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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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를 설명한 문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초창기에는 제헌헌법을 유진오의 초안으로 권력이 분산되기 쉬운 의원내각제를 담았으나 국회의장을 맡고있던 이승만은 건국의 초창기에는 대통령중심제가 적합하다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바꾸지 않으면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며 국회에 통보해 당시 초대 국가원수로 선출되는 상황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더불어 결성된 자유당 탄생을 계기로 권위주의 체제는 1987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는 민주주의를 모색하고 형성해 가는 학습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시민들의 정치 의식의 경우, 태어난 순간부터 권위주의 시대를 겪은 구세대와 대한민국 제6공화국을 겪은 세대의 생각은 확연히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민주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없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사례를 보면 민주주의가 나라에 제대로 정착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경우는 국민이 초법적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도 아니고, '헌법'을 통하여 적법한 절차를 밟아, 법이 대통령의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사례이기에 더욱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2. 특징과 문제점
2.1. 아시아에서 성공적인 민주주의 정착
식민지 시절을 겪은 나라들 중 민주주의를 이만큼 성공적으로 이뤄낸 나라는 거의 없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대만, 몽골과 함께 제대로 민주주의가 뿌리내렸다고 할 수 있는 국가이다. 민주주의지수 수치도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제일 높은 점수에 속한다.
그리고 국민들이 직접 극적인 사건을 거치면서까지 일궈낸 건 동아시아에선 한국만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7] 동아시아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경우 일본은 군부에 심하게 억눌려 있어서 문제지 그럭저럭 시민 사회라는 게 갖춰져 있었고 미약하게나마 다이쇼 데모크라시가 시행되었다. 전쟁 이후에는 윗선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했으며[8] , 몽골은 유혈사태 없이 협상으로 민주화를 이룩했으며, 대만도 리덩후이의 집권하에서 민주화가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들 나라도 독재정권 시절에는 인구의 수% 이상이 참여하는 대형시위가 벌어지지 못한 탓에 한국보다 임팩트가 약한 편이다. 또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정당수명이 짧고 그 덕택에 정치적인 역동성이 더욱 강하게 두드러진다.
한국은 주변 국가들보다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9] 북한은 조선 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과 다르게 수천년 전 제정일치인 신정체제를 하는 사이비 집단이며, 중국은 오성홍기가 가르키듯이 스스 공산당 일당 체제라고 인정하고 있고, 러시아 역시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이나 사실상 독재 국가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상황이며,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되는 일본 역시 소위 우파 정당인 자민당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압도적인 여당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었다가[10] 2009년에서야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불과 몇년 만에 뒤집어졌으며 이후 자민당 1당 독주가 다시 재개되었다.
또한 국민들의 정치 참여 또한 굉장히 활발하여 바람직한 점도 많다. 과거 TV에서 보였던 국회 공성전 같은 것들을 보면 자주 까이기도 하지만 일본도 전공투와 그 흔적이 남아 있던 시절에는 비슷한 일들이 많았다. 사실 찾아보면 이런 나라는 많다. 어찌 보면 "국회를 폭파해야 한다" 등의 이야기가 오가는 것도 국민들이 정치에 그만큼 관심이 많고 선거 등 정치에 열렬히 참여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있었기에, 4.19 혁명, 부마 민주 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이 발생하여, 민주주의가 정착하였다. 또한 과거 민주화 투쟁을 하던 윗 세대들이 후세대들에게 민주주의와 과거 반 (反) 독재 항쟁의 역사를 가르치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한국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자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꽤 높은 편이다. 실제로 박근혜 퇴진 운동에서도 수많은 학생들과 청년들이 시위에 참여하여 민주주의 의식이 젊은층에도 퍼져있음을 증명하였다.
2.1.1. 민주주의와 민심
대한민국은 과거 조선왕조의 영향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국민들의 의식 속에 알게 모르게 유교의 영향이 매우 짙게 남아 있어서, 정통성 개념과 성인 사상으로 대표되는 지식인, 정치인에 대한 도덕적, 능력적 검증에 높은 기준을 제시하는 성향과 '민심은 천심(天心)'으로 대표되는 유교적 민본주의 사상이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등에서 표출되며 쟁점이 생길 때마다 적극적으로 민심을 수용하라며 목소리를 내는, 서양식 민주주의와 다른 형태의 체제가 되었다.The preamble to the Constitution notwithstanding, “We the People” don’t exactly rule in the United States. A legal document, the Constitution, looms godlike over the affairs of Americans. Some form of that goes for most democracies. The laws are in charge, not the public — at least not directly.
엄밀히 따지자면 미국에서는 헌법 전문에서처럼 "우리 인민(We the People)"이 통치하지는 않는다. 헌법이라는 법률 문서는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어렴풋이 모습을 보이는 신성한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볼 수 있는 양상이다. 지배하는 것은 법이지, 대중이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최소한 대중이 직접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South Korea presents an unusual case — and last week’s impeach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is a case in point — of a country where the rulers and the ruled not only believe that the people exist but in fact accept that the people, or some mystical conception of their collective will, are directly in charge.
그런데 남한은 특이한 케이스다. 지난 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사건이 보여주듯, 남한에서는 통치자와 통치받는 사람들이 모두 인민이 존재한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인민, 혹은 인민의 집단적인 의지라는 어떤 신비한 관념이 직접적으로 지배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This notion lies behind the country’s feisty politics and helps explain why it is, arguably, the most directly democratic country in Asia. Whether that’s a good thing or not depends on how much you trust the people’s spontaneous collective judgment.
이러한 관념이 바로 이 나라의 격렬한 정치 상황의 뒷배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그리고 또한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왜 이 나라가 아시아에서 제일 직접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국가인지를 설명해준다. 인민의 즉흥적인, 그리고 집단적인 판단을 사람들이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관념이 긍정적인 것인지 부정적인 것인지 갈릴 것이다.
The idea of the people being in charge seems easy to understand, but it is actually difficult to grasp, and accept as valid, when you come from a more law-based version of democracy.
인민이 지배한다는 관념은 이해하기 쉬워보이지만, 법치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던 사람들이 그러한 관념을 실제로 유효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험하기는 쉽지 않다.
(중략)
So, what is the nature of this people power?
그렇다면 이 인민의 힘(people power)의 본질은 무엇일까?
In Korea, when popular feeling pushes past a certain limit break, it warps into a beast that is powerful enough to rip through decision-making and the established law.
한국에서는, 대중의 감정이 어떤 제한선을 넘어서게 되면, 정책결정과정이나 확립된 법치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야수로 변모한다.
Koreans call it “public sentiment.” This is as tame an expression in Korean as it is in English and does not convey the underlying phenomenon. A more accurate phrase would be “the emotion of the masses” or “mob passion.” But these have negative connotations, and public sentiment for Koreans is anything but negative.
한국인들은 이를 “민심(public sentiment)”이라고 부른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표현으로 영어로는 그 말의 근저에 깔려 있는 현상을 전달하지 못한다.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대중의 감정(the emotion of the masses)” 또는 “군중의 감정(mob passion)”이 될 것인데, 한국인들은 이렇게 표현했을 때 부정적으로 여긴다. 반면, 민심의 경우는 결코 부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편집자주]
It is the collective soul, and it is considered supreme. Koreans even have a saying about it: “The law of public sentiment is above the law.”
민심은 집단적인 정신이며, 최상의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인들은 “민심은 법보다 위에 있다”는 말도 할 정도이다.
The Korean notion of democracy puts the people first. The unspoken deal with presidents, for example, is that the people choose someone to preside over public events, hobnob with foreign dignitaries, and generally get to feel as if she’s important.
한국적 민주주의에서 인민은 최우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공공사안을 관리할 누군가, 외교 사절과 어울릴 누군가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을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민이라는 것이 대통령과 인민 사이에 암묵적으로 합의되어 있다.
But she’s there to do the bidding of “public sentiment.” As Kim Dae-jung, the Nobel Peace Prize winner and former president, used to say: “The people are God” — a God whom the Korean president is expected to honor.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민심”이 요구하는 바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민이 신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의 대통령이 그러한 인민이라는 신을 존중하기를 기대한다.
의외로 '민심'이라는 표현은 서구 정치에는 생소한 개념인데,[12] 여론에 대한 중시는 있어도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유교적 민본주의가 서구식 민주정과 병존하는 체제라 할 수 있다.
물론 민심 중시가 장점만을 가진 것은 아니고, 민심이 민주주의와 동일시되는 것도 아니다.[13] 가령 '부패한 엘리트'와 '순수한 민중'이라는 이분법적인 인식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지 않으며, 이는 포퓰리즘의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인식이 한국의 독재정권 종식에 기여한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우나 당장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만 하더라도, 국가의 공식적 스탠스와 여론의 인식에서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탄핵 심판은 사법적 절차였고, 여론에게 법이 굴복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가 이유였다.[14] 반면 여론은 이를 "국민이 대통령을 끌어내린 민주적인 혁명"으로 인식했고, 국가의 공식적 의견을 대변해야 할 문재인 대통령마저도 이를 촛불혁명이라 표현했다. 즉 "법이 박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이냐, 국민이 박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국가의 공식 입장과 문 대통령의 발언이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이걸 단순히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이라 할 수는 없는게, 탄핵이 사법적인 체제 수호 절차였는지, 여론에 의한 혁명이었는지의 구분이 흐릿하여 탄핵 부정 세력이 활개칠 구실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탄핵심판 절차에만 초점을 맞춘 관점이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함으로써 탄핵심판이 개시되었고, 탄핵소추의 과정에서는 촛불시위 등 여론의 영향이 막대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 초반에는 거국중립내각, 질서 있는 퇴진 등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하거나 최소한 당장 끝내지는 않는 등의 온건한 방법이 제시되었으나, 여론은 촛불시위 등을 통해 하야를, 하야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탄핵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에 따라 거국중립내각, ‘4월 퇴진론’ 등을 주장하던 일부 여권과 야권은 선회하여 탄핵소추를 의결하였고, 결국 박근혜는 탄핵된다. 따라서 법에 의해 끌여내려진 것도, 국민의 여론에 의해 끌여내려진 것도 맞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남미의 포퓰리즘은 ‘국민에 대한 호소(appel to the people)’와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반대(anti-establishment)’를 그 이념적 특성으로 삼고 있다.[15]
이와 같은 포퓰리즘에 의한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와 비교하여 위임민주주의라 일컫는다.즉, 대중으로부터 대통령으로 권력의 정당성이 직접 위임된다는 의미에서 위임민주주의란 홉스(T. Hobbes)의 위임신탁이론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당을 매개로 한 대표와 국민간의 괴리가 심한 중남미에서 말하는 위임민주주의란 선거를 통해서 집권한 대통령은 최고 행정수반으로서 자신을 지지한 세력을 대표하고 일정기간 권력을 위임받고 임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하는 상대다수 세력에 의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통치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자신의 지지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정치적 호소가 필요하며, 국민의 의사전달 또한 대통령을 직접상대로 하여 직접 이루어진다.
따라서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는 대의민주주의국가에서 정치적 역학관계가 대통령-여당 대 야당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비하여 위임민주주의에서는 대통령과 지지국민 대 반대국민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만들어 낸다. 이 때 여․야의 대칭정치는 배제되거나 그 중요성이 후순위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를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16]
이와 함께 대통령의 권력행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 또한 대의민주주의에서처럼 삼권분립원리에 의해서 의회 내지 부분적으로는 사법부에 의해 견제되는 것이 아니라 여론에 대해서 대통령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의회에 의한 견제장치를 우회하거나 회피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책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도 의회를 통하기보다는 보다 직접적인 국민투표나 여론조사 등의 방법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높은 초창기와는 달리 레임덕이 시작되는 임기후반과 대통령이 결정한 국가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현저히 낮아질 경우 그 책임 또한 대통령 홀로 질 수밖에 없다는 단점도 그 제도적 특징으로 거론된다.
이와 같은 위임민주주의는 국민과 정당의 대표자의 대표성이 극히 약한 중남미현상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일 수 있으나 현재 한국적 상황과도 결코 무관하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17]
-권영설,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그 긴장과 조화의 과제―」(2004)
김영삼대통령은 그 통치스타일과 리더십 부문에서 또한 적지 않은 한계와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김대통령은 후임 대통령들이 답습하게 되는 “민주화시기의 대중영합주의적 통치”라는 개인적 리더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성향을 집권초기부터 드러냈다. 이것은 이른바 위임민주주의적 통치문제를 야기하였다. 그가 공직자 재산공개를 단행한 것은 초기에 광범한 여론의 지지를 받았지만 그것의 법적 근거는 추진된 지 수 개월 후에야 마련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반 시민의 여론을 적극 동원하는 포퓰리즘을 자주 보여주었다.[18]
(중략)
1987년의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한국사회에서 기본적으로 헌법과 자유주의적 헌정체제의 작동은 가장 큰 대의민주제의 기반이자 구성원리이다. 그러나 급진적 성향의 언론과 지도자들은 의회정치보다 민중운동을 더 중시하고 광장정치가 현대한국정치의 지속적 개혁을 위하여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87년 민주화이후 한국의 헌정정치는 여러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두 번 이상의 여야가 바뀌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겪으면서 진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군부와 같은 외부 세력의 개입은 없었고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적 공고화의 단계를 통과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한국 대의민주제 운용에서 의회의 지나친 권력행사나 혹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과도한 권한의 집행과정에서 헌정적인 권력분립 원칙의 근본이 흔들리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의회와 대통령의 극한 대립이나 아울러 대통령에 의한 법치주의 원칙 무시와 포퓰리즘적 통치나 위임민주주의적 현상도 고질적 병폐현상으로 나타났다.
-김용직, 「현대한국민주주의의 쟁점: 민주화 이후의 헌정정치와 통치갈등」(2017)
2.2. 지방분권의 약세와 중앙집권
대한민국은 지방자치단체의 힘이 매우 약하고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있으며 1990년대 이전에는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민주화된 이후로도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방자치단체보다는 중앙정부의 통치권한이 강력해지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예로부터 한반도에 등장했던 국가들은 타 국과 비교해서 중앙집권 성향이 매우 강했던 역사적 경향이 존재해왔으나[19] 현대 한국은 6.25 전쟁으로 인한 북한의 존재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 수도권을 비롯한 특정 지역에 개발을 몰빵하는 형태로 인해 중앙의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20] 이때문에 민주화 된 이후로도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법적, 정치적 문제로 세수조차도 자율적으로 확보하는 게 힘들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에 중앙에 대한 종속이 매우 심해서 지방분권을 주장하는 세력에서는 말로만 지방자치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강한 중앙정부를 더 선호한다. 특히 도시로 갈수록 향촌에서의 작은 사회로 인한 범죄 및 비리 유착 문제를 제기하며 중앙정부가 지방에 권력을 나누는 것을 반대하는 성향이 강하며[21] 지방자치단체를 찬성하는 이들 중에서도 기초자치단체는 기능을 못하니 광역자치단체만 남기고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곤 한다. 심지어 한국사에 대한 인식에선, 중고등학생 교과서나 교양 서적의 전근대사 서술에서 왕권 강화와 역사적 진보가 사실상 동일시되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권력의 강력한 중앙 몰빵 성향 때문에 중앙정부가 비대화하고 효율이 저하되며 국회의원이나 청와대 관료진이나 내각에 로비가 집중되면서 심하면 나라가 떠들석할 정도의 큰 규모의 부정부패가 일어나는 등 여러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력구조 재편 문제는 대통령 중심제, 의원내각제 개헌과 함께 헌법 개헌 이슈에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무엇보다 중앙집권적 성향과 권력 몰아주기로 인해 한국의 정부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정부들 중 매우 드물게도 국민들의 소소한 것까지도 관리감독하는 큰 정부인 형태로 남게 되었다. 일반적인 선진국들이 복지정책이나 사회간접자본 공급 등을 민간기업에 위탁하거나 지방정부가 담당하는 형태인 반면 한국은 소소한 부분까지도 정부 관리하에 두려고 하며 많은 수의 국민들도 이러한 일들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가 관장하는 부분을 늘리려고 하거나 정부 관장 부분이 아님에도 일이 잘못되면 중앙정부를 성토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기까지 했다.
오래전부터 수도권에 혜택이 집중되는 한국 사회가 서울 공화국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에서 원론적인 의미의 지방정치 세력이 힘을 얻은적은 거의 없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당법은 지역정당의 탄생을 사실상 봉쇄하고 있는 상태인데다가,[22] 한국인들은 '지역주의(Regionalism)', '지방주의(Localism)'라는 단어만 들으면 '지역이기주의', '지역감정'으로 알아듣기 십상이다.[23] 그나마 풀뿌리 민주주의 등의 이름으로 지방정치를 살리려는 움직임은 있으나 군소진보정당에서만 희미하게 나타날 뿐이다. 봉건제를 거치지 않은 한국사의 영향도 있고[24] 9차 개헌이후 삼김으로 대표되는 지역정치인들이 '망국적 지역주의'라며 비판 받아 한국 정계에서 지역정치의 개념이 왜곡된 영향#도 있지만 제도적으로도 지역주의나 지방분권론이 클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도 하다.
게다가 특별자치 지위를 가지는 제주도에 정작 지역정당이 없다는 것도 한몫한다. 일본의 오키나와현은 자치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것에 불구하고 지역정당이 활발하는 것을 비교하면 괴리감이 크다.
2.2.1. 지역감정, 연고주의
물론 중앙이 강하다고 해서 지역이기주의와 지역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한국 정치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다른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듯이, 한국에서도 특정 지역이 특정 당을 몰아주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아무래도 '''박정희, 삼김, 전두환'''으로부터 원인을 찾는 시각이 많다.[25]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다른 나라처럼 분리주의까지 몰고 오지는 않는다.[26] 미국의 경우 헌법적 차원에서 중앙정부의 권력이 지방(state)으로부터 부여된거라고 강조하고 실제로도 그러한 것과 비교할때, 한국은 애초부터 지방의 권한은 강력한 중앙정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분리주의 세력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지방사람들마저도 '지방분권'을 반대하고 강력한 중앙정부를 옹호할 정도이다. 즉 '지역이기주의'가 있을지언정, 건전한 의미에서 지방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거의 없다. '지역주의'라는 말이 사실상 '지역이기주의'와 동일시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한국인들은 중앙의 권한을 매우 중요시함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지역감정 및 지역이기주의는 점점 금이 가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20대 총선 결과를 보면 선거 구도가 지역 구도에서 세대 구도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사실 한국 정치는 2000년대 이후로는 세대 투표가 점차 상수화되었다.[27] 사실 한국의 세대 투표는 다른 기타 서구권 및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도 정도가 심한 편인데, 미국의 장·노년층 공화당 지지율은 대략 55% 정도이고, 청년층의 민주당 지지율도 대략 60% 정도에 육박한다. 40대는 정확히 민주-공화 지지율이 양반되어 있다. 프랑스 같은 경우, 전 연령층에서 좌파-우파가 박빙일 만큼 세대 안에서 각 성향이 나뉘어져 있다. 영국도 세대 투표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워낙 계급이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보니 계급 투표 성향이 훨씬 강하다. (중산층 이상 - 보수당, 저소득층 - 노동당). 이와 달리 한국이 다소 심각한 이유는 30대와 60대의 지지 성향 격차가 45%에 육박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치권이 그만큼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전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보수 계열 정당의 청장년층 지지율은 낮아지며 우파의 지지 세대 상한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보수 계열 정당으로서는 정말 고민거리일 것이다. 실제로, 20대 총선에서 40대의 지지 성향이 7:3 비율로 진보적 성향이 강했고, 50대에서도 박빙 구도가 나타났다. 한편 진보 계열 정당 입장에서는 파이가 커지는 노년층[28] 의 3 : 7 ~ 25 : 75 비율의 보수적 성향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실버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노령화의 현상을 계속 세대 대결표로 막아야 하는지에 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역사상 초유의 사건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아이러니하게도 40,50대가 진보화되는 양상을 띰에 따라 세대대결 양상이 조금 누그러진 상황이다. 기사1기사2
2.3. 파벌 간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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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갈등 문서 참조.
5천만 국민의 정치갈등은 국회의 국회의원 300명에서도 마치 '''정치갈등의 축소판'''으로 고스란히 나타난다. 상대 정당이 통과를 요구하는 법안을 인질로 삼아 자신의 요구사항을 상대 정당에 요구하는 등 입법부로써의 국회의 역할을 방해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당의 이념과 맞지 않는 법안 통과를 저지하여 국회 의사진행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이념대립과 정치대립의 소모적 논쟁에 휘말려 국민에게 꼭 필요한 법안들이 국회에 장기간 계류되고 통과가 되지 못한 채 폐기되기 일쑤다. 게다가 중립적인 위치에 있으려 노력하는 국회의장이나 상임위원장들은 특정 정당의 편을 든다는 둥 비난을 받기 일쑤라# 국회내 정치대립과 진영싸움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다. 보수정당이건 진보정당이건, 어느 정당이건 간에 이러한 정치대립 문제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회의원과 정당이 반성해야 할 문제이다. 지금이 훨씬 나아진게,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물리적 폭력은 금지되었으나, 과거에는 소화기를 뿌리거나 본회의장에서 의원들간의 대혈투같은 일도 일어나기도 했다. 심지어는 최루탄이 국회에서 한 국회의원에 의해 터진 적도 있다.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에도 패스트트랙 파동이 터지면서 또 한번 동물국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국k-1참조.
한편으로는 좌우 대립이 여전히 문제로 손꼽힌다. 한쪽 당파가 민감한 사안을 제시하면 그 의견이 주로 반대한다든가, '다르다' 와 '틀리다'의 구분을 못해 빨갱이, 수구꼴통이라며 서로를 공격한다든가. 또한 지역감정도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주로 선거 때마다 나타났던 경상도와 전라도의 특정 당 몰아주기가 있다. 그리고 정치적 사안의 경우 이러한 경향을 이용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경향이 제법 많아 문제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현재는 세대 대립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 대립 구도는 노무현 대통령의 등장 이후 민주당계 정당이 김해시, 부산광역시, 양산시 등지에서 선전을 하면서 다소 완화된 상태이었고, 촛불정국과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김해와 부산, 울산, 경남 동부 지역은 민주당계 정당 약우세로 정치 성향이 바뀌었다.[29] , 그 사이에 민주당계 정당이 강원도 접경지역의 표를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물론 최근에는 지역보다 세대 대립과 갈등이 더 심화되는 양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불과 21세기 전까지만 해도 사민주의 계열은 제외하고 의외로 정당 간의 이념 차이는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생각보다는 적었다.''' 본격적으로 이념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열린우리당 분당 때부터였는데, 분당 이후를 기점으로 민주당계 정당 내부의 이념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으로 그 갈등이 절정에 달하게 되었는데, 그 직후의 민주당계 정당들의 당원 성향을 보면 이념갈등의 심화를 분명히 알 수 있다. 분당 직후의 정당들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당원들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원의 상당수가 열린우리당 당원이었고, 민주평화당 당원 상당수가 새천년민주당 잔류파였음을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30] 그러나 기존보다 이념 차이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거대 양당은 본격적인 이념형 정당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좌우 대립도 진정한 이데올로기 논쟁이라기보다는 색깔론에 가깝다. 이념형 정당은[31] 전통적으로 인기가 매우 적고, '이념'이라는 말부터가 "현실을 등한시하고 민족을 분단시킨 말장난"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이념 차이가 거의 없는 점은 거대 양당 체제라는 점으로[32] 설명할 수도 있지만, 한국의 특수한 분단체제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해방 후까지는 사실 현재의 유럽/일본 등에서 보여지는 좌/우파 개념이 한국에도 비슷했다. 우파는 민족주의, 좌파는 사회주의라는 식으로. 그러나 분단 직후, 북한은 우파 사상가들을 '부르주아 자본가' 라면서 모조리 숙청했고, 남한 역시 좌파 사상가들을 숙청하거나 탄압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동족끼리의 전쟁인 6.25 전쟁에서 한반도의 좌익 계열은 월북했고, 우익 계열은 월남해 오게 되어, 남한의 이념 체제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다른 일반적인 나라로 치면 중도 성향에 가까운 세력들이 한국에서는 왼쪽으로 치우친 세력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더불어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좌파적인 이들은 뿌리뽑히다 시피 하였고 반공주의를 국시로 삼은 권위주의 정권들이 차원에서 반공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2000년대 이전까지는 좌파진영이 정치에서 제대로 활동한적은 없다고 보면 된다.
민주화 이후 민주화 운동 진영에서 김대중,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우파세력은, 김영삼 (민주당) 계열은 변절자 소리를 들으며 전두환,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합당하였고[33] 한나라당 그리고 새누리당으로 이어졌으며, 김대중 (평화민주당) 계열은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어졌다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정부 이전까지만해도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이념 차이는 크지 않은 편이었다. 여기에 3당 합당을 하고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정계는 비리에 의해 대거 공천 탈락했고, 김종필의 구 공화당 계열은 내각제 개헌을 무시하자 탈당 후 이회창을 선택하지 않고 김대중과 손을 잡아서 그냥 그넘이 그넘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해방 이후로 한국의 좌파/우파는 매우 복잡하게 바뀌었다. 한국의 좌파에는 다른 나라처럼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노동계열, PD 등이 있긴 하지만 특이하게도 민족주의를 중시하는 종북주의자, NLPDR 등까지 섞여 있으며, 우파에는 국가주의, 권위주의 등이 있긴 해도 신자유주의 등을 중시하는 등 상당히 미묘하게 변해버렸다. 즉 다른 나라에서는 극우들이 민족주의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한국에서는 NL 등지의 진보 쪽에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거나. 다만 요즘 와서는 NL과 PD 역시 우파/좌파 성향으로 분열되는 조짐이 있긴 하다.
민주화 이후의 각 계열의 성향만 보면 진보정당, 극우정당을 제외한 보수계 정당과 민주계 정당이 이념 차이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참여 정부의 출범으로 친노계가 동교동계와[34] 분열하며 친노계가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정당인 열린우리당을 장악하였고, 그들은 상대적으로 좌클릭 행보를 보여왔고, 또 반대편은 급격하게 반대로 가는지라 이념의 차이는 상당히 벌어진 편이다. 현재 공식적으로는 보수정당은 자유보수주의를 지향하며 중도보수 내지는 보수, 민주정당은 사회자유주의를 지향하며 중도 내지는 중도좌파로 분류되고 있다.
다만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기준은, 그리고 미국식 잣대로 보느냐, 서유럽식 잣대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서유럽식 잣대로 평가한다면 현 한국의 보수계열 정당, 민주당계 정당 둘 다 보수 정당으로 볼 수 있는 반면, 미국식 잣대로 본다면 2008년의 민주당 시절부터는 나름 진보 성향이다. 하지만 상대적 기준이 아닌 절대적인 기준에서 평가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공식적인 성향을 참조해도 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어쨋든 미국 민주당과 한국 민주당은 사회자유주의로 동일한 계열로 분류된다. 또한 한국 보수 정당은 현재 자유한국당 기준으로, 미국 공화당과 같이 국제민주연합에 속해있으므로 비슷한 계열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물론 민주당계와 보수계열 모두 보수계열에서 진보적인 정책을 낼 때도 있고, 민주당계에서 보수적인 정책을 낼 때도 있다. 하지만 민주당계 같은 경우 그 성향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참여정부 이후 한동안 대한민국 국민이 생각하기에 너무 좌로 기울지 않았나 할 정도의 인물과 차라리 새누리당으로 가라고 할 정도의 보수적인 인물들이 공존했었다. 민주당계는 박근혜 정부 당시 국민의당이 따로 세력을 만들어 떨어져 나가고 해서 중도보수적 인물은 예전보다는 많지 않지만 여전히 계파 간의 갈등은 새누리당에 비해 상당히 심한 편이다. 또한 민주당계는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 현재까지도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한 편이다. 19대 대선 당시 경선만 보아도 국민의당으로 당내부의 중도보수적인 인물이 나갔음에도 진보를 기반으로 한 인물과 중도 보수를 기반으로 한 인물이 동시에 경선에 나오기도 했었다. 민주당계 정당의 이러한 다양성을 추구하는 특성으로 인해 극좌를 제외한 거의 모든 성향의 인사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오히려 정책적인 싸움이 아닌 지역갈등 세대갈등이 큰 영향을 끼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따른 현상인 듯하다.
그나마 좌파적인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쪽은 진보정당이라 불리우는 군소 정당들인데, 최근에 들어서는 어떤 정당도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으며, 특히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 이 두 사건 이후로는 진보 정당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늘어나 전혀 힘을 쓰고 있지 못하는 상태다. 현재 진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은 노동당, 정의당, 민중당 이 세 정당인데, 사실 노동당은 아주 작고 정의당은 상당히 좌파적이며, 민중당은 아예 통합진보당의 후신으로 읽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위에 설명한 것과 같이 민주당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다 보니 민주당내에도 정의당과 같은 정도의 중도 좌파들이 매우 많다. 자칭 중도 좌파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모인다 하는 정당이 노동당, 정의당이지만 좀더 우클릭한 사람들이라도 같이 힘을 모으든 싸우든 한다 하는 중도좌파들이 상당히 모인 정당이 지금의 민주당이다. 그러다 보니 중도좌파적 성향의 사람들도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고, 더욱이 진보정당들이 저지른 몇 번의 실책으로 인해 중도좌파층이 진보정당에 힘을 싣는 것을 상당히 주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진보정당의 색채는 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딱히 대표성을 가지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한국에서는 조금만 정치적인 성향이 다르면 (특히 넷상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는 경우가 많으며 민주당계 정당 내부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고, 진보정당, 보수정당, 극우정당 모두 그런 성향을 극렬히 띈다. 물론 대화가 생산적으로 진행된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심각한 것은 이러한 넷상에서의 상황이 오프라인에게까지 번져 '보수에 수꼴이 섞여있고 진보에 종북이 섞여있어, 제대로 된 대화가 안 된다'고 많이들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보수, 수꼴, 진보, 종북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고 상대적인 기준일 뿐이다. 대화가 안 되는 것은 대화를 결렬시킴으로써 얻는 정치적 이득이 있어서지, 이들 집단이 갖는 문제점이 커서가 아니다. 특정집단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오히려 대화 중단의 원인이다.
게다가 2016년 말엽,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가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압도적으로 통과됨에 따라 더욱 정치적 갈등이 인터넷상에서도 심하게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그로 인한 새누리당의 분열은 보수층 사이에서도 나이든 보수층과 젊은 보수층이 서로가 서로를 비방하는 현상이 생겨나게 되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되며, 젊은 세대뿐 아니라 나이 든 세대로부터도 고루 지지를 받게 되었지만, 이전 경선과정에서의 서로를 향한 비방은 매우 거세었고, 특히 넷상에서 지지층 사이의 대결이 극에 달하였다. 또한 '''특히''' 중도정당을 자칭하던 국민의당의 분열은 중도정당의 사실상의 소멸과 함께 현실에서 좌우 대립의 가속화를 불러들였다. 그러다보니 인터넷상에서도 보수를 비판하면 문빠나 종북 취급을 받고, 진보를 비판하면 일베나 박사모 취급을 받는 등 좌우 양쪽에서 배척이 매우 심해지긴 했다.[35]
다만 이를 가지고 마치 한국 국회만 파벌 간 대립이 극심하고, 외국 국회는 서로 하하호호하며 양보하는 이상향처럼 생각하면 그것도 곤란하다. "정치의 성숙도"라는 심히 모호하고 그때그때 기준이 제멋대로 바뀔수 있는 비전문적 용어에 얽매이지 않고 봐야하는 것인데, 가령 2020년 11월 4일 프랑스 하원에서는 야당 공화당의 조지안 코르늘루프 의원이 여당 앙 마르슈소속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와 가까운 올리비에 베랑 보건부 장관이 코로나19로 인한 국가비상사태를 2월까지 연장하는것에 반대하며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보낼수 있어야 한다"라는 논리로 12월 중반까지만 시행하는것으로 우겨댔으며, 이후 베랑 장관이 자신이 방문한 병원에 병실에 20대, 30대 청년이 있었다며 코로나19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던 중 야당 의석에서는 야유가 터져나왔고, 장관은 "이게 현실이다, 듣기 싫으면 나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프랑스의 코로나19 일일 확진자는 하루 6만명 가량으로, 사망자는 하루 수백명에 달하며 유럽에서 인구대비 가장 많은 수의 코로나19 확진률/사망률을 기록하던 상황이었다. 결국 계파정치의 승리가 자국의 보건 위험성보다 앞선 것이다.
2.4. 강력한 세속주의/정교분리 성향
다른 국가들, 가령 미국이나 유럽 지역 국가들과는 달리 낙태나 동성애, 특정 종교 신앙의 유무 등 종교적인 요소로 인한 대립 및 갈등은 미약한 편이다. 특히 종교 관련 정당은 선거때 마다 1%도 획득하지 못할 정도로 종교색이 미약하며 종교가 없는 무종교인의 비율도 대다수로 상당히 종교색이 없는 편이다. 물론 보수 계열 정당에서 동성 결혼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등 관련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 언급된 지역 문제나 남북 문제 등에 비하면 종교 문제는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중요도가 낮은 편이다. 오히려 정당이나 정치인이 특정 종교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날 경우 진영을 막론하고 여론의 강한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대한민국 정계에서는 '기불릭 신자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라는 농담반 진담 반의 표현도 있다. 개신교, 불교, 가톨릭이 상징하는 한국의 주류 종교들을 모두 포용하고 특정 종교에 편향되지 않아야만 정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종교 문서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2.5. 강력한 민족주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원내정당 중 탈민족주의 성향은 없다고 봐도 된다.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의 경우 좌파민족주의와 강력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보수정당의 경우 일본에 대해 비교적 더 유화적인 경향은 있어도 탈민족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또한 비교적 민족주의가 옅다는 인터넷 세대마저도 토착왜구를 운운하는 상황이니, 이 문제는 좌우를 막론할 뿐만 아니라 연령을 막론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한 민족주의 성향은, 남북분단이 자주 다음과 같이 표현되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말 자체는 남북분단에 대한 그냥 무미건조한 서술일 수 있어도, 실제로는 '가벼운 가치인' 이념 때문에 '중대한 가치인' 민족이 갈라졌다는 뉘앙스로 쓰인다. 즉 민족이라는 가치가 이념보다 우선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1민족 1국가'라는 민족주의적인(즉, 이데올로기적인) 테제는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는 당연하고 보편적인 가치로 전제된다.
2.6. 정치 구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서, 평등과 자유의 원칙에 따르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가 권력을 행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채택한 간접민주정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 경우에도 권력의 행사는 법치주의의 원칙[36] 에 따라 헌법과 법률에 의해 강력하게 구속되어 국민주권주의의 본질을 수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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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 사법부로 나뉘어 있는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 입법부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국회이며, 행정부는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선거에서 선출된 대한민국 대통령이 내각 구성원을 임명하여 조직한 뒤 이끈다. 사법부는 대한민국 대법원을 정점으로 소송을 주관하고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을 가지고 재판할 수 있는 사법권력을 가진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정부수반과 행정부의 수장을 겸하는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미국과 함께 전 세계에서 유이한 대통령중심제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신생 대통령중심제 국가들에서 민주정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매우 특이한 사례.
한편 대통령 중심제임에도 불구하고 내각을 구성하는 국무위원의 국회의원직 겸직이 가능하고 국회가 청문회를 통해 행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으며, 정부수반은 아니지만 국무위원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국무총리가 존재하고,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독자적인 법안 발의가 가능한 의원내각제적 요소를 도입한 독특한 정치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통령제이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은 의원내각제의 내각불신임과 다르게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심판을 필요로 한다.[37] 또한 대통령 역시 의회해산을 할 수 없다. 즉 헌법이 지향하는 바를 보자면, '삼권의 엄격한 분리와 견제'보다는 삼권의 협력과[38] 안정성을[39] 중시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미국과 비교할 경우, 미국에서는 하원에게 있는 비상대권이 한국에서는 대통령에게 있고, 연방제가 아니라서 중앙행정부의 권한이 강하고, 대통령에게 법률안 제출권이 있다. 즉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강력함을 알 수 있다.[40]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상대적으로 '''행정부에 종속되어 있다'''. 대법원장의 임기 자체는 보장되며 대통령이 마음대로 경질할 수 없지만 어쨌든 대통령이 (보통 여당이 다수당인)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즉 대법원장의 성향은 대통령과 상당히 유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 대법원장은 직접 심판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판사들의 인사권을 가지므로, 결과적으로는 판사들 또한 대통령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받게 된다. 또한 대통령 휘하의 법무부가 기본적으로 검찰을 감독하며,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경질 가능하다. 따라서 검찰은 대통령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게 된다. 대한민국은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검찰이 경찰에 대해 수사지휘권을 가지므로, 검찰은 기소를 아예 하지 않거나 수사에 태업을 벌이는 방식으로 대통령의 의중을 사건 처리 방향에 강하게 반영할 수 있다. 이는 상당히 강력한 무기인데, 따라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국회는 특별검사 입법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지 않는 특별검사를 특정 사건에 대해 단기간 임명해 대통령의 통제하에 있는 검찰을 견제하고, 행정부의 기소독점주의의 병폐를 완화한다.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기본적으로 대법원을 정점으로 각급 법원들이 배치되어 3심제를 보장하고 있는 구조이나, 이와 별개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모두에게서 독립해 있는 헌법재판소가 헌법 심판을 담당하여 입법부인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며,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 소추할 경우 대통령의 위헌/위법 행위 여부를 판단하여 이를 심사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그러나 재판에 대한 위헌 심사는 막혀 있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상위법원으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법원이 최상위 법원이라 명시하고 있어 위와 같은 상황이 될 경우 위헌적 요소가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헌법기관들 간의 권한의 범위에 다툼이 있을 경우 이를 헌법에 근거하여 심판하는 것을 통해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2.7. 스타 정치인 중심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정당들이 움직이는 현상이 매우 심하다. 사람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사람에 가입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 보수든 진보든 대한민국 정당 간의 이념 차이가 사실 따지고 보면 큰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41] 이념 대립이 격한 이유. 이렇기 때문에 특정 인물을 겨냥한 정치적 공격이 빈번하게 일어나며, 지지자들 간 타협없는 개싸움이 일어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당명을 너무 바꾼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예[42] 를 들면 자유민주당에서 역대급 참패당한 2009년 총선부터 2012년 총선 통한 정권탈환까지 그 시기 동안 당명을 바꾼다는 이야기조차 없으며, 유럽조차 역대급 참패해도 자주 바꾸지 않는다. 당명보다 로고, 심볼이 많이 바꾼다.
정당의 청년조직에 대해서 2020년에 와서야 제대로 결성할 정도였다.
친노, 친문, 친이, 친박 등으로 유력 인물의 성을 따서 정치 계파를 형성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 불리는 계파가 형성되기도 했다.[43] 심한 경우 그 파벌 안에서도 충성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기도 한다. 이에 따라 단순히 계파의 수준을 넘어 특정한 거물 정치인의 친위대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국민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길 바라며 지역구든 비례대표든 대표자를 뽑아 정치를 시키는데, 그 정치인이 하라는 정치는 안 하고 다른 거물 정치인의 친위대가 되어버리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계파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계파의 기둥이 되는 인물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정치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그 중심이 되는 인물이 '''부패할 경우''' 정당이 인물을 제어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계파에서 똘똘 뭉쳐 그 비리를 덮으려 하기 때문. 최근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스캔들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수사가 매우 더뎠던 이유가 주범들이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는 것도 있지만, 친박 인사들이 특검 수사를 완강하게 방해하고, 극우 단체들을 모아 시위를 유도하며 수사 중지를 요구하며 수사의 진척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소위 말하는 '돌풍'을 일으킨 대통령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같이 메이저 계파에 속해 있지 않았던 정치인은[44] (적어도 대권에서는) 아웃사이더가 되여 버리거나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어도 당의 지지를 받지 못해 분열되거나 대판 정치적 싸움이 벌여지기도 한다. [45] 물론 신선한 인물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계파에 오래 충성한 인물이 자연스럽게 차기 당권을 잡고 차기 대권 후보가 되어 당은 점점 고이고 그 물이 지나치게 썩어버리면 결국 윗 문단같은 사태가 벌어진다.
이는 한국인에게 아직 남아있는 집단주의적 잔재로 볼 수도 있다. 특정 정치인 甲이 거물 정치인 乙의 의견에 반기를 들 경우 이를 甲의 소신있는 합리적 정치 행위라고 보기보단 감히 甲이 乙을 배신했거나 반란을 일으켰다고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군사정권과의 투쟁을 통해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정당 간 진영논리가 팽배했었기 때문에 그런 성향도 크다. 이를테면 신민당에서 노선 안 맞는다고 나간 정치인이 어디로 가겠냐는 논리다. 물론 이 정당 저 정당 옮겨다닌 불사조가 존재하긴 하는데, 이 사람은 자기가 거물 정치인이다.
그래서 위안부 소녀상 관련 기사이지만, 계파 정치 하는 한국과 비교해서 성숙한 독일의 정당정치를 호평하는 기사가 나왔다.#
2.8. 시위 문화
시위나 집회의 경우 조선 시대 무렵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며 조선 말엽~대한제국기에는 시위나 집회의 과격화로 인해 군중이 폭도화되거나 농민봉기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으며[46] 일본의 식민지배 이후 집회, 결사가 금지되었음에도 3.1 운동과 6.10 만세 운동과 같은 민족주의적인 만세운동이나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파업, 소작 쟁의 등이 이어졌으며 해방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에 맞서 결국 4.19 혁명으로 정권을 무너트렸고 박정희 정권의 유신 통치에 맞선 부마항쟁은 10.26 사건으로 이어졌고 전두환 정권은 5.18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짓밟았으나 6월항쟁으로 물러났고[47] 6공화국에서도 박근혜 정권이 박근혜 퇴진 운동에 의해 탄핵되는 등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나 일부는 역사를 바꾸기도 했다.
이러한 시위 문화는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이 독보적이다. 한 예로 미국의 좌파 성향 정치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저술한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에서는 한국의 민중운동사가 1권,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의 민중운동사를 모두 합친 것이 비슷한 분량으로 1권이 나올 정도이며 아시아 지역에서 불리는 민중가요 중 한국에서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와 같은 민중가요가 있을 정도이다.
한국의 시위문화에 관련해서 많은 갑론을박이 있는데, 보수계열 쪽에서는 한국의 폭력시위문화와 시위를 통한 정부에 대한 무리한 요구 강요, 잦은 시위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낭비를 문제삼고 있으며, 진보, 운동권 계열에서는 시위에 대한 한국 경찰 및 정부의 과잉진압, 암묵적인 시위 탄압 및 방해, 시민들의 정당한 시위와 항의에 대한 아몰랑식 대응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극보수 계열의 폭력시위가 화제로 떠올라, 이때만큼은 보수와 진보의 상황이 뒤바뀌기도 했다.[48] 다만 이런 논란은 비단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사회에서도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이나 노란조끼 운동 등을 비롯해 여러 시위에서 시위자와 경찰간의 물리적 충돌과 폭력 사태가 자주 일어나며, 시위 때마다 이번시위가 폭력적 시위였는지, 아니면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여 원인을 제공하였는지 논란이 일곤 한다.
하지만 박근혜 퇴진 운동과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에서 비폭력집회와 폭력집회간 "전달성"의 차이가 크게 부각되었으며, 이로인해 이후로는 폭력적인 부분을 상당히 없애는 쪽으로 시위문화가 급격히 변해가고 있다.
2.9. 정치 징크스
민주화가 자리잡은 6공화국 체제 이후 한국 정계를 관통해 자리잡은 징크스들이 있다. 일부는 단순한 우연이지만, 일부는 합리적인 인과 관계가 존재하는 부분도 있다.
- 6공화국 정권 교체 10년 주기설
- 충청권 승패 징크스
- 경기도지사 대선 실패 징크스
- 국무총리 대선 실패 징크스
- 통합 징크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가는 정당은 대부분 이전까지 여러 갈래로 나눠서 다툼을 벌였던 계파 및 정당을 하나로 합쳐서 묶어놓은 형태이다. 따라서 선거 과정에서 당내 크고 작은 계파 갈등이 벌어지기 쉽다. 이 것이 당 운영의 비효율로 이어지고 결국 지지율 하락이란 결과를 낳기 쉽다.
- 퍼블릭 서번트 징크스(public servant jinx)
-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 징크스
- 경상도 출신 대통령 징크스
- 대통령 취임 직전 대형 화재 징크스들
- 레임덕 징크스
3. 대한민국의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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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투표용지.
대한민국의 주요 선거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가 3대 선거이며, 재보궐선거 및 궐위로 인한 선거가 필요할 때마다 치러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담당한다.
4. 지수와 지표
4.1. 부패인식지수[51][52]
국제투명성기구 (TI,Transparency International)[54] 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 지수는 100점에 가까울수록 청렴하고, 0점에 가까울수록 부패하다고 인식되는 국가이다. 이 지수는 공무원과 정치인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국제적으로 판단하는 척도로 자주 활용된다. 근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부패인식지수는 50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의 부패인식 지수는 폴란드나 이탈리아보다는 더 양호한 수준으로 비춰진다는 평이다. 물론 부패인식 지수 자체만을 가지고 '다른 나라는 더 깨끗하고 청렴하다' 라는 결론을 내리긴 힘들다.
다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스캔들로 낮아졌던 점수가 최근 빠르게 회복되어 2020년 부패인식지수에서 61점으로 역대 최고점을 기록했다.
4.2. 언론자유지수[55]
- 2011년은 발표 없음. 색깔 구분은 순위가 아니라 점수 기준으로 위키백과 인용. 2012년 점수 개편.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30위~50위 사이를 유지하다가 이명박-한나라당(현재 국민의힘) 정권이 집권중이던 2009년에 갑자기 20위 넘게 떨어진 69위까지 하락하게 된다. 이후 2010년에 42위로 회복을 하였으나 박근혜 정부 들어서면서 2015년에는 60위, 2016년엔 70위로 다시 하락했다.
2013년에 크게 떨어진 언론자유도는(24.48, 50위)[57] 2014년에 조금 더 하락한 (25.66, 57위)를 기록하였다. 또한 2015년에는 더 하락하여 (26.55, 60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28.58점으로 역대 최저 순위인 70위를 기록하였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정부는 비판을 점점 더 참지 못하고 있고 이미 양극화된 미디어에 대한 간섭으로 언론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있다."라고 평했다. 일본은 그보다 낮은 72위로 비슷하게 언론에 대한 억압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은 2016년 10월에 발생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 여파에 따라 각 언론사가 이념에 상관없이 당시 정부와 집권여당을 가감없이 비판함에 따라 탄핵과 파면에 이르게 한 일을 들어 언론이 여전히 효과적으로 정치를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로는 2018년 문재인 정부 집권시기부터 40위권으로 대폭 상승하였고, 이후 2019년에는 24.94점으로 41위를 기록하며 아시아 1위의 자리를 대만으로부터 탈환하였고, "언론 자유지수 양호"를 기록하였다.[58] 2020년에는 순위가 한단계 내려왔긴 했지만 점수는 내렸으며(더 좋아짐), 여전히 아시아 1위 및 언론자유지수 양호의 자리를 지켰다.#
4.3. 민주주의지수
2006년부터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59] 에서 발표하는 지수. 세계 각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지표로 나타내고 있다.
2019년 조사기준, 대한민국은 2018년과 같이 8.00점을 받아 이번에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했지만, 순위는 2단계 하락한 23위을 기록하며 완전한 민주주의 바로 아랫단계인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4.4. 공공청렴지수
공공청렴지수(IPI)는 유럽 반부패 국가역량 연구센터(ERCAS)가 전세계에서 117개국을 대상으로 국가별 부패통제 수준의 객관적 평가를 위해 2015년에 개발한 지표다. 10점 만점으로, 점수가 높을수록 더 청렴하다는 의미이다.
IPI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 주관적 평가 요소가 다소 반영된 것과 달리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가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두고 있으며, 부패통제능력과 높은 연관성이 입증된 6개의 제도적 요인을 평가지표로 삼고 있다. 해당하는 6개의 제도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
1. 전자적 시민권 (E-Citizenship)
2. 행정적 부담 (Administrative Burden)
3. 정부예산 투명성 (Budget Transparency)
4. 언론 자유 (Freedom of the Press)
5. 교역 개방성 (Trade Openness)
6. 사법부 독립성 (Judicial Independence)
국민권익위원회 및 제도권 언론에서 인용하기 시작하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지게 된 지표로, 2019년 12월에 발표된 2019년도 조사에서 대한민국은 전자적 시민권(1위) 및 행정적 부담(19위)에서 높은 점수를, 정부예산 투명성(26위) 언론 자유(36위) 교역 개방성(40위) 사법부 독립성(49위) 항목에서는 비교적 낮은 점수를 받았다.
아시아에서는 8.34점을 받은 19위 일본에 한 자리 밀려 2위를 기록했다.
5. 국외 언론의 평가와 보도
"재벌 중심의 고도성장과 극심한 경쟁 위주의 교육시스템을 상징으로 하는 한국에서는 빈부격차와 엘리트 계층의 부패 등이 공정사회로의 진행을 막고 있다"
'''South Korea just showed the world how to do democracy'''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Die Bürger führen, die Politiker folgen
The preamble to the Constitution notwithstanding, “We the People” don’t exactly rule in the United States. A legal document, the Constitution, looms godlike over the affairs of Americans. Some form of that goes for most democracies. The laws are in charge, not the public — at least not directly.
미국에서는 엄밀하게 말하면 헌법 전문에 나타난대로 “우리 인민(We the people)”이 통치하지는 않는다. 헌법이라는 법률문서는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어렴풋이 모습을 보이는 신성한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민주국가에서 볼 수 있는 양상이다. 법이 지배하는 것이지 대중이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백번 양보해도 대중이 직접적으로는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In Korea, when popular feeling pushes past a certain limit break, it warps into a beast that is powerful enough to rip through decision-making and the established law.
한국에서는 대중의 감정이 일정한 선을 넘어서면 강력한 야수로 돌변하여, 정책결정과정이나 확립된 법치를 붕괴시킨다.
Demokratie und Asien – das soll nicht zueinander passen? Im Augenblick sieht es eher so aus, als könnten Amerikaner und Europäer von den Koreanern lernen, wie man die Demokratie mit Mut und Leidenschaft verteidigt.
Democracy and Asia – that should not be compatible? For the moment, it seems that Americans and Europeans are learning from Koreans how to defend democracy with courage and passion.
민주주의와 아시아, 이 둘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인가? 오히려 지금은 이렇게 보인다. 아메리카인들과 유럽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배울 수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를 용기와 열정을 갖고 지켜내는지 말이다.
La Corée du Sud a lutté chèrement pour sa démocratie. Ce pays est désormais cité dans le monde entier, de Washington à Milan, comme modèle pour sa réponse à l’épidémie.
민주주의를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르며 싸운 한국이 이제는 전 세계에서 팬데믹 대처의 모델로써 회자되고 있다.[61]
르 피가로. 2020년 4월 10일. ##
6. 대한민국의 정당
7. 대한민국의 정부
7.1. 역대 대한민국 정부
7.2. 대한민국의 정부조직
8. 관련 문서
- 대한민국 국회
- 역대 대한민국 국회의장
- WikiLeaks
- 대한민국/경제
- 단체 관련 정보
- 예산
-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
-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
-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
- 삼김시대
- 3당 합당
- 국회 공성전
- 통일주체국민회의
- 박근혜-최순실 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