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무라 히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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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무라 히토시 (多村仁志)'''[1]
'''본명'''
다무라 히토시 (多村仁)
'''생년월일'''
1977년 3월 28일
'''국적'''
일본
'''출신지'''
가나가와현 아츠기시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드래프트 4위
'''소속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5~200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2012)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13~2015)
주니치 드래곤즈(201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반지'''
'''2006'''
'''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rowcolor=#373a3c> '''2011'''
1. 개요
2. 부상 경력
2.1. 학창 시절
2.2. 프로 입단 후
2.3. 2003년
2.4. 2004년
2.5. 2005년
2.6. 2006년
2.7. 2007년
2.8. 2008년
2.9. 2009년
2.10. 2010년
2.11. 기타 에피소드
2.12. 시즌별 출장 경기수


1. 개요


전직 일본 프로야구 선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출전하여 일본의 우승에 기여했다.
전성기 시절 모습만 보면 진정한 5툴 플레이어.[2] 뛰어난 선구안과, 신장 180cm을 넘지 않는 크지 않은 체구에도 장타를 만들어내는 타격기술로 많은 홈런과 장타를 양산할수 있는 타격[3][4]을 지녔으며, 수비 면에서도 탁월한 타구판단과 빠른 발, 그리고 강한 어깨를 지닌 진정한 의미의 5툴, '''부상만 없으면 일본 최정상급 외야수였던 남자.'''
문제는 아래에 A4 2장은 족히 나올법한 부상 이력에서 볼 수 있듯, '''2010시즌 전까지 단 한 시즌도 풀타임 출장한 적이 없는''' 일본 야구계의 살아있는 종합병동(...). 팬들은 이제 안타까움을 넘어서 개그로 승화하는 그의 부상에 익숙해져 있다. 오히려 부상 없이 서 있으면 웬일이냐고 할 정도. 이렇게 부상이 잦아 풀타임 출장이 없다시피 한 탓에 골든글러브 경력은 없다.
그래서 일본 언론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잘 깨진다고 해서)'''유리의 대포'''. 2ch 등에서의 별명은 '''스페랑카 다무라'''. 오죽 심하면 2ch 실황중계판에서 비 오는 날 비 맞고 있는 다무라를 보고 '안 돼 다무라는 비 맞으면 내일 감기 걸려서 못 나올 거야!' 같은 소리도 심심치않게 나온다.(...)
자주 부상을 당하는 탓에, 게임에서마저 이런 모습이 반영되어 코나미의 야구게임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시리즈나, 프로야구스피리츠 시리즈에서 항상 "부상당하기 쉬움 1"(내지는 2)이라는 특능이라 하기 뭐한 특능(?)을, 파워프로군 포켓 시리즈에서도 부상△ 특능을 가지고 있다.
2006년 WBC 준결승전에서 한국팀을 울렸던 선수 중 한 명. 선발 투수 우에하라 고지의 쾌투가 한국팀 타자들을 잠재웠다면, 타선에서는 후쿠도메 고스케의 선제 2점 홈런에 이어 다무라 또한 배영수를 상대로 홈런을 쳐내는 등의 활약으로 한국에 통한의 패배를 안겨줬다.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다소 부진했으나 밀어내기와 야수선택으로 2타점을 올렸다. 시즌 종료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테라하라 하야토와 1:1 트레이드 이적. 왕정치 감독 왈 "전경기 출장을 바란다." 그리하여 2007년도 전경기 출장은 실패했으나, 132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2009년 시즌은 초반 이후 자잘한 부상은 있었지만 아예 부상으로 말소당한적이 없어서 혹시 바뀐 등록명 덕분에 부상을 안 당하는 것인가! 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 잘나가다 포스트 시즌 들어와서 요통으로 아웃. 그럼 그렇지...
2010년 시즌은 프로 16년만에 처음으로 부상없이 시즌을 마감했다. 144경기중 140경기 출장. 또한 시즌 타율도 .324를 기록. 이 역시 그에겐 커리어 하이로 팀의 7년만의 퍼리그 우승에 중심타자로써 크게 공헌했다. 커리어 내내 유일한 타이틀인 베스트나인도 수상했다. 여담으로 이 해 후쿠오카 돔 홈 경기에서 다무라 히토시가 타석에 서면 BGM으로 현아의 Change가 나왔다. #
2011 시즌은 부상 등으로(...)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그해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 점수를 벌리는 투런포로 나름 쏠쏠한 활약을 했다. 2012 시즌이 끝나고 친정팀인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에 트레이드되었다. 2013년에는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12홈런의 그럭저럭 괜찮은 활약을 펼쳤다. 5월 10일에는 중간에 대타로 나왔다가 3타수 3안타 2홈런 5타점에 개인 통산 첫 끝내기 홈런을 달성하고 팀은 7점차를 뒤집어서 승리를 거뒀다. 2014 시즌부터는 쓰쓰고 요시토모 등에 밀려서 대타로만 활약하였고, 오승환의 30번째 세이브 제물이 되기도 하였다(...). 2015년에는 1군에 4시합에만 올라오는 등 전혀 활약하지 못하고 10월 3일 전력외 통보를 받으며 사실상 방출되었다.
그러다 주니치 드래곤즈와 육성선수로 계약하면서 NPB 역사상 최고령(38세 10개월) 육성선수가 되었다. 등번호 215번. 하지만 2016년 10월 1일 주니치에서 계약 해지를 통보받자 은퇴를 발표했다. 작년에 은퇴를 했었다면 (소프트뱅크에 6년간 있었긴 했지만) 요코하마의 프랜차이즈로서 꽤나 성대한 은퇴식을 받으며 명예롭게 은퇴할 수도 있었겠지만, 주니치의 육성선수 신분으로서 은퇴했기 때문에 쓸쓸한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엔 본인이 아직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은퇴를 미룬 것이긴 해도... 후에 소프트뱅크 훈련 취재를 갔을 때 소프트뱅크 팬들이 비공식으로 챙겨줬고 요코하마에서도 식당을 빌려서 팬 모임을 가졌다.
은퇴 이후에는 해설자로 변신했다. 각종 방송사에서 객원해설로 불려다니며 WBC나 MLB등 두루두루 다양한 중계를 하는 중. TBS계열 해설에도 합류한 상태인데 TBS는 과거 모기업으로서의 인연도 있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홈경기를 주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베이스타즈와의 관련성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종종 라디오 해설이나 인터넷 방송 등의 해설까지 하면서 DeNA, 소프트뱅크, 메이저 리그의 중계를 해설하고 있는 듯
여담으로 한국을 꽤 좋아하는 듯 하다. 빅뱅의 열렬한 팬이며 인스타 해쉬태그에 자주 한글을 쓰며 한국여행도 종종 다니는 듯. 요코하마에서 전력외 통보를 받았을 때 한국 구단들에 테스트 요청도 했었다고 한다.
참고로 국가대표 우승, 일본시리즈 우승, 2군 일본시리즈 우승[5], 1군 경기 출장, 2군 경기 출장, 육성선수 계약을 모두 경험한 선수라고 한다. 일본에서 저 경험을 모두 해 본 선수는 이 선수가 유일하다.

2. 부상 경력


아래에 후술되 있지만 이 정도면 거의 '울게 하소서'를 들어야 할 판. [6]

2.1. 학창 시절


  • 운동회 계주에서 넘어져 인대를 다쳐 구급차에 실려감.
  • 요코하마 고등학교 고3 여름, 현대회 우승. 동료선수들이 모여서 기뻐하는 마운드 주변에 가기 위해 중견수 자리에서 뛰어오다가 발이 꼬였다. 모두 교가를 부르는 동안 혼자 마운드에 웅크리고 있었다.

2.2. 프로 입단 후



2.3. 2003년


  • 5월 14일 왼쪽 엄지손가락 인대파열로 2군 강등.
  • 8월 5일 요통으로 도중교체.
  • 11일 왼쪽 손목 통증으로 선발 라인업에세 제외.
  • 22일 탈수증상
  • 9월 15일 어깨 통증으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
  • 23일 발열로 선발 라인업에서 빠짐.
  • 25일 선발 라인업에 복귀했으나, 몸에 공맞고 교체.
  • 10월 6일 감기로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 결국 시즌아웃.

2.4. 2004년


  • 2월 27일 포스터 촬영중 점프했다가 오른쪽 발 관절 염좌.
  • 4월 30일 시합중 갑자기 감기증세로 교체
  • 5월 3일 캐치볼 중 요통 발생. 2군 강등.
  • 6월 5일 펜스에 부딪혀서 도중교체.
  • 24일 전날 시합에서 헛스윙으로 어깨를 다쳐 선발 라인업 제외.
  • 8월 11일, 시합전 연습중 허리를 다쳐 선발 라인업 제외.
  • 28일 파인 플레이 중 무릎을 강타당해 교체.
  • 9월 19일 일본프로야구 재편문제로 인한 선수회 파업중 악수회[7]에서 왼손바닥 염증. 리그 재개 후 2일 연속 선발라인업 제외.
  • 오프시즌때, 400만엔짜리 베컴캡슐 구입. (1.3기압이 유지되는 캡슐로 산소전달에 효율적. 2002 월드컵 전 왼쪽 발등 골절을 당한 베컴이 사용함)

2.5. 2005년


  • 1월 1일, 신사에 가서 첫참배를 가 가족의 건강을 기원했으나, 정작 자신이 감기걸려 돌아옴.
  • 2월 11일,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중 야구교실을 열었다. 어깨에 야구가방을 맨 상태로 몇백명에게 싸인. 그 결과, 왼쪽 어깨 내출혈.
  • 3월 30일, 전시합 출장을 목표로 했으나, 개막직전 인플루엔자로 입원. 개막3연전 결장.
  • 4월 24일, 3루수 앞 땅볼을 치고 1루에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했으나 아웃. 그리고,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고체.
  • 5월 6일, 골든위크때 시작된 발열을 참고 출장하다가 무리해서 기관지염으로 악화. 결장.
  • 20일 중견수의 위치에서 송구하다 오른쪽 팔꿈치 통증 발생.
  • 6월 4~5일, 오른쪽 팔꿈치 통증으로 지명타자로 출장.
  • 14일 자신의 타구에 오른쪽 발등을 맞아서 교체.
  • 21일 피로를 참고 출장했다가 신발끈 묶을때, 심한 허리통증 발생. 자택휴양. 다음날 2군행.
  • 29일 요코스카의 연습장으로 가던 중 차가 비에 미끄러져 충돌. 에어백의 충격으로 얼굴 왼쪽과 왼쪽 어깨에 타박상. 스스로 119에 전화해서 검사를 위해 긴급입원했고, 처음으로 신문 1면 장식.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말하길 죽는다고 생각하고 핸들에서 손을 놓았는데, 가족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핸들을 잡았다
  • 프로레슬러 커트 앵글의 입장곡 을 타석에 들어설 때의 테마곡으로 사용했는데, 이것을 들은 커트 앵글이 일본에 와서 시구를 하게 되었으나, 정작 다무라는 입원으로 만나지 못함.

2.6. 2006년


  • 4월 6일, 왼쪽귀에 단 귀고리로 인해 부종 발생. 교체.
  • 7일 귀에 염증이 생겨 39도의 고열. 한 타석만 나가고 교체.
  • 8일 출루했을때, 귀루중 머리와 어깨를 다쳐 9일부터 대타로만 출장.
  • 20일 타격연습중 왼쪽 갈비 연골 좌상. 1군말소.
  • 6월 3일, 수비도중 공을 쫓다가 왼쪽 발목 염좌로 교체.
  • 위 부상으로 인하여 쉬다 6월 7일에 복귀.첫 타석에서 출루하고 홈으로 들어오다가 포수와 부딪혀서 왼쪽 옆구리와 배에 부상. 전반기 아웃.
  • 8월 19일, 2개월만에 1군 복귀. 몸에 공 맞고, 20일에는 요통으로 선발에서 빠짐.
  • 27일 선발라인업에 복귀하고 4번째 시합에서 주루중 왼쪽발 내전근이 강하게 당겨지는 느낌을 받아 교체.
  • 10월 24일, 오른쪽 허리 통증으로 가을캠프 결석.

2.7. 2007년


  • 2월 12일, 스프링캠프 중, 우측 아킬레스건 주위의 염증 발생.
  • 3월 13일, 오픈전에서 1회 타석때, 자신의 타구에 왼쪽 발 맞아서 병원행.
  • 17일 시합 전 수비연습 도중 오른쪽 중지 부상.
  • 4월 4일, 보폭이 맞지 않아 넓적다리로 베이스를 밟다가 넘어져 부상.
  • 30일 수비중 타구를 쫓다가 슬라이딩. 왼쪽 허벅지 뒤를 다쳐 교체.
  • 5월 19일, 2루에서 슬라이딩 하다가 넘어진 2루수에게 깔려서 부상.
  • 6월 20일, 자신의 타구에 왼쪽 장단지 맞아 부상으로 고체.
  • 11월 22일, 올림픽 예선에 일본대표로 선발되었으나, 요통악화로 연습경기 선발멤버에서 탈락. 이후, 25일 대표팀에서 탈락.

2.8. 2008년


  • 1월 31일, 오른쪽 어깨통증으로 2군에서 시즌 시작.
  • 2월 27일, 오른쪽 눈 다래끼로 결장.
  • 3월 28일, 화분증(...)
  • 4월 18일, 요통으로 결장.
  • 25일, 플라이타구를 쫓다가 좌익수와 부딪혀 교체. 오른쪽 다리 장딴지 뼈 골절. 6주 환부고정 필요진단. 전반기 아웃.
  • 9월 하순 복귀해서 2시합 연속 맹타상(한 시합에서 3안타 이상)의 활약을 보였으나, 다리의 통증으로 인해 다시 2군행. 그대로 시즌 아웃.

2.9. 2009년


  • 시범경기 도중, 견제구때문에 귀루하다가 오른쪽 어깨에 부상. 2군으로 시즌 시작.
  • 5월 22일 1군 복귀. 등록명을 "多村 仁"에서 "多村 仁志"으로 변경. 읽는 법은 같음. 이후로 고정우익수로 활약중.
  • 1군복귀 이후 경기중간 교체는 있었으나 부상을 이유로 말소당한적이 없어서 징크스를 벗어나나 싶더니 포스트시즌 들어와서 지병인 요통으로 출장하지 못했으며 팀은 CS1차전에서 탈락하며 그대로 시즌 오프.

2.10. 2010년


  • 프로 16년(1군 생활은 13년)만에 처음으로 레귤러 시즌에 큰 부상없이 시즌을 소화. 144경기중 140경기를 출장하여 단 4경기 결장으로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다. 이게 웬일...

2.11. 기타 에피소드


  • MVP인터뷰 후, 수상대에서 내려올 때에 팬들로부터 "내려올때도 조심해라"는 야유를 받는다.
  • 수비하러 나갈 때는 릴리프 카(구원투수들이 불펜에서 마운드로 갈때 타는 차)로 이동한다.
  • 초등학생으로 부터 "부상으로 부터 빨리 회복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을 받아 "낫고 싶다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답함(...)
  • 축구해설가 조 쇼지로 부터 "30을 넘겨서도 현역 생활을 할 수 있는 강한 신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하면 되냐"는 질문을 받음.
  • 2006년 첫참배때, "흉"을 뽑음.

2.12. 시즌별 출장 경기수


  • 1997년 : 18시합
  • 2000년 : 84시합
  • 2001년 : 33시합
  • 2002년 : 81시합
  • 2003년 : 91시합
  • 2004년 : 123시합
  • 2005년 : 117시합
  • 2006년 : 39시합
  • 2007년 : 132시합
  • 2008년 : 39시합
  • 2009년 : 93시합
  • 2010년 : 140시합 (!!!)
  • 2011년 : 110시합
  • 2012년 : 79시합
  • 2013년 : 96시합
  • 2014년 : 73시합
  • 2015년 : 4시합
[1] 절대로 '''田村仁志''' 가 아니다. 발음은 같지만 표기법이 다르다.[2] 본인은 패션 센스까지 합쳐 6툴 플레이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팬클럽 이름도 6TOOLS 였다고...[3] 2004시즌에는 3할 타율에 40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요코하마 소속의 일본인 선수로서는 최초의 40홈런 기록이었다. 그 후 2008년 무라타 슈이치가 46홈런으로 홈런왕에 올랐고, 2016년 츠츠고 요시토모가 일본인 선수로서는 구단 사상 세 번째로, 좌타자로서는 구단 최초로 40홈런을 친다.[4] 참고로 최초로 요코하마에서 4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타이론 우즈이다.[5] 일본야구는 2군도 따로 일본시리즈를 치른다.[6] 농담이 아니라 조지 워싱턴 역시 '걸어다니는 병동'이라고 할 정도로 질병투성이였다.[7]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의 해체와 관련해 프로야구의 12구단 체제가 축소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이에 반대하던 후루타 아츠야 선수회장의 주도로 이루어진 파업. 당시 파업에 참여한 각 팀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지 않는 대신 악수회나 팬 사인회 등을 통해 여론전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