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근성

 

1. 정의
1.1. 오용
2. 관련 문서

한문
奴隸根性
영어
a servile spirit

무릇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다.

- 사기, 권 129, 화식열전 중


1. 정의


남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주체성 없이 남의 눈치만 보는 성질을 뜻하는데 말 그대로 자유가 주어졌거나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저 자리에 주저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국 노예 상태에 만족하는 정신 또는 근성을 말한다. 학습된 무기력 문서 참고. 예컨대 구술되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게 있다.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한 양반가에 묶인 노비 일가가 있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했고 그들을 좋게 본 노비들의 주인이 노비들을 자유롭게 해주기로 마음 먹었고, 어느날 노비들에게 그 마음을 말했다. 그러자 노비들이 하는 말은 "우릴 내치지 말아주십시오 주인님"이었다.

다만 이 이야기를 무조건 노예근성이라고 깔 수는 없는데, 노비로서 묶여있다면 적어도 굶어죽을 걱정은 없지만 자유를 얻는다면(머물 곳이 사라진다면) 당장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신분제가 있던 전근대 사회에서 재산을 따로 축적하지 않고 평생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던 노비가 당장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엄연히 말하자면 이들은 재산을 생산하는 수단인 땅이 없는 만큼 기껏해야 또 다른 사람의 노비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고 다른 방식의 노동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비를 풀어줄 생각을 할 정도로 좋은 주인은 많지 않기에 갑자기 풀어준다고 하면 입을 줄일려고 하나 의심부터 해야 정상이다. 당시 조선시대 때 노비들은 부정적인 갈취보다 가난에 못 이겨 본인들이 양반들에게 먼저 노비를 자처하여 팔려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한 이 당시에는 일반 농민이 세금을 감당 못해 스스로 있던 집도 불태우고 산속으로 도망가던 시대였다. 반대로 말하면 세금도 안 내고 시킨 일만 하면 먹을 건 제때 주는 노비가 오히려 자유롭게 조세로 갈취당하던 농민보다 대우가 좋은 셈이다.
스스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길 두려워하여 스스로를 노예로 격하시키는 정신도 노예근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남이 그렇다면 무조건 그게 맞는 것으로 아는 행동이라 하겠다. 그리고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또는 그것이 전체(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착각하고 저항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혹은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하고, 노예 상태가 아닌 자들을 오히려 비하하며 자랑거리로 삼기까지 한다.[1]
이런 성향이 짙은 사람들이 양산되면 양극화의 결과로 자본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와 권력이 영향을 부풀리는 사태가 점차 빨라지고 고대의 무한계층사회 또는 원시시대 이전의 무관심과 혐오, 각자도생 같은 현상이 부활하는 등 인류가 퇴행하고 약자가 사람 이하로 도태될 수가 있어서 아주 위험하다.
뜻을 정리하자면 남에게 얽매이고 나쁜 짓을 하게 되거나 자존심 없이 남들만 잘되라면서 스스로 해를 입는 자를 나타내는 말[2]이라고 볼 수 있다.

1.1. 오용


정리해고와 노예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노예는 주인 아래에 노예라는 계급적인 구도지만 고용주와 피고용인은 피고용인이 노동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동등한 관계다. 정리해고의 경우 지금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지는 것이고 부당한 처우를 받는 것인데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조가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2. 관련 문서


  • 갑과 을
  • 군부심
  • 상명하복
  •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 인지부조화
  • 정육점을 섬기는 돼지
  • 출애굽기[3]
  • 호갱

[1] 이에 대해 '리로이 존스'라는 사람이 '노예들은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서로 자랑한다.'라고 표현했다는 글귀가 알려져 있다. 해당 글 리로이 존스(Everett LeRoy Jones)는 미국의 극작가인 아미리 바라카(Amiri Baraka)의 실제 이름이지만('바라카'는 아프리카식 예명인 Imanu Amiri Baraka) 아미리 바라카가 실제로 저런 말을 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2] 그 결과를 싫어하면서도 혼란스러워하기만 하거나 그 결과가 나쁜 줄 모르는 것 포함.[3] 이때 성서에 기록된 유대민족의 행태는 그야말로 노예 근성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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