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전칠기

 


한국 무형문화재 옺칠장의 나전칠기 제작모습

KBS 월드의 홍보 영상
[image]
1. 개요
2. 역사
3. 현대의 나전칠기
4. 기타


1. 개요


나전칠기(螺鈿漆器)는 옻칠한 나무제품(그릇이나 가구 등)에 야광패(貝), 전복조개등의 조개껍질 진주질로 장식한 것을 가리킨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제작되었으며 삼국 공통으로 '''나전'''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는 자개[1]박이라고 한다.

2. 역사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중국에서는 은나라 때부터 나전칠기가 만들어지고 당나라 시기에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백제 무령왕릉에서 평탈기법에 가까운 나전칠기가 발견되었고, 삼국사기에 칠전(漆典)이라고 하는 관청이 신라에 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이때쯤부터 나전칠기가 시작되지 않았나 짐작할 수 있다. 신라 때의 나전 유물로 국보 제140호 나전 화문 동경이 현존한다.
고려시대의 기록인 고려도경과 조선시대의 동국문헌비고에 고려 나전칠기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문종 시기에는 송나라거란에 나전칠기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의 특징으로 복채법(伏彩法)과 금속선을 들 수 있다. 일본에서는 나라 시대부터 당나라에서 수입되어 만들어졌다.

3. 현대의 나전칠기


개화기를 거쳐 가면서 나전칠기는 점차 쇠퇴해갔으며, 이왕직(李王職) 소관의 미술품제작소에 소속된 나전부에서 나전칠기가 제작되었다. 현대로 들어서 전통공예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기능장을 중심으로 나전칠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제작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길며, 수공 작업으로밖에 할 수 없고, 피부에 유독하고 악취가 나는 칠을 쓰기 때문에 기피 대상이라 기술을 이을 장인이 없어서 사라질 위기에 있는 기술이다.
만들기 어려운 만큼 나전칠기, 특히 대형물인 자개장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여 안방에 놓을만한 여러 자짜리 장롱은 기천만원을 호가한다.(장롱, 화장대, 협탁 등 풀 세트로 장만하려면 6-7000만 원에서 1억 가까이 한다.) 이리 비싼 게 잘 팔릴 리가 없다. 그리고 습기와 온도에도 민감한 편이라, 연중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곳이 아닌 어중간한 장소에 보관하면 대를 물려가며 쓰기도 어렵다.

4. 기타


중국나전
일본나전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다. 관장은 전직 국회의원 손혜원이다.
일본 드라마 추리극 바티스타 나전미궁에서 병원 노인들이 나전을 만들어서 병원을 돕고자 하고 안락사하는 옥상의 방에 나전장식이 있다.
배재대학교에 나전칠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칠기공예과'가 존재했지만 2012년에 5개 단과대학을 통합하는 과정 중에 사라졌다. 해당 학과의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반대하고 대외적으로도 여러 가지 우려가 나왔지만 대학 측에서 강행하였다.[2]
칠기가 서양에 소개된 것은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17세기 시누아즈리와 자포네스크가 유행하던 시절에 처음으로 서양에 알려졌다. 특히 일본 칠기는 광택 있는 검정 칠기판 위에 금과 은으로 모티브를 넣은 화려함으로 서양인의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동양의 칠기가 유명해지면서 그 비법을 알아내려 노력했다. 이후 유럽에 칠의 비법을 소개한 사람은 선교사이자 아마추어 식물학자인 피에르 니콜라 댕카르빌이다 그는 '중국 칠에 대해서'라는 연구서를 발표해 칠의 성분이 '치수'라는 나무에서 추출한 진액임을 밝혀내었다. 이 치수가 옻나무이다.
기아 엔터프라이즈에서 옵션으로 고려했으나 진품은 너무 비싸고, 모조품은 폼이 안 나서 반려당했다.

[1] 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 빛깔이 아름다워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잘게 썰어 가구를 장식하는 데 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2] 이때 아펜젤러국제학부, 공연영상학부의 연극영화학 전공도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