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동총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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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동총연맹'''
'''공식명칭'''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大韓獨立促成全國勞動總同盟)[1]
대한노동총연맹(大韓勞動總同盟)[2]
대한노동조합총연합회(大韓勞動組合總聯合會)[3]
'''설립일/창당일'''
1946년 3월 10일
'''해산일'''
1960년 11월 25일 한국노동조합연맹으로 통합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이념'''
보수주의, 민족주의, 협동조합주의
1. 개요
2. 상세
3. 역대 선거 결과
4.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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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전 노동조합이자 정당이였다.

2. 상세


대한민국에는 남로당 계열 좌파 노동조합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이 있었으나, 전평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에 남·북한을 합한 인민공화국 수립을 원하고 논란이 많았던 신탁통치 지지운동 등으로 보수민족주의 진영으로부터 반발을 사게 된다. 그래서 보수 성향의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이 설립된 것이다.
태생부터 협력할 수 없었던 대한노총은 1946년 9월에 이르러 결국 전평과 대결하게 되었다. 전평은 1946년 지령을 내리고 각각 9월 23일 철도와 9월 24일 행정파업을 감행해서 저지하려는 대한노총과 대대적인 전투와 유혈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10월 1일에 파업이 일단락되고, 10월 7일 철도 운행이 정상화되면서 전평은 사실상 패배하고 대부분의 대도시 노동자에게는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의 영향이 더 커지게 되었다.
전평은 6개월 뒤인 1947년 3월 22일 제2차 지령을 내리며 폭력까지 쓰는 과격한 파업을 진행했다. 대한노총은 유혈사태 끝에 다시 저지하였고, 전평은 지하조직화되었으나 곧 소멸되었으며, 결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 수립일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비합법화되었다. 라이벌이 없어진 대한노총은 반공조직의 성격을 버린, 상대적으로 평범한 노동조합이 되었다.
대한노총은 초기에는 한독당계, 이승만계, 한민당계 등이 공존했지만[4], 얼마 안가 이승만제1공화국의 어용조직으로 전락해버렸다. 또한, 정치세력화되어서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1석,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석, 1952년 지방선거에서 소수의 당선자를 베출했다.
1959년에 이르러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민주화 요구가 표면화되기 시작되었다. 그러나 대한노총은 자유당의 비호 아래 조직폭력배와 경찰을 투입해서 민주화운동을 진압했다. 1959년 10월, 대한노총의 비민주성에 반발한 민주화 세력들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국노협)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대한노총은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고 든든한 빽인 자유당이 실각하자 소멸 위기에 처했다.
대한노총이 이미 노조로서의 성격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국노협 또한 노동운동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노총은 전국노협에게 통합을 제시하고 한국노동조합연맹(한국노련)이 세워졌다.

3. 역대 선거 결과



4. 관련 문서



[1] 1946년 3월 10일 ~ 1948년 8월 26일[2] 1948년 8월 26일 ~ 1954년 4월 8일[3] 1954년 4월 8일 ~ 1960년 11월 25일[4] 대한노총 간부로 그 유명한 김두한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