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글랜츠

 


David M. Glan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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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소련 붕괴 전의 저작
3. 소련 붕괴 후의 저작
4. 연구 경향과 업적
5. 비판


1. 개요


미국의 前 군인이자 군사학자.
독소전쟁소련군, 러시아군 연구에서 높은 명성과 업적을 쌓은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2. 소련 붕괴 전의 저작


글랜츠는 1963년에 포병 장교로 입대했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한 이후 러시아어 전문가로서 CIADIA가 입수한 소련군 내부 자료들의 번역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중에는 소련군의 군사사 관련 정기 간행물인 <군사사 저널>이나 <군사 사상> 등이 있었다. 글랜츠는 소련군의 군사사 연구 자료들을 번역하면서 소련군의 제2차 세계대전사 연구가 이념에 경도되어 있긴 하지만 서구권이 가진 편견보다 훨씬 뛰어난 연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부터 시작된 글랜츠의 주된 문제의식인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소련군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후 글랜츠는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 등에서 소련군과 소련 군사사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했다. 이 당시 베트남전 이후 대두된 미군의 개혁을 위한 기동전 연구가 대두되고 있었는데 글랜츠 또한 이 흐름 속에서 소련군의 기동전과 작전술을 주제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 시기 글랜츠의 주요한 논문으로는 <Soviet Ground Doctrine Since 1945>(1983), <Soviet Defensive Tactics at Kursk, July 1943>(1983), <August storm: the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1983)[1], <August Storm, Soviet Tactical and Operational Combat in Manchuria>, <Soviet Airborn Experience>(1984)가 있다. 이런 연구 저작들의 발표로 글랜츠는 서서히 미군 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미군 내에서 '소련통'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글랜츠는 업적을 인정받아 소련 군사 연구소(Soviet Army Studies Office; SASO. 현 해외 군사 연구소 Foreign Military Studies Office; FMSO) 소장으로 재임하기 시작했고 1987년에는 미-소간 2차대전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해 서방과 소련의 독소전쟁사 인식을 논하는 논문인 <American Perspectives on Eastern Front Operations in World war II>를 러시아어로 써서 발표했다.
이 시기 글랜츠의 중요한 저작은 이렇다.
  • Soviet Military Deception in the Second World War (1989)
  • The role of intelligence in Soviet military strategy in World War II (1990)
  • Soviet Military Operational Art: In Pursuit of Deep Battle (1991)
  • The Soviet Conduct of Tactical Maneuver: Spearhead of the Offensive (1991)
  • From the Don to the Dnepr: Soviet Offensive Operations, December 1942-August 1943 (1991)
  • The Military Strategy of the Soviet Union: A History (1991)
또한 <The Journal of Soviet Military Studies>를 만들어 주필이 되었다.

3. 소련 붕괴 후의 저작


소비에트 연방이 1991년에 붕괴되고 문서 보관소의 문이 열림에 따라 글랜츠도 소련 측 1, 2차 사료를 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글랜츠는 1993년에 대령으로 전역한 이후 <The Journal of Soviet Military Studies>를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로 바꾼 후 본격적인 저술 활동을 시작했다.
글랜츠는 지휘 참모 대학에서 같이 일하던 조너선 M. 하우스와 함께 소련 붕괴 후 최초의 영어로 된 독소전쟁사 통사이자 글랜츠가 1970년대 후반부터 가져왔던 문제의식을 총정리했다고 볼 수 있는 <When Titans Clashed>(1995)[2] 를 출간함으로서 상당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사실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지금 보면 다소 오류(특히 독일군 관해서)가 있는 편이지만 어쨌든 그 명성으로 인해 글랜츠의 대표작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글랜츠는 1988년에는 <Stumbling Colossus: The Red Army on the Eve of World War>를 출간해 러시아의 유사역사학자인 블라디미르 레준(필명 빅토르 수보로프)가 주장한 '소련 선제공격 준비설'[3]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Stumbling Colossus>는 순수하게 1941년의 소련군만 분석해 레준이 주장한 소련의 선제공격 준비가 당시의 소련군으로서는 불가능했고 이는 스탈린도 잘 알고 있었음을 밝혔다.
이 시기에서 지금까지의 중요한 저작들은 이렇다.
  • Zhukov's Greatest Defeat: The Red Army's Epic Disaster in Operation Mars, 1942 (1999)
  • The Battle of Kursk (1999)
  • Barbarossa: Hitler's Invasion of Russia 1941
  • The Siege of Leningrad, 1941-1944: 900 Days of Terror (2001)
  • The Battle for Leningrad, 1941-1944
  • Before Stalingrad: Barbarossa, Hitler's Invasion of Russia 1941 (Battles & Campaigns) (2003)
  • The Soviet Strategic Offensive in Manchuria, 1945: August Storm (2003)
  • Colossus Reborn: The Red Army at War, 1941-1943 (2005)
  • Companion to Colossus Reborn: Key Documents and Statistics (2005)
  • Red Storm Over the Balkans: The Failed Soviet Invasion of Romania, Spring 1944 (2006)
  • After Stalingrad: The Red Army's Winter Offensive, 1942-1943 (2009)
  • To the Gates of Stalingrad: Soviet-German Combat Operations, April-August 1942 (2009)
  • Armageddon in Stalingrad: September-November 1942 (2009)
이 외에도 시중에 공개하지 않은 개인 출판물인 <The Forgotton Battles of Eastern Front> 5권이 있다.
번역작으로는 해럴드 S. 오런스타인과 공역한 소련군 총참모부 내의 연구 저작들이 있다.

4. 연구 경향과 업적


글랜츠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그의 문제 의식인 2차 대전에서의 소련의 역할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소련군에 대한 서방의 편견을 바로잡는 걸 강력히 피력해 왔다. 글랜츠는 냉전의 영향과 자료의 한계로 서방 측 시각[4] 독소 전쟁을 바라본 기존 연구자들을 비판하고[5] 그가 가진 막대한 소련 측 자료들을 동원해 이 방면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선대 연구자인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글랜츠가 지속적으로 존경을 표한 존 에릭슨과 더불어 한 층 균형잡힌 군사사 서술과 소련군에 대한 편견 바로잡기를 시도했다.
이러한 글랜츠의 노력은 독소 전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 외에도 소련군에 대한 자세한 연구를 낳았는데 그 중 하나는 소련군이 만든 전략과 전술 사이에 존재하는 '작전술' 개념에 대한 의미 확립이었다. 소련의 알렉산드르 스베친이 정의한 '작전술'의 의미는 서방 학자들이 전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에릭슨조차 작전술이 '확대된 전술'을 뜻한다고 보고 있었다. 글랜츠는 서방 최초로 이 오류를 바로잡고 작전술이 전략과 전술 사이의 중간 단계로 전략과 전술을 이어주는 다리이자 전략과 바로 직결되는 것이라는 정확한 해석을 했다.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 학계에서도 글랜츠의 연구 저작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5. 비판


물론 글랜츠의 연구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냉전 시대 서방진영의 군사학계와 미디어는 소련군을 세계 적화를 위해 침략에 광분한 군대이며 무능하고 비능률적인 군대로 묘사했는데, 글랜츠는 소련군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이런 인식을 반박하고 소비에트 연방이 가진 오랜 특수성과 대조국 전쟁의 참상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른 나라들처럼 국방을 위한 군대라는 인식을 비췄다. 글랜츠의 이런 주장은 자연히 반발을 불러왔고 글랜츠가 소련의 프로파간다를 여과 없이 전달한다는 비판을 받게 했다. 글랜츠의 초기 저작들은 웬 듣보잡이 소련 프로파간다에 놀아난다는 대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념적 편향성으로 인해서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던 당시 소련군 연구 경향을 보면 이런 비판은 매우 부당해 보인다.
반면에 과거 독일국방군 자료를 주로 인용하면서 이념적 편향성으로 소련군을 폄하하는 서방측 편견에 맞서서 연구하다보니 오히려 역으로 소련측에 편향되어버렸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소련군의 역할을 축소, 왜곡하는 서방측 독소전쟁사를 비판하면서 소련측 자료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다보니, 이제는 지나치게 소련군의 전과가 과대포장된 독소전쟁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쿠르스크 전투에 관해서 그의 이러한 소련 편향이 심하게 드러나는데,소련군 전차들이 '스탈린에 대한 충성심으로 전차를 독일 전차에 들이받고,전차가 피격되면 빠져 나와서 육탄전을 시도했다'라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참전자들의 증언과 최근 자료에 의하면 그것은 소련의 선전이고 실제론 장거리 포격전이었으며[6] 피해는 소련군이 병력의 4배,전차는 7배에 달했는데 이러한 사실도 어물쩡 넘어가서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아무래도 지속적으로 소련군만 연구하다 보니 소련측에 심정적으로 동조하게 된 것도 있는듯 하다.[7] 글랜츠 또한 이러한 비판을 알고 있어 근래에는 독일군 관련 연구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균형잡힌 연구를 위한 노력의 결과 <Zhukov's Greatest Defeat>에서는 게오르기 주코프가 크게 패배한 '화성 작전'을 밝혀냈는데 화성 작전의 의의가 주코프와 바실렙스키의 회고록대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펼쳐진 천왕성 작전의 조공에 지나지 않았는지, 아니면 기존 학설을 새로이 뒤집는 글랜츠의 주장대로 천왕성 작전과 동시에 진행된 대규모 포위 섬멸전이었는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글랜츠는 2006년, 러시아 판을 출간하며 영문판에는 없었던 다량의 소련군 군사 문서를 함께 수록하여 자신의 주장에 새로이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그 동안 소련의 프로파간다를 여과 없이 전달했다는 비판과 달리 화성 작전에서 대한 연구는 '소련군의 프로파간다를 정면으로 비난하며' 반대로 러시아 전사학자들의 크나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나 영미권 학자들의 밀도 높은 연구가 병행되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한국의 역사학자 이희진(역사학자)은 이글루스의 본인 블로그에서 글랜츠의 만주 작전 관련 서술 중 한달 안에 백만명을 이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글랜츠를 사이비 정도로 매도하다가 역덕, 밀덕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조리돌림을 당했지만 정신승리를 시전했다. 당연하지만 가능하고 역사적 기록으로 실증이 된 것인데 본인의 알량한 지식에 해당사항이 없다고 찌질거린 케이스다.

[1] 2018년 11월 국내에도 '8월의 폭풍'이라는 제목으로 길찾기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출판됐다. 만주 작전 당시 소련군의 기동전과 전략전술을 높게 평가했다.[2] 국내에는 '독소전쟁사'란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전문 번역가들이 아닌 밀덕후들이 번역했으며, 채승병이 감수를 맡아 책의 오류들을 죄다 수정하여 '원작보다도 낫다'라는 찬사를 받았다.[3] 스탈린이 독일을 선제공격하려는 준비를 몰래 해왔기에 독일은 예방전쟁으로써 바르바로사 작전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는 주장으로 결국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히틀러, 최소한 독일이나 독일군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독일 극우 세력들은 이 책의 등장에 좋아서 날뛰었으며 레준의 책이 가장 인기가 좋았던 곳 중 하나가 독일이었다. 그리고 반소, 반공적 입장을 취하는 저술가들은 레준의 입장에 동조하고 나서서 한때 Icebreaker Thesis라는 열풍까지 물었으나 정작 학계에서 가루가 되도록 두들겨맞았으며 영국의 소련 군사사 연구의 거장인 존 에릭슨은 '환상'이라고 단언하면서 깠다.[4] 이전 버전에서 독일이라 되어 있었으나 영-미의 시각에 훨씬 더 가깝다.[5] 사실 저서들에서 보이는 논조는 비판이라기 보다는 아쉬움 정도[6] 물론 위의 경우도 없진 않았겠지만 독일군도 전차를 들이 받거나 육탄 공격을 가했으므로 '''오로지 소련군만 이렇게 싸웠다고''' 말할 수 없다.[7] 이렇게 되면 정작 서방 측의 편향된 시각을 비판하던 그도 ''' 과오를 저지른 셈'''이니 사돈 남 할 처지가 못된다는 이도 있으나, 이는 완전무결하게 객관적인 학자만이 다른 학자들을 비판할수 있다는 뜻이나 다를바 없다. 당연히 그런건 있을 수가 없으며, 본래 학문적 발전은 학자들간의 상호비판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