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르족

 




다우르족의 모습. 복장 등 의식주 문화는 몽골인과 거의 비슷하다.
중국어: 达斡尔族(達斡爾族)[1]
1. 개요
2. 역사와 문화
3.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의 소수 민족. 유명한 거란족의 후손이라는 학설이 있다.
동호족에서 갈라져 나온 선비, 거란과 마찬가지로 다우르족 역시 몽골계에 해당된다.
거주 지역은 내몽골 자치구헤이룽장성이지만, 청나라 때 신장(신장 위구르 자치구)으로 이주하여 신장(동투르키스탄)에도 산다.
종교는 샤머니즘을 믿지만 티베트 불교를 믿는 사람도 있다(요나라 때 거란인들은 밀교를 믿었다). 러시아극동 연방관구에도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다. 일부는 몽골에도 거주한다고 한다.

2. 역사와 문화


요나라 멸망 이후에도 요서와 화북 지방에 남은 거란족은 한족, 여진족 등 다른 민족들에게 흡수된 반면, 일부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서요(西遼)를 세웠으며, 거란족의 한 갈래인 대하씨(大賀氏) 집단이 북쪽의 흑룡강 유역까지 이동하여 정착하였는데 이들이 다우르족의 직계 선조로 여겨진다.
거란이 몽골에 가까운 것처럼 다우르족 역시 문화적으로 몽골과 상당히 비슷하다. 다우르족들만의 전통 문자가 없어서인지 이들은 만주 문자한자, 키릴 문자(러시아, 현대 몽골) 등으로 표기를 했다고 한다. 다만 극소수가 거란 문자를 쓰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원말 명초에 이들에 대한 기록이 단편적으로 남아있는데, 명 왕조는 흑룡강성 이북에 지방 방어 행정단위인 위(衛)와 소(所)를 설치하여 이들에게 둔전을 시켰는데, 이로 인하여 다우르족은 목축 외에도 농업을 겸하게 되었다. 명나라에서 유목민들에게 국경 변경 지역에서 가급적 농업을 장려한 이유는 보급 비용을 절약하려는 목적도 있었으나, 유목민들의 말을 먹일 목초지를 농지로 개간하여 유목민 기병의 보급을 제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다. 흑룡강성 이북은 과거에는 수렵과 어로가 주 산업이었으나 다우르족의 정착과 둔전을 계기로 목축과 농업이 발전하게 되었다.
서기 17세기 중엽에 다우르족은 청에 복속되었고 점차 흑룡강 상류에서 눈강 유역으로 남하하면서 만주 팔기군 조직에 편입되어 병역을 부과받았다. 다우르족은 10여 차례 전역에 참가하였으며 루스 차르국의 정찰대와 잦은 분쟁을 치루었다.[2] 강희제로부터 건륭제 연간에는 다우르족 부족 상당수가 애휘, 호륜패이, 신강의 일리 강 유역, 탑성 등 청-러시아 간 변경요지로 이동하여 둔전을 하면서 국경을 수비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다우르족이 오늘날과 같이 광활한 지역에 넓게 분포하는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전 이들의 역사와 언어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이전에는 다우르족을 몽골인으로 간주하여 “다우르 몽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음식 문화는 몽골 요리중국 요리(동북 요리 및 내몽골 지역의 요리)와 비슷한데 중국의 다른 지역 요리들의 영향도 받았다. 양고기와 쇠고기를 소비한다.

3. 관련 문서


[1] 중국에서는 "다우얼족"이라고 읽는다. 다우르족 본인들은 스스로 표기하는 명칭은 "다구르(dagur)"라고 부른다. "다구르"의 뜻은 다우르족의 말로 "고향"을 의미한다고 한다. 만주어로는 "다후르(dahur)", 러시아어로는 "다우르"라고 부른다.[2] 장거리 원정의 보급 문제로 식량이 부족한 카자크 탐험대가 다우르족 마을을 약탈하는 일이 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