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팀의 플레이스타일과 더불어 시대의 변화 덕분이었다. 디트로이트는 역대급 조직력을 바탕으로 해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빈틈을 메우는 시스템 수비를 했고, 사기적인 기동력과 천재적인 수비센스를 갖고 있는 월러스는 자기 매치업만 막는게 아니라 '''상대 팀 전부'''를 견제하는 엄청난 역할을 했다. 그의 블록 슛 역시 자기 매치업을 찍어내리는 수비보다 대부분 도움수비를 하면서 막아내는 것이었다. 게다가 픽앤롤에서 대부분의 빅맨들은 픽에 걸려 작고 재빠른 가드와 매치업이 되면 발이 느려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가드를 견제하는 헷지 수비를 하곤 자기 매치업에게 돌아가는[9] 정도이다. 그러나 빅벤은 기본적으로 스윙맨 사이즈에 가깝기 때문에 포인트가드까지 막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이 경우에 가드를 끝까지 쫓아가 강한 압박으로 턴오버를 유발하곤 했다. [10]
물론 위에 언급한 대로 덩치가 작아 7피트급 빅맨들과의 1대1 수비에선 고전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2005년 파이널 당시 7피트에 가까운 샌안토니오의 에이스 팀 던컨과 주로 매치업된 것은 월러스가 아니라 던컨과 비슷한 덩치에 수비력이 좋은 라쉬드 월러스였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특급 센터들이 거의 사라지면서 이런 약점이 부각될 일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2004년에 라쉬드가 합류하기 전에 벌써 올해의 수비수상을 두 번 탄 것에도 볼 수 있듯이, 빅맨 수비도 비교적 약하다는 거지 진짜 약한게 아니다.[11]
아쉬운 점이라면 아무래도 사이즈가 모자라다보니 운동능력에 많이 의존하는 스타일이라 운동능력이 저하되면서 수비력이 급감했다는 점이다. 거기에 30대 중반 접어들면서 부상이 엄청나게 늘어 시카고에서 첫 시즌 이후 급격히 평범한 선수가 된 감이 있다. 디켐베 무톰보나 팀 던컨 등 사이즈가 되는 수비수들은 꽤 늦은 나이까지 준수한 수비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12] 다만 왠만큼 수비가 뛰어난 자원이라도 30대 중반이라면 수비력 저하가 많이 일어나는 편이고, 빅벤의 경우 본인의 몸관리가 철저했던 만큼 그래도 언더사이즈 빅맨 치고는 수비력 유지가 꽤나 잘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4. 기타


생계가 어렵던 월러스를 많이 도와주고 멘토가 되준 사람이 시카고 불스뉴욕 닉스에서 활약했던 찰스 오클리이다. 그가 나온 버지니아 유니온대학교도 오클리가 나온 대학교 였고, 오클리와 1:1 대결을 한 적이 있으며, 자신의 세차장에서 일하게 해주는 등 지원을 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나온 버지니아 유니온 대학교에 장학금 입학을 추천한 것도 찰스 오클리였다. 아마 찰스 오클리의 이러한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수비왕 '빅벤'의 역사는 없었을 것이다.
2016년 1월 16일 디트로이트에서 영구결번을 시켜주었다. 그날 선수들도 리그 1위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완파하면서 분위기를 살렸다.
[1] NBA의 대표적 프로필 사기로 꼽힌다. 실제 맨발신장은 기껏해야 200cm 정도라는게 정설.[2] 클리블랜드 시절에는 파워 포워드로 뛰었다.[3] NBA에서는 1라운드 상위픽이라 하더라도 결코 리그에서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고 2라운드 출신들의 상당수는 전력취급조차 못받다가 해외리그를 떠도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언드래프티인 월러스의 경우 아예 픽을 소모할 가치조차 없는 자원이었다는 소리. 그럼에도 무려 5번에 달하는 All-nba Team 선정, 디켐베 무톰보와 함께 역대 최다인 4번의 DPOY, 거기에 올해의 블락왕과 올해의 리바운드왕은 물론 주축으로서 우승까지 해내는 등 정말 많은 것을 이루며 이상적인 커리어를 보냈다. 때문에 '''역대 최고의 언드래프티'''를 논할때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1순위로 언급되는 선수이다.[4] 이 분야 선배는 바로 칼 말론으로 2013년에 지역 언론이 그와 인터뷰를 했을때 당시 막 50이 된 그가 아직도 매일 두 시간씩 운동을 하며, '''현역시절과 똑같은'''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는게 드러났다. 사실 농구선수들은 종목 특성상 지나치게 근육량을 키우는걸 지양하므로, 웨이트를 즐겨하는 선수들 중에는 오히려 은퇴후 근육량과 힘이 느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윌트 체임벌린으로, 원래 250파운드로 데뷔해 전성기에 275파운드였던 그는 말년에 300파운드로 체급을 올렸고, 은퇴 후 웨이트를 더 해 그 이상으로 근육량을 늘렸다.[5] 월러스는 대학 시절 내내 빅맨으로 뛰었고 파워포워드 기준으로도 슈팅력이 평균 이하다. 애초에 철저하게 4~5번의 롤을 수행해왔던 단신 빅맨을 스윙맨으로 쓰려고 했을 정도이니, 얼마나 그의 가치와 재능이 형편없는 평가를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6] 월러스의 영입은 단순히 준수한 스코어러 한 명 영입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월러스는 팀 던컨과 케빈 가넷보다 커리어나 전체적인 실력에서는 현저히 밀렸지만 1대1 매치업에서 그들과 대등하게 매치업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또한 가넷이 "가장 막기 힘든 선수"라고 할 정도였다. 피스톤즈의 가장 큰 단점은 그들이 점프슈팅 팀이었다는 것이었다. 벤 월러스의 공격력은 없어도 좋은 수준이었고, 그와 골밑 파트너였던 엘든 켐벨은 노장이라 별 기대를 하기 어려웠고 메멧 오쿠어는 득점력은 있었으나 포스트업 옵션이 없다시피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쉬드는 (비록 외곽슛이 많다고 까이긴 했어도) 강력한 포스트업 득점원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피스톤즈는 인사이드-아웃사이드의 균형잡힌 공격력을 갖추게 된다.[7] 그러나 월러스가 오닐을 경기 내내 1대1로 막았다는 건 잘못 전해진 설이다. 실제로 03-04시즌 중에 트레이드로 얻어온 7피트 1인치 279파운드에 달하는 노장 센터 엘든 켐벨이 큰 역할을 했다. 켐벨은 비록 노장이었지만 그의 엄청난 덩치와 힘 덕분에 샤크를 육체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선수였고, 실제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던 05시즌에도 중요한 플옵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출장해 샤크를 효과적으로 막으며 팀 승리에 공헌했다. 아무리 월라스가 덩치에 비해 힘이 세고 수비력이 지존이라도 저 정도 덩치 차이가 나면 답이 없다. 사실 이때 디트로이트가 쓴 전략은 샤크에게 어느 정도 줄 건 주되 최대한 괴롭히고 다른 동료들을 막는 것이었는데, 샤크는 실제로 26.6점을 무려 63.1% 확률로 넣었으나 득점의 대부분은 초반에 나왔고 시리즈 후반으로 갈수록 활약이 떨어졌다.(특히 동료인 코비는 22점을 넣긴 했지만 3할대의 야투율과 1할대의 삼점슛 성공률로 삽을 제대로 펐다.) 물론 켐벨과 같이 막았다곤 하나 파이널만 오면 날아다니던 오닐을 저만큼 막은 것만 해도 엄청난게 맞다.[8] 특히 야오는 2년차이던 2003-04시즌에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최초로 20점 2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9] 이걸 극악으로 못하는게 샤킬 오닐로, 워낙에 큰 덩치 때문에 사이드 스텝이 느린데다가 팀수비 센스도 부족해 (1대1 수비는 특급이었다) 스크린에 걸리고 나면 골밑으로 뒷걸음 치기 일쑤였다. 결국 98플레이오프에서 2대2 공격에서 극강인 유타 재즈를 만나 영혼까지 털리고 만다.[10] 비슷하게 PG까지 무난히 막아내는 수비범위가 넓은 스타일의 케빈 가넷과 비교하면 키가 큰 가넷이 1대1 수비는 우위, 기동력이 뛰어난 벤이 팀수비는 우위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두 선수 다 두 분야에서 일급 이상이다.[11] 원래 농구는 수비력을 떠나서 자기보다 월등히 크고 기술을 갖춘 선수들을 막는게 힘들다. 기본적으로 큰 선수, 그리고 공격수에 극단적으로 유리한 스포츠이기 때문. 실제로 수비왕 3연패를 이룬 드와이트 하워드도 큰 센터들을 막는건 어려워했고 특히 야오밍에게 많이 털렸다.[12] 젊은 시절 워낙 원맨팀에서 험하게 구른 케빈 가넷은 몸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빅벤보다 늦은 만 36세까지 올디펜스 팀에 올랐다. 게다가 가넷이 일찍 데뷔해 마일리지가 훨씬 많이 쌓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