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오 콘카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이름'''
'''다리오 콩카
Darío Conca'''
'''본명'''
다리오 레오나르도 콩카
Darío Leonardo Conca
'''출생'''
1983년 5월 11일 (41세) /
아르헨티나 헤네랄 파체코
'''국적'''
아르헨티나 [image]
'''신체'''
167cm | 체중 58kg
'''직업'''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소속'''
'''선수'''
CA 리버 플레이트 (2002~2008)
CR 바스쿠 다 가마 (2007/임대)
플루미넨시 FC (2008/임대)
플루미넨시 FC (2009~2011)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2~2013)'''
플루미넨시 FC (2014)
'''상하이 상강 (2015~2018)'''
CR 플라멩구 (2017~2019/임대)
오스틴 볼드 FC (2019)
1. 개요
2. 우승
3. 커리어
3.1. 유소년부터 임대 시절
3.2. 브라질 리그 최고의 선수
3.3. 광저우로 이적
3.4. 광저우를 떠난 후


1. 개요



2. 우승



3. 커리어



3.1. 유소년부터 임대 시절


아르헨티나 2부 리그 팀 아틀레티코 티그레에 15살에 데뷔해 2년간 발전을 이룬 후, 아르헨티나 명문 팀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한다. 아직 나이가 나이인지라 2년간 B팀에서 생활하다가 감독인 페예그리니의 눈에 띄어 2002년에서야 주전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자신을 뽑아준 감독이 바뀌고 2004년에 칠레의 우니베르시다드 카톨리카로 2년간 임대됐다.
2004년부터 시작된 2년간의 칠레 생활에서 그는 선수로서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되어 팀의 주축으로 거듭나게 된다. 85경기에서 16골이라는 준수한 성적표와 함께 완전 이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그는 다시 리버 플레이트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그는 다시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 센트랄로 임대를 가게 된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로사리오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고, 이를 눈여겨본 브라질의 바스쿠 다 가마 구단의 임대 제의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바스쿠 다 가마로의 1년 간의 임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바스쿠 다 가마에서 30경기 동안 6골을 득점한 그는 당시 바스쿠 다 가마와 플루미넨시의 감독을 왔다 갔다 하던 헤나투 가우초(브라질 국대 출신)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플루미넨시로 임대되어 온다. 그의 재능이 만개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그는 플루미넨시에서 주로 왼쪽 측면 미드필더나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았는데, 플루미넨시에서 그는 가장 핵심적인 플레이 메이커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재능은 플루미넨시가 2008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때 그와 함께 뛰던 선수들이 당시에 엄청난 재능으로 불렸던 치아구 네베스, 치아구 시우바, 키케로와 같은 선수들이다. 이 중에서 치아구 시우바를 제외하면 결국은 유럽을 거쳐서 다들 남미 리그들로 유턴했다.

3.2. 브라질 리그 최고의 선수


팀메이트들의 유럽 진출 러시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플루미넨시에 남아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 2009년 그는 플루미넨시와 3년 계약을 맺고 리버 플레이트에서 플루미넨시로 완전 이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해 플루미넨시의 리그 우승을 일구어 내고 올해 브라질 최고의 선수, Globo 선정 남미에서 가장 우수한 선수, 남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선수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팀과 5년 재계약을 맺고 2010 시즌까지 최고의 선수로서 81경기에서 17골을 달성해 낸다.

3.3. 광저우로 이적


그러다가 2011년 7월, 여름 이적 시장에 다리오 콘카는 본격적으로 거대 자본을 풀기 시작한 중국 슈퍼 리그 광저우 헝다로 이적료 약 107억 원, 연봉 약 160억 원을 받으며 이적했다. 당시 세계 축구선수 연봉 3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2011 시즌 중국 슈퍼 리그에서 15경기 9골을 터트리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마쳤다.
2012 시즌 2월 25일 톈진 테다와의 FA컵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3월 7일 AFC 챔피언스 리그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2골을 몰아치며 전북 현대를 5-1로 대파하는 데 일조했다. 팀의 8강 진출에도 기여하고 4강전에서 만난 알 이티하드를 상대로 골을 터뜨리며 승리에 기여했지만, 원정 경기 패배에 따른 골 득실 열세로 팀이 8강에서 멈춰서면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2013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팀의 첫 대회 4강 진출에 기여한 것을 비롯하여 4강전에서도 가시와 레이솔에서 골을 연이어 터뜨리며 원정에서 4-1 승리를 거두는 활약을 했다. 사실상 팀의 첫 대회 결승 진출은 예약되었다는 평과 같이 2차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전반에 2-0으로 앞서는 데 기여했다.
이해 콘카의 활약으로 광저우는 더블을 달성하였고, 이 당시 광저우 용병 3인방(콘카, 무리키, 엘케손)은 현재도 한국 축구 팬들에게 아챔 최강의 용병진으로 꼽히고 있다.

3.4. 광저우를 떠난 후


2014 시즌 플루미넨시로 이적했다가, 2015년 초 상하이 상강으로 이적하며 중국 슈퍼 리그에 복귀했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언론에 따르면 상하이 상강이 플루미넨시에 지급한 이적료는 약 120억 정도이며, 2년 계약에 연봉은 약 117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5 시즌 리그에서 29경기에 나서 9골을 기록했으며 시즌 종료 후 슈퍼 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되었다.
2017년 1월 3일, 상하이 상강이 첼시 FC에서 뛰던 오스카를 영입함에 따라 외국인 쿼터가 꽉 차게 되었고 이에 따라 다리오 콘카는 상하이를 떠나 1년 임대 형식으로 CR 플라멩구로 임대 이적하게 되었다.
2019년 미국 USL의 오스틴 볼드 FC에서 뛴다. USL은 MLS의 2부 리그 격인 리그이다. 2019년 4월 오스틴 볼드가 콘카와 계약을 해지했다고 발표했고, 계약 해지 직후 콘카는 은퇴를 선언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