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와이트 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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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드와이트 유진 구든 (Dwight Eugene Gooden)
생년월일
1964년 11월 16일
국적
미국
출신지
플로리다 주 탬파
체격
188cm, 94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소속팀
'''뉴욕 메츠 (1984년 ~ 1994년)'''
뉴욕 양키스 (1996년 ~ 1997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8년 ~ 1999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0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2000년)
뉴욕 양키스 (2000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1986'''
'''2000'''
'''1984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빈스 콜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85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릭 서클리프
(시카고 컵스)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마이크 스캇
(휴스턴 애스트로스)
'''메이저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1972년)

'''드와이트 구든
(뉴욕 메츠, 1985년)'''

로저 클레멘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7년)
'''마약이 앗아간 비운의 에이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투수. 뉴욕 메츠에서 활약했으며, 그 이후 양키스를 시작으로 별의 별 팀을 다 돌아다녔다. 별명은 '''"Dr.K"''', 그리고 이걸 줄인 "닥터" (Doctor, Doc).
1. 선수 시절
1.1. 리즈시절
1.2. 날개 잃은 에이스
2. 은퇴 이후
3. 이야깃거리


1. 선수 시절



1.1. 리즈시절


1982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메츠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다.[1] 입단 후 바로 다음 시즌인 1983년은 마이너리그 싱글A에서 보내게 되었는다, 27경기에 등판해서 19승 4패를 거두며 <베이스볼 아메리카>지의 "올해의 마이너리거"로 뽑히면서 메츠 구단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리고 1984년 19세의 나이로 콜업되어, 218이닝 276K 17승 9패 2.60ERA 1.69FIP 5.5bWAR이라는 기록적인 성적을 냈다. '''1.69의 FIP'''는 당시 역대 13위에, 1911년 이후의 기록으로는 1968년 밥 깁슨의 1.77을 경신하는 '''라이브볼 시대 1위 기록'''이었다. 이는 1999년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1.39[2]라는 독보적 기록을 작성할 때까지 1위를 유지했다. [3][4] 이 엄청난 활약으로 신인상은 받았지만 사이영상은 2위에 그쳤다. 이 해 수상자 릭 서트클리프는 시즌 중간에 클리블랜드에서 컵스로 넘어와 NL에서 150이닝 16승 1패 2.69ERA 155K 3.9bWAR을 기록했다는데 릭의 AL 성적까지 합쳐서 비교해도 이닝과 승수를 빼면 구든의 압살이었지만 아쉽게 2위에 그쳤다.
그리고 두번째 시즌에는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무시하듯 24승 4패와 '''1.53'''[5]의 평균자책점을 거두면서, 만장일치로 표를 받아 사이 영 상을 받는다. 이 시즌 구든은 16경기나 완투를 하고 276이닝을 던졌으며, 다승 / 평균자책점 / 탈삼진에서 메이저리그 1위를 차지했다. 이닝과 완투 수는 내셔널리그 1위였다. 이 시즌이 바로 1968깁슨, 1999~2000페드로와 함께 최고의 단일 시즌으로 꼽히는 1985구든이다.[6][7] 그리고 메츠 팬들은 구든이 톰 시버를 넘을 수 있을 거라며 설레기 시작한다. 심지어 '구든은 300승을 넘어서 400승을 거둘 투수다!'라는 말까지 나오기까지 했다 카더라
'''그런데...'''

1.2. 날개 잃은 에이스


구든은 전형적인 투피치 투수로, 빠른 포심과 커브를 이용하여 삼진을 잡아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당시 메츠의 투수코치였던 멜 스토틀마이어는 구든이 롱런을 하려면 여러 구질을 써야 한다면서 구든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쳤는데,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 스토틀마이어가 구든의 투구폼까지 억지로 바꾸어버린 것이었다. 그 결과 구든은 새 투구폼에 적응하지 못하였고, 체인지업은 발전하지 않는데 점차 구든의 주무기였던 포심의 구속이 떨어지기에 이른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1984년 ~ 1986년 단 3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에서의 등판을 포함하여 770이닝이나 공을 던졌다는 것. (게다가 1986년은 메츠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한 시즌이었다) 95경기에 등판해서 35경기나 완투를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약이라는 늪에 빠지고 만다.''' 1986년 월드 시리즈 직후 마약을 본격적으로 복용하기 시작[8]한 구든은 다음해인 1987년에는 스프링캠프 때 마약을 복용한 것이 들통나 재활센터에 입소하면서 시즌을 두달이나 날려먹었고, 그 뒤로 구든의 성적은 안습의 연속이었다. 1992년에는 마침내 10승 13패로 5할 승률도 넘기지 못했고, 1994년 다시 연속으로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처음에는 60일 출장 정지였다가[9] 1995년에는 아예 시즌에 참가하지도 못하도록 중징계를 받기에 이른다.
구든은 1996년 FA로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하기에 이르는데, 1996년 시즌에 1991년 이후 잃어버렸던 5할 이상의 승률을 다시 되찾는데 성공한다. (노히트노런도 이 해에 거둔다)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우승반지를 따는 데도 성공. 하지만 그 뒤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고향 팀인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등을 전전하다 2000년 양키스로 돌아오는데, 양키스에서도 방출당한다.

2. 은퇴 이후


그렇게 쓸쓸히 2001년 은퇴를 선언한 구든은 이후 한때 몸담았던 양키스의 프런트로 일했고, 그 후 양키스의 올드 타이머 데이에 몇차례 나오기도 했다. 한편으론 은퇴후 오만 사건으로 몸살을 앓기도 했다. 2002년에는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면허를 정지당했는데 2003년에는 면허정지중에 운전을 하다 발각되었고 2005년에는 전처의 안면을 가격하는 폭행사건을 일으켰으며 2006년에는 보호관찰중에 마약에 손을 대는등의 사건을 일으켰다. 2019년에 또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되었다. 현재는 문제 없이 생활하는 듯 하다. 트위터에서 근황을 살펴볼 수 있다.
2020년 11월에 마약 소지로 집행 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구든은 유죄 인정 후 마약중독 재활 치료보호 프로그램을 이수하며 갱생 의지를 키웠다. 재판부도 구든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3. 이야깃거리


  • 로저 클레멘스와 계속 비교되는 선수인데, 25세 이전의 커리어만 따지면 구든이 훨씬 낫다. 그리고 구든이 마약 중독으로 무너지긴 했지만, 스테로이드 같이 운동력을 증강시켜주는 약물을 먹은 것은 아니니깐.. 반면 클레멘스는 꾸준히 활약은 했지만 보사구팽 당한 뒤로 약을 먹고 약켓이 되는 바람에 토론토 이후의 커리어는 점점 흑역사가 되었다.
  • 마약과 지독하게 싸운 사람. 1999년 "HEAT"라는 자서전에서 마약과 싸운 자기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는데, 은퇴 이후 마약을 빨고 운전을 하다 두번이나 걸리는 바람에... 그리고 그 후로도 몇년간 마약 중독으로 고생했다. 마약은 한번 시작하면 절대 끊을 수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경우인 조시 해밀턴 역시 마약중독을 극복하고 현역으로 복귀한 사례가 될 줄 알았으나 결국 마약에 다시 손을 대었다.
  • 게리 셰필드가 구든의 조카이다. 셰필드가 양키스로 올 때 구든의 도움을 좀 받았다고.[10] 하지만 셰필드는 은퇴이후 마약을 끊지 못하는 삼촌에게 결국 학을 뗐는지 "이젠 삼촌이 뭘하든 신의 뜻에 맡기고 내버려둬야 되는 모양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상 포기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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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중에 삼진 잡으면 K 라고 적힌 카드를 구장에 거는걸 유행시켰다.


[1] 메츠는 1981년 드래프트에서 '''로저 클레멘스'''를 지명했으나 클레멘스가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을 가버렸다.. 안습. 다행인건 1980년 드래프트에서 데리고 온 대릴 스트로베리가 구든이랑 같이 터지면서 80년대 메츠의 주축 선수가 되었다는 거. [2] 시대 불문 3위, 1911년 이후 1위.[3] 구든은 이 시즌메이저리그 신인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웠다. 뿐만이 아니라 이 시즌 구든의 K/9는 11.39였다. 그러니까 9이닝 동안 11개의 삼진을 잡았다는 거. 그리고 2경기 동안 32탈삼진, 3경기 동안 43탈삼진을 잡는 기록을 세우는데, 전자의 기록은 지금도 메이저리그 최다 타이 기록.[4] 그리고 구든이 미친듯이 셰이스타디움에서 삼진을 잡아내자 메츠 관중들은 스타디움 한쪽 벽에 구든이 삼진을 잡을 때마다 "K" 카드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곧 이게 메이저리그 전체로 퍼졌다.[5] 이 기록은 1968년 1점대 평균자책점 투수가 7명이 나오는 사상최악의 투고타저로 인해 메이저리그 마운드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아진 1969년 이후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 기록이다.[6] 당시 아메리칸리그의 버트 블라일레븐이 구든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지고 완투를 했기 때문.. (24완투, 293이닝)[7] 이 시즌의 bWAR 12.2는 라이브볼 시대 이후 투수 최고기록이다. fWAR의 경우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11.6이 역대 1위다.[8] 어느 정도였느냐하면,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메츠 구단 측에서 개최한 축하 파티조차 불참할 정도였다. 물론 당시에는 '월드시리즈에서 너무 쌔빠지게 던져서 쉴래요'라고 핑계를 댔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마약하느라 못 간 걸로(...)[9] 7경기에 출전해서 방어율 6.31로 성적도 처참했다.[10] 사족이지만 셰필드의 어머니는 구든의 친누나이다. 무려 13살 차이가 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