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여자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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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경의 사진으로 김길창 자서전에서 발췌.
2004년 폐교 당시와 비교하면 건물의 색만 재도색되었을뿐 그 외에는 바뀐게 거의 없었다.(...)
(교표)
'''교명'''
남성여자중학교
'''개교'''
1941년 5월 1일
'''폐교'''
2004년 2월 29일
'''유형'''
일반계 중학교
'''성별'''
여자
'''운영형태'''
사립
'''학교법인'''
남성학원
'''소재지'''
부산광역시 중구 샘길 14 (대청동1가)
1. 개요
2. 역사
3. 상징
3.1. 교표
3.2. 교훈
4. 특징
5. 학교 시설
6. 여담


1. 개요



부산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사립 여자중학교. 개신교 미션스쿨이자 경성대학교 설립자로 잘 알려진 김길창 목사가 '''처음으로 설립한 교육기관'''으로, 김길창 목사는 이 남성여자중학교를 필두로 1949년에 1948년에 계성여자중학교(2000년 폐교), 대동중학교, 1951년에 남성여자고등학교(학제개편으로 남성여자중학교에서 분리), 1952년에 광성공업고등학교(현 경성전자고등학교), 1955년에 경남사범대숙(현 경성대학교), 1958년에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1962년에 부산신학교, 1965년에 대동고등학교남성초등학교, 1968년에 거제중학교 (현 거성중학교, 1990년에 계열분리), 1973년에 금성여자종합고등학교(현 부산보건고등학교, 1974년 계열분리)를 설립하여 1941년부터 1973년까지 32년간의 계속되는 학교 신설로 부산 최대의 사학 재단을 꾸리게 되었고 이외에도 김길창 목사는 잠시나마 경남노회 기독교학원(마산 창신중고등학교, 부산 금성중고등학교, 건국중고등학교)의 이사로 활동하거나 이사장직을 대행하기도 했다.
1974년 동주여자중학교 이전 및 1976년 혜광중학교 폐교 이후로는 덕원중학교와 더불어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둘 밖에 없는 중학교 였으며 중구에서는 유일하게 여학생들이 갈 수 있었던 중학교였다. 앞서 말한대로 학교법인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의 시초격인 학교였지만 도심 공동화를 이유로 2004년에 폐교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고, 2015년 현재 부산광역시 중구 소재 중학교로는 남자중학교인 덕원중학교 단 1개교만 현존하고 있으며, 중구에서 여학생이 갈만한 중학교는 완전히 씨가 말라버리면서 11년째 공백 상태로 남게 되었다.

2. 역사


1941년 5월 1일에 흥아고등여학원이라는 교명으로 설립되었으며, 1943년 4월 30일에 흥아실무여학원으로 인가를 다시 받았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2일에 일본인이 경영하던 삼도실업고등학교 교사와 부속시설 일체를 인수받아 다음날인 10월 3일에 이전을 하였다.[1] 1945년 10월 11일에 교명을 남조선고등여학교로 개명 하였으며, 1949년 9월 11에는 교명을 남조선여자중학교로 개명하였다. 1951년 7월 5일에는 다시 교명을 남성여자중학교로 변경 하였으며, 그해 8월 31일에 학제 변경으로 남성여자중학교에서 남성여자고등학교가 분리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부산 구도심 지역의 도심 공동화로 인하여 학생수가 급감하여 계속 학생수를 감축하여 운영하다가 결국 2004년 2월 19일에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유서 깊은 중학교인 남성여자중학교는 10일후인 2004년 2월 29일에 최종 폐교되면서 영원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폐교 이후에도 한동안 남성여자중학교 교사는 남아있었지만 (남성초등학교와 남성여자고등학교 사이) 2013년을 전후하여 철거되면서 현재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다. 아마도 부산에서 폐교되어 소멸된 학교 중에서는 이곳과 더불어 가장 화려한 활약상을 벌였던 학교라고 할 수 있다.[2][3]

3. 상징



3.1. 교표


남성여자고등학교와 공통의 교표를 사용하였다.

3.2. 교훈


  • 서로 사랑하자
  • 맑고 깨끗이 하자
  • 알고 실천하자

4. 특징


1970년 중학교 평준화 이전 까지만 해도 남성여자중학교는 2차 중학교[4]로 준명문에 속하였다. # 부산지역의 수많은 개신교 미션스쿨 중학교 중에서는 남성여자중학교 만이 유일하게 2차 중학교에 속하였으며, 다른 개신교 미션스쿨 중학교들은 모두 3차 중학교에 속하였다. 이 덕분에 중학교 평준화 당시 명문 중학교 숙청을 피해갈 수 있었으나, 평준화 이후 도심공동화로 지역 학군이 쇠락하면서 남성여자중학교 또한 쇠락하게 되었고, 과거의 준명문 타이틀은 유명무실하게 되었다가 결국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로 이어지게 되었다. 부산에서 데레사여자중학교와 함께 과거 준명문 학교가 폐교된 둘 밖에 없는 사례. 전성기인 1960~70년대 당시 남성여자중학교는 체육활동에서 상당한 두각을 나타냈는데, 부산시 중교고 체전 7년 연속 우승을 하기도 했고 전국 체전에서 다종목 우승을 하였다. 남성여자중학교는 당시에 배구, 수영, 육상에서 국가대표급 선수 배양을 목표로 하였다고 한다.

5. 학교 시설


  • 학교부지 5,959평
  • 운동장 822평
  • 공지 1,842평
  • 건평 1,531평
1960~70년대에는 좌석 152석에 완전 방음 및 암막, 음향장치를 갖춘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시청각실을 갖추었다고 한다.
폐교된지 수년 후에 남성여중 27회 동창회가 방문해서 촬영한 사진들이 있는데, 폐교된 상태로 방치중인 건물인것을 생각하면 매우 깨끗하게 보존되었으나 현재는 철거되고 없다.

6. 여담


  • 학교법인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 최초의 사립학교로써 상당한 의의가 있는 학교였고 학생수가 급감하기는 했어도 중구민들 입장에서는 매우 필요하고 소중한 학교라고 할 수 있었지만, 학교법인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은 이 학교를 살릴 의지가 없었던 것인지 그냥 이 학교를 얄짤없이 폐교해버렸다. 한마디로 토사구팽. 사실 그 이전에도 2000년에 형제학교인 계성여자중학교를 폐교하고[5] 1990년에 거성중학교를 다른 재단으로 넘겨버린 것으로 봐서[6] 학교법인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은 1990년대 이후로 중학교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던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학교법인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 산하의 중학교로는 대동중학교만이 유일하다.
  • 남성여자중학교는 부산 중구 유일의 여자중학교였고 중구에서 여학생이 갈 수 있는 유일한 중학교 였기에 이 학교의 폐교는 부산에서 가장 논란이 심한 폐교 사례였고, 남성여자중학교가 폐교된 이후로 부산시 중구는 부산시 교육청에 남성여자중학교를 대체하는 공립 여자중학교 신설을 계속 요구하고 있으나 남성여자중학교의 폐교 사유는 도심 공동화였고, 현재 중구는 도심 공동화로 인하여 중구 거주인구가 극히 적으며 한해에 중학교로 진학하는 여학생 수가 100명도 채 되지 않아서 2010년 중반부터 실시된 학교 총량제[7]로 인하여 부산시 교육청에서는 공립 여자중학교 신설에 난색을 표하며 계속 거부하고 있다.# 어찌보면 굳이 폐교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봐야 하는데, 남성여자중학교의 폐교 사유가 앞서 말한대로 도심 공동화 라고 하지만, 도심 공동화를 구실로 남성여자중학교가 폐교된 이후 중구의 인구 유출은 이전보다 더 심해지고 말았다고 한다.
  • 중구에서 유일한 중학교인 덕원중학교의 경우 남자중학교이기에 여중생들은 얄짤없이 서구나 동구, 영도구에 있는 학교로 원정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다. 덕원중학교의 경우 산복도로망양로 연선에 부산디지털고등학교랑 같이 붙어있어서 도심 공동화 현상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 형제학교인 남성여자고등학교와 더불어 부산에서는 모순된(...) 교명의 학교로 유명했다. 사실 남성여자중고등학교의 남성은 성별을 뜻하는 男性이 아니고 남쪽의 별을 뜻하는 南星이다.

[1] 이 부지는 남성여자중학교가 폐교될때 까지 사용하였으며, 현재도 남성초등학교와 남성여자고등학교가 쓰고 있고, 부산신학교도 1962년에 이 자리에서 설립되었으며 경성대학교의 전신인 경남사범대숙이 1963년에 한성여자실업초급대학으로 바뀌었을때 이 자리를 3년간 사용했던 적도 있었다. 이정도면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의 본부라 봐도 무방할듯.[2]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서 이 학교에 대해 검색하면 전성기때 얼마나 화려한 활약상을 보여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3] 이는 남성여자중학교의 형제학교인 계성여자중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계성여자중학교는 본래 남성여자중학교 2부 야간제반에서 시작된 학교로 1956년에 남성여자중학교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서구로 이전하였는데, 계성여자중학교는 전성기때 남성여자중학교 처럼 활발한 체육 활동을 하면서 부산시내 여자탁구 명문으로 유명하였다. 하지만 이 계성여자중학교도 본가인 남성여자중학교 처럼 도심공동화 직격탄을 맞고 폐교되기는 했지만, 계성여자중학교 바로 뒤에 계성여자중학교보다 11년 늦게 들어온 부산중앙여자중학교가 있다보니 남성여자중학교 만큼의 폐교 논란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4] 1970년 이전에 존재하던 중학교 입시는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졌으며 전기에 속하는 학교들이 1차 중학교로 최상위권 명문 중학교였으며, 후기 중학교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하는 2차 중학교 및 중하위권에 속하는 미달학교인 3차 중학교로 나누어졌었다. 중학교 평준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1차 중학교에 속하던 전기 명문 중학교들의 상당수는 폐교 되거나 다른 교명으로 강제로 바꾸게 되는등 상당수가 숙청을 당해야 했었으나 2차 중학교 부터는 그대로 존치되어 평준화 되었다.[5] 아마도 건물을 전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정된다.[6] 아이러니하게도 거성중학교는 현재도 멀쩡하게 잘 남아있으며 그럭저럭 잘 돌아가고 있는듯 하다. 이 학교가 국성/남성/한성/훈성학원 산하에 있었을때는 재단에서 최약체이자 다른 재단에 넘기기 직전에는 그냥 내놓은 자식 취급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아이러니할 따름.[7] 한 지역 내에 존재할 수 있는 학교의 수가 한정되있는 것으로 쉽게 말해 이 곳에 학교를 하나 세우면 정작 신설학교가 필요한 명지나 정관같은 지역에 학교를 세울 수 없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