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에드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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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에드워드(Edward)
'''별칭'''
대(大) 에드워드(Edward the Elder)
'''생몰년도'''
874-877년 경 ~ 924년 7월 17일
'''재위기간'''
899년 10월 26일 ~ 924년 7월 17일
고대 영어: Ēadƿeard se Ieldra (대(大) 에아드웨아르드)
영어: Edward the Elder (대 에드워드)
라틴어: Eduardus (에두아르두스)
9세기 후반의 웨식스 왕. 같은 이름을 가진 후대의 왕인 순교왕 에드워드와 구별하기 위해 대(大) 에드워드(Edward the Elder)라고 한다. 이 호칭은 순교왕이 죽은 지 몇 십 년 후인 996년경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서 the Elder 는 연장자(나이 많은 사람) 이라는 뜻으로, "대"가 가지는 위대하다는 뉘앙스는 없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 대(大) 에드워드는 위대한 왕이 맞다. 참고로 중국에선 '장자 에드워드(長者愛德華)', 일본에선 '에드워드 장형왕(エドワード長兄王)'으로 칭한다.
에드워드는 고대 영국의 킹왕짱 앨프리드 대왕머시아의 여왕 애알흐스위스 사이에서 맏아들이자 장녀 애설플래드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정확한 탄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870년대 정도로 추정된다.
비록 에드워드가 재위 중인 왕의 장남이었지만 그가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고, 오히려 그의 사촌인 애설월드(Æthelwold)와 애설헬름(Æthelhelm)이 후계자로서 유력했었다. 이들은 앨프리드 대왕의 형이자 앨프리드의 선왕인 애설레드 1세의 아들들이다.
899년에 앨프리드 대왕이 죽자 에드워드가 왕위를 물려받는데 성공했다. 이에 사촌인 애설월드는 왕위를 뺏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고 도셋의 윔본을 점령하였다. 뭐 만만한 성격은 아니었던 에드워드는 당연히 군대를 이끌고 애설월드를 정벌하려 나섰다. 그가 윔본 근처에 도착하여 공격을 준비하자, 애설월드는 한밤중에 웜본을 탈출하여 노섬브리아로 갔다. 그는 그 곳의 데인 족에 합류했고 왕으로 추대되었다.
애설월드를 제압한 에드워드는 900년 6월 8일 대관식을 올려 웨식스의 왕위에 올랐다.
901년, 도망갔던 애설월드가 함대를 이끌고 에식스로 돌아와 동앵글리아의 데인족들에게 봉기하라고 꼬드겼다. 이듬해에는 그가 직접 머시아와 북부 웨식스를 침략했다. 에드워드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동앵글리아를 싹 쓸어버렸다. 그 직후, 에드워드의 철수 명령을 거부하고 독자 행동하던 에드워드의 켄트 족 병력과 적군인 데인 족 군대가 한판 붙었다. 데인 족이 이 싸움에서 이겼지만 큰 피해를 입었고 그 와중에 애설월드와 동앵글리아 왕 구트룸 2세도 죽었다.
그 후로도 몇 년간은 잉글랜드 북부와 웨식스는 계속해서 사이가 나빴다. 909년에는 에드워드쪽에서 노섬브리아를 집적대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노섬브리아 데인 족은 이듬해 머시아를 공격했다. 그러나 이들은 머시아와 웨식스 연합군에 걸려들어 참패를 당했다. 그 후로 데인 족은 험버 강 이남으로는 침략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곳곳에 요새를 쌓았는데, 이들은 모두 동일한 규격을 따른다는 특징이 있다[1].
에드워드는 머시아, 동앵글리아, 에식스에 대한 웨식스의 지배력을 넓혀나갔다. 런던옥스포드 및 이들을 둘러 싼 옥스포드셔와 미들식스 지역도 합병했다. 데인 족이 점령한 땅을 정복하였고, 머시아의 지배자였던 그의 누나 애설플래드가 죽고 난 후 그녀의 후계자였던 앨프윈을 웨식스로 데려와 권력을 빼앗고 머시아를 직접 통치했다. 918년 말에는 애설플래드가 죽어서 못 다했던 '데인로의 다섯 도시' 정복을 이어서 끝마쳤으며, 그에 따라 머시아 전체가 그의 지배에 들어왔다. 그의 왕위 말기에는 스코틀랜드인, 웨일즈인, 데인 족 모두에서 그의 권위를 인정했다.
군사/정치적인 면에서 상당한 활약을 한 에드워드지만, 다른 분야에서의 그의 업적은 뚜렷한 것이 별로 없다. 그가 교회를 재조직하고 새로운 교구들을 만들긴 했지만 그의 아들과는 달리 신앙심이 그다지 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종교 활동이 미흡하다고 교황이 정식으로 비난할 정도였으니 뭐...
924년 7월 17일, 에드워드는 웨일즈머시아가 연합한 반란군을 진압하러 가던 중 사망했다. 왕위에 오른 직후 싸움에 나섰고, 왕위에서 내려오기 직전에도 싸움에 나섰으니 초지일관인 셈. 그의 아버지인 앨프리드 대왕처럼 그의 시신도 햄프셔의 윈체스터에 매장되었다.
왕위는 그의 아들 중 3명이 이어가며 물려받았다. 각각 애설스탠 - 에드먼드 1세 - 이드리드다.

[1] 이는 아버지 알프레드 대왕이 하던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는 웨식스, 누나 애설플래드머시아에 각각 이 사업을 추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