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럴 스트로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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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츠의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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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시절.
이름
대럴 유진 스트로베리 (Darryl Eugene Strawberry)
생년월일
1962년 3월 12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포지션
외야수 (우익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0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번
소속팀
'''뉴욕 메츠 (1983~1990)'''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1~199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94)
뉴욕 양키스 (1995~1999)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986'''
'''1996'''
'''1998'''
'''1999'''
'''1980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순위'''
앨 챔버스
(시애틀 매리너스)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마이크 무어
(시애틀 매리너스)
'''198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스티브 삭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1. 소개
2. 현역 시절
3. 플레이 스타일
4. 이야깃거리


1. 소개


전직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외야수. 80년대 후반을 주름잡던 뉴욕 메츠에서 전성기를 보냈으며, 드와이트 구든과 함께 투타 양면에서 메츠의 "신성" (新星) 내지는 "영웅" 소리를 들으면서 승승장구했으나, 역시 구든처럼 자기관리에 실패하며 무너졌고, 마지막을 양키스에서 보내면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던 것도 구든과 같다. 여러모로 구든과 닮은 점이 많았던 선수. 심지어 미들네임도 유진으로 같다.

2. 현역 시절


1980년 드래프트에서 메츠의 지명을 받아 입단하는데 아래에서도 언급되겠지만 콩단장과 같이 지명을 받았다. 그 후 3년 간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쌓다 1983년 26홈런을 때리고 74타점을 먹으면서 존재를 알린다. 그 뒤로도 4년 간 30개 가까운 홈런을 때리더니, 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반지를 따내는 데 성공. 1987년에는 39홈런 - 36도루로 30-30 클럽에 가입한다.
1990년 FA 자격을 얻으면서 고향팀 다저스로 옮겨갔는데, 문제는 스트로베리가 다저스로 옮겨온 뒤 막장이 되기 시작했단 것. 매년 승승장구하자 나이트클럽을 들락거리게 되었고, 코카인과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당연히 빈둥대고 마약을 즐겼으니 성적은 패망. 다저스에서 "3년 간" 38개밖에 홈런을 치지 못하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 등지로 전전하게 된다.
그래도 양키스에서는 지명타자나 완손 대타로 나오면서 쏠쏠하게 활약했고, 1998년 24홈런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우승반지를 따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2000년 마약 문제로 1시즌 출장 정지를 먹자 은퇴를 하기에 이른다.

3. 플레이 스타일


전성기에는 30-30 클럽에 가입할 정도로 호타준족이었다. 메츠에서는 거의 붙박이 외야수였지만, 말년에는 수비도 안 좋아졌는지 지명타자나 왼손 대타로 활동했다.

4. 이야깃거리


  • 여러가지 범죄에 연루되어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 뒤로 마음을 고쳤는지, 은퇴 이후 2004년 교회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메츠에서 인스트럭터 자리로 일하기도 했고.
  • 빌리 빈과 한때 유망주 경쟁을 펼친 적이 있었는데, 둘다 메츠에서 최고의 유망주로 대접받았지만 스트로베리는 대성한 반면 콩단장은 선수로서 영 좋지 않은 결과만 낳았다. 만약이란 없지만, 콩단장이 새가슴을 극복하고 메이저리그에 섰었다면 지금의 머니볼이 나올 수 있었을...까?
  • 머니볼을 읽었다면 콩단장이 선수로서 실패한 이유가 새가슴이 아닌 10번 중 7번 이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스포츠 특성과 자신의 성격이 맞지 않아서 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구든과 함께 양키스의 올드 타이머 데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 통산 성적이 모자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가지 못했다. 마약으로 무너지지 않았다면 노려볼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는 광탈. 대신 메츠는 스트로베리를 구단이 자체적으로 만든 "뉴욕 메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시킨다. 같은 시대에 활약했지만 호프집에서 광탈당한 드와이트 구든, 존 프랑코도 여기에는 헌액되어 있고.
  • 1998 시즌에 위암으로 투병생활을 했다. 당시 양키스 선수들이 포스트시즌에 앞서 모자 뒷테에 스트로베리의 등번호 39번을 새겨 완쾌를 기원했다. 이후에 크보로 퍼지게 됐고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로 자리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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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섹스 중독이였다고 한다. 경기 중 이닝 중간에 클럽하우스에서 팬과 한 경험이 있을 정도. 2017년 현재는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1]

[1] 이런 비슷한 경험은 그의 양키스 선배인 맨틀도 가지고 있다.(맨틀은 양키 스타디움 불펜 옆에서 펠라치오를 받았다고 한다.) 다만 맨틀은 가족력과 연관된 병때문에 일찍 죽을 줄 알아서,다소 막 산 경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