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설플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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Æthelflæd
870 ~ 918
1. 개요
애설플래드는 10세기 초 머시아의 영주이다. 알프레드 대왕의 딸이자 대 에드워드의 누나였고, 머시아의 왕자이자 영주였던 애설레드의 배우자였다.
2. 출생과 배경
애설플래드는 870년 웨식스 왕 알프레드 대왕과 일스위드(Ealhswith, 에알흐스위스)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동생이 바로 대 에드워드.
그녀가 태어난 870년경, 9세기 중후반은 이교도 대군세로 잉글랜드가 거의 잠식당한 상황이었다. 878년 아버지 알프레드가 에딩턴 전투에서 동앵글리아 왕 구트룸 1세를 격파하면서 웨식스를 지켜냈지만[1] , 그럼에도 잉글랜드의 대부분은 데인족의 '데인로(Danelaw)'가 차지한 절망적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머시아의 동부와 노섬브리아가 바이킹의 손에 있었고, 동앵글리아는 국왕 구트룸 1세가 에딩턴 전투에서 패배한 후 '애설스탠'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개종하긴 했으나 그 역시 데인족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한편 반쪽만 남은 머시아에서는 왕 체올울프 2세가 죽고 새로운 지배자로 그의 아들 애설레드가 떠올랐다. 머시아는 이미 나라 꼴이 시궁창인 상황이었고, 웨식스 왕 알프레드는 하나의 잉글랜드을 꿈꾸는 상황이었기에 애설레드는 그의 눈치를 보느라 왕이 되진 못했지만, 그래도 알프레드의 권위를 인정하는 선에서 머시아의 효과적인 지배자로는 남을 수 있었다.
3. 결혼과 동맹
알프레드는 사실상 유일하게 남은 앵글로색슨 국가 웨식스를 위해 머시아와의 동맹을 추진했다. 상술했듯 그는 통일 잉글랜드를 꿈꿨으므로 영구적인 동맹을 원했고, 그 결과가 애설플래드와 머시아 영주 애설레드의 결혼 동맹이었다. 880년 중반 어린 나이의 애설플래드는 이로써 머시아의 애설레드와 결혼했고, 두 나라의 동맹은 공고해질 수 있었다.
머시아와의 동맹은 헛되지 않은 것이어서, 애설레드는 893년에 있었던 버팅턴 전투에서 에드워드 왕자가 이끄는 웨식스군과 함께 대승을 거뒀다. 또한 머시아-웨식스 연합은 910년 있었던 테튼홀 전투에서도 바이킹을 이끄는 에오윌스, 잉와르, 할프단 세 명의 지도자를 전사시키는 등 큰 성과를 남겼다.
4. 머시아의 새로운 지배자
899년과 909년 사이 머시아의 애설레드의 건강이 굉장히 악화되었다. 그의 생애 말기인 909년 경에는 정말로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그러자 그의 부인 애설플래드가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911년, 애설레드가 죽자 그녀는 머시아의 새로운 영주가 되었다[2] . 여왕을 많이 배출한 영국조차 이 당시에는 여자가 영지나 나라를 계승하거나 정치의 중추를 맡는다는 개념이 없었기에, 애설플래드의 경우는 특이한 사례로 남았다. 역사가 이안 워커는 이를 두고 '중세시대 가장 특이한 사건들 중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4.1. 그녀의 통치
애설플래드는 아버지 알프레드가 진행했던 각지의 도시들을 요새화하는 사업을 동생 대 에드워드와 함께 확장시켰는데, 그녀는 웬즈베리, 브릿지노스, 탬워스, 스태포드, 워릭, 처베리 그리고 런콘 7개 도시에 방벽을 세웠다.
그녀는 수비뿐만 아니라 또한 공격도 벌이는 호전적인 여전사이기도 했다. 데인족이 점령한 머시아 동부를 수복하기 위해 '데인로의 다섯 도시'[3] 를 점령하는 전쟁을 벌였는데, 그 첫 번째 목표는 더비였다. 그녀는 917년 그곳을 침공해 함락하는 데 성공했으며, 더비가 깨지는 걸 본 레스터는 이듬해인 918년 별다른 저항 없이 그녀에게 투항했다. 그리고 결국 애설플래드의 저력을 본 요르비크 왕국[4] 의 일부 바이킹 지도자들은 그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5. 죽음
917년 더비와 918년 레스터를 정복한 애설플래드는 일대의 바이킹들의 충성을 받아냈지만, 918년 6월 유의미한 지배력을 미치기도 전에 급사했다. 그녀는 후계자로 유일한 딸인 앨프윈(Ælfwynn)을 지목했으나, 6개월 뒤인 12월 앨프윈의 삼촌 대 에드워드는 그녀를 웨식스로 데려오고 머시아를 직접 통치했다. 이후 그는 데인로의 다섯 도시 중 남아있는 세 도시를 마저 수복하는 데 성공하고 머시아의 정복을 마쳤다.
6. 평가
비록 그녀가 다스리던 시기의 머시아는 더 이상 제대로 된 독립국도 아니었고 사실상 웨식스의 속국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런 배경에서 애설플래드는 최선을 다해 머시아를 통치했다. 동생 대 에드워드와 함께 잉글랜드에서 데인족을 몰아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후대의 사람들도 그녀를 칭송했다. 노르만 시대의 역사가 맬름즈베리의 윌리엄(William of Malmesbury)은 그녀를 "에드워드의 강력한 우방이자, 큰 기쁨이자, 그의 적의 공포이며, 강대한 영혼을 지닌 여자"라고 평했으며, 리버풀 대학교 교수 폴린 스태포드는 심지어 '그녀(애설플래드)는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이 후대의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다양한 전투에서 친정했고, 또 승리했다. 아버지 알프레드 대왕의 피는 어디 안 가는 것인지 애설레드와 결혼하고 머시아의 레이디가 된 뒤로는 바이킹들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뒀고 대 에드워드와 함께 잉글랜드 왕국의 초석을 닦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7.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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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킹덤에서도 주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어렸을 때부터 외교와 정치, 전술, 전쟁에 큰 관심을 보이며 영락없이 아버지와 닮은 모습을 보이나, 찌질하고 능력없는 머시아의 왕자 애설레드[5] 에게 시집가 매일 같이 강간당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학대란 학대는 다 당하는데 남편은 또 바람을 피우는 참담한 삶을 보낸다. 게다가 벤플리트를 점령한 시그프리드, 에릭 형제에게 천문학적인 몸값을 요구할 인질로 잡혀가기까지 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는 불쌍한 캐릭터.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애설레드에게 학대당하던 중 그와 함께 종군했다가[6] 군사들이 떠나고 남은 야영지에서 점령했던 런던을 버리고 야영지를 급습한 시그프리드와 에릭 형제에 의해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힌다. 형제의 부하 하스텐에게 강간당할 뻔하기도 하지만 에릭이 그녀를 지켜준다. 애설플래드를 보고 첫눈에 반한 에릭은 목욕도 시켜주고 몰래 빼와 밤하늘도 보여주는 등 정성을 쏟아 보살펴주고, 마침내 애설플래드도 그를 받아들이고 밤하늘이 비치는 강가에서 같이 밤을 보낸다.
결국 서로의 사랑을 참지 못하고 에릭과 애설플래드는 당초 생각했던 알프레드에게서 몸값을 받아내는 계획을 파기하고 대신 몰래 사랑의 도피를 계획하게 되는데, 우트레드에게 도피를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만류하는 그에게도 완고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형 시그프리드가 갑자기 몸값을 받기로 했던 날 애설플래드를 데려와 우리에 가두고 천장에 매다는 사태가 발생하며 에릭과 그녀의 계획은 틀어지게 된다. 우트레드와 그의 부하들은 계획을 수정해 불을 질러 그녀가 갇힌 건물의 바이킹들을 밖으로 빼내고 문을 잠근 사이 철창을 부숴 그녀를 구출한다. 하지만 에릭과 애설플래드가 탈출하기 직전 상황을 눈치챈 형 시그프리드가 다시 건물로 들어와 에릭을 막는다. 결국 둘은 결투를 벌이고, 여기서 에릭은 패배해 죽는다.[7]
이후 애설플래드는 직접 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 싸우는 여전사로 변모한다.[8]
•어쌔신크리드 발할라의 서브 퀘스트에서 어린시절 모습으로 잠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